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만 늘어나는 데 무슨 과수 농사냐”
정부 과수 폐원 신청 봇물 … 현재 신청자 7배 넘어
현재 대한민국 과수 산업은 총체적 위기에 빠져 있다. 비단 농산업 부문에서 과수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지난 5월부터 정부가 과수 폐업 신청을 받고 있는데, 신청자가 너무 많이 몰려 정부는 고민에 빠졌다. 한칠레 FTA의 후폭풍이라고는 하지만 실상을 알고 보면 너무나 참혹해 말을 할 수 없는 형편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과장되긴 하지만 향후 5년 내 국내산 과일은 맛볼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갈 길이 바빠진 정부는 올 FTA 지원기금을 408억원 책정해 놓고 있지만 실효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바로 앞의 지원금을 위해 평생 일궈온 땅을 팔아넘기는 농민이 있는가 하면, 멀쩡히 자라고 있는 포도밭을 뒤엎는 일도 생겼다.
대한민국의 과수는 과연 어디로 가는가. 이대로 좋은가. 몇 차례에 걸쳐 집중 보도한다.<편집자주>
지난 9월 3일 농림부의 자료에 따르면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발효에 따라 이들 3개 품목 농가들의 폐업 신청 규모가 이 날 현재 1,8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올해 정부의 폐업지원계획인 234억원에 비해 무려 7배나 많은 수치로 이 중 복숭아가 전체 신청 규모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이렇듯 신청자가 많다보니 선정 과정도 난항을 겪고 있다. 농림부는 지난 7월말 시군 지자체 담당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과수폐원지원사업에 대한 교육을 통해 과원폐업지원 대상자를 선정할 때 고령, 조건불리지역, 고령농 등 경쟁력이 떨어지는 과원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다.
그러나 신청자가 워낙 많아 최종 선정과정에서 혼란이 야기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시설포도를 폐원 신청한 충북 청주의 조병로씨는 “포도는 하우스 재배를 해야 질 좋은 상품을 만들 수 있는데 현재 시설 하자 자금이 없어 포기한다”고 말했다. 지난겨울 폭설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입었는데 지자체에서 6개월이 지나도 감감 무소식이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했던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러한 자연재해로 인해 폐원 신청을 하는 것은 오히려 ‘양반’ 축에 속한다. 멀쩡한 과수원을 갈아엎는 일도 있다.
경북 안동시 인근에서 포도농사를 짓는 이 모 씨(60)는 올 들어 칠레산 포도의 본격적 국내 진출로 인해 포도 입찰가가 지난해 보다 2/3 수준에 머무르자 수십 년간 일궈온 포도밭을 갈아엎었다. 이처럼 제반 여건이 더 나빠질 수도 없는 최악의 상황인데 농약과 종자, 비료, 비닐하우스 등 농자재 값은 매년 치솟고 있는 것도 폐원 신청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런 식으로 살다가는 해마다 빚만 지고 ‘수익’은 없는 생산이 반복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 과수생산유지의 문제점=일반적으로 경제원칙에 맞으려면 지출과 수입이 적절히 맞아 떨어져야 손익분기점이 발생한다. 지출이 수입보다 많으면 초등학생도 익히고 있는 이른바 ‘적자 인생’이 시작되는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 과수 농가들의 대부분은 이러한 적자 노선을 걷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추나 마늘 농사를 짓다가 기본 생활조차 안돼 축산업에 뛰어든 경북 의성군 읍동의 권 모 씨는 기르던 소값이 떨어져 1억5천만 원의 빚을 지게 됐다. 새로 일을 벌이기만 하면 빚만 생겨 모두 일할 의욕을 잃고 있다고 전한다.
대한민국 대표적 과실이라 할 수 있는 감귤도 최근 경쟁력이 급강하 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김경필 연구위원은 “올해 관세율 144%를 기준으로 했을 때 중국산 감귤의 국내 판매가격은 kg당 959원으로 중국산에 비해 제주산이 최고 23% 비싸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수입관세를 30% 감축할 경우에는 중국산에 비해 제주산 가격이 37%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혀 제주산 감귤은 이제 가격 경쟁력이 없어질 듯 하다.
