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품질 과실 생산만이 살 길입니다”
신품종으로 일본 대만산과 경쟁 붙어 “희망 있다”
“불 꺼진 연구소는 의미 없다” … 밤 10시 이전 퇴근 없어
그는 바쁘다. 지난 16년간 직장 생활을 하면서 밤 10시 이전에 퇴근해 본 일이 없다. 지난 1월 과수재배과와 과수육종과가 통합한 이래, 그의 발놀림은 더 빨라졌다. 매일 결제보고서가 수십 개에 이르고, 연구원들의 과제물을 일일이 확인해 줘야 하는 업무까지 치자면 하루가 모자라다. 거기에 과수와 관련된 각종 세미나에 워크숍 등 모두 참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필히 뒤편에서 “밥 좀 먹고 사나 보다”란 소리가 들려나온다.
농촌진흥청 원예연구소 과수과 강상조(52) 과장에게 묻고 싶은 말이 많았다. 현재 대한민국 과수산업은 총체적 위기 상태다. 산소호흡기가 없으면 금세 숨이 멎을 듯한 환자다. 한국과 칠레간의 FTA 체결로 인해 최근 과수업 폐업 신청이 봇물을 이루고 있지만, 원천적 문제는 거기에 있지 않다.
강과장은 현재 과수 폐업 사태에 대해 말문을 열면서 “나쁜 징조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는 소규모 농작에서 대규모로 전환될 시기”라면서 “농민들이 FTA다 DDA다 뭐다 해서 지레 겁을 먹는 게 아닌 지 그게 걱정된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의 말대로라면 현재 모든 과수 문제의 해결은 ‘규모화된 고품질 과수 생산’에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와 결부된 문제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난 8월말 농림부가 발간한 ‘농림업 주요통계’를 보면 2003년 말 현재 농가 수는 195만 가구로 10년 전인 93년 259만 가구보다 24.8%나 감소했다. 특히 농민의 연령이 문제인데, 40세 이상의 비중이 78.6%에서 91%로 크게 늘어났다고 발표했다.
농촌에서 젊은이가 사라진 것이 어제 오늘 일이겠는 가마는, 농민들의 평균 연령은 이미 고령화 시대로 진입한 지 오래다.
강 과장 또한 이 문제에 대해 “정부에서 10년 후를 내다보며 과수 지원을 약속했는데 사실 이러한 정책이 그들에게 크게 와 닿을지 의문”이라면서 “당장 바로 앞의 이익만을 쫓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일지 모른다”고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고령화된 농민들을 상대로 10년 후를 내다보는 것 자체가 아마 어불성설일지 모른다. 현재 농민들은 과수 폐업 지원금에 대해 더 민감할 수밖에 없으며, 한국 칠레 FTA로 인해 상당한 피해를 보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일교차가 20도 안팎으로 과실을 재배하기에 천혜의 자연 환경을 갖고 있는 칠레와 값싼 과실을 매년 수천 톤씩 수출하는 중국을 상대하기에 대한민국은 너무나 힘겹다.
과연 해결 방안은 없을까. 한국의 과수 핵심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원예연구소의 과수과장에게 그 대답을 들어봤다.
다음은 강상조 과수과장과의 일문일답.
-현재 과수 폐업이 급증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과수 폐업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과수를 주변 지역으로 확대할 수 있는 기회일 수 있으며 대규모로 재배화 시킬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농민들이 FTA 등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아 지레 겁먹는 건 아닌지 염려스럽다. 당장 정부에서 지원금이 모자라더라도 대형화로 가야 한다. 그 보다도 현재 출산율 세계 최저, 고령화 시기 진입 세계 최고를 기록하는 것이 더 걱정이다.”
-현재 이러한 과수 산업의 총체적 위기 속에서 농민들이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물가와 인건비는 과거로 회귀할 수 없음을 우리는 안다. 가격 경쟁력은 이제 별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일본의 한 회사 관계자는 현재 중국에 사과 1톨을 1천 엔(1만원)에 판매한다고 한다. 맛만 있다면 아무리 비싸도 없어서 못 팔 것이다. 고품질로 가야 한다. 그것만이 살 길이다. 중국의 인구가 16억 명 정도 된다고 한다. 고소득층이 10%라 가정할 때, 약 1억6천만 명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1%에게만 판매한다고 해도 1천만명이 넘는다. 고가품을 만들어도 얼마든지 경쟁력 있을 수 있단 분석이다. 생산을 많이 하고 적게 하고 하는 것이 더 이상 문제가 될 수 없다.”
