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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sibility/소설

情7 - 1998

"나도 안가봐서 모르지만, 한번쯤 가볼만 할 것 같아. 내가 살아오면서 한번도 하지 못했던 건,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매번 누군가가 어려운 상황이 닥쳐오면 도와 줬거든. 그것이 누가 됐던지간에."
"저도 곧 가요. 전 가기 싫은데요 뭐. 2년 썩는 거잖아요."
"썩다니. 전우라는 말이 있잖나. 어려운 상황에선 인간은 자신도 모르는 정이 생겨나지. 그게 얼마나 값진 것인지는 자네도 살아가면서 느낄 수 있을 게야. 아마도."
"그럴까요?"
그새 술이 비워졌는지도 몰랐다. 얘기에 열중하다보니 그렇게 시간은 벌써 5시를 조금 넘기고 있었다. 조금만 더 있으면 동이 터 올 것인데. 날은 더 싸늘해지는 듯 했다.
"아저씬, 그럼 집이 없으세요?"
"없지."
"그럼, 아까 경찰이 한 말은 뭐예요?"
"음...그건. 거리의 사람들을 모아 두는 곳이 있지. 보호 감호소같은 곳. 근데, 거긴 가기 시려. 이 곳이 좋아. 난. 썩었어도 이곳이 좋아. 자유가 있거든. 자유. 썩은 자유랄까... 후훗."
썩은 자유. 광수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그 사내의 자유라는 말에 지하도 천장을 한 번 바라보게 되었다. 그런 광수를 아랑곳하지 않고 그 사내는 아까 하던 말을 계속했다.
"비싸면 무조건 좋다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의식도 문제지만, 그것을 그렇게 파는 사람들의 상혼이 더 문제지. 왜 그렇게 됐을까. 정말 예전엔 안그랬는데 말야. 하나라도 더 아끼려고 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말야. 왜 그렇게 사람들이 바뀌었을까. 집이 전세라도 차는 있어야 된다는 심리하며, 기름 한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길 바닥에다 기름을 철철 뿌리고 다니는 자동차들. 막혀도 차가 좋다는 심리는 아마도 우리나라가 유일할 게야. 왜 그렇게 안일하게 사람들이 살아갈까. 불감증이겠지? 모든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금의 한국을 보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어. 다 하나같이 같이 어께동무를 하고 발을 맞춰가고 있는 느낌이다. 정말. 예술이 돈에 매수된지 오래고, 돈이 된다면 사람들의 목숨이라도 담보로 잡고. 그래서, 삼풍이다 성수대교다 뭐다해서 다 무너지고 폭발하고, 죽고, 울고, 포기하고. 경제는 다 쓰러져가는 슬레트 지붕처럼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가도를 달리고 있지, 간첩이 넘어와도 내가 사는데가 아니면 그만이고. 행락철엔 또 어떻고. 썩을 대로 썩은 물에 그래도 좋다고 뛰어들기 위해서 가보면, 해수욕장엔 바가지들이 즐비하게 그네들을 맞이할 준빌 해 놓고. 뭐가 나쁘다면 잠시 사지 않은 듯 했다가. 뭐가 좋다하면 다 몰리고. 해외에 나가 개망신이란 개망신은 혼자 다 떨구. 이런 나라가 제대로 가겠냐? 몇백만원이 넘는 속옷이 날개 돋힌 듯이 팔린다고 뉴스에서 때리면 뭔가 각성하는 자세가 필요한데, 이건 다른 백화점엔 없나하는 생각부터하니... 쯧쯧... 빈익빈 부익부가 왜 계속 될까를 생각해 봤나? 월급쟁이가 평생 먹지 않고 벌어도 집한칸 장만하기가 그리 쉽나. 우리나라에서. 물가는 천정부지로 뛰지. 오르지 말아야 할 것들은 경쟁이라도 하듯이 오르고, 서민들은 거기 따라가다 가랭이 찢어지고. 테레비에 나오는 것들도 다 똑같애. 돈으로 쳐 발라서 나오는 놈들. 뭐가 좋다고 소릴지르며 환호를 하는지. 돈이 있으면 환호를 받고 그렇지 못하면 그냥 죽쑤는 거지. 아무리 실력이 출중해도 말야.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정말 예전엔 이렇게까지는 아니었는데... 정말로. 이런 것들이 내가 계속하던 그 시험들의 결과다. 내가 직접 보고, 느끼고 한. 그런 것들이지. 지금 다는 생각나지 않지만, 그런 것들이 세상살이를 힘들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썩을 대로 썩어간다라는 것도 알았지. 어떻게 할까라는 고민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흘러가는 것을 더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지."
정말 쉬지 않고 무슨 연설이라도 하듯이 목에 핏줄을 세우며 말을 이어나갔다. 몸을 웅크린 채 차가와진 손을 후후부는 광수에게 그 사내의 말은 계속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하던 그 시험 방법들이 바보 짓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사건이 있었다."
"뭔데요?"

...8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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