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ortfolio/일반기사[2003~2007]

[sk]한잔합시다-기업 활동의 근거 제시자, SK 연구원들

"기다림과 노력 끝에 얻는 성공의 기쁨, 겪어 본 사람만 알 겁니다"

생각해 보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상품들의 ‘호적원부’를 떼어볼 수 있다면 그 아버지는 아마도 ‘연구원’이 아닐까. 아마도 ‘연구’ 없이 탄생하는 신제품은 없을 듯 하다. 세상의 중심에 서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는 맹수의 부리보다 먹다버린 사과 껍질이라도 새로운 ‘먹잇감’으로 재탄생시킬 수 있는 힘, 그것이 ‘과학자’들의 존재 이유인지도 모른다.
이번 호에서는 SK 그룹내 연구원들을 초빙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다소 고리타분하고 고지식한 면이 없지 않을까 염려했지만, 적어도 SK 연구원들은 그렇지 않음을 불과 10여분만에 느낄 수 있었으니, 그 분위기야 어떠했겠는가.

<참석자>
강신철(40) 부장 SK(주) 신기술사업개발팀 소속.
이중규(36) 과장 SKC 필름연구소 선임.
임순혁(34) 대리 SK케미컬 맑은물 연구소 주임.
김경민(32) 대리 SK텔레콤 어플리케이션개발팀.


# “안녕하세요? 제가 왜 연구원이 됐냐고요?”

사실 초면에 만난 사람들인지라, 서먹할 법도 한데 예상외로 금세 얘기가 풀렸다. 독일 정통 맥주를 사이에 두고 두 모금 지났을 때, 연구원들의 막혀 있을 법한 ‘지성(知性)’은 사라지고 열린 감성이 이야기꽃을 피웠다.

강부장 90년에 입사했으니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는데요. 사실 지금 전 연구원 직함을 내밀진 못해요. 하지만 연구했던 공적을 사업화하는 팀의 일원으로 있죠. 제가 했던 일은 주로 제품 개발 보다는 프로세스 개발에 중점을 둔 것이었어요. 개발된 기술을 해외 기업과 라이센싱을 맺고 트레이드하는 것이죠. 최근 GE사와의 라이센싱이 기억에 남네요.
김대리 제가 하는 일은 SK텔레콤 내의 무선인터넷 플랫폼 개발이라고 보시면 되요. 우리 연구팀 구성은 총 5개로 이뤄져 있죠. 제가 입사하게 된 동기는 좀 특이해요. 신입사원 부문에 지원해서 입사하게 된 게 아니거든요. 경력사원 부문에 지원했어요. 이때, 다들 눈이 휘둥그래진다. “어떻게 대학생이 경력사원에 지원할 수 있죠?”라고 묻는 얼굴 모양새다.
사실 실수였는데... 지원하고자 했던 부문이 경력사원 뿐이었어요. 경력사원 공란에 채울 것이 없어 난감했죠. 면접에서 그 질문이 나왔을 때 저는 당당히 “제가 현재 갖고 있는 기술이 경력입니다”라고 말했고 결국 합격했어요.
임대리 저는 99년 후반에 입사했어요. 사실 SK corp에 가고 싶었는데 선발되지 않았죠.(웃음) 화학공학을 전공했는데 고분자 공학은 정말 싫어했거든요. 그런데 참 불행하게도(?) 첫 부서 배치 받은 업무가 바로 고분자 분야였어요. 현재 ‘환경’ 문제가 많이 대두되고 있지만 우리 팀은 지난 2000년 연구소 존폐와 관련해 최대 위기를 맞았었죠. 지금은 명망있는 효자 연구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답니다.
이과장 98년 1월에 입사할 당시만 해도 대학생들 사이에 ‘면접’이란 것은 일종의 ‘알바’였어요. 면접가면 돈 주잖아요. 당구쳐서 밀어주기도 하고 그랬죠.(웃음) 그런데 유독 SK만 면접채용에서 탈락하더라고요. 오기가 생겼죠. ‘도전해 보자’ 생각해 결국 입사했고 지금은 ‘SK’가 제 인생을 바꿔 놓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대학원 재학시절 경제력 없는 제가 결혼도 하게 됐으니까요. 사실 필름연구소라 해서 뭐 특별한 것은 아니고요. PDP 소재나 PVC 대체 필름 소재 개발 등을 하는 곳이예요. 새우깡 봉지도 개발하고.(웃음) 아이템 하나로 연매출 수백억원을 올리고 있죠. 장영실상 수상한 것은 오래 기억남을 만 하고요. 다만, 안타까운 점은 공장 직원들도 있는데 우리 연구소 직원들만 계속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듯 해 미안할 따름이죠.

