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kGGM 일반기사 ]
“입주자대표회의는 주민위해 일하는 대표들 맞소?”
제1편 정경유착? ‘작은 정치판’
세상을 살아가면서 敵을 만들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적이 없는 사람은 진정한 친구도 없다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적어도 같은 울타리내에서 원수지간으로 산다는 건 지극히 불행한 일이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퇴색된 것은 이미 오래. 살가운 말한마디 건넬 수 없는 단절된 21세기 주거문화는 어찌보면 아파트라는 것이 등장하여 만들어낸 산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고기 굽는 냄새에 이끌려 눈인사로 숟가락 하나 더 놓고 담소를 나누던 우리네 정겨운 모습은 이제 정녕 사라지는 것일까.
‘월간 民政’ 재발간의 첫 기획특집은 불행하게도 활기찬 새시대의 희망섞인 외침을 다루지 못하고, 이러한 물음표를 들고 나서게 됐다. 어느 날 우연히 알게 된 서울시 동대문구 전농동SK아파트의 분란을 보면서 이 사회의, 혹은 이 시대의 아픔이 구구절절하게 배어 있는 듯 하여 서글픔마저 일었다.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아픔을 위해 처방을 내려주는 ‘언론’의 사명감으로 다가간 것은 사실이지만, 취재 과정에서 그들의 풀리지 않는 많은 문제점을 보면서 처방보다는 사실 전달에 주력해야 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쉽게 생각하면 작은 동네의 싸움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들의 문제를 사회의 단면이라고까지 칭하고 싶진 않다. 그러나, 경제가 밑바닥을 치고 온갖 부정부패가 난무하고 권력이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시점에 살다보니, 이 시대와 어찌나 닮은 구석이 많던지...
현재 전농동 SK 아파트는 입주자대표회의 집행부와 부녀회의, 관리사무소, SK건설 등 풀리지 않는 문제가 실타래처럼 꼬여 있다. 평화적 대화는 단절된 지 오래고, 각종 소송과 완력으로 가슴에 피멍만 키우고 있을 뿐이다. 그들을 찾아 그들의 소리를 듣고 동맥경화를 앓고 있는 이 아파트의 문제가 무엇인지 소상히 알리고자 한다.
☞ 사건의 발단
‘입주자대표회의는 주민의 대표성을 인식하고 항상 주민의 편에서 선량한 관리자로서 부끄러움이 없는 의사결정을 하여 주민의 재산권 보호와 단지 발전에 기여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간 동별 대표자의 상식 밖의 부당한 소행들을 살펴볼 때, 이 회의기구가 주민의 이익과 반하는 행위를 다반사로 행하였다면 그 조직은 마땅히 다수 주민의 뜻에 의하여 해체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당 아파트 <관리규약 제15조의 8호>에 의거, 현 입주자대표회의를 해체하고 참신한 사람으로 하여금 대표를 다시 선출하고자 주민 동의를 구하오니 이에 적극 참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2003년 9월 25일 SK아파트 단지 발전을 위한 부녀회와 주민일동’
현재 대한민국의 모든 아파트에는 입주자대표회의라는 것이 있다. 관할 구청이나 시에서 인정하는 이 회의는 각 아파트 단지를 대표하는 자가 주체가 되어 구성되는 집단으로, 쉽게 말해 ‘각 동의 대표들’이 주축이 된다. 회장도 있고 부회장도 있으며, 총무 및 감사가 있어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각종 문제 해결과 광고 등으로 인한 아파트 수익에 관한 전반적인 모든 사항을 관리 담당한다. 고로 이러한 입주자대표회의에 참석하는 동대표들은 주민의 과반수이상의 찬성으로 선발된다.
아울러, 시나 구청에서 인정하는 입주자대표회의의 동대표들과는 달리 친목단체 부녀회는 국내 아파트 및 주택단지 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단체로 각 지역 부녀자들이 모여 만든 일종의 ‘지역발전을 위한 소규모 단체’다. 임기는 2년이 보통이다.
두 단체 모두 국내 어느 주택(아파트)에서나 마찬가지로 지역발전과 주민보호가 최우선의 과제며, 무보수 봉사를 하고 있다. 보수 없이 봉사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든 일이지만 주민들이 선발한 것이기에 일반적으로는 묵묵히 맡은 바 소임을 다하는 ‘우수 주민’인 셈이다. 그래서 두 단체의 화합과 커뮤니케이션, 친목은 매우 중요하며, 실제로 많은 아파트들이 주민 생활 보호 및 향상을 위해 일선에서 봉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적어도 전농SK아파트에서는 그 의미가 많이 다른 느낌이다. 지난 2003년 9월 25일 전농SK아파트의 부녀회(회장 박정은)는 전농SK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를 인정할 수 없다며 1,800여세대 중 1,500세대 이상의 서명을 받아 위와 같은 문서를 입주자대표회의에 전달하며 전농SK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를 해체시키고자 했다.
그렇다면 부녀회는 자신들이 선발한 입주자대표들을 왜 해체시키고자 했을까. 이 해체를 놓고 부녀회는 법정 소송까지 걸어놓은 상태다. 이 소송 하나만 놓고 보자면 문제는 간단하다. 하지만, 소송을 하게 된 계기가 만만찮다.
☞ 사건의 전개
■ 조합아파트, 청산은 언제쯤?
