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女子. 남자. 男子.
한문이란 것이 원래 상형문자에서 기원했기에 '여자'는 신체 모양을 바탕으로 '여자'란 말이 만들어졌으나, 남자는 그렇지가 않다. '밭전'글자에 '힘력'자를 더해 밭을 가는 사람이란 의미로 해석되는 것이다. 국민학교 시절에 이미 깨우친 사실이지만, 난 오늘 이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 본다.
남자. 밭을 갈아 돈을 벌고 그 돈으로 가정을 꾸려나가야 한다는 의미다. 여자. 여자는 아무런 의미없이(글자 자체로만 본다면) 신체 모양 그대로 여자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의미가 없어보인다. 글자 자체로만 본다면 말이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수순에 의해 삶을 결정짓고 살아가는 지도 모른다. 어렸을 적 부터 남자는 대외적으로 여자는 대내적으로 놀이문화를 이끌어가면서 이미 그들 삶의 방식을 정해놓았는지도 모른다.
내 나이 서른하나. 31살. 써리원. 베스킨라빈스. 남자 나이 서른 하나는 큰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솔직히 내가 살아왔던 순간을 되돌아보면 오늘 이런 반성의 시간이 무척 늦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그러나, 비로소 난 알았다. 이제서야. 이제서야 여자의 마음을, 여자의 생각을, 여자의 심리를 100%는 아니더라도 80%정도 인식할 수 있게 됐다. 여자란 무엇인가에 대해 감히 떠벌리는 것 자체가 매우 우습다. 우스울 정도가 아니라, 내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아 부끄럽기까지 하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앞으로 전개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 감정에 솔직하고 내 행동에 솔직하기 위해 평범하지 않은 고백을 오늘 하려고 한다. 무언가 잡히지 않는 끈만을 좇아온 내 인생이 불쌍하기도 하거니와, 이제 더 이상 늦기 전에라도 더 큰 상처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사전 작업 정도로 여겼으면 좋을 듯 하다.
남자는 인생의 전부가 결혼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여자도 마찬가지겠지. 그러나, 대체로 여자가 남자보다 인생에 있어 결혼을 더욱 크게 받아들이는 게 사실이다.(이 점은 예전부터 알았던 것)
결혼은 현실이다. 결혼은 삶이고, 눈뜨고 살아가는 그 순간순간인 것이다. 사랑은 가끔 한번씩 확인해주면 되는 부수적인 것으로 밀려나는, 그래도 서글프지 않은 게 바로 결혼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주위의 조언이 큰 영향을 미쳤다. 나만 모르고 있었던 사실을 알게 됐을 때의 좌절감, 혹은 상처는 이제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난 적어도 내가 힘차게 잘 살아왔고, 무리없이 결혼해서 무리없이 살 줄 알았다. 힘들이지 않고 철저한 계획은 아니더라도 '사랑'이 가장 큰 덕목으로 여기며 그렇게 삶을 지탱해 온 것이 사실이다. 현실을 무시했던 것도 사실이다. 현실은 현실일 뿐, 결혼하는 데 있어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난 오늘 뼈에 사무치는 반성의 시간을 갖는다. 지금까지 내 행동을 보면 그래왔다. 확신에 찬 믿음을 크게 주지 못했던 것, 그것은 모두 '현실'이라는 주제를 놓고 토론했을 때 나왔던 것으로 감히 추정된다. '현실'의 문제에 부딪히면 그저 'open mind'만 했을 뿐, 그 이상 그 이하의 어떤 철저한 계획을 세워놓은 적 없었다.
그저 따라올 것이라는 무지한 믿음이 나에게 크나 큰 상처가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모든 여자가 그러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조언을 구하는 여자들 모두 그런 말을 한다. '그 마음 이해한다'고. 난 아니라고 우겼다. 아니라고 우겼고,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닐 것이다라고. 그런데, 시간이 지날 수록 명확히 떠오르는 명제는 바로 '현실은 현실'이라는 것.
부모 형제를 잃거나, 연인을 잃는 것 등의 사랑을 잃는 것만큼 큰 아픔이 세상에 또 어디있을까마는, 그 보다 큰 아픔은 결혼 후에도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난 오늘 깨닫는다.