-고품질로 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나.
“일본은 현재 가격에 상관하지 않고 생산하고 있다. 해외 수출시 가격은 이제 더 이상 판매 기준이 되지 않는다. 저가 시장이 지켜져야 하겠지만 고품격 과실은 무한한 부가가치를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30여 년간 과실 생산의 통계 추이를 살펴보면, 사과는 급감하고 감은 급증했다. 이유가 있는가.
“농민들의 자세가 문제다. 현재 사과 재배 면적은 4만6천ha에서 2만6천ha로 줄었다. 지난 97년부터 사과는 이미 고가 과실이 됐다. 엄청난 구조조정으로 인해 사과의 가격이 급상승했다. 바로 이 점이 가격 경쟁력이 없어졌다는 의미다. 국내와 국제 과실 시장의 폭이 더욱 커졌다는 의미도 된다. 국내 농민들은 사과만 팔아도 먹고 사는 시대가 됐다. 자연히 수출은 줄어들고 감은 과잉경쟁에 지쳐 꾸준히 늘어 현재 과잉 생산 지경에 이르렀다. 현재 사과 10kg에 6만9천 원 한다. 마진율이 엄청난 것이다. 수출 시장이 문제가 아니다. 물량공급과 시장가격이 문제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할 만한 원예연구소 지원의 신기술 신품종이 있는가.
“현재 재배 기술은 한계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다. 세계 기술이 이미 평준화 상태에 있다. 고유한 품종 개발이 유일한 생존의 길이다. 현재 원예연구소에서는 ‘홍로’를 사과시험장에서 개발, 대만에 내달 7.5톤 수출한다. ‘괜찮으면 사먹어라’는 주문인 셈이다. 정부 연구기관에서 수출까지 담당하고 있으니 참 안타깝다. 10월 하순에는 일본 대표적 사과 품종인 ‘후지’와 맞붙을 ‘감홍’과 ‘화홍’ 품종을 세계 시장에 내놓을 예정이다. 후지와 맞붙어 패배한다면 참으로 암담하다. 이기려면 고품질로 가는 길 뿐이다.”
-원예연구소의 1인당 연구비가 2억원 남짓인 것으로 안다. 너무 많은 것 아닌가.
“경상연구비는 유지된다. 별도로 프로젝트를 수주해 온 금액이 합산돼 높게 계산된 듯 하다. 연구비는 아이디어와 직결된다. 아이디어 없으면 계속 삭감된다. 그것이 현실이다. 지휘관은 뭔가 해야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돈이 된다. 연구원들에게도 항상 프로젝트 수주를 많이 해오라고 주문한다. 수주한 프로젝트는 그 연구원 몫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던 결과물을 놓고 평가할 뿐이다. 간섭은 일체 없다.”
-연구원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유지하는가.
“가족과의 웰빙은 주말에 집에서 하라고 주문한다. 불 꺼진 연구소는 오래 못 간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10시 이전 퇴근을 해본 적 없는 나로서는 당연한 지침이다. 직원들은 연구만 하라고 말한다. 상벌제를 도입해 최대한 개인 자율을 보장하면서도 숙제를 내주고 있다.”
-과수부 신설에 관해 언급한 바 있는데.
“개인 바람이다. 업무가 과중하다. 올 1월 과수재배과와 과수육종과가 합병된 후 업무가 2배 이상 증가했다. 물리적으로 시간이 나지 않는다. 사과와 배 시험장 명칭 변경도 지역 주민들이 동네 기관쯤으로 알고 있어 문제가 많다고 생각했다. 분명 국가 연구기관인데 말이다. 동부와 서부, 남부 시험장으로 바꾸자고 제언한 것은 남북통일 후 한반도를 기후대별로 나누니 4개 권역이 나왔다. 훗날 소용 있을 것 같아 제언한 것이다.”
-현재 정부에서 APC(산지유통센터) 확대 방침을 밝혔는데.
“APC는 꼭 해야 한다. 유통 시스템의 획기적 전환 계기다. 면적이 큰 나라들은 이미 수천 에이커의 면적을 활용하고 있다. 미국은 개인 소유 농장에 개인 철도가 있을 정도다. 대농(大農)이 아닌 대상(大商)이라 불리는 것도 바로 이 점에 기인한다. 물류 거점 지역이 필요하다. 외국 선진 농업 형태인 것이다. 칠레는 과수 농가를 둘러보려면, 자동차로 하루가 걸린다. 한국의 반도체 공장처럼 농가 출입 시 엄격한 살균 소독 시스템을 거쳐야 한다. 생존 방법은 결국 외국을 벤치마킹하는 데 있다.
