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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sibility/소설

情5 - 1998

"네"
"그래. 아무나 앉는 자리가 아니제. 내 자리니까네. 이 근처에서 자는 다른 놈들도 여긴 못 앉지. 그렇다고 내가 왕초나 되는 인물도 아니야.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무언의 약속을 한 거지. 이 거지 세계에도 약속은 있는 거거든. 약속을 잘 지키지.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말야. 여기서도 지키는 약속을 사람들은 그러니깐 음...그 내가 얘기하는 사람들이란 저 위에 다니는 그 사람들. 알제? 거그 사람들은 왜 안지키고 그라는지 모르겄다. 그렇지만, 여기에도 약속을 안지키는 가짜가 있긴 있지마는. 가짜라함은 알거다. 너도. 왠만한 사람들은 다 알텐데..."
저 위의 사람들이라고 말을 할 때는 두어번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키기도 했다.
"어떤 거요?"
"거 있잖나. 왜...그... 지하철에서 장님이 아니데, 음악켜고 그러는 사람들. 웃기지만, 어쩔수 없다. 그 사람들도 먹구 살라믄 그렇게 해야하거든. 썩은 곳은 그런 곳만이 아니지. 내가 대학가서 느낀건데, 주입식 교육이 판을 쳐서 정책을 바꿨다지만, 어디 애들 어깨한번 펴고 살 수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대학생수가 수위를 달리면서도 계속 대학설립이나 하고 말이지... 나중엔 아마. 국민이 다 대학생일거라. 아마. 껄껄.."
"후후후"
광수는 씁슬하게 웃었다.
"대학생들이 말야. 너무 많아. 대학생만 되면 다 되는 줄 알고. 너도나도 돈을 쳐 발라서라도 보낼라 카는 부모들두 문제가 있제. 돈을 쳐 발라 가믄 뭐 하나. 대가리에 차는 건 순 똥 뿐인데. 술, 여자, 당구... 뭐 얻는게 뭐야! 물론 대다수가 그렇다는 게 아니다. 내 말은... 그러나, 대학에 가면 사실, 자유라는 것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자유란 말이 생각남은 내가 하는 얘기가 틀리지 않음을 뒷받침해주지 않겄나? "
"네...맞습니다."
"얘기가 다른데로 흘렀다. 내가 시험을 했던 것은 이런 썩어가는 사회가 정말 우리나라가 맞는지를 시험해 본거다. 어떻게 했냐믄.... 후훗. 조금은 웃기는 얘기겠지만, 일주일에 닷새는 거지 생활을 하고, 나머지 이틀은 소위 귀족생활 같은 것을 하는 거였다. 물론, 집에 계시는 아저씨에겐 학교생활을 핑계로 하고 친구집이나 기숙사에 잔다고 했지. 처음엔 어떻게 할까 하고 고민을 많이 했다. 그냥 너저분하게 옷을 입는 것만으로는 모자라는 것이거든. 아무리 거지지만, 해보니까네 여기도 삶이 있고, 좌우명이 있드라마. 인생을 포기한 거지들은 정말 몇 되지 않지. 낮엔 학굘가고 밤에만 이 짓을 했는데도 알만한 건 다 안다. 내가 처음으로 시험해 보고 싶었던 것은, 장애자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었다. 항상 그랬었지. 말로만 떠들어대는 장애인 복지문제는 나의 시험으로 깡그리 드러났지. 조금은 예상했었지만. 우선 거지 꼴을 하고 호텔은 고사하고 어느 상점에만 들어가도, 인상을 찌푸리며 소금까지 뿌린다. 식당에선 밥도 주지 않지. 이게 우리나라 현실이다. 버스나 택시는 아예 탈 생각을 말아야 한다. 지하철? 지하철은 허우대만 멀쩡한 놈이지. 요즘 새로 생긴 장애인 전용 엘리베이터라든지, 에스컬레이터는 타보지 않아 모르지만 그 당시엔 그런게 전무했지. 아무것두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냥 장애인은 집에 쿡하니 눌러 앉아서 테레비나 보든지 책이나 보든지 해야할 시절이었다. 그런데, 내가 닷새를 거지행세를 하며 버티다가 토요일을 맞이했다. 근데, 너무 배고프고 할 짓이 아니라는 후회가 일었다. 나도 힘이 들었던 게지. 그래서, 첫날은 그냥 그렇게 쉬었어. 다음 날, 옷을 말끔히 차려입고 아저씨의 도움으로 백화점이란 곳엘 갔었다. 난 목발을 짚고 다니지만, 난 더 큰 의미를 맛보고 싶어서 휠체어를 타고 갔다. 이상하게 생각하시는 아저씨였지만, 내가 그렇게 하겠다고 말씀드리면 거의 거절 내지는 부정을 안하시는 정말 맘 좋은 분이셨다. 내가 가고 싶은 매장들을 들렀을 때 처음엔 아는체도 안하는 사원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 매장에서 제일 비싼 것을 손에 쥐고 이리 흔들고 저리 흔들고 하면... 후훗...참. 그 때의 그 점원 얼굴 표정이란...후훗.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는군. 어디 상감마마라도 행차한 듯 굽신거리는데. 웃겨 죽는 줄 알았다. 정말. 그 인간들의 그런 모습을 보니깐 너무 웃기면서도 한편으론 재미가 생기더라고. 차별하지 않는 사회라고 그 때까지 배웠던 나의 이념을 산산히 부숴놓기에 충분했던 건, 그 담에도 계속 이어졌지. 먹을 걸 사도, 식당을 가도 돈 몇 푼 손에 들고 비싼 것 몇 개 시키면 눈이 휘둥그레지지. 그래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난 볼 수 있었다.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도 꼭 같이 행동했었거든. 돈이 없었을 땐 거들떠도 보지 않던 무정한 사람들이."
광수는 저려오는 다릴 펴며 물었다.

... 6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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