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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folio/일반기사[2003~2007]

[기획특집]②과수산업의 현주소-과수 농가들이여, 뭉쳐라!

과수 농가들이여, 뭉쳐라!

위기에서 성공으로 …
세계 시장 장악한 ‘제스프리 키위’ ‘발렌시아 감귤’ 본받을 만


현재 국내 과수산업은 향후 5년 밖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암담하다. 현재 과수 폐원 신청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상태이며, 이에 더불어 수입 과실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과연 국내 과수 산업이 살아날 가능성은 없는지, 살아날 방법은 무엇인지, 그 판단 기준마저 없는 상태에서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이에 본지는 대한민국 과수 산업의 현 주소를 살펴본 지난 호와는 달리, 이번 호에서는 대한민국 과수 산업이 살아나갈 가능성에 대해 타진해 보고자 한다.<편집자주>

■국내 과수 산업 발전 가능성=전국 최대 사과 주산지인 경북 영주에서는 노동력 대비 생산을 최대한 높인 ‘키 낮은 사과나무’를 보급하고 있다.
경북 영주시는 한 칠레 FTA에 따른 지역 과수농가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내년부터 사과재배지 80ha에 키 낮은 사과 과수원을 조성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영주시에는 기존 303ha에 80ha가 더해져 모두 383ha에 이르는 거대한 키 낮은 사과원이 만들어지게 된다. 이는 전체 사과재배지의 13%에 해당하는 면적으로 일반 사과나무에 비해 노동력이 72% 절감되고 생산비도 61% 줄어들어 큰 이익을 볼 것으로 기대된다.
영주시 관계자는 “10ha당 수확량은 2,300kg에서 3,500kg으로 52% 가량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지역 과수 농가의 소득 증대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예산을 더욱 늘려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와 별도로 지난해부터 전북 장수군 사과시험포에서는 색다른 체험 교실이 열려 화제다. 먹음직스러운 사과 농장 18ha를 주말을 전후해 도시인들에게 열어 수확체험행사를 열고 있는 것. 주 5일 근무제의 영향으로 올 초 사과나무를 분양받은 회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분양 회원들로 인해 주차 전쟁까지 치르는 실정이다.
장수군 사과시험포 유병욱 과수기술 담당은 “장수 인구가 3만 명을 밑도는 수준인데 지난해 장수사과 수확 행사에 1만여 명이 다녀갔다”며 도시인들의 여가 시간을 사과 농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 것에 만족해했다.
친구의 소개로 올해 처음 행사에 참가한 박 모 씨(서울. 36)는 “수확을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아이들에게 생생한 체험 현장이 될 것”이라고 참가 소감을 밝혔다.
이러한 노력은 소규모 자구책에 지나지 않는다. 몇몇의 일부만 살아남기 위한 노력일 수 있다. 대한민국의 과수 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보다 큰 마스터플랜이 필요하다.
전라북도는 향후 7년간 국비 등 1,100억원을 집중 투자해 사과 산업을 육성키로 했다. 농림부가 이미 한 칠레 FTA 대책사업으로 무주 진안 장수군, 남원시에 사과산업 육성 프로젝트를 선정, 2010년까지 국비 433억원 등 총 1천억 원이 넘는 사업비를 투입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이 곳 4개 시군에서 생산되는 사과는 전북의 약 68%를 차지하고 있는 상태인데다, 장수 무주 사과가 높은 품질과 브랜드 가치를 지니고 있어 결정된 정책이다.
이에 도는 장수군에 대형 유통센터를 짓기로 했다. 도는 ‘과수 거점산지유통센터’라는 이름의 유통센터를 전북 장수에 2006년말까지 총 176억원을 들여 조성키로 했다. 이 곳에서는 이 들 4개 시군에서 출하한 사과와 배, 포도, 복숭아 등을 선별, 포장하고 대형 백화점과 할인점 등에 납품하는 일을 맡게 된다.
