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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sibility/수필

그렇게 살고 싶었다(2002)

그렇게 살고 싶다.

인생은 쉬운 것일까. 거리의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은 모두 즐겁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만의 기억을 갖고, 추억을 갖고 살아가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인가. 글 나부랭이에 숨을 죽이고 나이 서른을 넘어 이제는 마흔이라고 떠들며 소주잔을 기울이는 서울 소시민 아니던가.

우울한 마음은 인간이기에 떠안을 수 있는 최대의 난제가 아닐까. 우울함은 과거 10여년간 내 발목을 붙들은 매개체가 됐다. 그것을 떠넘기려 애쓴 가면은 또 몇개 인가. 사람을 알아가면서 아물지 않은 상처를 입고, 그 상처로 인해 몇 해를 고생하며 마음을 열지 못한다.

내 사랑의 시작은 스물 한살에서 비롯됐다. 벌써 9년전 이야기지만, 어제의 일처럼 또렷이 기억해 내는 것은 아마도 당시, "잊자"는 식의 고집으로 만들어졌는 지도 모른다. 잊으려고 애쓰면 더욱 생생해 진다는 진리를 이제서야 깨닫는다.

스물 네살 되던 해부터 마음의 모양새는 비뚤어지기 시작했다. 온갖 난무하는 거짓 속에 내 마음은 상처를 입고 헤매이기 시작했다. 도저히 정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을 때, 이미 다른 이의 눈에는 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뭐가 시작이고, 뭐가 끝인 지도 모를, 담배연기 자욱한 막힌 공간에서 내 손바닥을 보고자 그리 떠돌았던가.

이제서야 안식이라고 내쉬는 호흡 속에 위안을 하며 오늘에 충실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 또 반복. 그 안에서 일어나는 후회스러움과 자책. 자책을 반복하니 오히려 하늘을 똑바로 볼 수 있게 됐다. 손목을 그어도 차도로 뛰어들어도 인대가 늘어나도 잊지 못한다고 맹세했던 독선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사랑에 있어 독선은 금물인데, 내 마음은 그것으로 가득차 온전히 성급하지 않은 사랑을 하질 못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3일간 사랑이 정석인 양, 떠들어 대던 나의 잘난 사랑학개론에 치를 떤다. 이제는 아니라고, 자괴감에 빠진 영혼을 뒤돌아 보며 오늘 또 괴로워 한다.

거미줄 같은 사랑. 친구 녀석의 한 마디에 또 귀얇은 내 처지를 반성한다. 손톱보다도 작은 배에서 밤새 거미줄을 만들어 낮 동안 천천히 실을 뽑는 거미의 삶에서 진정한 사랑을 깨달으라는 친구의 충고는 굶주린 승냥이에게 고깃덩이를 안겨주 듯, 청량제 역할을 충분히 해줬다.

서른. 인생의 반이라면 반이고, 3분의 1이라고 해도 젊음은 그리 오래 남지 않았다는 위기감은 충분히 내 머리를 덮고도 남는다. 무엇이 조급해서, 무엇이 마음을 옥죄여서 오늘의 내가 또 태어났단 말인가. 인생은 그러할 진대...

영원한 사랑을 믿었던 적이 있다. 둘만의 고백으로, 위선과 외로움으로 범벅이 돼도 그 날의 맹세를 생각하며 견뎌 내면 모든 것이 이뤄질 줄 알았다. 아직도 나이는 열아홉이란 말인가. 바보스러운 청춘아. 이제는 깨닫자.

1994년 6월로 기억된다. 군입대를 몇일 남겨놓지 않은 날, 청평 시외버스 터미널에는 그날도 뙤약볕이 내리쬐었다. 반소매 차림의 남녀가 버스를 기다리며 아이스크림으로 체온을 낮추고 있었다. 버스가 오려면 아직도 1시간은 더 기다려야 한다. 조용한 침묵 속에 정적을 깨며 여자가 입을 뗀다.
"**아, 사랑해"

아침 7시에 일어나 지하철 4호선에 몸을 싣고 졸린 눈으로 '좋은 생각'을 펼치며 읽는 와중에도, 12시 땡하며 식당으로 발길을 옮기는 점심시간에도, 나른한 몸으로 기지개 켜며 회사를 나서는 퇴근길에도, 그 날의 추억은 생경하기만 했다. 전혀 생각나지 않는 먼지 속에 뒤덮인 앨범과도 같은 것인데. 주룩주룩 비가 내리는 날에 정신을 차리지 못할 만큼의 우울함을 가슴 가득 응어리 질 때면 느닷없이 그 말이 떠오른다. 이유가 뭘까.

