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여울
모든 일들은 순식간에 이뤄진다는 사실을 조금씩 마음속으로 인정해 가고 싶을 때쯤, 내 가슴을 꽤 깊이 짖누르는 고통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것은 내 힘으로 이겨낼 수도, 이기지도 못할 만큼의 거대한 패기와 용기를 지니고 있다. 나란 하찮은 인간으로선 도저히 견뎌낼 수 없는 것. 이러한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그릇 판단법'은 바로 이런 순간에 결정될 일이다.
흐려져 가는 기억의 소실점. 은빛으로 이뤄진 바닷가에서 약 10여분간의 짧은 시간 동안 10여년간의 추억을 꺼내어 차곡차곡 쌓았다면 거짓말이겠지. 1분에 1년씩 손아귀에 든 담배 꽁초를 휴지통에 던지듯 그렇게 손에서 버렸다면 거짓말이겠지.
산과 바다가 있다. 어느 것이 더 정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느 것이 더 동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산? 바다? 쉽게 판가름 내기 힘들다. 산이 정적일 수도, 동적일 수도 있으니까. 바다가 동적일 수도, 정적일 수도 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다. 흔히 어렸을 적에 받았던 질문 하나. "엄마가 더 좋아? 아빠가 더 좋아?" ... 참으로 어리석은 질문. 어리석음을 몰랐던 때 난 "엄마"라 대답했다. 무엇이 더 좋고 무엇이 더 나쁠까. 하나가 좋으면 머리 끝에, 하나가 나쁘면 다리 끝에 매달았던 시절에 우린 무엇을 쫓았단 말인가.
사랑과 이별이 있다. 종이 한장 차이라지만, 이별을 좋아할 사람 어디 있을까. 그렇다고 사랑도 확실하지 않다. 사랑은 기쁨뿐 일까. 이별은 슬픔뿐 일까.
초콜릿맛 아이스크림과 딸기맛 아이스크림, 바닐라맛 아이스크림을 한 통에 넣고 얼린 후 갑자기 녹이면 어떤 맛이 날까. 죽처럼 미끌미끌, 끈적끈적이겠지. 세가지 색상이 섞여 무슨 맛의 아이스크림을 넣었는지 모르겠지. 어쩌면... 아주 어쩌면, 이렇듯 무슨 맛인지도 모르게 사랑을 했고, 이별을 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들 중 확실한 건 내 기억엔 분명 존재하는 웃음이 있고, 눈물이 있기에 쉽게 수긍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은빛으로 물들은 바다를 바라보노라니, 잠시 10여분간의 정적이 있었지만 내 맘은 동적이었고 내 머리는 톱니가 잘 맞는 바퀴처럼 연신 돌아가고 있었다.
모든 일들은 순식간에 일어난다더니, 진정 바닷가의 풍경도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내 눈에는 뽀얀 태양의 빛줄기가 눈을 간지럽혔고, 은빛으로 여울대던 바닷물도 검은색 이브닝드레스로 갈아입으며 내 등을 토닥여 줄 뿐이었다.
...
바다가 한숨 쉬는 내게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대답하지 않았다.
말없이 돌아서니 아이스크림 가게가 보였을 뿐.
모든 일들은 순식간에 이뤄진다는 사실을 조금씩 마음속으로 인정해 가고 싶을 때쯤, 내 가슴을 꽤 깊이 짖누르는 고통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것은 내 힘으로 이겨낼 수도, 이기지도 못할 만큼의 거대한 패기와 용기를 지니고 있다. 나란 하찮은 인간으로선 도저히 견뎌낼 수 없는 것. 이러한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그릇 판단법'은 바로 이런 순간에 결정될 일이다.
흐려져 가는 기억의 소실점. 은빛으로 이뤄진 바닷가에서 약 10여분간의 짧은 시간 동안 10여년간의 추억을 꺼내어 차곡차곡 쌓았다면 거짓말이겠지. 1분에 1년씩 손아귀에 든 담배 꽁초를 휴지통에 던지듯 그렇게 손에서 버렸다면 거짓말이겠지.
산과 바다가 있다. 어느 것이 더 정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느 것이 더 동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산? 바다? 쉽게 판가름 내기 힘들다. 산이 정적일 수도, 동적일 수도 있으니까. 바다가 동적일 수도, 정적일 수도 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다. 흔히 어렸을 적에 받았던 질문 하나. "엄마가 더 좋아? 아빠가 더 좋아?" ... 참으로 어리석은 질문. 어리석음을 몰랐던 때 난 "엄마"라 대답했다. 무엇이 더 좋고 무엇이 더 나쁠까. 하나가 좋으면 머리 끝에, 하나가 나쁘면 다리 끝에 매달았던 시절에 우린 무엇을 쫓았단 말인가.
사랑과 이별이 있다. 종이 한장 차이라지만, 이별을 좋아할 사람 어디 있을까. 그렇다고 사랑도 확실하지 않다. 사랑은 기쁨뿐 일까. 이별은 슬픔뿐 일까.
초콜릿맛 아이스크림과 딸기맛 아이스크림, 바닐라맛 아이스크림을 한 통에 넣고 얼린 후 갑자기 녹이면 어떤 맛이 날까. 죽처럼 미끌미끌, 끈적끈적이겠지. 세가지 색상이 섞여 무슨 맛의 아이스크림을 넣었는지 모르겠지. 어쩌면... 아주 어쩌면, 이렇듯 무슨 맛인지도 모르게 사랑을 했고, 이별을 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들 중 확실한 건 내 기억엔 분명 존재하는 웃음이 있고, 눈물이 있기에 쉽게 수긍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은빛으로 물들은 바다를 바라보노라니, 잠시 10여분간의 정적이 있었지만 내 맘은 동적이었고 내 머리는 톱니가 잘 맞는 바퀴처럼 연신 돌아가고 있었다.
모든 일들은 순식간에 일어난다더니, 진정 바닷가의 풍경도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내 눈에는 뽀얀 태양의 빛줄기가 눈을 간지럽혔고, 은빛으로 여울대던 바닷물도 검은색 이브닝드레스로 갈아입으며 내 등을 토닥여 줄 뿐이었다.
...
바다가 한숨 쉬는 내게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대답하지 않았다.
말없이 돌아서니 아이스크림 가게가 보였을 뿐.
20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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