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 이 아파트에 사세요?
미경 (술을 따르다 정훈의 말에 조금 놀라며) 예?... 예.
정훈 그렇군요. 저 두 이 아파트에 살아요. 근데, 가방에 이름표는 왜 달고 다녀요?
미경 이름표는... 내 자신을 항상 확인하고 싶어서죠.
정훈 확인... (미경을 쳐다보며) 내 자신을 확인?
미경 후훗. 비가 오면 술을 드시는 분들이 있죠? 딱 두 가지 타입이죠.
정훈 (휑한 눈으로 바라보며)...??
미경 (의구심 나는 눈으로 보며)...??... 혼자 사세요? 비가 오는 날 혼자 술을 드시는 분들은 비를 좋아하는 분 이거나 혼자 사시는 분. (두 손가락을 내보이며)딱 두 가지 타입이죠.
정훈 (약간 취기어린 눈으로) ...
미경 이혼 하셨어요?
정훈 후훗. 참으로 일상적인 질문이군요. 이혼해야 혼자 사는 겁니까? 후훗
미경 아니요...뭐...그런 건 아니지만, 혼자사시는 분이 대부분 그렇잖아요. 이혼했다든지...하는 뭐 그런...
정훈 이 동네에선 오래 사셨나요?
미경 아뇨. 작년에 이사왔어요.
정훈 네... 전 여기 토박입니다. 여기서 태어나 여기서 자란. 그래서, 다른 세상은 모르지요. 이 곳이 내가 보 는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이 곳을 떠날 수 없지요.
미경 ...
정훈 그래서, 내게 보이는 모든 것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내가 찾으면 언제나...
미경 ...
정훈 내가 찾으면 언제나 곁에 있고, 내가 그리워하지 않아도 항상 누군가가 날 그리워 해주고. 그래서, 난 그게 행복인지도 모르고 바보처럼 귀찮아하기도 했지요.
미경 술을 혼자 드시는 분들을 보면 다 아픔이 있는 것 같아요.
정훈 예... 맞는 말씀이십니다. 제가 질문하나 해도 될까요
미경 예. 해보세요.
정훈 그런 소중한 것들이 하루에 하나씩 없어진다면 미경씨는 어떻게 하시겠어요? 하루에 하나씩 없어지는 거예요. 소중하다고 생각지도 안했던 것들이.
미경 음... (가벼운 어조로) 한 개씩 없어지면 다시 한 개씩 만들면 되죠. 안 그래요?
정훈 말도 안된다... 후훗...
미경 이름이 근데, 어떻게 되세요?
정훈 김정훈입니다.
미경 예. 전 강미경이라고 해요.
정훈 (이름표를 쳐다보며) 항상 자신이 확인되나요?
미경 아뇨.
정훈 그럼 떼어버려요. 그거.(이름표를 손에 쥐며)
미경 안 되요.
정훈 어린애들처럼 이름표는... 후훗.
미경 어린애 같은 인생살이 아닙니까. 전 어린애들이 좋아요.
정훈 ...
미경 몇 동에 사세요?
정훈 107동 707호.
미경 예? 아이구...이거 이웃을 만났네요. 전 607호에 살아요.
정훈 바로 밑에 층이군요.
미경 근데, 왜 여태 모르고 지냈을까.
정훈 닭장 같은 아파트에서 이웃을 안다는 게 어디 쉽습니까.
미경 그렇긴 하지만... 하여튼, 반가워요.
정훈 예... (포장마차 주인을 바라보며)아저씨 여기 소주 한 병 더 주세요.
미경 (포장마차 주인을 쳐다보곤 다시 정훈을 바라보며) 무척 우울해 보여요. 힘드신 일이 있으신 것 같은데.
정훈 아...예... 아녜요.
미경 너무 힘들게 살지 마세요. 대충 그런 대로 살다가 가는 게 인생 아닙니까. 시간이 흘러가면 흘러가고 또, 흘러가서 죽을 때가 되면 죽는 거고... 훗.
정훈 무척 철학적인 말씀을 하시네요. 전 요새 맨 정신으로 버틸만한 기력이 없어서요. 혼자 술이라도 먹으려 합니다.
미경 (조금 놀라는 눈치로)무슨 일이라도...?
