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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folio/일반기사[2003~2007]

[SK] 시간 - “결국 경쟁의 잣대는 ‘시간’인 셈이죠”

“결국 경쟁의 잣대는 ‘시간’인 셈이죠”

괴테는 말했다. 시간을 단축시키는 것은 활동이요, 시간을 견디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안일함이라고. 시간 속에 갇히기 보다는 시간 앞에 당당히 맞서 하루 24시간을 48시간인 것처럼 사용할 줄 아는 이가 주목받는 시대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여유롭기보다 오히려 더욱 바빠진 현대인들. 안일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SK맨들의 시간 전략은 과연 어떠할까. 시간과 다투며 사는 사람들을 한 자리에 불렀다.

참가자
SK증권 서초지점 유성호 팀장. 36세.
SK케미컬 생명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 정기원 과장. 33세.
SK텔레콤 Access망 운용1팀 김대근 대리. 32세.

# 처음 뵙겠습니다. 반갑습니다.

유성호 팀장(이하 ‘유’) 자기 소개하려니 쑥스럽네요. 저는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졸업했어요. 학교 다닐 때 ‘투자론’을 배우면서 주식에 큰 매력을 느꼈죠. 그래서 지난 96년 증권으로 입사한 것이고요. 지금 생각해 봐도 잘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고, 보람도 많이 느낍니다. 증권 업무라는 게 정해진 업무 외에 부가적인 일도 많이 하거든요. 거기서 발생하는 수익도 있고요. 매력적인 거죠. 저는 지점에만 있었는데, 지금까지 10여 년간 을지로지점과 신반포지점, 그리고 서초지점 등 3곳을 돌았네요. 증권은 자본주의 꽃이라고 하잖아요. 인식이 좋지 않은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활황이죠.
정기원 과장(이하 ‘정’)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대 약학대를 졸업하고 98년에 입사했는데요. 지난 97년 SK의 마지막 산학장학생으로 선발된 경력이 있어요. 지금 천연물 팀에서 근무하는데요. 기넥신 많이 들어보셨죠? 기넥신과 조인스(관절염 치료제) 개발에 참여했어요. 여기서 잠깐, 약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일반인이 복용하는 약품 30% 정도는 모두 천연물을 소재로 한 제품들이예요. 보통 화학 합성물로 인식하기 쉬운데, 그렇진 않죠. 제가 하는 일이 그런 것이예요. 식물에서 추출해 낸 물질로 약을 개발해 내는 것. 입사 당시 거의 인프라가 구축돼 있진 않았지만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요. 그 덕분인지 조인스는 다산기술상과 국무총리상 등 여러 차례 수상 경력도 지니고 있죠.
김대근 대리(이하 ‘김’) 저는 신세기통신에 입사해 SK로 들어온 케이스예요. 주요 업무는 통화품질과 관련된 전반적인 업무를 관리한다고 보면 되요. 요즘은 아웃소싱을 많이 줘 사무실에서 운영 및 관리 등을 주로 하죠. CRM과 혼동하기 쉬운데요. CRM이 소프트웨어라고 하면, 저희는 하드웨어라 할 수 있죠.

# 정말이지……. 바쁘다 바빠 “이따 전화할께”

현대인들치고 바쁘지 않은 사람 어디 있을까. 이런 가운데 새의 날갯짓보다 빠르게 느껴지는 시간이 매일 벌어지는 현장이 있으니, 바로 이들의 사무실이다.