# “연구원이 되고 나니까...”

강부장 사실 전 연구원이 되고 싶진 않았어요. 예전엔 산학교류가 많았잖아요. 연구원 확보 차원에서요. 군 특례도 그렇고. 그것이 매우 좋았죠. 선배들이 ‘이왕 공부할 것이면 학교에서 하지 말고 회사 들어와서 해라’라고 조언한 것도 큰 몫을 했고요. 그런데 회사란 곳이 학교와 정말 다르다는 것을 알았죠. 지금이야 10여년전의 일이라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꽤 심각하게 고민했었어요. 기업은 역시 돈 되는 연구만 한다는 것이죠.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많이 속상하더라고요. 지금도 신입사원은 면접 때 항상 묻는 질문이라죠. “순수과학에 대한 탐구는 하지 않느냐”는. 연구 자체는 어려워도 지금 생각해보면 퍽 도움이 많이 됐죠.
김대리 전 조금 다른 경우예요. 명함에 연구원으로 직함을 달곤 있지만 사실 연구원이 아니거든요. 입사 초기 행정 업무를 담당할 직원의 미채용으로 인해 제가 대신 그 업무를 맡았는데, 시일이 지나면서 굳어져 버린거예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저도 연구원이 쉽게 접할 수 없는 행정 업무를 경험했다는 게 큰 자산이 되는 듯 싶어요. 연구만 하는 것이 아니어서 시야를 넓힐 수 있었으니까요. 다행히 지금은 연구원으로 있답니다.
임대리 연구원이 되고 나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기다림’이었어요. 실험이란 게 그렇거든요. ‘기다림’과의 싸움이죠. 실험 결과가 나오기만을 오랜 시간 기다렸다가 눈으로 확인하게 되면 그 기대감은 이루 말할 수 없죠. 그러나 한순간에 무너지는 허탈감도 동시에 맛볼 수 있으니 참 어렵기도 해요. 연구원들은 사실 해야할 일이 없을 때 가장 난감해요. 아이템을 찾아 시도했으나 실패를 맛봤을 때의 그 허탈감, 겪어보신 분만 아실 겁니다.
이과장 천안에 거주하는 제 동료가 해준 말인데요. 한 여름날 공장에서 정비를 하고 있는데 유치원 꼬마들이 앞으로 줄줄이 지나가더랍니다. 그런데 학부형 중의 한 분이 그 동료를 보면서 하시는 말씀이 ‘공부 못하면 너희들 저리 된다’라고 했다더군요. 허탈하죠뭐.(웃음)
그래도 힘든 건 기억이 별로 안나요. 지난 2001년 1월부터 PVC 제품을 법으로 규제했을 때 우리가 만든 신제품이 불티나게 팔려나갔던 기억은 여전히 힘을 솟게 만들죠. 당시에는 제품 배송을 직접 해주지 않아 회사 앞에 매일 거래처 차량들이 줄줄이 서 있었거든요. 출고대에 쌓인 제품이 ‘도열’해 있는 것을 볼 때면 하루의 피곤함이 싹 씻겨져 나가죠.
강부장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요. 공장을 반만 돌릴 때가 있었어요. 당시 그 분야 신제품이었는데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아 50%만 가동했었죠. 결국 100% 가까이 공장 가동률을 높이면서 매출은 급신장 했었죠. 사실 과거 공장에 근무하셨던 직원 분들은 잘 아실거예요. ‘직장’이 단순한 ‘직장’이 아니었다는 것을요. 자신의 생명과도 같았죠. 어떤 분은 ‘도자기 굽는 것과 마찬가지로 제품 생산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할 만큼 제품 생산을 예술로 승화시켜 인식하고 있는 분들도 꽤 됐어요. 처음 연구원들이 연구소에 들어가면 그 분들은 다소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데요. 그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기술로 뭔가 해보려 들지 말라’는 메시지였거든요. 그런 그들을 설득하는데 1년이 걸려서 결국 좋은 관계를 맺었죠. 일과 후에 포장마차에서 소주도 함께 하면서요. IMF 이후 그러한 것이 많이 사라졌지만.
이과장 맞습니다. 새벽녘 연구소를 나와 함께 마신 소주 한잔은 정말 기억에 남아요. 일을 떠나 인간적 교류가 정말 중요하거든요. 그 분들은 그러시죠. 기능과 기술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기능과 기수의 차이는 문서화 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갈린다고 그러더군요.
김대리 SK텔레콤은 현재 연구를 용역으로 많이 맡기고 있어요. 공장에서 직원들간의 소주 한잔은 많이 사라졌죠. 그런데 그것이 참 오묘해요. 기업 윤리 경영이란 말이 있잖아요. 소주 값을 누가 지불하느냐에 따라, 혹은 술값이 얼마가 나왔느냐에 따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잖아요. 점점 각박해져 가는 것 같아요.

