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 이겨낸 추억 속 가을路
영화는 어쩌면 고속도로 위 길게 늘어선 자동차같다. 어디로 방향을 틀지 모르지만, 결국 도로 위에 있는 건 생생히 숨쉬고 있는 운전자라는 것. 영화는 그저 거기까지다. 전문가들이 달콤하고 짜릿한 비유적 표현으로 굳이 감싸지 않아도 영화가 표현해 낼 수 있는 건 그저 개인의 표현과 다를 바 없다. 모두가 개개인이 느껴지는대로 해석하면 그 뿐이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으나, 사실 왕복 8차선의 고속도로는 삼풍백화점을 향하고 있지 않다. 그 위의 자동차들도 어디로 향할 지 모르지만 결국 톨게이트를 지나가야 하는 건 변치 않는 사실이다. 가을은 그래서 누구에게나 추억을 곱씹고 있어 의미심장하다.
어찌보면 영화 <가을로>는 유지태와 김지수 주연의 감성 멜로물이다. 필자의 영화관에 가을영화가 부족한 것 같아 먼지 풀풀나는 창고를 뒤져 고른 '가을 영화'라 별 부담없이 보았는데, 의외로 괜찮다. 수백억원의 제작비를 들여 만든 블럭버스터류의 영화만 흥행하는 세상에서 이런 '작은 한국영화'들이 흥행 실패하고 고이 묻혀있다는 것이 새삼 안타깝다.
보통의 영화들도 여러 가지의 이야기를 서서히 겹치며 서로의 교집합을 만들어감으로써 이야기를 완성하곤 하는데, 이 영화 또한 그러하다. 최현우 검사(유지태)와 서민주 PD(김지수), 윤세진(엄지원)의 등장은 서로 연결고리가 없음에도 10년 이란 그 긴 과정을 잘 그려냈는데, 그것은 김대승 감독이 영화 <번지 점프를 하다>에서 보여준 것과 비슷하다. 과거와 현재는 언제나 양면의 거울처럼 서로를 응시하고 있다.
최현우 검사가 삼풍백화점 사고로 죽은 서민주를 그리워하며 여행 간 곳에서 횟집 합석으로 우연히 만난 윤세진.(나에게도 저런 우연이 일어나길 바라는 건 대부분 '영화'가 대신 해결해 준다.) 사고로 인한 가슴 아픈 것들이지만,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지면 또 만나게 되는 것이 인생 임을 이 세 명의 주인공이 잘 그려냈다.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에서 본 '리츠코' 역할을 윤세진이 하는 것 같다.
이 과정에서 그려진 정치계와 검찰과의 관계는 스테이크에 얹어진 브로콜리처럼 곁가지다.
"하늘에서는 빗소리를 들을 수 없어. 우리가 듣는 빗소리는 비가 사물에 부딪혀서 나는 소리잖아. 그러니까 우린 비가 와야지만 그 모든 사물들의 소리를 듣는 거야."
결국 이 영화의 테마는 '추억 밟기'다. 오글거리는 대사들도 '가을'이라서 용서가 된다. 가을은 그렇잖은가. 사랑이 있었고, 또 사랑이 있으니, 추억 쯤은 낭만적인 클래식 멜로디에 묻혀 가슴을 후벼파지 않는가. 가을에 발담그고 가을 향수를 마시며 가을 바람에 미치도록 취하고 싶다면 이 영화 추천이다.
영화 <가을로>는 '가을路'라고 할 수 있겠다. 가을로는 느리다. 느릿한 영화다. 다소 통통한 신인 시절의 엄지원을 엿볼 수 있다는 것과 전라도의 우이도, 소쇄원, 포항 내연산의 아름다운 풍경은 덤이다.
★★★☆
멜로/애정/로맨스, 드라마 2006 .10 .25 114분 한국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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