정훈 후훗-- 전요... 어렸을 때부터 힘든 것을 모르고 자랐거든요. 가지고 싶은 게 있으면 다 가질 수 있었어 요. 제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고 생각하며 살았지요. 제가 외아들이라서 그런지 부모님 들도 제 말엔 다들 승낙을 하시고, 제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다 할 수 있었고, 다 가질 수 있었지요. 그 래서 그런지, 호기심은 날로 더더욱 많아지고 그런 호기심들이 날 독선적이게 만들었나봐요. 아마.
미경 ...
정훈 그렇게 아무런 문제없이 살아온 날들이라 제게 문제가 있는 날은 집에선 난리가 났죠. 정말 큰일도 아 닌데, 우리 집에서 보면 뭐든지 제게 일어난 일은 다 큰일이 되어있었어요. 지나고 생각해 보니... 우습 죠?
미경 아뇨... 저도 할 말이 갑자기 생각났는데...
정훈 해보세요.
미경 아녜요. 말씀 다 끝나면 하죠. 해보세요.
정훈 예. 대학도 직장도 아무런 문제도 없이 들어가고, 남들이 그렇게 걱정을 하는 그런 일들이 제겐 그렇게 다가오지 않았어요. 정말 문제가 없었지요.
미경 아버님이 무슨 일 하세요?
정훈 후훗- 가게를 운영하셨어요. 어렸을 땐 우리 집이 정말 부자였는데요. 지금은 그래도 많이...
정훈은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소주잔을 들이킨다. 미경도 같이 들이킨다. 정훈은 미경을 보며 다시 말을 잇는다.
정훈 그런데요. 이젠 그것들이 너무 소중해 보여요. 정말 아무것두 아닌 것 같았는데.
미경 음... 소중한 것은 남들이 만들어주는 게 아녜요. 다 자신이 하기 나름이지요. 자기가 얼만큼의 그 소중 한 것들에 대해서 마음을 열었는지 아닌지에 따라서, 그것들도 그 자신을 알아보죠.
정훈 ...
미경 되게 힘들어 보여요. 인생의 고민은 다 짊어지고 계신 것 같은.
정훈 예... 전 잘못 살아온 것 같아요. 이렇게 사는 게 아닌데.
미경 세상에 잘못 산건 없어요. 다만, 후회 있는 삶이냐 없는 삶이냐의 차이지요. 전 세상은 한 번 살아볼만 하다고 생각하는데요.(웃음)
정훈 미경씨는 밝아 보이네요.
미경 밝게 살아 야죠. 힘들게 살면 자기만 손해예요. 정훈 씨가 얼마큼 어두운지는 모르겠지만, 고민은 많이 해 두세요. 젊음의 특권이니까요. 전 혼자 술먹는 걸 즐기는 걸요?
정훈 후훗--
미경 전 고민은 많이 하지만, 오래하진 않아요. 절대로. 그렇게 되면 후회하는 일들을 꼭 하게 되거든요.
정훈 전 솔직히, 살고자 하는 마음도 없어졌습니다.
미경 무슨 소리예요? 죽는다구요?
정훈 (고개를 숙이며)예...
미경 정말 나약하시군 요. 화가 나려고 하네요. 오늘 처음 뵙는 분이지만, 이웃이고하니 제가 정훈 씨에게 한 마디 하죠.
정훈 그러세요.
미경 죽음에 관해서 생각을 안해 본 사람은 없을 거예요. 언제나 사람은 죽는다는 당연한 이치를 언제나 잊 고 살아가요. 우리들은. 죽으면 편할 것 같죠? 남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기다려 주는 사람. 살아있어도 그리워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죽으면 그 감당을 어떻게 하겠...
정훈 (말을 자르며 소주잔을 들이킨다) 고마워요.
미경 (시계를 본다) 늦었네요. 이만 들어가 봐야 겠어요. 그리고, 가방 같은데다가 이름표를 달아봐요. 항상 뭔가 느낄 테니까요.
정훈 예...(웃으며) 그러죠.
정훈과 미경, 같이 일어선다. 이윤희, 서채린, 한정수의 이름표가 보인다.(OL)
S#51 한강(밤)
생각에 잠긴 듯 한 얼굴의 정훈이 보인다. 정훈의 옆에는 가방이 하나 있다. 가방을 열어 뭔가를 꺼낸다. 두 개의 명찰이 보인다. '이윤희'라고 적힌 명찰과 '김정훈'이라고 쓰여진 명찰 두 개가 손에 쥐어져 있다. 이내, 가방을 닫는다. 명찰을 붙이며 정훈은 씁쓸하게 웃는다.
정훈 (혼잣말로) 내일은 어떤 일들이 내게 또 일어나려나...