맥주 두 세잔이 돌고 나니 이야기가 봇물 쏟아지듯 터졌다. 서로의 아픔을 알고 있기라도 한 듯, 서로의 보람을 함께 느끼기라도 한 듯 그들은 같이 어우러졌다. 딱딱한 업무를 마친 저녁시간인데도 직업은 속일 수 없었는지 전문용어를 섞어가며 대화를 나누는 그들의 어깨를 촉촉한 가을바람이 살랑대며 채워주고 있었다.

# “누구에게나 어려움은 있죠”

임대리 SK 연구소들간의 정보 공유가 이뤄졌으면 좋겠어요. 많은 부분은 아닐지라도 서로 비슷한 연구를 하고 있는 곳이라면 더더욱 그렇죠.
강부장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최근 잘 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SKC와 케미컬과 공동개발하고 있는 것이 있을 텐데요?
이과장 공동연구를 하려다가 포기했어요. 생상 단가가 서로 맞지 않아서죠. 그래도 저흰 케이컬에 매우 고마워하고 있어요. 마케팅 전략 차원에서 상당한 도움을 얻었거든요. 사실 그러한 것 말고 아쉬운 점은 다른 곳에 있는 듯해요. 장기적인 비전을 두고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이죠. 기업이다보니 당장 바로 앞의 이윤을 위해 뛰어야하는 것이 아쉬워요. 역시 연구소의 베이스는 순수학문으로 가야하는 데 말이죠.
강부장 신입사원들이 입사하면 처음 질문하는 것이 그러한 것이래요. ‘순수학문’에의 탐구.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화 되고 있기도 하죠. 순수과학의 퇴보요. 그러나 제 생각은 그래요. 사회인으로써 역량을 쌓는 것과 순수학문을 탐구하는 것은 좀 다른 의미로 방향을 설정해야 할 듯 싶어요. 사회인으로써 ‘매니저’ 역할을 수행하려면 순수학문에 너무 기대서는 곤란하거든요. 그렇다면 순수과학은 역시 국가연구기관의 몫으로 남는 것이죠. 기업은 연구를 위한 연구를 하지 않아요. 우리는 해외로 진출해 나가야 하거든요. 장영실상으로도 만족하면 안되죠.
이과장 연구원으로 부끄러웠던 경험도 있어요. 일본 출장 때 본 그들의 연구 실적때문인데요. 우리보다 최소 15년 이상은 앞서 걷고 있었죠. 베이스가 받쳐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대리 지속적인 투자는 사실 기업의 입장으로써 위험할 수 있죠.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조직이잖아요. 외국에 나가보면 알 수는 있습니다. 외국의 연구 자료 몇 장만 들춰보다 맨 뒷장에 가면 감탄사가 절로 나오잖아요.