이 글에 대해 훗날 내 부인이 보든, 옛연인이 보든 그것은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 나이 서른하나에 무지함에서 탈출했기에 오히려 박수를 받을 것이란 기대감이 더 크다. 난 이제 그들을 증오하지 않는다. 내 자신의 문제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결혼은 현실이라는 명제. 간단하지만, 인정치 않았고 생각의 여유가 없었던 점에 대해 난 한없는 후회를 한다. 여자가 아무리 지상 최고의 기운을 타고나 세계 최고 여성 CEO라는 HP회장 칼리 피오리나처럼 된다해도 여자는 남자에게 기대기 마련이다. 하물며 결혼인데... 난 왜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항상 쓰라림만 맛본다고 투덜됐던가. 후회스럽다.
작금의 사태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다보니, 생각이 여기에 까지 미쳤다. 그래, 사랑했다. 사랑했던 것 안다. 사랑을 인정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 난 사랑했다. 그녀도 사랑했다. 누굴 사랑했던지 간에 우린 사랑했다. 삶을 사랑했던, 사람 자체를 사랑했던, 조건을 사랑했던지간에 우린 사랑했다. 사랑을 부정하지 않을란다. 그것은 사실이었기에. 눈을 보면 알 수 있기에.
오히려 고맙다. 크나 큰 반성의 시간을 갖게 해준 것에 대해 매우 고맙다. 알지 못했던 것을 알아간다는 것은, 보지 못한 곳을 보러가는 설레임과 비견될만한 큰 기쁨이다.
이유야 어찌됐든, 사랑은 떠났다. 힘없이 좌절하며 온갖 방황을 하고 있는 오늘 내게 힘이 되줄만한 건 하나도 없는 듯 하다. 주위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 보이고, 길가는 강아지의 팔자가 부럽기까지 한 '최상의 좌절'상태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모두 내가 자초한 일임을 이제는 조금씩 인정해 가고 있다. 내가 자초했다. '자학'의 단계까지 올라선 건 아니지만, 많은 후회가 내 몸을 감싼다.
이쯤 되다보니, 여자를 알아간다는 것. 그 의미는 바로 결혼을 알아간다는 것이 아닐까하는 결론이 조금씩 고개를 든다. 결혼을 알아간다는 건, 결국 여자를 알아간다는 의미가 아닐까라는 추리도 가능케 됐다. 아울러, 결혼은 돈이라는 일차방정식을 손쉽게 풀어내야 하는 것도 알게 됐다. 이제는 풀어내야 하는 것을 알게 됐단 얘기다.
현실 앞에 '자존심'이 무슨 큰 대책이겠냐마는, 가슴에 입은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을 것 같다. 현실을 인식하게 됐긴 하지만... 상처는 상처다. 자존심 내세우지 않는 것이 내 첫번째 지론인데, 이제는 다소 수정해야 할 듯 하다. 어찌보면 내가 판 무덤에 내가 들어간 격이 됐으니, 참으로 우습다. 내 자신이. 내 인생이.
결혼. 나이 31세. 가진 것 없고 보잘 것 없는 조건이다. 내세울 것 없지만 사랑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가슴에 안고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퍼주다퍼주다 안되면 빚을 내서라도 더 퍼주고 싶은 맘을 가진 사람이다. 아직은 '사랑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데 단지 그것뿐이었다. 내가 쌓아온 10년간의 '사랑학 개론'이란 것이 바로 그것 뿐이었다. 연애와 결혼은 다르다는 인식을 이제부터... 그래, 열심히 해봐야 겠다.
등따신 방이 있고,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양식이 있으며, 입을 수 있는 옷이 있으면 그 뿐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무지. 좀 더 영악하게 사랑을 해야했음에도 그렇지 못했던 나의 무지... 이제 털자. 조금씩이라도. 세상을 다시 바라보며 다시 사랑을 했을 때, 정돈되고 단정한 호텔 커피샵의 테이블같은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제발 그렇게 살자... 상처가 너무 깊었다. 독이 빠지지 않는다. 이것도 현실인 것인데...
한문이란 것이 원래 상형문자에서 기원했기에 '여자'는 신체 모양을 바탕으로 '여자'란 말이 만들어졌으나, 남자는 그렇지가 않다. '밭전'글자에 '힘력'자를 더해 밭을 가는 사람이란 의미로 해석되는 것이다. 국민학교 시절에 이미 깨우친 사실이지만, 난 오늘 이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 본다.
