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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지금은 맞고 그 때는 틀리다 - "목적이 다르면 말이 달라지는 법"


영화평 - 지금은 맞고 그 때는 틀리다.






목적이 다르면 말이 달라지는 법이다.


영화를 보고 하루가 지나니 정확한 영화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다. '어제는 맞고 오늘은 틀리다?' '어제는 틀리고 오늘은 맞다'인가? 영화 내용을 보면 둘로 나눠놨으니, 분명히 댓구가 이뤄지는 문장이었다.


"지금은 맞고 그 때는 틀리다"


홍상수의 영화는 항상 평점이 높다. 평점이 높은만큼 국제영화제 초청도 잘 돼 나간다. 출연진 8명에 소수의 스탭들, 120분을 이끌어가는데 필름 분량도 얼마되지 않아보인다. 편집이란 게 필요없을 정도로 시간적 나열이다.


홍상수의 많은 영화를 봤지만, 이번처럼 실소를 머금게 하는 영화는 없었던 것 같다. 또한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쉽게 깨우치지 못한 것도 처음이다. 그의 영화는 항상 휴식같았으니 머리 쓸 일이 없었다.


영화 중반(정확히 상영 1시간 후) 다시금 메인타이틀 시그널이 나온다. 1편과 2편으로 나눠놓은 듯한 인상이다.(편의 상 그렇게 나누련다) 같은 내용의 반복인가 싶다가도 배우들 대사가 이전과 다르다. 뭔가 메시지가 있을 터. 유심히 관찰하니 대답이 나온다.


'지금은 맞고 그 때는 다르게 얘기했던 것이군.'(일부러 다르다가 아니라 틀리다라고 한건가?)


짧게 설명하자면, 1편의 함춘수가 윤희정을 대하는 것과 2편에서의 그것이 다르다. 섹스가 목적인가, 사랑이 목적인가의 차이 정도? 남자가 대체로 첫 인상이 좋은 여성을 만났을 때 나오는 60가지 유혹의 기술 중 '말빨'을 최우선으로 쳤을 때 무릎 탁치게 만드는 장면이 여럿 나온다. 공감한다. 매우 공감. 연애고수들은 그것이 쉽게 깨우치리라. ㅋㅋ


수원 화성행궁 주변이 공간적 배경, 현재 시간이 시간적 배경. 제작비는 초절약이다. 그런데도 영화는 굵은 동앗줄이 관통해 나갈 정도로 핵심이 살아있다. 그렇다고 무게감있는 메시지가 아니라 가벼운 호흡 정도다. 그것이 그 영화의 특징일 터.


배우 정재영과 김민희는 대한민국 대표 배우인지라, 그들의 연기력에 감탄이 나온다. 특히 정재영의 술취한 연기는 진짜인지 연기인지 모를 정도다. 기타 작품에서 충분히 주연급으로 캐스팅될만한 배우들이 단역으로 나오니, 그들의 짧은 대사 주고받기만 보더라도 흥미롭다. 겨우 배우 8명이니.


독립영화나 단편영화에나 어울릴법한 스케일이지만, 홍상수는 오랜 세월 굵직한 필모그래피를 많이 남겼다. 개인적으로 엄지원이 '다시 사랑한다면(도원경 노래)'이란 노래를 감칠나게 불렀던 <극장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영화에서 엄지원은 정말 도원경의 목소리와 비슷할 정도로 잘 부른다. <극장전> 주연인 배우 김상경은 사실 홍상수의 단골 주연이지만, 이번 영화에는 빠졌다. 하나 덧붙이자면 영화감독이든 작가든 홍상수 영화에 단골 등장하는 직업군이 있으니, 이번 영화에도 주연이 영화감독이다.


홍상수의 영화들은 이런 단골 메뉴판들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작위적 대사와 어깨샷 카메라 워크에 지친 영혼들에게 쉼터같은 영화가 될 것이다. '커트'라는 단어를 외치지 않을 것처럼 길고 긴 롱테이크 기법은 정말이지 지루하다. 그런데도 실제 대본없이 상황만 주어지는 '리얼 예능 프로그램'처럼 그들의 대사는 리얼하다.


실제 1편과 2편의 대본이 실제 존재했었는 진 모르지만, 같은 상황 같은 프레임 안에서도 각각 대사가 다르다. 물론 내용적으로 달라야했겠지만, 아주 작은 부분까지 살펴보면 행동 하나하나 약간 다르다. 예컨대, 스시집에서 춘수와 희정이 술 마시는 장면에서 1편에서 오랫동안 정적이 흐를 때 함춘수는 자신의 가디건을 긁적거리거리는 것이 대본에 없는 연기였다면, 1,2편 통틀어서 목덜미에 손을 넣어 긁적거리는 것은 대본에 있었을 수도 있겠지 싶다.


어쨌든 홍상수의 영화는 작위적이지 않아 좋다. 인상찌푸리며 줄거리를 좇아가지 않아도 된다. 머리쓰지 않아도 될만큼 영화 자체가 휴식이다. 북유럽의 어느 TV 프로그램이 유람선을 타고 아무런 내레이션이나 대사없이 경치만 보여주는 '느림의 미학' 다큐멘터리를 방영해 시청률 1위를 했다는 뉴스를 봤을 때 공감이 갔던 것 처럼.


아! 끝으로 홍상수의 영화가 대체로 청소년관람불가인데 이 영화 또한 그렇다. 그런데 배드신은 없다. 술과 담배 때문인지도.


Tip. 배우 서영화
이 영화에서 자꾸 생각나는 한 명의 배우가 있으니, 바로 배우 서영화씨다. 목소리 톤이나 액센트가 배우가 아니라 그 상황에 놓여진 실제 '인물'같다. 여러번 느꼈는데 이번에도 그러하다.


★★★★
드라마 한국121분 2015.09.24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