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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folio/일반기사[2003~2007]

[신기술&신제품]쌀 아이스크림 개발, 가장 중요한 것은?

쌀 아이스크림 개발, 가장 중요한 것은?
전문화된 행정시스템 결여로 연구원이 마케팅까지 관여


지난 8월 2일 대한민국에 새로운 아이스크림이 하나 개발됐다. 이름하여 ‘쌀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을 제조하는 데 있어 쌀을 재료로 했다면 대부분 고개를 갸우뚱할지 모른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나라에서 누군가 시도했음직한 ‘키워드’인데 지금까지 쌀 아이스크림을 들어보지도 먹어보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신기한 제품이라서 그런지 개발된 후, 온갖 매스컴에서 인터뷰가 쇄도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개발품이라도 시판이 되어야 빛을 발하는 법. 이에 본지는 어느 정도까지 상업화가 가능한 지 알아보기 위해 쌀아이스크림을 개발한 그 현장을 찾았다.

보통 새로운 기술 혹은 제품이 개발되고 나면 수많은 매스컴으로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이 현실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아야 주목받는 현실 속에서 새로운 기술과 제품은 이들의 이목을 끄는 데 주효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쌀’을 주원료로 한 아이스크림을 만들어냈다는 것은 신기술 부문에 있어 꽤 귀가 솔깃해지는 뉴스거리임에 틀림없다. ‘어떻게 쌀로 아이스크림을 만들어냈을까?’라는 의문은 최근 벌어지고 있는 쌀 관련 협상에까지 그 생각이 미쳐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
충북농업기술원 식품개발팀 주선종 팀장은 옆집 아저씨 같은 훈훈한 미소로 기자를 맞이했다.
“처음에는 3명이 연구를 시작했어요. 작년 9월이었죠. 약 1년 걸렸네요.”
지금은 수습연구원까지 가세해 5명으로 불어난 ‘아이스크림 제조팀’이 결성됐다. 아이스크림이 제조되고 난 후, 얼마나 많은 인터뷰 요청이 쏟아졌는지 주팀장은 “똑같은 질문을 하려거든 서면 인터뷰로 하자”고 제의하기도 했다.
매번 비슷한 질문에 같은 대답을 하고 있으려니, 다소 식상했던 모양. 한 뭉치의 보도된 신문 기사 등을 스크랩한 것을 꺼내 보이기도 했다.
이미 신문 기사 등을 통해 개발과정은 소상히 알려져 있는 터라, 그 이후의 상업화 가능성에 대해 매우 궁금했다. 개발만 해 놓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신기술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최근 DDA FTA 등 쌀 관련 협상이 메인 뉴스로 떠오르면서 쌀 개방의 찬반 논란에 휩싸인 농업이 아니던가. 쌀 개방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면서 대한민국 토종 쌀 사수에 목숨을 건 농민들까지 나오고 있으니 분명 신기술은 신기술인 것 같다.
주팀장은 이에 대해 “쌀 관련 협상도 개발 취지에 어느 정도 부합되는 면이 있다”며 “현재 특허를 신청해 놓은 상태다”고 말했다.
주팀장의 말에 의하면, 최근 기술 이전 희망업체를 지역 신문과 인터넷 등에 공고를 내고 경제성을 타진하고 있다고 한다. 희망 업체가 나타나면 공개 입찰을 통해 해당 기업을 방문, 철저하게 분석할 예정이다. 충청북도의 심의위원회 의결과정이 남긴 하지만 위원회에서도 전폭적 지원을 약속한 상태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신기술 상품화 과정
그러나 신기술에 대한 상품화 과정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만은 않은 듯 하다. 희망업체가 나타나기도 했다. 비용이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기술을 이전해 달라는 기업도 나타났다. 공개입찰을 통해 선정되기도 하겠지만, 예상과는 달리 많은 기업이 손을 뻗은 것은 아니다. 기업 입장에서 막대한 초기 투자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것. 소형 영세한 규모의 기업에서는 아이스크림을 전국으로 유통시킨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대기업을 통하지 않고서는 어렵다는 얘기다. 이에 30여 년간 대기업에 아이스크림을 납품한 모기업이 최근 제품화 단계에 조금씩 다가서고 있다.
“신문 보도 후 어느 날 국내 유명 대형 백화점 아이스크림 코너에서 전화가 왔어요. 아이스크림 도매업 협회 회장이란 분도 전화를 했고요. 호주에 거주하는 변호사는 자신의 아이스크림 가게에 이 제품을 판매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중국에 사는 조선족 기업주는 전량 수입하고 싶다고도 했습니다.”
난리가 났다. 인터넷이 가능해서 인지 실시간으로 국내 뉴스를 받아본 터라, 쌀 아이스크림에 대한 경제성을 그들이 간접 계산해 주고 있었다. 이에 주팀장은 매우 고무됐다.
그러나 주팀장은 “기술연구원은 기술 개발에만 전념했으면 싶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기술 개발에 각종 기업들이 달려드는 마당에 연구원으로써의 사명감을 다소 상실할까 염려스러웠던 것.
그는 이어 “현재 연구원에서는 상품 개발 뿐 아니라 기술 이전과 관련된 마케팅 업무까지 관장하는 상태”라며 “충북도의 담당 인력이 부족한 이유도 있지만 행정적 업무까지 책임지다 보니 다소 무리가 따르는 것이 사실이다”고 말했다.
그는 상품화 과정에 따르는 도청 담당공무원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연구원이 모든 부분까지 신경 써야 하는 상태다. 행정시스템이 받쳐주지 않아 연구원이 마케팅까지 관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행정시스템 결여로 인해 연구원들 겪는 고충은 또 있다. 이미 충북농업기술원은 쌀과 관련된 특허 기술을 5개 보유하고 있는 상태다. 이에 대해 각 기업들의 식품연구소측은 실용화 단계에 있어 제품 분석을 위해 ‘샘플’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주팀장은 “샘플을 넘겨주면 한 동안 연락이 두절되는데 연락을 해보면 ‘아직 분석 중이다’라는 대답만 돌아온다”면서 “H기업 등 대기업들이 신기술에 대해 손안대고 코풀고자 한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신기술 개발 공무원 포상금 ‘50만원’
사실 쌀 아이스크림은 지난해 경상도의 모기업이 개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충북기술원이 만든 쌀 아이스크림은 한약과 과일 등을 첨가해 만든 ‘웰빙 아이스크림’으로 그 기능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유의 맛과 천연향, 천연색소를 내는 과일은 충북지역에서 많이 생산되는 사과(충주), 복숭아(음성), 포도(옥천·영동)를 사용하고 있다. 모두 주스형 추출물로 가공된 것을 아이스크림에 혼합한다. 구기자, 황기, 황정, 천궁 등 제천·단양지역에서 생산되거나 거래되는 천연 한약재 추출물은 약리성분이 높고 산화방지 효과를 내기 때문에 건강에 매우 유익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렇듯 좋은 기술을 하루 빨리 이전해 상품화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경우가 지금 처음 겪는 것들이라 길을 잘 닦아놔야 다음에 또 다른 제품을 개발했을 때, 좋은 본보기가 되지 않겠습니까?”
상식적으로 이렇게 좋은 제품을 개발하고 나면, 뭔가 공무원이라도 포상이 주어지지 않을까라는 것이 일반인들의 관측이다. 그러나 포상은 포상인데 그 범위가 매우 좁아 다소 아쉽다.
공무원들이 신기술을 개발했을 때 받는 일종의 포상제도인 ‘공무원직무발명보상조례’를 살펴보면, 포상금은 1회당 50만원으로 한정돼 있다.(2003년 8월 1일 개정) 2003년 이전에는 100만원이었다. 상품화가 되어야만 그 이후의 포상금이 보장된다는 단서도 있다.
즉 상품화가 되지 않으면 아무리 뛰어난 신기술일 지라도 연구원이든, 일반 소비자든 그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얘기다. 뛰어난 연구진들의 기술력과 철저한 행정시스템의 마케팅 능력, 깔끔한 제조업체의 능력이 더해져야 삼박자가 갖춰진다는 논리다.
“사실 지난해 가을부터 겨울까지 저 혼자 연구를 하다시피 했죠. 연간 1조원인 아이스크림 시장과 국내 쌀 소비 촉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기회라 여겨집니다. 소규모 기업들은 기술에 대해 설명하면 고개를 끄덕이긴 하나, 제조 유통 포장 등초기 투자비용에 대해 언급하면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것이 현실입니다.”
모든 제품은 판매가 되어야 돈이 된다. 돈이 되려면 좋은 제품의 상품이 출시되어야 한다. 국가뿐만 아니라 해당 기업, 연구원 등 우리 모두가 풀어야 할 숙제다.

