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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folio/일반기사[2003~2007]

[좌담회]삼성그룹 디자이너들-항상 새로움 추구하는 ‘프리(Pre) 인텔리전스들’

항상 새로움 추구하는 ‘프리(Pre) 인텔리전스들’
가장 난감한 질문 … “왜 그렇게 만들었냐”


언제나 새로움을 추구하고 실현해야 하는 디자이너들의 ‘힘’은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만큼 무겁게 느껴진다. 그들은 자신의 눈을 통해 녹색을 적색으로 혹은, 검정색도 흰색으로 만들어 낼 만큼 항상 새로움을 갈구하는 ‘프리(Pre) 인텔리전스들’이다. ‘좋은 디자인은 곧 좋은 품질에서 나온다’는 논리가 성립될 만큼 일반인들의 인식이 바뀌고 있어 현재 디자인은 기업에게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핵심부서’다.
겨울이 물씬 느껴지는 깊은 가을 어느 날, 삼성중앙일보사옥에 삼성그룹 소속 다섯 명의 디자이너들이 모였다. 초반부터 분위기가 심상찮다. 디자이너라는 공통분모를 들고 모였으니 금세 친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 자기소개부터 시작됐다.

<참석자>
임현택 책임 : 삼성전자 디자인그룹(DVS) 소속
김나라 선임 : 제일모직 로가디스 디자인실 소속(패션 디자인)
김민지 대리 : 에버랜드 리조트디자인실(조형조각 디자인)
박현경 대리 : 삼성물산 플레오맥스팀(패키지 디자인)
박 정 차장 : 제일기획 광고 디자이너

# 장면 하나. “제가 하는 일요?”

임현택 책임 안녕하세요? 저부터 소개하죠. 저는 입사 이래 AV 파트에서 근무했어요. 즉 캠코더, 카메라, DVD, TV 등을 생각하시면 되고요. 지금은 홈시어터 부문을 전담하고 있죠.
박정 차장 광고디자인이라는 건 쉽게 말해 광고 만드는 일인데요. 요즘 삼성전자 해외 광고 부문을 맡고 있어요. 웹광고로는 옥션이나 한게임 광고에 참여하기도 하고요.
김나라 로가디스는 남성복 브랜드잖아요. 남성 슈트 부문 담당하고 있어요. 96년 입사 이래 남성복만 했어요. 옷을 만든다는 게 시즌을 앞서나가는 경우가 많아 재밌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고 그래요.
박현경 제가 하는 일은 삼성물산에서 얼마 전 새롭게 시작한 신규 사업 파트인데요. 컴퓨터 주변 기기 해외 수출품에 대한 모든 디자인 전담하고 있어요. 그래픽 총괄이라 할 수 있죠. 패키지 상품이 많아 디자인 호환에 매우 신경 쓰고 있어요.
김민지 저는 에버랜드 리조트 디자인실에 있어요. 쉽게 설명하면 에버랜드의 모든 조형물에 대한 디자인을 하신다고 보시면 되요.

# 장면 둘. “제가 만든 것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라면…….”

임현택 예전에 삼성전자에서 휴대용 DVD 제품을 출시한 적 있어요. 지금도 꾸준히 판매되고 있는 제품인데, 당시에 DVD 포터블 플레이어라는 것이 생소했지만 좋은 디자인 덕분인지(웃음) 많은 사람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죠. 지금은 노트북PC에 DVD 플레이어가 달려 나와 비교적 전보다 많이 찾진 않지만 제게는 많은 어려움과 즐거움을 함께 줬던 제품이라 기억에 많이 남아요.
박정 시장 반응이 매우 중요하거든요. 광고는 특히 시장 반응이 매우 빨라요. 즉각 신호가 오는 거죠. 지하철에서 제가 만든 광고를 본 사람들이 수군대는 걸 본 적 있어요. 애니콜 광고였는데 ‘괜찮더라’ ‘멋지다’라는 표현을 그들이 할 때면, 모든 고생이 눈 녹듯 사라지곤 하죠.
임현택 요즘 나온 그 ‘가로 본능’이라는 광고……. 꽤 잘 된 것 같아요.
박정 협업이거든요. 모든 분야가 그러할 테지만, 광고는 특히 개인플레이가 거의 없죠. 외국광고를 카피한다는 얘기도 있는데, 그건 옛날 얘기예요. 현재 모든 산업 분야가 통합화 되고 있어서 그런지, 어떤 제품이건 컨셉이 비슷하게 도출되거든요. 지금은 대놓고 외국 광고 카피를 차용할 순 없어요.
김나라 저는 의상학을 전공했어요. 옷에 대한 관심이 원래 많았죠. 대학 4학년 때 SS패션 인턴사원으로 입사한 것이 인연이 돼 여기까지 왔는데요. 그 때 남성복을 처음 접해 봤죠. 요즘은 길거리에서 조차 남자들의 슈트 버튼 하나하나까지 신경이 쓰여요. 특히 제가 만든 옷을 입고 가는 남자를 보면 정말 기분이 좋아져요. 마네킹이 입고 있는 옷과는 차원이 다른 느낌예요.
김민지 저는 휴일 때도 놀이공원에 가지 않아요.(웃음) 가족 나들이에도 동참하지 않죠. 그런데 6년 정도 하니깐 보람도 느껴지더라고요. 아이들이 해맑게 웃으면서 제가 만든 조형물 앞에서 사진을 찍거나 만져보고 좋아해주면 제 기분도 덩달아 좋아져요. 때때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 그런 아이들이 큰 위로가 되죠. 근무환경은 최고죠.
모두들 정말 근무환경은 최고겠네요. 놀이기구도 타나요? 점심시간 같은 때…….
김민지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점심 먹고 나서 타기도 해요. 매 절기마다 축제가 있어 자주 시간이 나진 않아요. 축제 기일에 맞추려면 여간 스트레스가 쌓이는 게 아녜요.
김나라 누구나 납기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잖아요. 김민지 대리님도 축제 기일에 맞추려면 엄청난 압박(?)을 받을텐데요. 우리도 마찬가지거든요. 디자이너들의 공통된 고충이 아닐까 하네요.
박현경 우리 회사는 글로벌 중심의 제품이 많아요. 플레오맥스(Pleomax)라는 것이, 한마디로 수출용 브랜드거든요. 그래서인지 해외 출장도 많죠. 해외에 나가서 한국 제품, 특히 제가 디자인한 제품을 볼 때면 정말 기분 좋아지죠. 다들 동감하시죠?
모두들 하하. 그럼요.
박현경 우리 팀은 현재 디자이너라는 직함을 달고 근무하는 사람이 제가 처음이예요. 그래서인지 디자이너들의 업무 특성에 대해 십분 이해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기도 하죠. 현재 2명 근무하고 있는데, 어려움이 없진 않죠. 스위치 조작하는 것처럼 쉽게 새로운 디자인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아주셨으면 해요.