# 에필로그
이야기 끄트머리에 국내 최대 기업이라 할 만한 S그룹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밀어붙이기 식 연구 과제 성과물은 역시 배울 만 하다면서도, 그들은 내심 SK의 잠재력에 대해 믿음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세상은 돈을 주는 만큼 일을 시킨다는 단순 명제를 인식하기 위해서 그들은 얼만큼 비이커에 물을 담았고, 알콜램프에 불을 지폈을까.
21세기 들어서면서 연구과제들이 모두 실용성 위주로 바뀌면서 새로운 서비스에 집중돼 ‘이윤추구’에 꽤 많은 노력을 들인다 해도 연구소는 연구소로 남아 있어야 한다. 인재를 바탕으로 한 순수과학이 살아있는 기업은 꺼지지 않는 등불로 경제 암흑 속에 있는 우리나라의 큰 버팀목이 될 것이므로.
글 원창연(자유기고가)

<공통질문>
1 연구원하면, 생각나는 첫 번째 이미지는?(연구원이 바라본 연구원으로써)
2 연구원이 되지 않았다면 무엇이 됐을까요?
3 자신이 만들어낸 것 중 가장 보람되거나 의미가 깊은 매개물이 있다면?(사연)
4 SK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5 자신을 동물에 비유한다면?
6 SK, 이럴 때 좀 아쉽다.
7 문득 겨울이 느껴질 때, 가장 먼저 해보고 싶은 것은?

# 강신철 부장
1 ‘쟁이’. 시작을 하면 끝을 보고야 마는 분야의 전문가. 머리좋은 곰.
2 군인. 대학 진로 결정 때 시력이 나빠져 일반 대학에 입학함.
3 PY-COAT : SK가 자체 개발한 COLCE 저감기술로 전세계 라이센싱되어 적용되고 있다. 현재 SK(주)가 마케팅하고 있다.
4 나에게 돈이라는 것을 알려준 거물.
5 독수리.
6 후배들이 가장 들어가고 싶어하던 회사였는데, 지금 2~3위로 그 순위가 밀려난 것을 어디선가 들었을 때 매우 아쉽다.
7 스키를 좋아하기 때문에 항상 겨울을 기다린다. 눈 내린 철길도 가보고 싶다.

# 김경민 대리
1 중간자.
2 영업사원.
3 긴급호출서비스. 타사에서 유사한 서비스를 먼저 출시한데다 내부적 연동 및 요금제 적용에 애를 먹었으나 출시되고 인기가 나름대로 있고 어린이들이나 노약자, 여성에게 큰 도움이 되는 것이 매우 큰 보람이다.
4 신비함.
5 원숭이.
6 농구나 야구 경기가 있을 때 구장 전체를 전세 내어 모든 객석을 SK맨으로 채워넣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7 방음이 잘된 자동차에 히터를 켜고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싶다. 한강시민공원에 주차해 야경을 보며 애인과 함께 멋진 밤을 보내고 싶다. 눈이 오면 더 좋겠다.

# 임순혁 대리
1 의사처럼 하얀 가운을 입고 비이커 하나 들고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
2 중학교나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재직하지 않았을까. 지금보다 더 나으려나?
3 처음 입사 후 맡게 된 일. 비록 성공은 못하였지만 밤늦게 같이 고생한 다른 분들과의 추억이 새삼 그리워진다.
4 M&A의 마법사. 요즘 그 능력이 비록 줄었지만 이제 큰 것 한 건해야할 때인데... ^^
5 예전부터 외견상 비치는 동물이 ‘낙타’였는데. 이런 것도 실리는 건가요?
6 SK는 타 그룹에 비해 소비자와 직접 연관성이 매우 적다. 그나마 텔레콤, 에스케이 주식회사등이 소비재와 근접해 있는데 SK란 장점이 비교적 없는 듯 하다. 통신비를 준다거나 기름값을 할인해 준다거나. 011을 사용하고 SK주유소에서 기름은 넣고 있지만 그룹 임직원에게 주어지는 혜택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이런 것 기대하면 안되나요? ^^
7 눈이 수북히 쌓은 작은 언덕에서 아이들, 아내와 같이 뒹굴며 내려오고 싶다. 온 몸이 눈에 얼어 붙을지라도 한 번 해보고 싶은 일인데 그런 곳을 찾기가 쉽지 않네요.

#이중규 과장
1 차가운 머리+뜨거운 가슴==>왕고집&비타협
2 군인 or 想社Man
3 시중의 PET병을 둘러싸고 있는 라벨. 일명 열수축필름을 국내 최초로 개발하여 인체 유해한 PVC를 환경친화적인 PET신소재로 완전 대체. 전 세계 환경문제 해결에 일조를 했다는 자부심.
4 情&淨
5 표범(킬로만자로의 ^o^)
6 결단력&추진력
7 낙엽을 태우고, 그 향기에 취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