쌀 아이스크림이란?
지난 2003년 하반기부터 실험에 착수해 1년여 만에 개발한 이 아이스크림은 한 마디로 우리 농산물 결정체라 할 수 있다. 기존 아이스크림과 구별되는 재료는 크게 쌀, 과일, 한약재 등 세 가지로 나뉜다.
농업기술원은 웰빙 시대에 맞춰 우리 농산물 소비촉진과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해 기능성 아이스크림 개발에 착수했다. 수입 농산물에 밀려 경쟁력을 잃어가는 국산 쌀과 과일, 한약재 등을 신세대가 즐겨 먹는 아이스크림에 접목시켜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어 보려는 시도로 여겨진다.

기자가 본 쌀 아이스크림
실제 기자가 맛본 것은 바닐라맛 쌀 아이스크림이었다. 땅콩이 첨가돼 맛은 ‘호두아이스크림’에 가까웠다. 시판되고 있는 일반 아이스크림과 크게 다르지 않은 맛이었다. 바로 그 점이 최대 강점으로 생각됐다. 앞으로 몇 개월 후, 쌀이 남아돌아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할 우려가 있는 현 시국에 보통 아이스크림과 맛이 흡사하거나 더 좋은 아이스크림이 출시된다면 분명 ‘가능성’은 매우 커 보인다.

-디지털농경21 2004년판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