김위원은 이러한 가격 경쟁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간벌을 통한 생산성 향상과 새로운 재배기술 도입으로 품질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주문했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과수 농가들은 너도나도 폐원 신청을 해 지원금이라도 받아보자는 심산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폐원 지원 정책에 대해 달가운 목소리는 그다지 많지 않아 보인다.
경북 경산에서 복숭아 과수원을 재배하고 있는 이씨는 최근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근본적으로 과수 농가 구조조정 정책은 잘못됐다”고 운을 뗀 뒤, “정부에서는 큰 그림을 농업을 보호하고 보전하는 쪽으로 맞춰야 하는데 지금 정부는 경쟁력 있는 농업만 자꾸 부각시키려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는 이어 “우리 농업이 경쟁력이 없어 이 지경까지 온 것이 아니다”라면서 “농사 기술은 계속 발전해 왔으며 품질도 많이 좋아졌는데 가격이 계속 헐값으로 남아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씨는 또 “이는 근본적으로 수요와 공급의 원칙이 무너졌다는 의미이며 수입 농산물이 쏟아져 들어오기 때문이다”라며 “외국산은 기업농이 생산하는 대규모 농산물들이라 국내 영세 농민들은 당해낼 재간이 없다”고 한탄했다.
이러한 사태에 대해 농촌경제연구원 임정빈 박사는 이러한 폐원 신청의 원인에 대해 “첫째 국내 과수 생산자들의 미래 농업 생산에 대한 불확실성에 기인한다”고 평가한 뒤 “과수 생산자 뿐 아니라 우리 농업 생산자들이 주로 고령화 돼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무역 자율화라는 것은 외국산 농산물과 경쟁을 해야 하고 많은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정부가 때마다 내놓는 정책들에 대한 신뢰도 하락도 이러한 폐원 신청에 한몫한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폐원 신청이 봇물을 이루면서 ‘과일값 급등’이라는 난제가 숨어있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미 한칠레 FTA로 인해 국내산보다 저렴한 농산물이 다량 유입되고 있는 상황이다. 소비자들이야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어 좋을지 모르나 직접적인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들의 몫으로 남는다.
오는 2008년까지 계속 될 폐원과수농가 지원 사업이 언제 중단될지 모른다. 이러한 불안심리와 과일값 폭등으로 인해 정부의 정책이 또 바뀔지 모른다.
도 관계자는 “칠레와 생산시기가 겹치는 시설포도는 어쩔 수 없지만 복숭아는 보관 문제 때문에 수입이 어려운 만큼 한꺼번에 과수원이 문을 닫으면 향후 복숭아 값이 폭등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그 밖의 문제들= 현재 과수 폐원 신청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일손부족과 때깔에 대한 욕심으로 농약을 무차별적으로 살포하는 일도 많아지고 있다.
3대째 배 과수원을 운영하고 있다는 경기 화성군 H농장의 이씨는 “이정도 약을 쓰지 않으면 과일 농사하기 어렵다”며 “우리나라 땅과 품종이 그 만큼 약에 익숙해 져 있다”고 털어놨다.
소비자들에게는 이른바 ‘농약배’를 팔고 있는 셈이다.
“90년대 초반에는 ‘호리마트’가 만병통치약으로 통했지요. 아직도 상당수 농장이 용법 용량은 거의 신경 쓰지 않고 뿌려대고 있을 걸요. 농약을 많이 뿌리면 뿌릴수록 배알이 커지고 색깔이 좋아지기 때문이죠.”
