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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sibility/수필

나를 괴롭히는 것. (2003)

나를 괴롭히는 것.

나를 괴롭히는 것이 지금 있습니다. 온갖 욕심으로 비롯된 (마음을 비우지 못한) 좌절은 아마도 그 중에서 가장 큰 것이라 봅니다. 좌절에 대해 아시는지요? 무언가 깊이 원하거나 그것을 이루지 못했을 때 나오는 짧은 탄성, 그것을 저는 감히 좌절이라 말하렵니다.

좌절은 달리보면 그리움과 같은 것일란 생각이 듭니다. 좌절의 종류가 수백가지로 나뉘겠지만, 좌절했을 땐 이미 그 형태(무형이든 유형이든)에 대해 무척이나 애닯은 감정을 갖게 마련입니다.

'아깝다! 잘할 수 있었는데! 얻을 수 있었는데! 더 노력할 것을!'이라는.

시인 김수영님은 '큰 사랑은 자비이며, 작은 사랑은 소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작은 사랑을 했나 봅니다. 그래서 이러한 고통을 감내하며 하루하루 숨을 쉬나 봅니다.

저는 오늘 사랑에 대해 잠시 언급하려 합니다. 매일 해대는 이야기 중의 하나지만, 매일매일 특별한 감정을 갖던 것을 잃었을 때의 좌절과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한 나의 작은 노력이라 봐주셨으면 합니다.

유리상자의 '신부에게'란 노래가 있습니다. 가사를 살펴보면 대략 '어려움을 딛고 우리 결혼했으니 잘 살아보자'라는 내용의 것입니다. MBC 사랑의 스튜디오가 한창 주가를 올릴 때 삽입됐던 음악이기도 하지만, 유리상자의 그 고운 음색때문에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던 바로 그 노래. 저는 이 노래를 아주 오래전부터 좋아했습니다.

왜냐고 묻는다면, 굳이 숨기진 않겠습니다. 유리상자의 '신부에게'는 제가 결혼식때 꼭 부르고 싶었던 노래였기때문입니다. 결혼식날 신랑이 노래 부르는 일 흔치 않지요? 아뇨. 저는 못봤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노래를 불러 신부에게 선물해주고 싶었습니다. 참 우습습니다. 신파극 찍는 것도 아니고... 식장은 온통 눈물바다가 될 지도 모릅니다. '차가운 시선이 우릴 막아설때...'라는 소절에선 눈물까지 흐릅디다.

오래전 장애인과 결혼했던 직장 동료분의 결혼식이 떠오릅니다. 그녀는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웨딩드레스를 끌며 식장으로 들어섰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대체로 의아해 했습니다. 그러나, 식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기저기서 눈물 흘리는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클라이막스는 신부측 부모님과 신랑측 부모님께 드리는 '양가인사'때였습니다. 너무나 많은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던 그 때 그 '절'. 지금도 아련하게 남아있습니다.

결혼식은 눈물을 흘리는 장소인가요? 아닌가요? 굳이 웃어야 한다면 저는 눈물 섞인 웃음을 선택하렵니다. 온 몸에 전율을 느껴보셨다면, 제 말에 조금이나마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까요?

이겨내야합니다. 사랑해서 헤어진 기억때문에 이토록 가슴 아파한다면, 저만 손해겠지요. 세상은 제게 말합니다. 바보처럼 살지 말라고. 그러나, 저는 죽을 때 까지 믿을 겁니다. 사랑은 결코 거짓말 하지 않는다고. 그리고, 사랑은 죽지 않고 영원히 가슴에 남을 것이라고. 남들은 사랑 하나로 살 수 없다고 말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줄 것입니다. 세상에 대고 외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험합니다. 냉혹합니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싶진 않지만,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래서, 다시 일어서려 합니다. 그런데 잘 안됩니다. 죽을 맛입니다.

아... 이쯤 되니 무슨 초등학교 국어시간에 선생님이 회초리에 무서워 간신히 써 넘기는 '낙서'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쓰잘대기 없는 글이라 해도 저는 오늘 매우 심각하며, 웃음을 잃은 지 오래라 노력하고 싶을 뿐 다른 의도는 없습니다.

솔직히 이번 상처는 너무 깊어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별의 별 짓을 다해봐도 생생한 영혼과 기억은 저를 하루 종일 괴롭힙니다. 아침에 눈뜨는 시간부터 잠드는 그 시간까지 저를 괴롭힙니다. 눈을 감으며 나아질까요? 아닙니다. 꿈에서 그녀를 봅니다.

이제는 저를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남 의식하며 살아온 건 아니지만, 그들은 내 작은 소망들이기에 무시할 수 없습니다. 날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이들의 눈을 피해 저는 숨었습니다. 아니 정신병동에 가보려고 합니다. 숨어 햇볕 하나 보이지 않는 시궁창같은 소굴에서 까맣게 지우려 합니다. 정신병원에라도 가야할까요?

괴롭습니다. 나를 괴롭히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거리에 나가봐도, 영화를 봐도, TV를 봐도, 밥을 먹어도, 일을 해도, 전화를 해도, 길을 걸어도, 술을 마셔도... 모두 나를 괴롭히는 것들이 하나씩은 박혀 있습니다. 뭐냐고요? 그녀에 대한 기억. 바로 그것입니다. 아침부터 24시간 함께 했던 순간은 없었지만, 아침부터 24시간 생각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녀가 사라졌다고 한순간에 그렇게 없어지진 않는가 봅니다.

저는 기도합니다. 살려달라고. 제발 내 목구녕에서 피를 토하게 만들어도 좋으니, 내 뇌세포의 기억을 가져가 달라고. 이런 생각도 듭니다. 내 온 몸을 한손으로 가볍게 들어 '기억망상샘물'에 푹 담가 꺼내는 꿈도 꿉니다. 0.1초도 안되어 모든 게 잊혀지는.... 바로 그런 생각.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인간이기에 생각한다는 말이 요즘처럼 듣기 싫은 때가 없습니다.

살고자 합니다. 이제는 살고자 합니다. 살고 싶습니다. 정말로...

2003. 4.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