정 요즘 증시가 매우 좋죠?
유 하하. 네. 그런데 최근 떨어졌어요. 지난주엔가 친구 결혼식에 갔는데 한 친구가 주식 1천만 원어치를 사 놓고 까맣게 잊고 지내다 최근 10배 가까이 뛰었다는 걸 알았다고 자랑하더라고요. 요즘 바이오 관련 주들이 뛰었거든요. 주식이란 게 그런 거죠.
저는 사실 바쁜 시간이 정해져 있어요. 그렇다고 나머지 시간이 한가하단 얘긴 아니고요. 정말 핏줄 타는 느낌이 들 때가 있죠. 주식 시장은 매일 오전 8시부터 9시까지 주문을 받은 후 9시에 동시적으로 매매가 이뤄지거든요. 그런데 8시 59분에 고객께서 전화하실 때가 있어요. 빨리 넣어달라고. 그러면 정말 눈앞에 노래지면서 전화 받고 계좌번호 넣는 걸 1분 동안 처리하는 거죠. 그래서 손님들 계좌번호는 외우고 있어야 해요. 전화가 혼선되거나 스팸 전화, 심지어 친구 전화도 그 시간에는 받을 수 없어요. 모두 끊어 버리죠. 그런 시간이 오후 2시에서 3시 사이에 또 벌어지니 하루 두 번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셈이죠.
그리고 한 차례 또 있다면, 뭔가 기업에서 새로운 제품을 발표하거나 무상증자를 발표할 때예요. 주가가 급등하거나 급락하기도 하는데, 그 때가 또 정신없어요. 매수 매도가 한번에 몰리거든요. 주식시장은 보통 매일 6시간 동안 열리는 데요. 그 시간에는 집에서 오는 전화 받기도 힘들어요.
김 그러면 출근은 보통 몇 시에 하세요?
유 보통 7시 반에 하죠. 그렇다고 퇴근을 빨리하는 건 아닙니다. 빨리 할 때도 있는데, 자신에게 할당된 금액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있기 때문에 근무 시간을 탄력적으로 사용하긴 힘들죠. 증권사 직원들은 뿌린 만큼 거두기 때문에 자신의 발품을 판만큼 월급이 많아져요. 직원들 모두 월급이 제각각이죠.
정 컴퓨터가 만약 그 시간에 버벅대면 큰일 나겠네요?
유 그렇죠. 그래서 최신형 컴퓨터만을 사용해요. 버벅대거나 다운되기도 하는데요. 그럴 때면 진땀 나죠. 하하.
정 증권사 직원들은 정보를 빨리 얻는 법도 알고 있다던데요.
유 이거 중요 내용이라……. 하하. 정보는 좀 그렇고. 일반인들과는 좀 다르죠. 그러니까 거래가 일어나는 거예요. 주식이란 게 모든 사람이 같은 생각을 하면 거래가 안 돼요. 매수 매도가 적절히 이뤄져야 하거든요. 정보의 차이는 분명 있죠.
정 아 그렇군요. 저도 성격은 조금 다르지만 매우 바쁜 편에 속해요. 우선 신약 개발의 특성부터 설명하자면, 대개 60~70년대 신약 개발 기간은 약 8년이었다고 해요. 그러나 지금은 14년 정도 걸리거든요. 아이디어 개발에서 상품화까지요. 어떻게 보면 지루할 것 같잖아요? 그런데 그렇지가 않아요. 물질이 개발되면 우선 특허신청부터 넣고 10년간 그 물질에 대해 보장을 받는데요. 1회 연장(10년)된다 하더라도 후에 누군가 그 물질로 다른 상품을 먼저 개발해 버리면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요.
최고의 석학들이 모여 아이디어를 개발하는데 있어 누가 먼저 하느냐가 가장 중요하죠. 특허를 먼저 받는 일, 즉 먼저 론칭해야 선점 효과를 누려요. 단기간 상품성이 짙은 휴대폰 한대 만드는 일과 같은 논리는 아니죠. 10년을 준비했는데 그것이 하루아침에 무산될 수도 있어요. 그래서인지 의약품 개발은 ‘예술품’이라고 봐요. 천연물 개발자에서부터, 독성 전문가, 통계학자, 약사, 의사, 법학자 등 참여자가 다양하죠. 그러고 보면 10년도 짧죠. 약 한 개 개발하는데 보통 5천억 원 이상 들어가거든요. 상품화되면 20배 이상 벌어들이지만 하루아침에 무용지물이 되기도 하니까, 결국 경쟁사와의 시간 싸움인 거예요. 그래서 보통 여러 개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시키죠.
