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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sibility/소설

情1 - 1998

1998년에 쓴 소설. 내 나이 26세 였던 때.
제목: 情
 
 
 
그 날은 아침부터 날씨가 좋지 않았다. 하루종일 찌푸려 있던 하늘은 마침내 비를 토해내고 있었다. 술자릴 박차고 나와 화장실에서 비를 맞은 광수의 그것과 꼭 같아 보일만큼 비는 세차게 내렸다. 그렇게 술자릴 나와 시계를 보니, 벌써 시침은 위를 곧게 가리키고 있었다. '아차! 큰 일이다'라고 생각이 들기도 전에 광수 발은 벌써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 시간에 버스가 있을리 만무했고, 그 사실을 알아차린 광수는 택시에 손을 의지했다. 온 세상을 다 쓸어 내릴 듯이 내린 비가 술집을 나왔을 땐 다행히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쳐 있었고, 마치 샤워를 막 끝낸 새 색시같은 수줍은 모습을 하곤 세상의 온갖 때를 벗겨낸 거리는 말끔히 새 단장을 하고 있었다.
택시를 타긴 했지만, 타고나서 생각 난 것은 광수 호주머니에 들어있는 남은 돈이었다. 얼마나 남아있나... 광수는 혼자 씨익 웃었다. 기분이 좋아 친구들을 제쳐두고 자신이 계산대에 나섰던 기억을 어렴풋이 해내고는 그리 씁쓸하지만은 않은 웃음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남은 돈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나. 기사 아저씨에겐 광수의 집인 수유리까지 가자고 말은 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 지 뻐근한 머리로는 생각이 곧잘 나지 않았다.
"아저씨... 죄송한데요. 서울역으로 가 주세요."
차마 '돈이 그 정도 거리면 될 것 같아서요...' 라곤 말하지 못했다. 무슨 서울역에 갑자기 볼일이라도 생긴 사람처럼 광수는 당당히 행선지를 얘기했다.
새벽 1시에 바라 본 서울역은 차가왔다. 비가 와서도 그렇겠지만, 아직은 한기가 가시지 않은 4월초순이라서 그랬을 것이다. 또한 지나 다니는 행인들도 막차가 떠난 지 1시간이 다 되어 가서 그런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런저런 이유들이 많겠지만, 광수의 소매축을 잡아 지하도로 이끈 것은 날씨가 가장 크게 작용했다. 팔짱을 곧게 끼고 들어선 지하도의 계단에선 누군가가 토해놓은 듯한 것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모퉁이를 돌자 여러명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시간에도 사람들이 있구나라고 싶었던 그런 마음은 다가갈수록 사그라들었다. 뉴스나 무슨 시사프로에서나 접했던 그런 사람들이었다. 다른 나라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광수는 취기도 오르고, 다리도 아프고해서 길 옆 모퉁의 계단에 앉아 잠시 쉬었다. 광수 주위엔 신문지혹은 어디서 구했는지는 모르지만 냄새가 많이 날 것 같은 그런 이불을 옴팡지게 뒤집어 쓰고 누워있는 사람들도 몇 있었다. 텔레비젼에서 많이 접한 그런 눈에 익숙한 장면들이 바로 앞에서 펼쳐지니깐 경계심이 일긴 했으나, 광수는 지끈거려오는 머릴 만지며 잠시 눈을 감았다. 그저 조금 쉬었다 가려고 했다. 그러나, 갑자기 어깨를 짓누르는 기분이 들어 눈을 떳을 땐 광수가 눈을 감은지 벌써 2시간이 흐른 뒤였다. 날씨는 더 싸늘해져서 광수의 어깨에 한기를 가득 안겨 주었고, 어깨를 움츠리며 머릴 들었을 때, 눈 앞에 가득히 어떤 낯선 남자의 얼굴이 들어왔다. 광수는 잠시 놀랐다. 그렇게 바짝 갖다대니 놀라기도 했겠지만, 순간 떠오른 생각이 거렁뱅이이거나 부랑자일거라는 생각에 광수는 얼른 일어났다. '나는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니오'라고 말이라도 하듯이. 그 사내는 그런 광수의 행동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기색이 있더니 광수가 앉았던 자리에 앉으며 이렇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어디서 왔나.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지마는 여긴 내 자리다. 아무나 못 앉는 자리지."
'아무나 못앉는 자리...??'
그는 다리를 절고 있었다.
"날씨가 많이 춥구마. 이리 와 옆에 앉아 봐라. 내 자리엔 앉지 말고. 따끈한 국물이 있으니까네... 쫌 먹어볼래?"
광수는 그 사내가 내미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무슨 오뎅국물같은 것을 손에 들고는 많이 망설였다. 이런 곳에서 이런 것을 막 받아 마셔도 되나 하는 생각에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아파오는 머리가 그것을 들이키게 해 주었다.
"아...시원하다."
광수 자신도 모르게 나온 말이였다. 이런 만남은 익숙치 않다. 많이도 당황한 광수. 연신 겸연쩍은 얼굴로 머릴 긁적였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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