전북도 관계자는 “한 칠레 FTA로 인해 발생할 과수산업의 타격을 최소한으로 막을 것”이라며 “공동선별과 공동출하 등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이 도입되면 경쟁력과 함께 농가수익 증대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충북 영동군 또한 농특산물 홍수 출하 예방을 위해 15억원을 들여 지역 내에 80개소 저온저장고와 간이집하장 등 산지유통시설을 건립할 계획이다. 군은 포도주생산업체인 W사와 영동대 벤처기업에 각 2억원을 들여 저온저장고를 건립하고, 영동읍 봉현리 등 35개 농가에 6억원을 들여 소규모 저온저장고를 짓기로 했다.
군 관계자는 “대다수 과수생산농가가 고품질 과일을 생산하고도 홍수 출하로 가격이 폭락하는 등 피해를 입고 있다”며 “산지유통시설이 출하시기 조절과 신선도 유지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러한 산지유통시설은 총체적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의 과수 산업을 이끌 중요한 ‘무기’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개별적인 브랜드 네이밍과 제품 출시는 이제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
대한민국에는 아직 통합브랜드가 없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뉴질랜드의 키위 브랜드인 ‘제스프리(Zespri)’같은 브랜드를 만들어 내려면 앞으로 십수 년은 더 걸릴 지도 모른다.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의 한 경매사는 “전남 나주의 세지 메론은 경매장에서 이미 그 경쟁력이 높아 금세 낙찰되곤 한다”며 “통합 브랜드만이 대한민국 과수가 세계 속에서 살아남을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말한 전남 나주 세지면의 메론은 공동출하 공동생산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수확시기는 농협에서 결정되는데, 아무리 메론 맛이 좋아도 개별적인 생산은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가격을 지키기 위함이다.
당도를 보고 출하시기를 결정하는 세지면 농협직원은 “겨울철 가격이 다소 불안할 시기에도 농협 직원의 한 마디로 모든 출하 시기는 결정된다”라면서 “모든 전권을 위임해 놓고 있기 때문에 항상 일정량이 시장에 출하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3일 간격으로 판매 가격에 대한 수익을 정산해 농민들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만들고 있는 것. 이에 대해 농민들 또한 반응이 좋다. “생산만 생각하게 만든다”고 말하는 농민이 하나 둘 늘어가기 시작했다.
세지 메론의 지난해 매출액은 107억원이었다. 이미 올해부터 일본에 연간 200억원에 달하는 메론을 수출하고 있다. 일본 바이어도 물량을 계속 늘리고 싶다고 한단다.
이를 보면 ‘단일 브랜드’가 얼마만큼 효용력이 뛰어난 지 간접적으로나마 짐작케 된다.
국내산 키위인 참다래도 마찬가지로 공동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매년 11월부터 4월까지 ‘반년 장사’를 위해 참다래유통사업단은 노력하고 있다. 이미 지난해 150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70% 이상의 시장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직판으로써 농민들에게 희망을 안겨주고 있는 것.
‘참다래 유통사업단’은 지난 91년 2억원의 자본금으로 시작된 조합이다. 처음에 180명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600명이 넘는 회원을 거느리게 됐다.
해남군 화산면에 위치한 이 사업단은 연간 2천 톤을 선과할 수 있는 선과장을 설치해 놓고 있다. 전산화 시스템을 갖춰 크기와 무게, 등급을 자동으로 매겨 포장된다.
참다래 유통사업단 정운천 회장은 “초창기 분열도 많았고 가격 결정에 어려움도 매우 컸다”면서 “농민들의 가격에 대한 의심을 설득하고 확인하는 데 긴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뭉쳐야 산다”라며 “이들을 조직화 하는 데 14년이 걸렸다”고 그 동안의 어려움을 간접적으로 나타냈다.
그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칠레 FTA가 발효돼도 대한민국 과수산업은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어느 농민도 한국의 과수 산업이 결코 세계적으로 뒤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 과수 선진국들 현황=미국산 오렌지의 융단폭격으로 인해 한국의 제주 감귤은 처참한 상태에 이르고 있다. 지난 96년 2만 톤이던 수입 오렌지 물량은 지난 2002년 10만 톤으로 늘어났다. 이에 반해 감귤 매출액은 6천억 원에서 3천억 원으로 곤두박질 쳤다.