김 오랜 시간 준비하면 스트레스도 많을 것 같은데요?
정 약품 개발이 지연되는 그 자체가 스트레스죠. 개발자가 한 달 늦게 하면 그 후로는 5년, 10년이 늘어날 수 있어요. 중간에 경쟁자가 들어올 수 있으니까. 압박을 받죠. 그래서 술을 많이 먹어요. 하하. 특허를 내려했는데 이미 특허출원이 돼 있다면 잽싸게 다른 제품으로 변화를 꾀해요. 임상 실험 날짜가 정해져 있을 때 안정성에 의심이 갈 때가 있어요. 10억이 소요될 정도의 임상 실험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정말 진땀나요. 이걸 어떻게 해결하나 싶어서. 그 이전의 수억 원을 들인 동물 실험 비용은 모두 날아가는 거죠. 거기서 그치면 좋은데, 소문이 나잖아요. 그러면 주식에 영향을 미쳐 주가가 폭락하기도 해요. 타임스케줄에 맞추지 않으면 전반적인 타격을 입는 것이죠.
유 궁금한 게 있는데요. 황우석 박사가 발표한 몇 년 후의 계획들요. 몇 년 후 진정 이뤄질 수 있나요? 모든 계획의 바탕은 가장 좋은 결과를 토대로 작성되나요? 잘 될 때를 감안해서 타임스케줄을 짜는 건가, 궁금하네요.
정 네. 그래요. 제일 잘 되는 경우를 감안해서 계획을 짜요.
유 예전 고속철도 시작할 때 보면 기간이 연장되면서 돈이 수없이 들어갔잖아요. 그런 것과 비슷한 맥락이군요.
정 저희가 마케팅팀과 싸우는 이유 중의 하나가 그거예요.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을 때 부가 지출이 생기잖아요. 하다보면 안될 수 있는데……. 그래서 부산물이 약이 되는 경우도 있어요. 계획이 당겨질 수도 있고요.
김 대단하네요. 그런데 저도 두 분에 못지않게 바쁜 것 같아요. 하하. 저희는 보통 정기적으로 바쁜 때와 비정기적으로 바쁜 때가 있는데요. 크리스마스 때가 가장 힘든 때죠. 크리스마스 때 오붓하게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한 적이 거의 없죠. 연말도 바쁘고 밸런타인데이도 만만치 않죠. 얼마 전 여의도에서 불꽃쇼 할 때 약 3시간가량 불통돼 신문에 떠들썩하게 났는데요. 100만 명이 운집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사실 100만 명 정도가 한 장소에 모이면 방법이 없어요. 불통 될 수밖에 없단 얘기죠. 기지국을 많이 설치한다고 능사는 아니거든요. 인원과 장비의 한계가 오는 것이죠. 현재 기술의 한계라고 할 수 있어요.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정원이 6만 명 정도 되는데, 꽉 차게 되면 조금 위험해 지죠. 선로를 많이 해 놓아도 소용이 없는 것이, 기지국이 많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서요.
유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일단 통화하기가 많이 힘들겠네요.
정 잠실 경기장은 어때요?
김 잠실은 비교적 좋은 편인데요. 어느 정도 대처 능력이 있죠. 이 밖에 해결책으로는 이동식 기지국이 있는데요. 보통 붐빈다 싶을 때 사용하죠. 2002년 월드컵 당시 시청 앞에서 사용했어요. 근데 그렇게 설치해도 100% 수용은 못해요. 5년 전 강화도에 800mm의 비가 하룻밤에 내렸는데 결국 통신망이 다운이 됐어요. 지금은 광선로인데 예전에는 실선로였거든요. 그래서 비만 오면 문제가 생겼죠. 허나 이런 면도 있어요. 통화가 늘어나는 중에 장애가 나면 큰 손해를 보잖아요. 그게 모두 돈이니까. 그래서 매우 촌각을 다투는 일이 되는 것이죠. 장애를 어떻게 하면 빨리 해결하느냐에 따라 회사 수입이 달라지니까요.