# 장면 셋. “맞아요. 정말 힘든 작업들이죠.”

박정 광고 디자이너들은 정말 개성이 뚜렷하죠. 다들 색깔이 달라서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그런 데서 힘이 만들어 지는 것 같아요.
김나라 우리 같은 경우는 한 시즌도 모자라 두 시즌 정도 앞서 나가거든요. 미리 유행을 점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모르실 거예요. 지금이 겨울이잖아요. 우리는 이미 내년 여름옷까지 컨셉을 다 잡아놓고 내년 가을 옷을 준비하거든요. 이렇게 되면 여름옷에 대한 품평회가 필요한데, 주로 주위 분들의 도움을 많이 받아요. 수정 보완 작업은 대부분 그런 과정에서 이뤄지고요.
김민지 저 같은 경우는 근무처가 리조트다 보니 돌발 상황이 자주 발생해요. 봄가을로 소풍 오는 학생들의 기물 파손이 그런 것 중의 하나인데요. 아이들이 개장시간에 맞춰 우르르 달려 들어오면 겁나죠. 왜냐면, 짓궂은 아이들은 부서지나 안 부서지나 내기를 하기도 하고, 절대로 떼어지지 않는 용접한 조형물도 어떻게 떼어냈는지 신고되어 들어오거든요. 그 기물은 어떻게 떼어냈는지 아직도 궁금해요.(웃음)
임현택 그래도 에버랜드에서는 일단 출시된 조형물은 수정 보완이 불가능하잖아요?
김민지 그렇죠. 일단 설치되면 어떤 경우라도 재작업이 불가능하죠. 그래서 초기에 잘 만들어야 해요.
모두들 정말 좋은 근무환경이네요.(웃음)

# 상황 넷. “어느 순간에 딱! 하고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죠.”

임현택 아이디어는 주로 영화, 책, 광고를 보고 얻어요. 심기일전으로 여행도 많이 다니고요. 해외에 나가 견문도 넓히죠.
김나라 아이디어라는 게 그런 것 같아요. 어느 순간에 ‘딱’하고 떠오를 때가 있거든요.
임현택 어떤 면에서 디자이너는 게을러야 한다고 봐요. 에너지를 얻으려면 뭔가 ‘규제’나 ‘틀’에 얽매이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아웃풋(Out-Put)은 주로 ‘자유’라는 키워드를 통해 만들어진다고 봐요. 최소한의 예의 속의 ‘자유’를 추구해야 결실이 값지더라고요.
김나라 가끔 삼성의 ‘블루’ 컬러에 대해 이야기를 하시잖아요. 저도 ‘블루’를 꽤 좋아하는데요. 클라이언트께서 그럴 때가 있어요. ‘왜 블루로 했느냐’고 물을 때가 있죠. 참 난감하죠. 그 질문이 디자이너들에게는 ‘밥이 왜 좋냐’는 말과 비슷한 것이죠. 또 같은 회사라지만 경쟁 브랜드들이 있잖아요. 상호 보완적인 관계이긴 하지만 신상품 출시가 뒤따르면 서로 경쟁 심리가 발동해서 함부로 상대 디자인실에 출입도 못할 정도가 되죠. 미묘한 감정싸움인 거죠.
박현경 우리는 항상 보고서가 뒤따라요. 아이디어 헌팅은 주로 쇼핑과 책에서 하죠. 어떤 순간에 팍 떠오르는 그 기분, 잘 압니다.(웃음)
김민지 예산에 맞추다 보면 품질이 낮아지는 경우가 있어요. 아이디어를 제한할 순 없으니까 예산에 맞추려면 품질이 낮아지죠.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죠.

# 에필로그
약 2시간 남짓된 대화 속에서 얻은 것이 있다면 생각보다 퍽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근무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고충은 크리에이티브한 직종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법한 것들이어서 ‘자유’가 액면 그대로의 ‘자유’가 아님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 즉 프론티어가 되기 위한 첫 과제를 안은 사람들. 그들이 바로 디자이너들이 아닌가 한다. 지금은 ‘디자인이 곧 품질’이라는 명제가 득하는 시대이므로.

-삼성월드 2004년 겨울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