그가 친환경농법을 시작하기 전에는 응애 퇴치를 위해 고독성 농약인 오메톤 액제를 기준치의 1.25배나 뿌렸다. 그는 “아직도 배 재배 농가를 비롯한 많은 곳에서 사과에만 쓰도록 돼 있는 오메톤 액제를 쓰고 있다”며 “그것도 눈대중으로 농약병 뚜껑에 농약을 부어 물에 풀어쓰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이를 위해 연간 3~4회 영농교육을 실시하기도 하지만 실제 참석률이 저조하다고 한다. 농민들이 농약에 대한 문제의식이 매우 적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의 살충제 제초제 살균제 생장조정제 등 농약 사용량은 세계적으로 매우 높은 편이다. 지난해 ha당 농약 사용량은 13.3kg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는 고령화된 농촌 사회 현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노동력이 떨어져 제초제 사용량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산지에서 농약 사용 관리가 미흡해 농작물에서는 여전히 잔류 농약이 끊임없이 검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농산물품질관리원이 지난해 시장에 출하되기 이전의 주요 농산물을 대상으로 잔류 농약을 정밀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깻잎은 무려 12%에서 허용기준치 이상의 살균제 카벤다짐이 검출됐다. 시금치, 상추, 풋고추의 잔류농약 초과 율도 3.1~5.8%에 이르렀다. 이들에게서 가장 많이 나온 것은 논란 많은 살충제 클로로피리포스였다.
또한 식약청이 지난해 전국 대도시 시장과 슈퍼마켓에서 팔리는 채소와 과일을 조사한 결과 600건 가운데 101건에서 농약이 검출된 바 있다. 특히 포도, 복숭아, 고추는 조사 대상의 절반에 가깝게 농약이 나왔다. 그러나 식약청 관계자는 “잔류허용기준을 초과한 비율이 1.2%에 그쳐 안전에는 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어쨌든 농약이 묻어있는 채소나 과일이 인체에 무해하다는 정보는 아직 없다. 농약은 농약이다. 세계보건기구는 최근 “미량의 농약이라도 장기간 섭취할 때 건강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불확실하다”고 평가한 바 있다. 영국 식품표준국도 “식품 속 농약잔류량을 최소화하는 것이 목표”라고 발표했다.
미량이라도 잔류 농약은 그다지 인체에 무해하다는 판정을 내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잔류 농약에 대해 코오프 등 영구 대형 슈퍼마켓들은 자체적으로 카벤다짐 등 20종의 잔류농약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공급자에게 해당 농약을 사용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는 중이다.
-디지털농경21 2004년 인터넷판 게재-
정부 과수 폐원 신청 봇물 … 현재 신청자 7배 넘어
현재 대한민국 과수 산업은 총체적 위기에 빠져 있다. 비단 농산업 부문에서 과수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지난 5월부터 정부가 과수 폐업 신청을 받고 있는데, 신청자가 너무 많이 몰려 정부는 고민에 빠졌다. 한칠레 FTA의 후폭풍이라고는 하지만 실상을 알고 보면 너무나 참혹해 말을 할 수 없는 형편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과장되긴 하지만 향후 5년 내 국내산 과일은 맛볼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갈 길이 바빠진 정부는 올 FTA 지원기금을 408억원 책정해 놓고 있지만 실효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바로 앞의 지원금을 위해 평생 일궈온 땅을 팔아넘기는 농민이 있는가 하면, 멀쩡히 자라고 있는 포도밭을 뒤엎는 일도 생겼다.
대한민국의 과수는 과연 어디로 가는가. 이대로 좋은가. 몇 차례에 걸쳐 집중 보도한다.<편집자주>
지난 9월 3일 농림부의 자료에 따르면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발효에 따라 이들 3개 품목 농가들의 폐업 신청 규모가 이 날 현재 1,8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올해 정부의 폐업지원계획인 234억원에 비해 무려 7배나 많은 수치로 이 중 복숭아가 전체 신청 규모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이렇듯 신청자가 많다보니 선정 과정도 난항을 겪고 있다. 농림부는 지난 7월말 시군 지자체 담당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과수폐원지원사업에 대한 교육을 통해 과원폐업지원 대상자를 선정할 때 고령, 조건불리지역, 고령농 등 경쟁력이 떨어지는 과원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다.
그러나 신청자가 워낙 많아 최종 선정과정에서 혼란이 야기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시설포도를 폐원 신청한 충북 청주의 조병로씨는 “포도는 하우스 재배를 해야 질 좋은 상품을 만들 수 있는데 현재 시설 하자 자금이 없어 포기한다”고 말했다. 지난겨울 폭설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입었는데 지자체에서 6개월이 지나도 감감 무소식이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했던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러한 자연재해로 인해 폐원 신청을 하는 것은 오히려 ‘양반’ 축에 속한다. 멀쩡한 과수원을 갈아엎는 일도 있다.
