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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sibility/수필

[전국투어] 둘째날 - 환상의 환선굴(2002)

오전 7시. 정확히 눈을 뜨고 싶었다. 그런데, 나쁜넘. 손바닥으로 뺨을 갈기질 않나... 잠버릇 고약한 넘때문에 잠을 설쳤다. 졸린 눈을 비비고, 오늘 일정을 위해 일어나 8시에 모텔에서 나왔다.

7번 국도를 따라 한참을 내려가면서, 순간순간 일정을 잡는 우리들의 즉흥적인 계획 앞에 우리도 손을 들 지경이 되자, 오늘만큼은 서로 정신차리자고 다짐을 했다. -_-;

아침을 먹지 못했으니, 토스트라도 먹고 싶었지만 정동진을 지나치면서도 그 흔한 토스트 굽는 가게를 찾을 수 없었다. "핫바라도 먹을까?" "안돼, 어제 산 안성탕면 6개를 먹어야돼" "어디서 끓여먹냐?" "좀 기다려봐. 마땅한 곳이 나올 거야"

한참을 찾았지만, 차는 벌써 동해를 지나고 있었다. 이 때 시각 오전 9시. 결국 패밀리마트에서 빵을 사 먹고 7번 국도를 따라 질주했다. 이 때 운전대는 내가 잡았다. 당연히 지도책은 미키의 몫.

미키 왈, "우리 내륙으로 한번 가볼래?" 고구마 왈, "왜?"
"해안도로는 평소에도 볼 수 있지만, 내륙도로는 쉽게 접하기 힘든 도로니깐. 대신 나 원망하진 마라."

즉흥적인 계획. -_-; 7번 국도에서 36번으로 빠졌다. 빠지면서 미키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환선굴 가볼래?" 전혀 반항 없이 나도 "그러자" 했다.

환선굴은 국내 최대의 동굴로 지정돼 오는 7월 10일부터 8월 10일까지 세계동굴엑스포를 개최하는 삼척의 큰 자랑거리이기도 하다.

도착 시간 10시 30분. 주차장에서 환선굴까지 30분이면 도보로 도달할 수 있다는 가이드의 말에 의지한 채,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초입부분의 완만한 경사는 점점 45도를 넘나들고, 나중에는 어림잡아 400개는 돼 보이는 계단이 우리의 숨을 막히게 했다.

중간에 폭포가 하나 있어 에어콘 못지 않은 시원한 바람을 일으켰으나, 이곳에서 식힌 땀방울도 그 400계단에 쉽게 무너졌다.

"아 띠바... 무슨 30분이야... 헥헥... 담배 끊자..."
"지리산 갈 거지?" -_-;;

일정에 있었던 지리산 등반 계획은 오늘 1시간여의 500미터 등산으로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내가 봐도 참 의지력 없는 인간들이다.

하여튼, 환선굴에 도착하니 영상 10도의 바람이 얼굴에 확~!

아~ 시원해라!!

환선굴은 정말 경이로웠다. 철도청에서 테마여행으로 선정할 만큼 좋은 곳이란 얘긴 들었지만, 정말 대단한 동굴이다. 수만명이 집단 생활을 할 수 있을 만큼 공간이 엄청 넓었다. 그렇다면! 이 산은 껍데기 뿐인가? 라고 되물을 정도로 말이다.

한번쯤은 꼭 가보라고 권하고 싶은 곳이다. 올라가는 길이 조금 힘들지만. 하산길에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싱글벙글하며 이제 막 등산을 시작한 부부들을 봤는데, 참... 안타까웠다. 지금은 즐겁지...-_-;; 유모차 어떻게... 흐흐.

환선굴을 나오자마자 난 골아떨어졌고, 한참을 달렸다. 그러나, 태백산맥의 국도는 정말 욕나올 만큼 커브가 심했다. 우린 저녁까지 대구에 도착해야 한다는 일념하에 고속도로로 진로를 변경, 영주IC에서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대구에 다다랐다.

그런데, 대구에 오는 동안 난 중요한 물건을 하나 잊고 출발했음을 알아차렸다. 바로 휴대폰 배터리와 충전기. 분명히 챙긴 것 같은데,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휴게소에 들어가 무료충전 서비스를 받았다. 이거 소용량이라 하루 밖에 가질 않는데 큰일이다. 매일매일 서비스를 받아야 할 상황.

대구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6시. 대구에 사는 아는 동생을 만나 맛나게 저녁먹고, 술먹고, 노래부르고... <-- 이 행위들은 서울에서도 흔히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이 순간! 나는 아직도 난 자연과 살지 못하고 속세에 찌들어있구나, 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새벽 1시 30분. PC방이다. 경주로 건너갈 생각은 안하고 인터넷 서핑이나 하고 있다. 민박도 안잡고, 씻을 생각도 않고 말이다. 자유롭지만, 불편한 점이 있다.

집이 최고라는 생각이 머리 끝에 붙게 되면, 집으로 향하겠지.
오늘 밤도 이렇게 저문다...

tip
어제 낮부터 속이 않좋았는데, 오늘 드디어 일이 터졌다. 고기에, 술에... 먹은 것 다 토했다. 설사를 트리플더블하면서 구토를 슬램덩크했다.
내일은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랬더니 미키 왈, "넌 차에서 기다려. 나 밥먹으러 갈때. 알았지?"

나쁜넘...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