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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folio/일반기사[2003~2007]

우리 생활에 파고든 일본어 잔재(2)-국민의 무관심이 가장 큰 걸림돌

우리 생활에 파고든 일본어 잔재 (2)
한글 사랑, 국민의 무관심이 가장 큰 ‘걸림돌’
지속적인 ‘정부의 순화 노력 + 국민의 사랑 = 한글 가치 증대’


10월 9일은 한글날이다. 1946년부터 법정공휴일로 제정돼 오다 지난 1990년 기념일로 그 의미를 바꾼 ‘한글의 날’은 매년 그래왔듯, 올해도 한글의 우수성에 대해 여기저기서 요란하게 떠들 것이다. 여기저기서 일본어 잔재가 어떻고 여과 없는 영어의 흡수가 문제라는 등 우리 민족 고유의 언어인 한글의 위기에 대해 또 역설할 것이다.
그러나 한글은 이미 흔들리고 있다. 굳이 인터넷을 이유로 들지 않더라도 언어가 사회상을 반영한다고 볼 때, 국내 최고 명문대학생들이 국문 받아쓰기를 제대로 못한다는 통계 등은 이를 뒷받침하기에 충분하다. 어법에 맞지 않고 맞춤법이 틀린 소설이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등 우리는 이미 한글 아닌 한글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지난 호에 이어 이번 호에서도 마찬가지로 한글의 위기에 대해 역설할 참이다. 비교적 알기 쉽게 쓰려고 하나, 한글을 전공한 필자로서도 여간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국어정서법에 입각해 글을 쓴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전문적으로 글을 마음에 담아온 필자도 이럴진대, 일반인들이야 오죽할까. 가끔 재래시장에 들러보면 다소 귀여운(?) 문체의 틀린 맞춤법을 상품명으로 진열해 놓은 곳을 종종 본다. 그저 웃고 넘어갈 일이다. 그들에게 “글 이란 것에 대해 왜 심각히 고민하지 않냐”고 반문하는 것은 더 우스운 일이다.
스스로의 책임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중에 ‘아 다르고 어 다르다’란 말이 있듯, 우리말은 자음과 모음 중 한 가지만 바뀌어도 그 의미가 완전히 다르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우리의 말과 글을 씀에 있어 매우 신중을 기해야 함은, 당연한 이치다.
일본 사람도 아닌 우리가 ‘영자’, ‘화자’, ‘춘자’ 등과 같은 일본식 이름을 아직도 달고 산다. 흔한 일은 아니나 그러한 이름 짓기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우리는 반성해야 한다. 어디 이름뿐인가.
일제가 남겨 놓은 일본식 땅 이름이 아직도 이 곳 저 곳에 널려 있음에도 그것을 잘 모르는 우리 국민이 대다수다. 버스 안내판이나 도로 표지판, 각 기관의 이름이나 시설물 이름에 버젓이 일본식 이름이 붙어 있다. 특히 지리용어나 건축 용어가 일제 때 만들어진 것을 그대로 쓰고 있으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부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과 없어

광복 후 선생님들이 교실에서 학생을 가르칠 때 사용하는 분필도 우리는 백묵이란 말로 바꿔 썼다. 칠판이 아닌 흑판이란 말도 덧붙여서. 이러한 일본식 한자말은 오히려 정부 측에서 적극(?) 사용하는 듯 하다. 고수부지, 노견, 할증료, 집중호우 등.
노견은 영어의 ‘Road Shoulder’를 일본이 영어 그대로 직역해 들여온 말인데, 직역하면 ‘어깨길’이 된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는 지난 91년 장관에 의해 일본말의 직수입품임을 지적해 ‘갓길’이란 신조어로 고쳐졌다.
지난 80년대 조성되기 시작한 ‘한강고수부지’도 ‘한강시민공원’으로 그 명칭을 변경했다. 한강둔치라는 말도 사용되곤 하지만, 서울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시민공원’이란 단어가 더욱 적절했다는 판단에서다.
이러한 정부의 노력은 지난 91년 문화부에서 조금씩 시작됐다. 우리말처럼 쓰이고 있는 일본어 순화를 위해 1차로 415개 순화 대상 용어를 선정, 발표했다. 1차로 발표한 순화 용어는 일본어가 그대로 사용되고 있는 150개 낱말과 일본색이 짙은 261개 낱말이 그 대상이 됐다.(밑에 붙임글 참조) 그러나 당시 문화부는 발표만 했을 뿐,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순수한 우리말로 다듬어 나가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이나 학교 교육 및 사회 교육 등을 마련하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97년 2월 문화체육부에서는 우리 생활 속에서 잘못 쓰이고 있는 일본어투 용어 377개를 선정, 순수한 우리말로 순화하기로 했다. 문화체육부가 이 때 확정한 순화 대상 용어는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어휘들로 그 대상은 순일본어, 일본식 한자말, 일본식 발음의 서구 외래어, 일본식 조어의 영어 및 한자어 등이다.
예를 들어, 이지메(집단 괴롭힘), 오방떡(왕풀빵), 닥상이다(충분하다), 다이야(바퀴), 찌찌(젖), 굴삭기(굴착기) 등이 그 것이다.
문화체육부는 이들 순화 대상 용어들을 순수 한글로 바꿀 것을 기본 원칙으로 했으며, 마땅한 우리말이 없을 때에는 신규 용어를 찾아 대체하기로 했다. 일본식 발음으로 잘못 쓰이고 있는 외래어는 현행 한글맞춤법 상의 외래어 원칙을 적용했다.
이 밖에 지난 1980년대 초 전국낚시회연합회는 ‘낚시 용어 정화심의 위원회’를 구성, 일본말 일색인 낚시 용어 약 40여개를 우리말로 고쳐 놨다. 연합회는 이를 안내서와 포스터로 만들어 산하 낚시회에 배포했고, 전국의 낚시인들은 앞으로 이 낱말을 사용할 것을 다짐했다. (예: 도마리(밤낚시), 가께쓰리(훌치기), 아시바(발판), 하리스(목줄), 우끼(찌), 다이(덕))
그러나 결과는 좋지 않다. 거의 진전이 없다. 당구계, 미용계, 의료계 등도 마찬가지로 노력했지만 성과가 적다. 이렇게 된 것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국민의 무관심이다. 우리 주위에 널려있는 일본식 한자어 및 일본식 영어를 순수 한글로 바꾸려는 스스로의 노력이 없으면 안 되는 일 들인데, 모두들 무관심하다. 아무 노력도 없이 아쉬우면 무조건 남의 것을 가져다 쓰려는 편안한 생각에서 나오는 ‘편의 주의적 발상’이 이런 결과를 낳고 있는 셈이다.