경북 안동시 인근에서 포도농사를 짓는 이 모 씨(60)는 올 들어 칠레산 포도의 본격적 국내 진출로 인해 포도 입찰가가 지난해 보다 2/3 수준에 머무르자 수십 년간 일궈온 포도밭을 갈아엎었다. 이처럼 제반 여건이 더 나빠질 수도 없는 최악의 상황인데 농약과 종자, 비료, 비닐하우스 등 농자재 값은 매년 치솟고 있는 것도 폐원 신청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런 식으로 살다가는 해마다 빚만 지고 ‘수익’은 없는 생산이 반복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 과수생산유지의 문제점=일반적으로 경제원칙에 맞으려면 지출과 수입이 적절히 맞아 떨어져야 손익분기점이 발생한다. 지출이 수입보다 많으면 초등학생도 익히고 있는 이른바 ‘적자 인생’이 시작되는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 과수 농가들의 대부분은 이러한 적자 노선을 걷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추나 마늘 농사를 짓다가 기본 생활조차 안돼 축산업에 뛰어든 경북 의성군 읍동의 권 모 씨는 기르던 소값이 떨어져 1억5천만 원의 빚을 지게 됐다. 새로 일을 벌이기만 하면 빚만 생겨 모두 일할 의욕을 잃고 있다고 전한다.
대한민국 대표적 과실이라 할 수 있는 감귤도 최근 경쟁력이 급강하 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김경필 연구위원은 “올해 관세율 144%를 기준으로 했을 때 중국산 감귤의 국내 판매가격은 kg당 959원으로 중국산에 비해 제주산이 최고 23% 비싸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수입관세를 30% 감축할 경우에는 중국산에 비해 제주산 가격이 37%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혀 제주산 감귤은 이제 가격 경쟁력이 없어질 듯 하다.
김위원은 이러한 가격 경쟁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간벌을 통한 생산성 향상과 새로운 재배기술 도입으로 품질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주문했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과수 농가들은 너도나도 폐원 신청을 해 지원금이라도 받아보자는 심산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폐원 지원 정책에 대해 달가운 목소리는 그다지 많지 않아 보인다.
경북 경산에서 복숭아 과수원을 재배하고 있는 이씨는 최근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근본적으로 과수 농가 구조조정 정책은 잘못됐다”고 운을 뗀 뒤, “정부에서는 큰 그림을 농업을 보호하고 보전하는 쪽으로 맞춰야 하는데 지금 정부는 경쟁력 있는 농업만 자꾸 부각시키려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는 이어 “우리 농업이 경쟁력이 없어 이 지경까지 온 것이 아니다”라면서 “농사 기술은 계속 발전해 왔으며 품질도 많이 좋아졌는데 가격이 계속 헐값으로 남아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씨는 또 “이는 근본적으로 수요와 공급의 원칙이 무너졌다는 의미이며 수입 농산물이 쏟아져 들어오기 때문이다”라며 “외국산은 기업농이 생산하는 대규모 농산물들이라 국내 영세 농민들은 당해낼 재간이 없다”고 한탄했다.
이러한 사태에 대해 농촌경제연구원 임정빈 박사는 이러한 폐원 신청의 원인에 대해 “첫째 국내 과수 생산자들의 미래 농업 생산에 대한 불확실성에 기인한다”고 평가한 뒤 “과수 생산자 뿐 아니라 우리 농업 생산자들이 주로 고령화 돼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무역 자율화라는 것은 외국산 농산물과 경쟁을 해야 하고 많은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정부가 때마다 내놓는 정책들에 대한 신뢰도 하락도 이러한 폐원 신청에 한몫한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폐원 신청이 봇물을 이루면서 ‘과일값 급등’이라는 난제가 숨어있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미 한칠레 FTA로 인해 국내산보다 저렴한 농산물이 다량 유입되고 있는 상황이다. 소비자들이야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어 좋을지 모르나 직접적인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들의 몫으로 남는다.
