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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sibility/詩

빗소리로 - 1999.4.5

비가옵니다.
먼 옛날을 회상하며 담배를 물 수 있는 의무감으로 오늘도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별로 할 일이 있어서 앉은 것은 아닙니다.
그저 뿜어져 나오는 연기속으로 잠시나마 회상할 수 있어 좋았던 것 뿐입니다.

양철지붕에 닿는 빗방울 소리를 들을 수는 없습니다.
그저 가로등아래로 흩어지는 물방울들만 볼 수 있을 뿐입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그저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그래야 인생이지요.

작은 가슴으로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있을까 다시금 되내입니다.
이젠 어렴풋이 기억할만큼 됐건만 그리 하지 못하는 것은, 오늘은 비가 내리는 밤이기 때문입니다.
어루만져 줄 차가운 가슴으로 이 자리까지 온 나를 본 바로는 적어도 그렇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은, 지친 몸뚱아리를 끌고 다시 산정상으로 향하는 그네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안되는 상황만이 펼쳐지는 기구한 운명인 듯이 받아들이기에, 삶은 너무나 가혹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안되는 그것으로 오늘 귀로 빗방울을 받아냅니다.

오늘 밤 외로이 담배재를 지지며 외마디 비명으로 내뱉는 말이 있습니다.
돌아 볼 겨를도 없이 그렇게 잔인하게 다가 온 봄날의 이별을 따뜻한 향기로 보다듬어 줄 그런 손길을 그대는 가졌습니다.
이제 그 '누군가'란 말로 나를 위로하지 마시길...
그대의 그 부드러운 손길로 빗소리는 얼마든지 작아질 수 있음에.

그대는 항상 내 곁에 있어줬음에.

'그대, 사랑합니다...'

1999.4.5. 「빗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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