다툼이란 것이 없었다. 친구 녀석은 "평생 싸우지 않고 살아갈 자신이 있다"며 자신감 어린 눈으로 나를 응시한다. 나도 그랬다. 나도 그랬다고 대답하고 싶었다. 나도 그랬었다고. 과거에는. 다툼이 없었고, 항상 웃음 끊이지 않았고, 매사에 '물 흘러가는 강물처럼 살겠노라'고 다짐했던 때가 있었다고.

그러나, 내 영혼은 상처를 입기 시작했단 걸 알았다. 이제 생각해 보니, 그 상처 한가운데에는 '사랑'이라는 낙관이 찍혀 있었다.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고 다시금 앨범을 들춰냈을 때 지금은 아물었지만 주름 하나 없는 그 상처 언저리에 남아있는 것은 진정 무엇이란 말인가. 사랑이란 말인가.

인정하기 싫지만 그랬던 것 같다. 아니, 그랬다. 그것으로 인해 내 인격은 형성돼 갔고, 비뚤어져 갔다. 오래전, 그러니까 내 인성이 형성될 즈음 부터 내게 '사랑'이란 단어는 '힘든 일'이 되었을 것이다. 받지 못한 사랑에, 주지 못한 관심에 나의 몸 어딘가에는 분명 주먹 하나 크기의 '사랑'이 비어있는 지도 모르겠다. 이 말은 곧 3대에 걸친 우리 가족사를 들춰내야 풀리는 숙제이기도 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할 자격 없는 사람이라는 최악의 수식어를 안겨준다. 그것이 오히려 합당하다. 지당한 말씀이다. 단순히 누군가를 다시 사랑하고 헤어지는 반복이 두려워서가 아니다. 1차원적인 고통보다는 20여년간 내 속에 내재돼 있는 '외로움'이란 명제에 대한 발견일 것이다.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이 한정돼 있음에도 그것을 인정치 못했던 무지. 마음을 열면 상대방도 당연스레 열어야 할 것이라고 믿는 독선. 절대적인 사랑의 가치는 '목숨'이라고 믿는 오만. 일생에 한번도 어려운 것을 도대체 몇번이나 반복하는 것인가.

결혼이란 것에 대해 진지하게 눈을 뜬 것은 불과 1년도 안됐다. 조급할 게 없다. 주위의 친구 중 결혼한 이는 1명에 불과하며, 노총각과 노처녀가 즐비하게 내재된 나의 개인 수첩 속의 이름들을 봐도 나란 인간이 조급할 일 없다. 오히려 젊음을 더 즐겨야 한다고 자위하는 내 안의 나에게 고맙게 느껴야 함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결혼한 친구가 회식에서 오후 9시에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이 왜 그리 부럽게 느껴졌던 것일까. 집에 가면 누군가가 해준 밥을 먹고, 조용한 잠자리에서 서로의 손바닥을 바라보며 TV 시청 할 수 있는 그 안도감. 어찌보면 난 그것을 원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결혼을 하면 안정이 될 것이라는. 바보같은 공상이겠지. 결혼을 하면 누가 안정이 된다던가. 헌법에 나와 있다던가. 외로움이 가실거라고 누가 단언하던가.

그러나, 나는 그것을 동경하고 있다. 그 삶을, 그러한 인생을. 전기세와 수도세가 많이 나온 고지서를 들고 서로에게 침을 튀겨가며 밥상에서 언성을 높여도 난 그것이 인생이라고 믿고 싶다. 그렇게 살고 싶단 말이다.

한 겨울, 신문지 널려 있는 방 한가운데 돌아누워 흐르는 눈물로 만들어진 김광석 형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의 모티프는 어쩌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생활일 지도 모른다. 밤새 성에 낀 유리창에 새벽녁 손가락을 대고 "사랑해"란 단어를 썼다 지우는 것 처럼, 인생은 흐르는 눈물의 연속이고 인생은 반복되는 후회와 반성의 연속일 것이다.

연애와 결혼 사이에서 어긋나는 판단력 때문에, 깊은 상처로 눈물을 흘렸을 그들에게 나는 오늘 "그렇게 살고 싶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정말 미안했다고 덧붙이고 싶다.

 

 

20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