전농SK아파트는 2000년 7월 20일경부터 10월까지 입주가 진행됐다. 물론, 조합아파트다. 조합아파트가 거의 그렇듯이 조합원들이 모여 시공사를 정해 아파트를 짓는데, 준공이후 6개월내 조합원들을 위해 시공사는 분양하면서 얻은 이익금을 결산 및 청산해야 한다. 이곳의 시공사가 바로 SK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현재 준공 3년이 넘도록 이 아파트는 ‘청산’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법적으로 ‘청산인’을 두고 그 조합원 수익부분에 대한 결산을 해야 하는데, 입주자대표회의에서는 “현재 부녀회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모든 청산부분이 해결안된 것이 아니라, 결산 부분은 모두 끝났으나 청산부분이 지연되고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
이 아파트의 법적인 청산인은 입주자대표회의 총무인 이영재씨다. 이총무와 취재가 되지 않아 정확한 사항은 알 수 없으나, 이 부분이 현재 주민들이 소상히 알고 싶어하는 부분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시원스럽게 해답을 알고 있는 사람이 극히 적다. 부녀회 박정은 회장은 “우리보다 늦게 입주한 인근 아파트들도 모두 이러한 청산이 끝났는데 왜 우리는 아직도 청산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청산인 자격으로 있는 이영재 총무는 ‘걱정말라’란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 부분은 분명 SK와의 문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준공 3년이 넘도록 청산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에 주민들은 의혹을 품고 있는 것이다.
■ 아파트 하자에 대한 보수 문제
전자제품이나 자동차를 구입하게 되면 애프터서비스(AS)라하여 사후 관리를 제조회사 혹은 판매회사에서 책임지는 제도가 있다. 물론, 여타 물건에도 적용되는 이 서비스 제도는 현재 제조물책임법이라는 법률과 맞물려 있어 제조회사에서 크게 신경쓰고 있는 부분이다. AS 좋은 회사에 더 많은 소비자가 몰리는 것은 당연한 일. 아파트도 마찬가지다. 아파트는 부동산이기 때문에 시공사의 AS는 필수적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손꼽아 기다리는 내 집 마련의 꿈을 시공사의 잘못으로 깰 수는 없는 일이다. 법률적으로 하자보수는 1년차에서 10년차까지로 돼 있다. 즉, 10년 내에 모든 하자보수에 대한 이의를 시공사에 신청해야 하며 시공사는 당연히 이 이의를 받아들여 하자 보수해야 한다. 세월이 흐를수록 하자보수비용이 더 많이 들어가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이러한 하자보수문제가 현재 전농SK아파트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태의 전모다. 이 문제로 인해 현재 입주자대표회의와 부녀회의는 싸우고 있다. 일단 문제부터 파헤쳐보자.
☞ 사건의 위기
2000년 7월 전농SK아파트의 입주가 시작되면서 2001년 1월 1일 제1기 입주자대표회의가 선발됐다. 전농SK아파트가 총 16개동이므로 총 16명이 선출된 셈이다.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 선출된 이들은 맨바닥부터 시작하는 심정으로 나름대로 일을 처리해 나가고자 했으며, 최선을 다해 임무를 수행했다고 한다.
제1기때부터 동대표를 역임했다는 현 전농SK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인수자 부회장은 “당시 동대표로 선발됐던 사람들이 다소 업무 수행 능력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최선을 다해 맡은 바 임무를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임기가 2년이므로 이들은 2002년 12월 31일까지 임무를 수행했다. 부녀회도 마찬가지다. 2002년 12월 31일 제1기 부녀회 박영자 회장이 물러나고 2003년 1월 1일 제2기 부녀회 박정은 회장이 취임했다. 어찌보면 박정은 회장이 취임하면서 이 모든 문제가 시작됐다고도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그녀는 “제가 회장이 되고나니 산적해 있는 문제와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놀랐다”며 “이 문제에 대해 누군가 나서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2003년 1월 1일부터 수행하게 된 부녀회 회장이라는 직책을 맡고 보니 주민들의 요구 사항에 대해 보다 소상히 대표회의에 알려야 겠다는 사명감이 일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입주자대표회의 김금봉 감사는 “그들은 현재 ‘월권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전농SK아파트의 3년차 하자적출신청은 2003년 7월 6일이 마감일이었다. 2000년 7월부터 입주가 시작됐으니 2003년 7월까지 SK건설에 AS를 신청해야 하자보수를 받을 수 있었다. 제2기 동대표 및 부녀회 임원은 2003년 1월 1일부터 임기가 시작됐으니, 이전까지 하자적출문제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던 제1기 임원들에 대한 불신이 커지기 시작했다. 특히, 부녀회의 새로운 임원들은 이 부분을 문제화했다.
“이전까지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은 듯 했습니다. 1-2년차 하자보수는 비교적 시공사에서 부담하는 부분이 적습니다. 그러나, 3년차에서 하자가 발생하면 시공사에서 부담해야 할 부분이 매우 커집니다. 그래서인지 SK에서 차일피일 하자보수를 미루고 있다는 의혹이 짙어지더군요. 2003년 7월이 임박해 오는데도 대표자입주회의나 SK는 뒷짐만 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주민들의 의견을 통해 그들과 대화하려고 했지요. 그러나, 그들은 하자적출할 생각이 없어 보였습니다.”
부녀회의 의견에 대해 입주자대표회의의 의견이 맞선다.
“부녀회의 의견처럼 우리가 뒷짐만 지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2003년 5월경 SK건설에 하자부분에 대한 이의 신청을 했습니다. 우리도 할 일은 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상근직이 아니기 때문에 생업이 우선이다보니 신경쓰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주민을 위해 하자보수에 대해 신경쓰지 않았다는 말은 말도 안됩니다.”
이는 입주자대표회의 김금봉 감사의 말이다.
바로 이 부분이 핵심이다. 하자보수를 성실히 수행했어야 할 SK건설의 묵묵부답과 대표자입주회의와 부녀회간의 커뮤니케이션 상실이 법정 소송을 대여섯건이나 맞물리게 한 사건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제2편에 계속...
월간 民政(2004년 1월)
[기획특집] 전농SK아파트 제1편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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