# 바쁜 현대인, “우리는 왜 이렇게 바쁜 것일까?”

문명이 발달할수록 오히려 시간이 없고 바빠졌다. 홈페이지 로딩시간 5초도 못 기다린다는데…….

김 사실 저도 문명의 혜택인지 이기인지 모르지만 휴대폰이 하루라도 손에 없으면 불안하고 초조해지고 그래요. 통신 등 문명이 발달하는 것이 피부로 느껴져요. 요즘 이슈화되고 있는 전자파 문제도 그래요. 통화 안 돼도 좋으니 기지국 뽑아달라는 주문도 들어오거든요. 급하게 돌아가다가도 웰빙이라 해서 느긋해 지는 경향도 있는 것 같지만 좀 민감한 문제죠. 참고로 전자파 얘길 조금 할까요? 전자렌지는 코드만 꽂아놔도 전자파가 나와요. 정통부에 국내 유일의 전자파 측정기가 있는데, 전자렌지가 가장 많이 나오는 것으로 측정됐죠. 반면 기지국에서의 전자파는 조금 밖에 안 돼요. 오히려 단말기 전자파가 좀 크죠. 통화가 연결될 때.
정 제 선배는 그러더라고요. 빠르고 각박한 사회지만 미래보단 낫다고. 미래에 비하면 얼마나 좋으냐고. 지금 나를 이 곳에 적응시키지 못하면 미래에는 못살아간다고. 결국 적응을 해야 한다 것이죠. 아무리 바쁜 세상이더라도 적응해야 한다는 것이죠.
유 빨라져서 좋긴 한데요. 믿음이 적어진 세상이 원인인거 같기도 해요. 사회가 고도화될수록 양질의 문화가 발달하는 게 아니라 저질 문화가 많아진다는 데 문제가 있어요. 그래서 더욱 바빠지고. 양질을 찾아다니기 위해 움직이는 거죠. 사회가 발전할수록 나눔의 철학이 중요한 데……. 여유로운 나눔. 긴박함이 덜한.
정 저도 예전부터 생각한 문제예요. 문명의 이기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과연 고대 농경사회에서도 불편했을까? 나름대로 그들도 조건에 맞게 편하게 살았을 것이라고 봐요. 지금 시대의 문제는 경쟁과 탐구 등 욕망 때문일 수도 있어요. 이런 가운데 우린 과연 행복한가라는 자문을 할 필요가 있다는 거예요. 행복한가. 중요한 건 행복이라고 봐요. 행복 추구를 한다면 조금 더 여유로워 질 수도 있다는 거죠. 시간에 쫓기는 그런 삶이 아닌. 경쟁을 심하게 하지 않는 구조. 현재는 모두가 경쟁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잖아요. 자녀 교육을 할 시간도 없거든요. 애와 함께 즐겁게 뛰어놀 수 있는 것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아이 발전만을 생각한다는 거죠. 무엇이 문제인지는 나의 숙제이고 고민인 것 같아요.
김 시대가 나를 그렇게 만들지 않았나 싶기도 하지만 성격 급한 우리나라 국민성도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외국에 나가보면 참으로 여유롭잖아요.
유 맞아요. 경쟁이 너무 심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1등 의식’도 문제죠. 2등해도 편안할 수 있잖아요? 축구에서도 골 넣은 선수만 주목받잖아요. 어시스트도 중요한데. 박지성 이영표 선수가 외국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유가 있는 거죠. 우리나라는 경쟁 구도가 너무 심한 것 같아요. 결국 그런 것 같아요. 산에 오르면서 생각하잖아요. 굳이 꼭대기에 가지 않아도 되는데, 기어코 꼭대기를 가려고 하잖아요. 산을 건강의 수단으로 생각하면 좋은데, 꼭대기를 정복해야할 목적으로 생각하니 몸이 피곤해지는 거죠. 조절해야 돼요. 경쟁사회에서만 살아서 쉽진 않지만 말이죠.

# 에필로그
평소 4명의 패널이 참가하는 이슈토크의 시간. 모방송국의 100분 토론이나 시사토론을 생각하기 쉽지만,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다. 편안한 장소에서 한 끼의 식사와 약간의 음주로 서로 몰랐던 타 계열사에 대한 이해를 돕는 시간이 된다는 게 오히려 정확한 분석일 듯싶다. 그 중에 속속 튀어나오는 진주 같은 멘트가 바로 이 꼭지의 주 내용으로 포장되니까.
이번 호는 3명의 패널로 진행됐다. 토크 개시 1~2시간 전에 사정이 생겨 참석하지 못한 1명이 생겼다. 못내 아쉽다. 매번 4명이 기본이었는데...
그러나 허전하지 않았다. 그들은 바쁜 일상 속에서도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아는 사람들 같았다. 진정 빠른 것은 느린 걸음이 아니라 여유로운 마음속의 행복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글/ 원창연(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