이에 대해 제주대학교 강지용 교수는 “농민들의 자구노력이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제주감귤협동조합장 또한 “선과장의 시스템 낙후도 감귤 몰락 원인 중 하나일 것”이라고 말했다.
왜 이렇게 되었나. 한 때 ‘富’의 상징이기도 했던 제주 감귤 몰락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과수 선진국의 제조 및 유통, 판매 시스템을 살펴보면 대략 그 해답이 나온다.
유럽 최대 감귤 왕국이라는 스페인의 ‘발렌시아’ 지방의 감귤 브랜드 ‘부켓(Bouquet)’. 세계 60여 개국에 감귤을 수출하고 있으며 연간 500만 톤을 생산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은 2,500억원. 하루 선과장의 처리 물량 수가 1천 건을 넘어서 제주도의 그것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선과장 종사자만 2,400명에 이른다.
스페인의 감귤 재배면적이 제주도 생산량의 10배이면서도 선과장수는 제주도의 1/4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우리가 생각해 볼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 만큼 전문화된 조직적 제조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는 얘기다.
스페인의 유명 감귤 제조회사인 안네콥 관계자는 “판매 뿐 아니라 무역 및 원가 절감 등을 통해 최대한 농민들에게 혜택을 돌아가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한다. 안네콥은 농가 25만 가구를 대상으로 협동조합만 10여개를 거느린 스페인 최대 감귤 협동 조합이다. 농민과 안네콥간의 ‘신뢰’는 최고의 덕목이다. 서로 믿고 만들어가는 회사다. 결국 농민들이 힘을 합쳐 자신들만의 회사를 만들어 낸 성과라 할 만 하다.
뉴질랜드의 최대 키위 브랜드인 ‘제스프리(Zespri)’도 비슷하다. 뉴질랜드는 인구가 적어(400만 명) 농사 규모가 거대하지 못하다. 그런데도 세계 최대의 키위 브랜드를 만들어 낸 저력은 어디에 있을까.
뉴질랜드 농민들은 한결 같이 “우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키위를 만든다는 자부심을 갖고 농사에 임하고 있다”고 말한다.
세계 60여 개국에 매년 7300억원의 매출액을 올리는 제스프리. 유럽 시장의 60%와 일본시장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뉴질랜드 전체 농산물 생산액 중 키위가 차지하는 비중이 31%라고 하니, 어마어마한 규모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제스프리도 처음부터 거대한 기업을 유지했던 것은 아니다. 탄생 비화를 살펴보면, 우리와 비슷한 처지에서 시작됐음을 알 수 있다. 지난 80년대 후반, 정부의 과수 세율 감면 정책으로 인해 뉴질랜드 과수 산업은 처참해지기 시작했다. 농민들의 부채가 증가해 자살 또한 늘어나기도 했다.
이를 보다 못한 농민들은 스스로 뭉치기 시작했다. 지난 87년 농민 3천여 명이 모여 만든 회사가 바로 제스프리의 전신 ‘마케팅보드’란 회사다. 이 회사의 첫 번째 목표는 수출 단일화 창구의 설치였다. 이합집산이었던 그 동안의 키위 브랜드를 모두 묶어 단일 브랜드를 만들었다. 그것이 ‘제스프리’다. 단일 브랜드로 성공 열쇠를 거머쥔 셈이다.
이러한 세계 최대 키위 브랜드인 제스프리가 최근 한국에 상륙하며 참다래를 위협하고 있다. 그동안 참다래는 매년 11월~4월간 제스프리가 시판되지 않는 시기에 출시해 많은 단골 고객을 만들어 놓은 상태다. 이런 가운데 제스프리가 제주도에 시험 생산장을 만들고 한국의 겨울 시즌을 겨냥해 키위 출시를 서두르고 있다는 소식이다.
제스프리 관계자는 “매년 2회 생산을 위해 제주도에 골드 키위를 생산할 계획”이라며 “참다래와의 한판 싸움이 시작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참다래 유통사업단은 매년 5월~10월간 참다래가 유통되지 않는 시기에 제스프리를 판매해 온 것이 사실이다. 대형 유통매장의 판매대에서 11월~4월간 참다래를 판매하기 위해 매년 5월~10월간 경쟁사 키위를 어쩔 수 없이 판매해 왔던 것. 이제 뉴질랜드산 골드키위가 참다래 판매 시기에도 국내에 출시된다면 한판 승부는 피할 수 없게 됐다. 품질로 승부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가 된 것이다. 발렌시아 과실연구원에서는 해마다 전 세계 400여종에 달하는 감귤을 연구한다고 한다. 곱씹어볼 만 하다.

