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이란 게 사람을 참 우습게 만든다. 예전에는 기온이 30도를 오르내려도 선풍기 하나로 여름을 거뜬히 이겨냈는데, 이제는 에어컨의 영향 때문인지 조그마한 더위에도 헉헉 댄다.
에어컨이 없는 곳은 으레 인상을 찡그리게 되고, 에어컨은 당연히 모든 곳에 마땅히 설치해놔야 하는 물건으로로 사람들은 생각한다.
"뭐야, 에어컨도 없잖아. 애들아, 나가자."
언제부터일까. 90년대초반 부터가 아닐까. 고층 빌딩이야 에어컨을 준공당시부터 설계에 포함시켜 자동으로 설치해 놨겠지만, 노후한 빌딩들은 90년대 들어서면서 에어컨 설치 경쟁이라도 하듯 모두가 시원한 바람에 몸이 녹아내렸다.
아파트에서도 마찬가지다. 80년대만 해도 1개동에서 에어컨 환풍기는 1-2개가 고작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1백만원을 호가하는 에어컨이 집집마다 모두 가동되고 있다.
그 덕에 전력 수급에 차질을 빚어 여름철 TV 뉴스는 장마, 태풍과 함께 이것이 단골 메뉴가 됐다.
비지땀을 흘리며 버스를 타본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좌석 버스 500원 하던 시절, 200원짜리 입석버스는 그야말로 찜통이었다. 여름철에만 주로 좌석버스를 이용했던 이유는, 아니 나의 잣대는 바로 '에어컨'이었다.
에어컨이 있었기에 좌석버스의 500원은 -입석의 두배를 넘는 금액이었지만- 돈이 아깝지 않았고, 그것으로 인해 장거리 여행이 즐겁기만 했다.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는 사람들을 창 밖으로 보고 있노라면 모랄까... 조그마한 희열같은 것도 느꼈다.
자동차를 소유한 집에서는 진풍경도 벌어지곤 했다. 집에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았으니, 여름밤 자동차에 시동을 켜 놓고 시원한 바람을 만끽했던 것이다.
에어컨디셔너. 요 며칠전 우리집에도 에어컨을 설치했다. 근 30여년을 에어컨 없이 살아왔으나, 얼마전 에어컨을 설치하고 근근히 24도를 유지해 놓고 시원한 바람에 얼굴을 맞대곤 한다. 처음 있는 일이다. 집안이 시원해 진다는 것. 뭐든지 처음 있는 일은 기념해 놓고 싶은 본인의 욕망에 오늘 몇자 글적인다.
점점 더 편안해 지는 세상.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는지도 모르는 채, 사는 것 같지만 사실 우리는 30도를 참지 못하는 의지력 상실의 시대에 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세월이 흐르면 강도는 더해질 것이다. 발을 움직이지 않고 손만 열심히 놀리다보니, 점점 다리가 짧아지고 팔이 길어진다는 어느 학술 논문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 순간이다.
앞으로 또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을까.
나는 왠만해선 선풍기도 켜놓지 않는다. 밤에 잘 땐 한여름에도 옷을 꼭 모두 입으며, 이불도 턱밑까지 덮고 잔다.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내 영혼이 바람에 날려갈까 두려운 것인가? 더위보다는 추위를 잘 타는 내 체질때문이겠지만, 밤새 선풍기를 켜 놓는 것보다는 더운 바람이라도 자연풍이 좋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어질 불볕더위. 무엇으로 이겨낼까. 우리에겐 오존층을 파괴한다는 프레온가스의 에어컨이 있기에 견뎌낼 수 있지 않을까. 무의식 속에서 그 시원한 바람을 찾는 움직임들.
중학교 시절, 교회에서 수련회에 참석해 등산을 하고 강당으로 돌아온 후 거대한 에어컨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원한 바람을 옷벗고 몸으로 느꼈던 그 여름날 처럼, 난 오늘 에어컨 대신 자연의 바람으로 그 시원함을 만끽하고 있다.
에어컨이 없는 곳은 으레 인상을 찡그리게 되고, 에어컨은 당연히 모든 곳에 마땅히 설치해놔야 하는 물건으로로 사람들은 생각한다.
"뭐야, 에어컨도 없잖아. 애들아, 나가자."
언제부터일까. 90년대초반 부터가 아닐까. 고층 빌딩이야 에어컨을 준공당시부터 설계에 포함시켜 자동으로 설치해 놨겠지만, 노후한 빌딩들은 90년대 들어서면서 에어컨 설치 경쟁이라도 하듯 모두가 시원한 바람에 몸이 녹아내렸다.
아파트에서도 마찬가지다. 80년대만 해도 1개동에서 에어컨 환풍기는 1-2개가 고작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1백만원을 호가하는 에어컨이 집집마다 모두 가동되고 있다.
그 덕에 전력 수급에 차질을 빚어 여름철 TV 뉴스는 장마, 태풍과 함께 이것이 단골 메뉴가 됐다.
비지땀을 흘리며 버스를 타본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좌석 버스 500원 하던 시절, 200원짜리 입석버스는 그야말로 찜통이었다. 여름철에만 주로 좌석버스를 이용했던 이유는, 아니 나의 잣대는 바로 '에어컨'이었다.
에어컨이 있었기에 좌석버스의 500원은 -입석의 두배를 넘는 금액이었지만- 돈이 아깝지 않았고, 그것으로 인해 장거리 여행이 즐겁기만 했다.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는 사람들을 창 밖으로 보고 있노라면 모랄까... 조그마한 희열같은 것도 느꼈다.
자동차를 소유한 집에서는 진풍경도 벌어지곤 했다. 집에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았으니, 여름밤 자동차에 시동을 켜 놓고 시원한 바람을 만끽했던 것이다.
에어컨디셔너. 요 며칠전 우리집에도 에어컨을 설치했다. 근 30여년을 에어컨 없이 살아왔으나, 얼마전 에어컨을 설치하고 근근히 24도를 유지해 놓고 시원한 바람에 얼굴을 맞대곤 한다. 처음 있는 일이다. 집안이 시원해 진다는 것. 뭐든지 처음 있는 일은 기념해 놓고 싶은 본인의 욕망에 오늘 몇자 글적인다.
점점 더 편안해 지는 세상.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는지도 모르는 채, 사는 것 같지만 사실 우리는 30도를 참지 못하는 의지력 상실의 시대에 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세월이 흐르면 강도는 더해질 것이다. 발을 움직이지 않고 손만 열심히 놀리다보니, 점점 다리가 짧아지고 팔이 길어진다는 어느 학술 논문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 순간이다.
앞으로 또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을까.
나는 왠만해선 선풍기도 켜놓지 않는다. 밤에 잘 땐 한여름에도 옷을 꼭 모두 입으며, 이불도 턱밑까지 덮고 잔다.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내 영혼이 바람에 날려갈까 두려운 것인가? 더위보다는 추위를 잘 타는 내 체질때문이겠지만, 밤새 선풍기를 켜 놓는 것보다는 더운 바람이라도 자연풍이 좋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어질 불볕더위. 무엇으로 이겨낼까. 우리에겐 오존층을 파괴한다는 프레온가스의 에어컨이 있기에 견뎌낼 수 있지 않을까. 무의식 속에서 그 시원한 바람을 찾는 움직임들.
중학교 시절, 교회에서 수련회에 참석해 등산을 하고 강당으로 돌아온 후 거대한 에어컨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원한 바람을 옷벗고 몸으로 느꼈던 그 여름날 처럼, 난 오늘 에어컨 대신 자연의 바람으로 그 시원함을 만끽하고 있다.
2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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