젊은이들이 나서야 할 때다

종로통(종로길), 빠꾸(후진), 이면도로(뒷길), 대로(큰길), 도라이바(드라이버), 기스(흠집), 가이당(계단) 등등…….
말은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 하나가 나서서 될 일도 아니다. 말과 글은 그 사회를 반영한다. 사회가 어지러울수록 어지러운 신조어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한 신조어를 무조건적으로 비판만 한다는 얘긴 아니다. 다만, 시기적절한 단어를 선별해 후대에 물려줘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세대가 다른 웃어른들에게 재교육을 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젊은 세대가 나서야 한다. 앞장서야 한다.
광복 60년. 우린 무엇을 했는가. 결코 짧지 않은 이 시간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입으로는 열심히 ‘국어순화’ ‘일제 잔재 몰아내기’에 급급해 친일청산까지 하는 마당에, 제대로 된 한글 하나 바구니에 담지 못하는 이 상황은 무엇이란 말인가.
대한민국에서 영어가 제2외국어로 공용어가 된다고 하더라도 한글은 유지 존속해야 할 하나의 문화재다. 우리가 예쁘게 가꾸고 다듬어야 할 우리의 고유 자산인 것이다.

글/ 고구마(wc55@chol.com)



<일본식 한자>
백묵-분필
잔업-덧일
각선미-다리맵시
흑판-칠판
고수부지-둔치
노견-갓길
할증료-웃돈
행락철-나들이철, 놀이철
선착장-나루터
축제-잔치
발신-보냄
집중호우-장대비
택배제도-가정배달
개찰구-들어가는 곳
대합실-대기실
보합세-주춤세, 멈춤세

<일본식 영어>
핸들-스티어링휠(Steering wheel)
오토록-셀프록킹(self locking)
오토바이-모터바이크, 바이크(motorbike)
샤프-머캐니컬펜슬(mechanical pencil)
사이다-소다펍(soda pop)
와이셔츠-셔츠, 드레스셔츠(dress shirt)
노브라-브라리스(braless)
클레임-컴플레인(complain)
네임밸류-페임(fame)
모닝콜-웨이크업콜(wake-up call)
스킨쉽-피지컬컨택트(physical contact)
탤런트-스타, 엔터테이너(entertainer)
아파트-아파트먼트하우스(apartment house)
에어콘-에어콘디셔너(air conditioner)
일러스트-일러스트레이션(illustration)
인프라-인프라스트럭쳐(infrastructure)
더치페이-더치(go Dutch)
오바이트-보미트(vomit)
아이쇼핑-윈도우쇼핑(window shopping)
추리닝-스웨트슈트(sweat suit)
핸드폰-셀폰(cell phone)

<자주 사용되는 완전한 일본어낱말>
고데-인두
곤로-풍로
곤색-감색
공장도가격-공장값
기중-상중
기합을 넣다-정신을 차리게 하다
내역-명세
다마-알, 구슬
다반사-예삿일
담합-짜다
덴뿌라-튀김
부지-터
역할-소임, 구실
오뎅-꼬치, 꼬치안주
우동-가락국수
취입-녹음

<일본색이 짙은 낱말>
가건물-임시건물
가면-탈
거치기간-예치기간
고참-선임자
구좌-계좌
나대지-빈 집터
대절-전세
벽지-외딴곳
산간오지-두메산골
생방송-현장방송
승차권-차표
시합-경기
요금-값
익일-다음날
품귀-딸림
품신-건의
하마평-물망
할당-배정
행선지-갈 곳
환승하다-갈아타다
횡령하다-가로채다
오방떡-왕풀빵
미숀-변속기
독고다이-특공대
가교-임시다리
간식-샛밥, 새참
걸식아동-굶은 아이
굴삭기-굴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