■ 살아날 방법은 없는가=어느 국가에서건 위기는 없을 수 없다. 그 위기를 어떻게 헤쳐 나가느냐에 따라 흥망성쇠가 결정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살아날 방법은 열려 있다. 그것을 찾지 못할 뿐이다.
스페인의 발렌시아 감귤과 뉴질랜드의 제스프리 사례만 보더라고 그렇다. 그들도 위기가 있었으나, 농민들의 합심으로 인해 위기를 극복해 냈으며 지금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과실 브랜드를 보유케 됐다.
품질은 칠레 산에 뒤지고 가격은 중국산에 뒤진다고 하더라도 대한민국 과실은 전 세계적으로 크게 뒤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뭉쳐야 산다. 농민들의 합심으로 인해 세계 개방의 벽을 넘어야 한다. 통합 브랜드를 만들고 공동생산 공동출하를 통해 매출액을 극대화해야 한다.
한국인들의 과실 소비량이 늘어나지 않는 것도 문제일 수 있다. 현재 1인당 과실 소비량은 73kg으로 지난 2002년 70kg보다 늘어나긴 했다. 그러나 스페인 123kg, 이태리 140kg, 미국 113kg 등에 비춰보면 턱없이 낮은 수치다. 물론 ‘디저트’ 문화가 애초에 없었기 때문일 수 있으나 국민들의 국산 과실 소비는 이 난국을 헤쳐 나가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과제다.
원예연구소의 강상조 과수과장은 “남반구에서는 동양배를 재배하기 어렵다고 하고 칠레와 대만산 복숭아 국내 소비는 아직 미미하다”며 “할 만한 싸움이다”라고 현 과수 산업의 위기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현재 과수 아이템이 거의 없는 상태”라며 “새로운 아이템 개발 등 생산성 높은 연구들을 지방 자치단체 소속 연구기관들이 해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듯 과수 산업의 문제는 끝이 없어 보인다. 농업 분야에 있어 과수만 그러하겠는가만, 생계형 농민들에게는 큰 위기가 아닐 수 없다.
과수 선진국들의 위기 극복 방안을 간접적으로나마 답습해 대한민국 과수 위기를 헤쳐 나가야 하지 않을까 한다. 벤치마킹도 좋고 모방도 좋다. 과정이 있으면 결과가 있는 법이다. 대한민국 현실에 맞게 방법을 고쳐 적용하면 될 것이다.
개별적인 브랜드의 난립과 소규모 농작은 이제 경쟁력이 없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농가의 수는 점차 줄어들 것이고 통합 브랜드만이 경쟁력을 살려 살아남게 될 것이다. 하루 빨리 움직여야 한다. 가만히 앉아 있을 때가 아니다.


-디지털농경21 2004년 인터넷판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