...13편에 계속
미경 (술을 따르다 정훈의 말에 조금 놀라며) 예?... 예.
정훈 그렇군요. 저 두 이 아파트에 살아요. 근데, 가방에 이름표는 왜 달고 다녀요?
미경 이름표는... 내 자신을 항상 확인하고 싶어서죠.
정훈 확인... (미경을 쳐다보며) 내 자신을 확인?
미경 후훗. 비가 오면 술을 드시는 분들이 있죠? 딱 두 가지 타입이죠.
정훈 (휑한 눈으로 바라보며)...??
미경 (의구심 나는 눈으로 보며)...??... 혼자 사세요? 비가 오는 날 혼자 술을 드시는 분들은 비를 좋아하는 분 이거나 혼자 사시는 분. (두 손가락을 내보이며)딱 두 가지 타입이죠.
정훈 (약간 취기어린 눈으로) ...
미경 이혼 하셨어요?
정훈 후훗. 참으로 일상적인 질문이군요. 이혼해야 혼자 사는 겁니까? 후훗
미경 아니요...뭐...그런 건 아니지만, 혼자사시는 분이 대부분 그렇잖아요. 이혼했다든지...하는 뭐 그런...
정훈 이 동네에선 오래 사셨나요?
미경 아뇨. 작년에 이사왔어요.
정훈 네... 전 여기 토박입니다. 여기서 태어나 여기서 자란. 그래서, 다른 세상은 모르지요. 이 곳이 내가 보 는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이 곳을 떠날 수 없지요.
미경 ...
정훈 그래서, 내게 보이는 모든 것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내가 찾으면 언제나...
미경 ...
정훈 내가 찾으면 언제나 곁에 있고, 내가 그리워하지 않아도 항상 누군가가 날 그리워 해주고. 그래서, 난 그게 행복인지도 모르고 바보처럼 귀찮아하기도 했지요.
미경 술을 혼자 드시는 분들을 보면 다 아픔이 있는 것 같아요.
정훈 예... 맞는 말씀이십니다. 제가 질문하나 해도 될까요
미경 예. 해보세요.
정훈 그런 소중한 것들이 하루에 하나씩 없어진다면 미경씨는 어떻게 하시겠어요? 하루에 하나씩 없어지는 거예요. 소중하다고 생각지도 안했던 것들이.
미경 음... (가벼운 어조로) 한 개씩 없어지면 다시 한 개씩 만들면 되죠. 안 그래요?
정훈 말도 안된다... 후훗...
미경 이름이 근데, 어떻게 되세요?
정훈 김정훈입니다.
미경 예. 전 강미경이라고 해요.
정훈 (이름표를 쳐다보며) 항상 자신이 확인되나요?
미경 아뇨.
정훈 그럼 떼어버려요. 그거.(이름표를 손에 쥐며)
미경 안 되요.
정훈 어린애들처럼 이름표는... 후훗.
미경 어린애 같은 인생살이 아닙니까. 전 어린애들이 좋아요.
정훈 ...
미경 몇 동에 사세요?
정훈 107동 707호.
미경 예? 아이구...이거 이웃을 만났네요. 전 607호에 살아요.
정훈 바로 밑에 층이군요.
미경 근데, 왜 여태 모르고 지냈을까.
정훈 닭장 같은 아파트에서 이웃을 안다는 게 어디 쉽습니까.
미경 그렇긴 하지만... 하여튼, 반가워요.
정훈 예... (포장마차 주인을 바라보며)아저씨 여기 소주 한 병 더 주세요.
미경 (포장마차 주인을 쳐다보곤 다시 정훈을 바라보며) 무척 우울해 보여요. 힘드신 일이 있으신 것 같은데.
정훈 아...예... 아녜요.
미경 너무 힘들게 살지 마세요. 대충 그런 대로 살다가 가는 게 인생 아닙니까. 시간이 흘러가면 흘러가고 또, 흘러가서 죽을 때가 되면 죽는 거고... 훗.
정훈 무척 철학적인 말씀을 하시네요. 전 요새 맨 정신으로 버틸만한 기력이 없어서요. 혼자 술이라도 먹으려 합니다.
미경 (조금 놀라는 눈치로)무슨 일이라도...?