남자. 밭을 갈아 돈을 벌고 그 돈으로 가정을 꾸려나가야 한다는 의미다. 여자. 여자는 아무런 의미없이(글자 자체로만 본다면) 신체 모양 그대로 여자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의미가 없어보인다. 글자 자체로만 본다면 말이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수순에 의해 삶을 결정짓고 살아가는 지도 모른다. 어렸을 적 부터 남자는 대외적으로 여자는 대내적으로 놀이문화를 이끌어가면서 이미 그들 삶의 방식을 정해놓았는지도 모른다.
내 나이 서른하나. 31살. 써리원. 베스킨라빈스. 남자 나이 서른 하나는 큰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솔직히 내가 살아왔던 순간을 되돌아보면 오늘 이런 반성의 시간이 무척 늦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그러나, 비로소 난 알았다. 이제서야. 이제서야 여자의 마음을, 여자의 생각을, 여자의 심리를 100%는 아니더라도 80%정도 인식할 수 있게 됐다. 여자란 무엇인가에 대해 감히 떠벌리는 것 자체가 매우 우습다. 우스울 정도가 아니라, 내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아 부끄럽기까지 하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앞으로 전개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 감정에 솔직하고 내 행동에 솔직하기 위해 평범하지 않은 고백을 오늘 하려고 한다. 무언가 잡히지 않는 끈만을 좇아온 내 인생이 불쌍하기도 하거니와, 이제 더 이상 늦기 전에라도 더 큰 상처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사전 작업 정도로 여겼으면 좋을 듯 하다.
남자는 인생의 전부가 결혼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여자도 마찬가지겠지. 그러나, 대체로 여자가 남자보다 인생에 있어 결혼을 더욱 크게 받아들이는 게 사실이다.(이 점은 예전부터 알았던 것)
결혼은 현실이다. 결혼은 삶이고, 눈뜨고 살아가는 그 순간순간인 것이다. 사랑은 가끔 한번씩 확인해주면 되는 부수적인 것으로 밀려나는, 그래도 서글프지 않은 게 바로 결혼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주위의 조언이 큰 영향을 미쳤다. 나만 모르고 있었던 사실을 알게 됐을 때의 좌절감, 혹은 상처는 이제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난 적어도 내가 힘차게 잘 살아왔고, 무리없이 결혼해서 무리없이 살 줄 알았다. 힘들이지 않고 철저한 계획은 아니더라도 '사랑'이 가장 큰 덕목으로 여기며 그렇게 삶을 지탱해 온 것이 사실이다. 현실을 무시했던 것도 사실이다. 현실은 현실일 뿐, 결혼하는 데 있어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난 오늘 뼈에 사무치는 반성의 시간을 갖는다. 지금까지 내 행동을 보면 그래왔다. 확신에 찬 믿음을 크게 주지 못했던 것, 그것은 모두 '현실'이라는 주제를 놓고 토론했을 때 나왔던 것으로 감히 추정된다. '현실'의 문제에 부딪히면 그저 'open mind'만 했을 뿐, 그 이상 그 이하의 어떤 철저한 계획을 세워놓은 적 없었다.
그저 따라올 것이라는 무지한 믿음이 나에게 크나 큰 상처가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모든 여자가 그러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조언을 구하는 여자들 모두 그런 말을 한다. '그 마음 이해한다'고. 난 아니라고 우겼다. 아니라고 우겼고,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닐 것이다라고. 그런데, 시간이 지날 수록 명확히 떠오르는 명제는 바로 '현실은 현실'이라는 것.
부모 형제를 잃거나, 연인을 잃는 것 등의 사랑을 잃는 것만큼 큰 아픔이 세상에 또 어디있을까마는, 그 보다 큰 아픔은 결혼 후에도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난 오늘 깨닫는다.
