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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sibility/소설

불행아와 이름표11

제 6 일
S#43 꿈
넓은 산야가 보인다. 강이 보인다. 들이 보이며, 그 산중에 집을 짓고 사는 정훈이 보인다. 윤희가 웃고 있다. 행복한 표정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보인다. 강아지와 뛰어 노는 어린아이 한 명이 보인다. 윤희가 그 곁에서 웃고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덩달아 웃으신다. 정훈 웃다가 갑자기 산 쪽을 본다. 너무나 하얗다. 파랗다못해 하얀 하늘이 보이면서 꿈에서 깨어나는 정훈. 침대가 젖어있다. 밤새 비를 맞고 걸어와서 술에 취해 그대로 잠이 들었다.

S#44 정훈의 방(밤)
깨어난 정훈은 불을 켜고 시계를 본다. 3시 20분. 시침과 분침이 한데 모인 것을 보고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이 본다. 물을 들이킨다. 시침, 분침과 젓가락이 보인다.(OL)

S#45 공원(낮; 회상)
날씨가 무척 맑다. 정훈과 윤희가 공원 벤치에 앉아있다. 아무도 없다. 윤희가 싸온 김밥이 보인다. 둘은 사이다를 손에 쥐고 행복한 표정으로 웃고 있다. 김밥을 집는 정훈의 손엔 젓가락이 있다.

정훈 (윤희를 쳐다보고 젓가락을 들어 보이며) 넌 왜, 젓가락도 못잡냐?
윤희 어렸을 때부터 포크만 써서 그래. (웃으며) 나두 할래면 해!
정훈 으이그... 그래? 해봐 그럼.

정훈, 젓가락을 건네준다.

윤희 (손가락으로 열심히 젓가락을 잡으려 노력해 보이며) 것봐. 돼지? (젓가락을 이내 놓친다)
정훈 후훗. 그게 뭐야. 근데, 참 좋다. 날씨도 좋고.
윤희 (정훈을 보며 흐뭇하게 웃는다) ...
정훈 뭘 보냐. 인제 모하지? 우리? 집에나 갈까? 이제?
윤희 오빠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갈 거야 난. 그러니깐,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오빠가 하고 싶은 거 있으 면 다 해.
정훈 (잠시 얼굴을 찡그리며) 넌 왜! 만날 내가 하자는 대로 하니? 넌 하고싶은 거두 없어? 왜 매번 만나면... (고개를 저으며 다른 곳을 쳐다본다)
윤희 (갑자기 얼굴이 굳어지며) 오빠...왜 그래. 미안해. 난 그저...
정훈 (짜증을 내며) 됐어. 그만해. 니가 하고싶은 게 어디 있긴 있었냐... 누가 데려 갈 건지 걱정된다 걱정돼! (일어선다)
윤희 (일어서는 정훈을 보며) 어디가게?

정훈은 말없이 벤치를 지난다. 윤희는 정훈의 뒤에서 바라본다.

S#46 정훈의 방
시계는 12시 10분을 가리키고 있다. 방안이 지저분하다. 소주병, 담배, 윤희와 부모님들로 보이는 사진들이 여기저기 나 뒹군다. 잠을 자는 정훈. 차 지나가는 소리. 사람들의 북적대는 소리가 들리며 김광석의 '불행아' 란 노래가 깔린다.

(시간경과)

S#47 한강(저녁)
정훈이 소주하나를 손에 들고 앉아있다. 지나가는 사람이 몇 보인다. 한강다리에 비친 석양노을을 바라본다. 아름답다. 꽤 지친 표정의 정훈이 보인다. 정훈 옆엔 가방이 하나 놓여있다.

S#48 병원 영안실(밤; 회상)
울음소리가 들린다. 사람들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정훈과 의사가 보인다. 둘이 병원 복도 벤치에 앉아있다.
손엔 커피가 들려있다.

의사 (입을 굳게 다물고) ...
정훈 선생님, 고맙습니다.
의사 제가 무슨... 병원에 오기 전에 벌써 숨을 거두셨으니, 뭐라 드릴 말이 없습니다.
정훈 (쓴웃음을 지으며) 후훗--
의사 (정훈을 쳐다보며)외아들이라고 들었는데...
정훈 (무표정)예.
의사 (조심스럽게 묻는다)이제 어떡하실 겁니까?
정훈 어떡하긴요. 웃고 살질 않았으니, 웃으며 살아 야죠. 그런 말도 있잖아요. 왜 사냐 건? 웃지요 하는...
의사 (정훈을 보며)원래 그렇게 낙천적이신 가요?

그런 의사를 보며 정훈은 씁쓸하게 웃고 만다. 의사는 가만히 있다가 정훈에게 또 말을 건넨다.

의사 친척 분들은 많이 계신가요?
정훈 아뇨. 큰아버님이 한분 계시는데, 제가 어렸을 때 뵙곤 한번도 뵌 적이 없지요.
의사 아예...
정훈 선생님 바쁘신 데, 죄송합니다. 아무나 붙잡고 그냥 같이 있고 싶어서요.
의사 (쓴웃음을 지으며) 예...
정훈 괜찮죠?
의사 그러세요. 지금은...(시계를 보며) 조금 시간이 있네요.
정훈 선생님.
의사 예?
정훈 지난 5일간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난 줄 아십니까?
의사 아뇨
정훈 믿지 못하실 겁니다. 아마 제가 이런 얘길 하면.
의사 뭔데요.
정훈 아닙니다...
의사 궁금하네요. 말씀해보세요.

의사에게 호출이 온다. 호출기를 보곤 잠시 생각하는 의사. 의사의 명찰이 보인다. '한정수'라고 쓰여 있다.

의사 저 가봐야 겠어요. 또, 응급환자인가봐요.
정훈 예. 그러세요. 고마웠어요. 잠시라도 저랑 있어줘서.
의사 아닙니다. 실의에 빠진 환자를 구하는 게 저희들의 소명인데요뭐.
정훈 바쁘실 텐데...가 보시지요.
의사 예.

의사 황급히 뒤돌아 뛰어나간다. 정훈은 그 등을 한참을 바라본다. 넋을 잃은 사람처럼 본다.

S#49 비오는 거리(밤; 회상)
비가 내린다. 거리의 사람들은 하나둘씩 집으로 향하고, 정훈은 비를 맞고 그저 걷고 있다. 한 포장마차가 보인다. 정훈은 그곳으로 향한다.

S#50 포장마차(밤; 회상)
아파트촌이 보인다. 그 밑엔 포장마차 하나가 있다. 안주에 소주를 먹으며 혼자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정훈. 옆자리엔 한 여자가 술을 먹고 있다. 여자의 가방을 무심결에 본 정훈은 가방의 이름표가 있는 것을 발견한다. '강미경'. 많이 들어 본 듯한 이름이라서 그런지 고개를 두어 번 좌우로 흔든다. 미경은 수수한 용모에 세련된 이미지를 지녔다. 정훈은 미경의 가방에서 시선을 떼어 미경을 바라본다.

...1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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