정훈 후훗-- 전요... 어렸을 때부터 힘든 것을 모르고 자랐거든요. 가지고 싶은 게 있으면 다 가질 수 있었어 요. 제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고 생각하며 살았지요. 제가 외아들이라서 그런지 부모님 들도 제 말엔 다들 승낙을 하시고, 제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다 할 수 있었고, 다 가질 수 있었지요. 그 래서 그런지, 호기심은 날로 더더욱 많아지고 그런 호기심들이 날 독선적이게 만들었나봐요. 아마.
미경 ...
정훈 그렇게 아무런 문제없이 살아온 날들이라 제게 문제가 있는 날은 집에선 난리가 났죠. 정말 큰일도 아 닌데, 우리 집에서 보면 뭐든지 제게 일어난 일은 다 큰일이 되어있었어요. 지나고 생각해 보니... 우습 죠?
미경 아뇨... 저도 할 말이 갑자기 생각났는데...
정훈 해보세요.
미경 아녜요. 말씀 다 끝나면 하죠. 해보세요.
정훈 예. 대학도 직장도 아무런 문제도 없이 들어가고, 남들이 그렇게 걱정을 하는 그런 일들이 제겐 그렇게 다가오지 않았어요. 정말 문제가 없었지요.
미경 아버님이 무슨 일 하세요?
정훈 후훗- 가게를 운영하셨어요. 어렸을 땐 우리 집이 정말 부자였는데요. 지금은 그래도 많이...
정훈은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소주잔을 들이킨다. 미경도 같이 들이킨다. 정훈은 미경을 보며 다시 말을 잇는다.
정훈 그런데요. 이젠 그것들이 너무 소중해 보여요. 정말 아무것두 아닌 것 같았는데.
미경 음... 소중한 것은 남들이 만들어주는 게 아녜요. 다 자신이 하기 나름이지요. 자기가 얼만큼의 그 소중 한 것들에 대해서 마음을 열었는지 아닌지에 따라서, 그것들도 그 자신을 알아보죠.
정훈 ...
미경 되게 힘들어 보여요. 인생의 고민은 다 짊어지고 계신 것 같은.
정훈 예... 전 잘못 살아온 것 같아요. 이렇게 사는 게 아닌데.
미경 세상에 잘못 산건 없어요. 다만, 후회 있는 삶이냐 없는 삶이냐의 차이지요. 전 세상은 한 번 살아볼만 하다고 생각하는데요.(웃음)
정훈 미경씨는 밝아 보이네요.
미경 밝게 살아 야죠. 힘들게 살면 자기만 손해예요. 정훈 씨가 얼마큼 어두운지는 모르겠지만, 고민은 많이 해 두세요. 젊음의 특권이니까요. 전 혼자 술먹는 걸 즐기는 걸요?
정훈 후훗--
미경 전 고민은 많이 하지만, 오래하진 않아요. 절대로. 그렇게 되면 후회하는 일들을 꼭 하게 되거든요.
정훈 전 솔직히, 살고자 하는 마음도 없어졌습니다.
미경 무슨 소리예요? 죽는다구요?
정훈 (고개를 숙이며)예...
미경 정말 나약하시군 요. 화가 나려고 하네요. 오늘 처음 뵙는 분이지만, 이웃이고하니 제가 정훈 씨에게 한 마디 하죠.
정훈 그러세요.
미경 죽음에 관해서 생각을 안해 본 사람은 없을 거예요. 언제나 사람은 죽는다는 당연한 이치를 언제나 잊 고 살아가요. 우리들은. 죽으면 편할 것 같죠? 남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기다려 주는 사람. 살아있어도 그리워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죽으면 그 감당을 어떻게 하겠...
정훈 (말을 자르며 소주잔을 들이킨다) 고마워요.
미경 (시계를 본다) 늦었네요. 이만 들어가 봐야 겠어요. 그리고, 가방 같은데다가 이름표를 달아봐요. 항상 뭔가 느낄 테니까요.
정훈 예...(웃으며) 그러죠.
정훈과 미경, 같이 일어선다. 이윤희, 서채린, 한정수의 이름표가 보인다.(OL)
S#51 한강(밤)
생각에 잠긴 듯 한 얼굴의 정훈이 보인다. 정훈의 옆에는 가방이 하나 있다. 가방을 열어 뭔가를 꺼낸다. 두 개의 명찰이 보인다. '이윤희'라고 적힌 명찰과 '김정훈'이라고 쓰여진 명찰 두 개가 손에 쥐어져 있다. 이내, 가방을 닫는다. 명찰을 붙이며 정훈은 씁쓸하게 웃는다.
정훈 (혼잣말로) 내일은 어떤 일들이 내게 또 일어나려나...
...1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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