오는 2008년까지 계속 될 폐원과수농가 지원 사업이 언제 중단될지 모른다. 이러한 불안심리와 과일값 폭등으로 인해 정부의 정책이 또 바뀔지 모른다.
도 관계자는 “칠레와 생산시기가 겹치는 시설포도는 어쩔 수 없지만 복숭아는 보관 문제 때문에 수입이 어려운 만큼 한꺼번에 과수원이 문을 닫으면 향후 복숭아 값이 폭등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그 밖의 문제들= 현재 과수 폐원 신청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일손부족과 때깔에 대한 욕심으로 농약을 무차별적으로 살포하는 일도 많아지고 있다.
3대째 배 과수원을 운영하고 있다는 경기 화성군 H농장의 이씨는 “이정도 약을 쓰지 않으면 과일 농사하기 어렵다”며 “우리나라 땅과 품종이 그 만큼 약에 익숙해 져 있다”고 털어놨다.
소비자들에게는 이른바 ‘농약배’를 팔고 있는 셈이다.
“90년대 초반에는 ‘호리마트’가 만병통치약으로 통했지요. 아직도 상당수 농장이 용법 용량은 거의 신경 쓰지 않고 뿌려대고 있을 걸요. 농약을 많이 뿌리면 뿌릴수록 배알이 커지고 색깔이 좋아지기 때문이죠.”
그가 친환경농법을 시작하기 전에는 응애 퇴치를 위해 고독성 농약인 오메톤 액제를 기준치의 1.25배나 뿌렸다. 그는 “아직도 배 재배 농가를 비롯한 많은 곳에서 사과에만 쓰도록 돼 있는 오메톤 액제를 쓰고 있다”며 “그것도 눈대중으로 농약병 뚜껑에 농약을 부어 물에 풀어쓰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이를 위해 연간 3~4회 영농교육을 실시하기도 하지만 실제 참석률이 저조하다고 한다. 농민들이 농약에 대한 문제의식이 매우 적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의 살충제 제초제 살균제 생장조정제 등 농약 사용량은 세계적으로 매우 높은 편이다. 지난해 ha당 농약 사용량은 13.3kg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는 고령화된 농촌 사회 현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노동력이 떨어져 제초제 사용량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산지에서 농약 사용 관리가 미흡해 농작물에서는 여전히 잔류 농약이 끊임없이 검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농산물품질관리원이 지난해 시장에 출하되기 이전의 주요 농산물을 대상으로 잔류 농약을 정밀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깻잎은 무려 12%에서 허용기준치 이상의 살균제 카벤다짐이 검출됐다. 시금치, 상추, 풋고추의 잔류농약 초과 율도 3.1~5.8%에 이르렀다. 이들에게서 가장 많이 나온 것은 논란 많은 살충제 클로로피리포스였다.
또한 식약청이 지난해 전국 대도시 시장과 슈퍼마켓에서 팔리는 채소와 과일을 조사한 결과 600건 가운데 101건에서 농약이 검출된 바 있다. 특히 포도, 복숭아, 고추는 조사 대상의 절반에 가깝게 농약이 나왔다. 그러나 식약청 관계자는 “잔류허용기준을 초과한 비율이 1.2%에 그쳐 안전에는 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어쨌든 농약이 묻어있는 채소나 과일이 인체에 무해하다는 정보는 아직 없다. 농약은 농약이다. 세계보건기구는 최근 “미량의 농약이라도 장기간 섭취할 때 건강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불확실하다”고 평가한 바 있다. 영국 식품표준국도 “식품 속 농약잔류량을 최소화하는 것이 목표”라고 발표했다.
미량이라도 잔류 농약은 그다지 인체에 무해하다는 판정을 내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잔류 농약에 대해 코오프 등 영구 대형 슈퍼마켓들은 자체적으로 카벤다짐 등 20종의 잔류농약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공급자에게 해당 농약을 사용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는 중이다.
-디지털농경21 2004년 인터넷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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