현재 군단위 혹은 면단위의 과실 브랜드는 모두 사장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 1개 혹은 도 단위 대표 브랜드 1개 정도만 갖고 있으면 된다. 대규모로 기계화 농작을 통해 철저하게 검증된 제품만 출하해야 한다. 우리나라 농민 1인당 생산성은 OECD 국가 중 세계 최저를 기록하고 있다. 시스템 잘못이다.
일본의 농산물가공산업의 발전계기가 바로 APC 때문이다. 농외 소득자가 60%를 넘어선다. 출퇴근 하는 이른바 ‘농민회사원’인 셈이다. 지난 90년대 초반 국내에 내로라하는 농민 20여명을 선발, 일본을 방문시켰는데 4일 후 모두 혀를 내둘렀다. 그들의 시스템에 놀란 것이다.”
-이런 결과로 놓고 볼 때, 한국의 과수 산업은 희망이 없어 보인다. 대한민국 과수 산업은 진정 희망이 없는가.
“아니다. 희망이 있다. 해볼 만 하다는 얘기다. 정부와 농민단체들이 방향 설정을 잘 해야 한다. 가격에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고품질에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충성도 높은 소비자를 형성할 수 있는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개방된다고 해서 겁낼 것은 없다. 저가품을 구입할 수 있는 소비자 층이 있는가 하면, 비싸도 국내 고가격대의 고품질 과실을 구입할 소비자 층은 엄연히 존재하기 마련이다. ‘신토불이’에 더 이상 호소할 시대는 지났다. 무한경쟁시대다. 사실 미국과 칠레산과 비교해 볼 때 국내산 과실이 크게 뒤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과실은 약 1달 반 정도 걸려 한국에 입항하므로 국내산 경쟁력이 더욱 높다. 소비자들에게 선택권을 줘야 한다. 우리의 할 일이 너무 많다.”
-디지털농경21 2004년 인터넷판 게재-
신품종으로 일본 대만산과 경쟁 붙어 “희망 있다”
“불 꺼진 연구소는 의미 없다” … 밤 10시 이전 퇴근 없어
그는 바쁘다. 지난 16년간 직장 생활을 하면서 밤 10시 이전에 퇴근해 본 일이 없다. 지난 1월 과수재배과와 과수육종과가 통합한 이래, 그의 발놀림은 더 빨라졌다. 매일 결제보고서가 수십 개에 이르고, 연구원들의 과제물을 일일이 확인해 줘야 하는 업무까지 치자면 하루가 모자라다. 거기에 과수와 관련된 각종 세미나에 워크숍 등 모두 참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필히 뒤편에서 “밥 좀 먹고 사나 보다”란 소리가 들려나온다.
농촌진흥청 원예연구소 과수과 강상조(52) 과장에게 묻고 싶은 말이 많았다. 현재 대한민국 과수산업은 총체적 위기 상태다. 산소호흡기가 없으면 금세 숨이 멎을 듯한 환자다. 한국과 칠레간의 FTA 체결로 인해 최근 과수업 폐업 신청이 봇물을 이루고 있지만, 원천적 문제는 거기에 있지 않다.
강과장은 현재 과수 폐업 사태에 대해 말문을 열면서 “나쁜 징조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는 소규모 농작에서 대규모로 전환될 시기”라면서 “농민들이 FTA다 DDA다 뭐다 해서 지레 겁을 먹는 게 아닌 지 그게 걱정된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의 말대로라면 현재 모든 과수 문제의 해결은 ‘규모화된 고품질 과수 생산’에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와 결부된 문제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난 8월말 농림부가 발간한 ‘농림업 주요통계’를 보면 2003년 말 현재 농가 수는 195만 가구로 10년 전인 93년 259만 가구보다 24.8%나 감소했다. 특히 농민의 연령이 문제인데, 40세 이상의 비중이 78.6%에서 91%로 크게 늘어났다고 발표했다.
농촌에서 젊은이가 사라진 것이 어제 오늘 일이겠는 가마는, 농민들의 평균 연령은 이미 고령화 시대로 진입한 지 오래다.