이 글에 대해 훗날 내 부인이 보든, 옛연인이 보든 그것은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 나이 서른하나에 무지함에서 탈출했기에 오히려 박수를 받을 것이란 기대감이 더 크다. 난 이제 그들을 증오하지 않는다. 내 자신의 문제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결혼은 현실이라는 명제. 간단하지만, 인정치 않았고 생각의 여유가 없었던 점에 대해 난 한없는 후회를 한다. 여자가 아무리 지상 최고의 기운을 타고나 세계 최고 여성 CEO라는 HP회장 칼리 피오리나처럼 된다해도 여자는 남자에게 기대기 마련이다. 하물며 결혼인데... 난 왜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항상 쓰라림만 맛본다고 투덜됐던가. 후회스럽다.
작금의 사태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다보니, 생각이 여기에 까지 미쳤다. 그래, 사랑했다. 사랑했던 것 안다. 사랑을 인정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 난 사랑했다. 그녀도 사랑했다. 누굴 사랑했던지 간에 우린 사랑했다. 삶을 사랑했던, 사람 자체를 사랑했던, 조건을 사랑했던지간에 우린 사랑했다. 사랑을 부정하지 않을란다. 그것은 사실이었기에. 눈을 보면 알 수 있기에.
오히려 고맙다. 크나 큰 반성의 시간을 갖게 해준 것에 대해 매우 고맙다. 알지 못했던 것을 알아간다는 것은, 보지 못한 곳을 보러가는 설레임과 비견될만한 큰 기쁨이다.
이유야 어찌됐든, 사랑은 떠났다. 힘없이 좌절하며 온갖 방황을 하고 있는 오늘 내게 힘이 되줄만한 건 하나도 없는 듯 하다. 주위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 보이고, 길가는 강아지의 팔자가 부럽기까지 한 '최상의 좌절'상태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모두 내가 자초한 일임을 이제는 조금씩 인정해 가고 있다. 내가 자초했다. '자학'의 단계까지 올라선 건 아니지만, 많은 후회가 내 몸을 감싼다.
이쯤 되다보니, 여자를 알아간다는 것. 그 의미는 바로 결혼을 알아간다는 것이 아닐까하는 결론이 조금씩 고개를 든다. 결혼을 알아간다는 건, 결국 여자를 알아간다는 의미가 아닐까라는 추리도 가능케 됐다. 아울러, 결혼은 돈이라는 일차방정식을 손쉽게 풀어내야 하는 것도 알게 됐다. 이제는 풀어내야 하는 것을 알게 됐단 얘기다.
현실 앞에 '자존심'이 무슨 큰 대책이겠냐마는, 가슴에 입은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을 것 같다. 현실을 인식하게 됐긴 하지만... 상처는 상처다. 자존심 내세우지 않는 것이 내 첫번째 지론인데, 이제는 다소 수정해야 할 듯 하다. 어찌보면 내가 판 무덤에 내가 들어간 격이 됐으니, 참으로 우습다. 내 자신이. 내 인생이.
결혼. 나이 31세. 가진 것 없고 보잘 것 없는 조건이다. 내세울 것 없지만 사랑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가슴에 안고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퍼주다퍼주다 안되면 빚을 내서라도 더 퍼주고 싶은 맘을 가진 사람이다. 아직은 '사랑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데 단지 그것뿐이었다. 내가 쌓아온 10년간의 '사랑학 개론'이란 것이 바로 그것 뿐이었다. 연애와 결혼은 다르다는 인식을 이제부터... 그래, 열심히 해봐야 겠다.
등따신 방이 있고,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양식이 있으며, 입을 수 있는 옷이 있으면 그 뿐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무지. 좀 더 영악하게 사랑을 해야했음에도 그렇지 못했던 나의 무지... 이제 털자. 조금씩이라도. 세상을 다시 바라보며 다시 사랑을 했을 때, 정돈되고 단정한 호텔 커피샵의 테이블같은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제발 그렇게 살자... 상처가 너무 깊었다. 독이 빠지지 않는다. 이것도 현실인 것인데...
2003.4
'Sensibility >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길을 갑니다.(2003) (0) | 2009.07.21 |
---|---|
집착이라는 것(2003) (0) | 2009.07.21 |
[달에게 쓰는 편지] 사랑의 블랙홀(2003) (0) | 2009.07.21 |
나를 괴롭히는 것. (2003) (0) | 2009.07.21 |
가지처럼 뻗어나간 인연의 사슬들.(2002) (0) | 2009.07.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