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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sibility/수필

[전국투어] 셋째날 - 새벽을 울린 뽕작라면(2002)

어제 이야기에 이어서 계속...

어제... 그러니까 정확히 2002년 7월 4일 새벽 1시 30분. 겜방에서 웹서핑을 하다 문득 미키쉐이가 말한다.

"야, 일출 볼래?"

역시나 두번 생각안하고 - 좀 피곤해서 그런지 여러 생각하고 싶지 않았음- "그래"했다.

근데, 생각해보니 태풍의 영향도 있고 해서 날씨가 열나 흐릴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구름이 잔뜩 낀 하늘에서 왠 일출. 일출건은 바로 취소.

좀 있다가 미키 왈, "야! 그래도 나가자. 가서 암데나 민박잡자. 근데, 아침에 민박 잡을 수 있냐?"
고구마 왈, "그럴까. 아침에 잡을 수 있어. 경험 있다"

민박을 아침에 잡아본 경험이 있다. 그것도 여러번. 문학기행반에서 답사를 다니며 했던 기억을 되짚어 봐도 수 없이 많다. 우린 지체없이 대구를 빠져나가기로 했다. 새벽 3시에. 그런데, 서울에서만 살아본 인간 둘이서 대구를 쉽게 빠져나갈까. 오산이었다. 두어 바퀴를 돈 후에야 북대구IC를 찾았다.

이제부터 고속도로 주행. 경주에 도착한 건 약 1시간 30분정도 후였다. 그런데, 왠일... 안개가 정말이지... 1미터 앞도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세게 일었다. 꿈속을 걷는 기분. 전설의 고향에서나 봤음직한 장면이 눈 앞에서 열나 연출되고 있었다.

경주 보문단지를 향해 차를 몰았다. 4번 국도를 찾아 감포 해수욕장으로 향하려는 마음에. 그 와중에 운전대를 먼저 잡은 나는 경주IC를 나올 때쯤 "야... 지금 한계에 왔다"라는 말로 눈꺼풀을 부여잡고 운전대를 미키에게 넘겼다.

미키는 원래 졸린 눈이라서 난 별로 졸리지 않은 줄 알았다. -_-; 근데, 그 녀석도 30분 정도 운전하더니...날 툭툭 건드리며 "야... 한계다. 라면 끓여먹자"

졸려서 라면 끓여 먹어본 사람 있는가. -_-;; 라면을 드디어 먹게 되는구나. 이틀을 트렁크에 처박아 둔 그 라면을. 라면 끓일 장소를 열나 물색하느라 씨뻘건 눈동자를 좌우로 굴렸다.

그러나, 마땅한 곳이 없었다. 그리고, 무척 피곤한 상태라 눈도 절로 감기고... 바로 사고나기 일보직전이었다. 날을 홀딱 샜으니 당연한 결과다.

무슨 고개였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고갯마루에 다다랐을 때, 우린 합창이라도 하듯 "야! 저기다!"

저기라고 해 봤자, 갓길에 자갈 몇개 깔려있는... 지극히 평범한 고갯마루의 그런 갓길이었다.

우린 차문을 열고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마셨다. 아~ 이리 시원할 수가. 잠이 확~ 깨는 듯 했다. 코펠을 꺼내고 버너를 꺼내고... 생수를 부어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물이 끓기 전까지 우린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그간 락음악만 열나 틀었던 미키의 차문을 활짤 열고, 난 말했다.

"라디오 좀 켜봐."

태풍도 있고해서 여러가지로 사람 목소리를 듣고 싶은 마음에 그랬다. 그랬는데, 이게 웬걸... 지방의 아침방송은 열나 트로트만 나온다는 걸 그 때 알았다. 역시 방송청취자들의 연령대를 소상히 파악한 방송사의 노력이 엿보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아~~ 뽕짝메들리! 아무도 없는 적막한 산야에 울려퍼진 남진, 나훈아, 설운도의 목소리란! 방송 중간중간에 이름도 듣지 못한 고속도로용 가수들이 나와 제목도 모르는 노래를 열나 큰 소리로 불러댔다. 우린 볼륨을 낮추지 않았기 때문에 둘이 배꼽을 잡았고, 그 적막함을 뚫고 간간히 지나가는 차량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옷으로 얼굴을 가리는 등의 위장술을 펴기도 했다.

물이 끓고 안성탕면 3개에 스프 3개를 넣으니 열나 짰다. 그래도 먹었다. 아~ 배고파서 먹은 것도 아니고 졸려서 먹은 라면. 물조절 실패로 퉁퉁불고 짠 라면을 먹으니... 난 졸음이 더 쏟아졌다.

감포 진천에 도착해서 졸린 눈으로 민박집을 잡았다. 흥정할 여력도 없어서 달라는대로 줬다. 2만5천원.

그대로 뻗어 다시 일어난 시간이 오후 2시. 석굴암과 불국사의 영상이 눈 앞을 스쳤다.

"야!! 일어나! 큰일났다! 우띠바... 지금 몇시야."
졸린눈을 비비며 미키 왈, "아... 이건 정말이지... 극기 훈련이야."

-_-;;

그랬다. 우린 극기훈련을 하는 듯, 그렇게 강도를 높이며 놀고 있었다. 밤새 씻지 못한 얼굴로, 기름기 좔좔 흐르는 얼굴로 하루 정도를 샐 줄 알았지만, 그 하루가 이렇게 빨리 다가올 줄 몰랐다는 미키쉐이. ㅋㅋ

오늘은 3일째. 그러나, 서울을 떠난지 한달은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오후 2시에 일어나 석굴암과 불국사를 3천원씩 주고 들어가 10-20분만에 나왔다. 고등학교 때의 기억을 되살려보니 조금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석굴암 주변과 불국사 주변도 많이 정리정돈을 한 것 같다.

불국사에서 나올 땐 조금 우스운 일이 있었다. 주차비를 아끼려고 한 건 아닌데, 넓은 차량 출입구를 쏜살같이 달려들어가게 됐다. 이때, 주차관리 아저씨는 우리의 차가 흰색이라는 것만 간파, 뒤따라와서는 열나 흰차들의 운전석만 유심히 관찰하고 계셨다.

우린 잽싸게 내려서 불국사로 들어갔고, 나올때도 잽싸게 엑셀을 밟으며 2천원을 아꼈다. -_-;;

보문단지에서 오후 6시까지 자전거를 타며 일주를 했고... 그 덕에 어제 환선굴에 이어 오늘 다리가 또 풀렸다.

아침의 뽕작라면에 이은 저녁식사는 거창했다. 한정식. 9천원짜리다. 우리의 여행이 너무 극과 극을 달리는 것 같단 생각이 든다.

계획도 없고... 되는 일도 없고... 일이 꼬이기도 하고.

그래도 잼난다.

지금 진천에서 2km 떨어진 감포에서 글을 남긴다. 대한민국이 IT 강국이라는 말이 정말 맞는 것 같다. 이런 촌에도 겜방이 있을 줄이야. 우리도 놀랬다. 그 덕에 매일매일 이런 일기를 쓸 수 있게 됐지만...

아~~ 내일은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기대된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