강 과장 또한 이 문제에 대해 “정부에서 10년 후를 내다보며 과수 지원을 약속했는데 사실 이러한 정책이 그들에게 크게 와 닿을지 의문”이라면서 “당장 바로 앞의 이익만을 쫓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일지 모른다”고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고령화된 농민들을 상대로 10년 후를 내다보는 것 자체가 아마 어불성설일지 모른다. 현재 농민들은 과수 폐업 지원금에 대해 더 민감할 수밖에 없으며, 한국 칠레 FTA로 인해 상당한 피해를 보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일교차가 20도 안팎으로 과실을 재배하기에 천혜의 자연 환경을 갖고 있는 칠레와 값싼 과실을 매년 수천 톤씩 수출하는 중국을 상대하기에 대한민국은 너무나 힘겹다.
과연 해결 방안은 없을까. 한국의 과수 핵심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원예연구소의 과수과장에게 그 대답을 들어봤다.
다음은 강상조 과수과장과의 일문일답.
-현재 과수 폐업이 급증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과수 폐업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과수를 주변 지역으로 확대할 수 있는 기회일 수 있으며 대규모로 재배화 시킬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농민들이 FTA 등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아 지레 겁먹는 건 아닌지 염려스럽다. 당장 정부에서 지원금이 모자라더라도 대형화로 가야 한다. 그 보다도 현재 출산율 세계 최저, 고령화 시기 진입 세계 최고를 기록하는 것이 더 걱정이다.”
-현재 이러한 과수 산업의 총체적 위기 속에서 농민들이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물가와 인건비는 과거로 회귀할 수 없음을 우리는 안다. 가격 경쟁력은 이제 별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일본의 한 회사 관계자는 현재 중국에 사과 1톨을 1천 엔(1만원)에 판매한다고 한다. 맛만 있다면 아무리 비싸도 없어서 못 팔 것이다. 고품질로 가야 한다. 그것만이 살 길이다. 중국의 인구가 16억 명 정도 된다고 한다. 고소득층이 10%라 가정할 때, 약 1억6천만 명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1%에게만 판매한다고 해도 1천만명이 넘는다. 고가품을 만들어도 얼마든지 경쟁력 있을 수 있단 분석이다. 생산을 많이 하고 적게 하고 하는 것이 더 이상 문제가 될 수 없다.”
-고품질로 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나.
“일본은 현재 가격에 상관하지 않고 생산하고 있다. 해외 수출시 가격은 이제 더 이상 판매 기준이 되지 않는다. 저가 시장이 지켜져야 하겠지만 고품격 과실은 무한한 부가가치를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30여 년간 과실 생산의 통계 추이를 살펴보면, 사과는 급감하고 감은 급증했다. 이유가 있는가.
“농민들의 자세가 문제다. 현재 사과 재배 면적은 4만6천ha에서 2만6천ha로 줄었다. 지난 97년부터 사과는 이미 고가 과실이 됐다. 엄청난 구조조정으로 인해 사과의 가격이 급상승했다. 바로 이 점이 가격 경쟁력이 없어졌다는 의미다. 국내와 국제 과실 시장의 폭이 더욱 커졌다는 의미도 된다. 국내 농민들은 사과만 팔아도 먹고 사는 시대가 됐다. 자연히 수출은 줄어들고 감은 과잉경쟁에 지쳐 꾸준히 늘어 현재 과잉 생산 지경에 이르렀다. 현재 사과 10kg에 6만9천 원 한다. 마진율이 엄청난 것이다. 수출 시장이 문제가 아니다. 물량공급과 시장가격이 문제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할 만한 원예연구소 지원의 신기술 신품종이 있는가.
“현재 재배 기술은 한계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다. 세계 기술이 이미 평준화 상태에 있다. 고유한 품종 개발이 유일한 생존의 길이다. 현재 원예연구소에서는 ‘홍로’를 사과시험장에서 개발, 대만에 내달 7.5톤 수출한다. ‘괜찮으면 사먹어라’는 주문인 셈이다. 정부 연구기관에서 수출까지 담당하고 있으니 참 안타깝다. 10월 하순에는 일본 대표적 사과 품종인 ‘후지’와 맞붙을 ‘감홍’과 ‘화홍’ 품종을 세계 시장에 내놓을 예정이다. 후지와 맞붙어 패배한다면 참으로 암담하다. 이기려면 고품질로 가는 길 뿐이다.”
