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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sibility/소설

情2 - 1998

"어디서 왔나. 어디서 왔는데?? 보아하니... 양아치 차림이 아닌 것으로 봐선... 집에 못들어 갔나...아니면 집을 나왔나?"
국물 그릇을 다시 받아 들며 그가 물어온 말이었다.
"아뇨... 차가 끊겨서요. 국물 고맙습니다. 그럼..."
뒤돌아 가려던 광수를 붙잡은 것은 손이 아니라 말(言)이었다.
"잘땐 있나? 없으면 일루와람마. 가긴 어딜 간다고. 이 시간에 니가 가봤자제. 아무대도 몬간다. 이 시간엔. 돈이 있으면 가겠지만... 그 놈의 돈... 돈이 있으면 어디든지 가겠지. 아무렴 돈이 있는데."
어딘가 어리숙해 보이는 경상도 억양이 있는 듯 했다. 그리고, 돈돈...하는 것으로 보아 무슨 큰 사기라도 당하고 이 자리까지 떨어진 듯해 보였다. 말투도 그러했고. 그 말투에선 더 경계심을 늦추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돈 없으면 여기 와 앉아 봐라. 내랑 오늘 밤 친구해주면 내가 차비로 만원 준다."

그렇게 그 날 새벽을 같이 보내게 된 이유는 돈 만원 때문이 아니었다. 왠지 그런 곳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상한 느낌이 그 사내 주위에 가득했다는 것이 광수가 그 사내 곁에 있은 첫 번째 이유였고, 새벽공기가 너무 차서 밖에 나가기가 싫다라는 것이 두 번재 이유라면 이유였다. 그런 곳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라는 느낌은, 옷차림이 그렇게 허름하지 않다는 것과 신체 장애자라는 것이 광수에겐 머리아픈 순간임에도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어딘가 이런 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듯한 인상이 그 사내의 말 끝에서 베어 나왔다.
광수는 그 사내의 옆에 앉아 아까 마시다 남겨놓은 국물을 다시 손에 쥐었다.
"춥지 않으세요?"
"춥냐고?"
"네."
"여긴 내 집이다. 추울 리가 없제. 아무도 날 간섭하지도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곳이다. 때로 단속하는 사람들이 즐비하게 늘어서서 우릴 감시하기도 하지만, 여긴 세상에서 가장 편한 낙원이야."
광수는 할 말이 없어졌다. 광수가 바라던 대답은 안나오고 다른 말들로만 그 사내는 일관했기 때문에. 광수가 바라던 대답이란, 아마 '갈대가 없으니...'로 시작하는 뭐 그런 대답이었을 것이다.
"너... 이름이 뭐냐...근데."
"광수요....박광수..."
"음... 광수. 빛날 광이가? 빛나는 세상에 빛나는 놈이 되어야 겠구마."
옆에 바짝 붙어 앉은 건 아니지만, 너저분한 그 사내의 내음이 물씬 코에 와 닿았다. 낯선 내음이라 광수는 몸을 움찔 했지만, 엉덩일 들어 옆으로 옮기자니 그 사내에게 괜한 미안함이 들어 그대로 있기로 했다.
시간은 벌써 3시를 넘기고 있었고, 그 사내의 몽롱한 얼굴 빛이 시간이 지날 수록 이상하게도 친근하게 느껴졌다. 차가운 지하도에서 밤을 그렇게 새리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던 광수. 하지만, 새로운 기분에 도취되어 그새벽에 광수는 그 사내의 말동무가 되어주고 있었다.
"너...아니제. 광수야. 너 대학생이나?"
"네."
"대학생... 좋지... 어느 대학 다니냔 말은 묻지 않겠다. 내가 이렇게 말 한다고 화내진 않겄제? 오늘 넌 내랑 친구하기로 했으니까네, 내랑 친구 해줘야 한다. 알겄나? 와... 대답이 없노."
"네..."
웃긴 말도 아닌데, 둘은 그말에 조금 가까워 보이기까지 하였다. 그 사내는 말없이 어디론가 가는 것 같더니, 소주 두어병을 손에 들고 돌아왔다. 그 술로 그들은 한기를 멀리할 수 있었고, 광수는 그 사내의 이상하리만치 정겨운 그 눈을 그 소주잔이 되어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그 사내 또한 한 동안 말못한 사람처럼 말문을 트기 시작했다.
"아저씨. 아저씬 왜 이런 곳에 있어요? 집 없어요? 가족은요?"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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