-원예연구소의 1인당 연구비가 2억원 남짓인 것으로 안다. 너무 많은 것 아닌가.
“경상연구비는 유지된다. 별도로 프로젝트를 수주해 온 금액이 합산돼 높게 계산된 듯 하다. 연구비는 아이디어와 직결된다. 아이디어 없으면 계속 삭감된다. 그것이 현실이다. 지휘관은 뭔가 해야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돈이 된다. 연구원들에게도 항상 프로젝트 수주를 많이 해오라고 주문한다. 수주한 프로젝트는 그 연구원 몫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던 결과물을 놓고 평가할 뿐이다. 간섭은 일체 없다.”
-연구원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유지하는가.
“가족과의 웰빙은 주말에 집에서 하라고 주문한다. 불 꺼진 연구소는 오래 못 간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10시 이전 퇴근을 해본 적 없는 나로서는 당연한 지침이다. 직원들은 연구만 하라고 말한다. 상벌제를 도입해 최대한 개인 자율을 보장하면서도 숙제를 내주고 있다.”
-과수부 신설에 관해 언급한 바 있는데.
“개인 바람이다. 업무가 과중하다. 올 1월 과수재배과와 과수육종과가 합병된 후 업무가 2배 이상 증가했다. 물리적으로 시간이 나지 않는다. 사과와 배 시험장 명칭 변경도 지역 주민들이 동네 기관쯤으로 알고 있어 문제가 많다고 생각했다. 분명 국가 연구기관인데 말이다. 동부와 서부, 남부 시험장으로 바꾸자고 제언한 것은 남북통일 후 한반도를 기후대별로 나누니 4개 권역이 나왔다. 훗날 소용 있을 것 같아 제언한 것이다.”
-현재 정부에서 APC(산지유통센터) 확대 방침을 밝혔는데.
“APC는 꼭 해야 한다. 유통 시스템의 획기적 전환 계기다. 면적이 큰 나라들은 이미 수천 에이커의 면적을 활용하고 있다. 미국은 개인 소유 농장에 개인 철도가 있을 정도다. 대농(大農)이 아닌 대상(大商)이라 불리는 것도 바로 이 점에 기인한다. 물류 거점 지역이 필요하다. 외국 선진 농업 형태인 것이다. 칠레는 과수 농가를 둘러보려면, 자동차로 하루가 걸린다. 한국의 반도체 공장처럼 농가 출입 시 엄격한 살균 소독 시스템을 거쳐야 한다. 생존 방법은 결국 외국을 벤치마킹하는 데 있다.
현재 군단위 혹은 면단위의 과실 브랜드는 모두 사장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 1개 혹은 도 단위 대표 브랜드 1개 정도만 갖고 있으면 된다. 대규모로 기계화 농작을 통해 철저하게 검증된 제품만 출하해야 한다. 우리나라 농민 1인당 생산성은 OECD 국가 중 세계 최저를 기록하고 있다. 시스템 잘못이다.
일본의 농산물가공산업의 발전계기가 바로 APC 때문이다. 농외 소득자가 60%를 넘어선다. 출퇴근 하는 이른바 ‘농민회사원’인 셈이다. 지난 90년대 초반 국내에 내로라하는 농민 20여명을 선발, 일본을 방문시켰는데 4일 후 모두 혀를 내둘렀다. 그들의 시스템에 놀란 것이다.”
-이런 결과로 놓고 볼 때, 한국의 과수 산업은 희망이 없어 보인다. 대한민국 과수 산업은 진정 희망이 없는가.
“아니다. 희망이 있다. 해볼 만 하다는 얘기다. 정부와 농민단체들이 방향 설정을 잘 해야 한다. 가격에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고품질에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충성도 높은 소비자를 형성할 수 있는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개방된다고 해서 겁낼 것은 없다. 저가품을 구입할 수 있는 소비자 층이 있는가 하면, 비싸도 국내 고가격대의 고품질 과실을 구입할 소비자 층은 엄연히 존재하기 마련이다. ‘신토불이’에 더 이상 호소할 시대는 지났다. 무한경쟁시대다. 사실 미국과 칠레산과 비교해 볼 때 국내산 과실이 크게 뒤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과실은 약 1달 반 정도 걸려 한국에 입항하므로 국내산 경쟁력이 더욱 높다. 소비자들에게 선택권을 줘야 한다. 우리의 할 일이 너무 많다.”
-디지털농경21 2004년 인터넷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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