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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folio/일반기사[1999~2002]

[현장리포트] - 한국:포르투갈 경기 응원 현장(서울 대학로&광화문)

해냈다! 16강!
48년만의 쾌거... 단군이래 최대 인파 몰려

 
우리는 해냈다. 대한국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이토록 자부심 느껴본 적 있는가. 과연 나는 누구이고, 이 곳은 어디인가. 모르는 사람과 어깨 동무를 하며 16강 진출의 염원을 풀어준 우리 태극전사들에게 깊은 박수를 보냈다. 지난 14일 대학로와 광화문에서 뜨겁게 응원을 펼친 50만명에 이르는 군중들을 현장스케치했다.


☞ 대학로와 광화문 응원현장


# 1 "아침 9시에 왔어요"


2002년 6월 14일 오후 2시 대학로. 경기가 시작되려면 아직 6시간이나 남아있었지만, 맨 앞자리는 이미 '매니아'들에게 점령(?) 당한 채 나름대로 자리배정을 하고 있다. 대략 200여명은 돼 보였다. 길거리에는 'Be the reds' 티셔츠와 팡파르, 태극기, 방석 등을 판매하는 상인들로 붐볐다. 이들과 함께 시민들도 그동안 옷장속에 숨겨둔 빨간티를 모두 입고 나와 거리는 온통 '고추 말리기'를 하는 듯 했다.

 

2002년 6월 14일 광화문. 폴란드전과 미국전에 이어 한국의 마지막 예선전이 열린 이날 광화문에 모인 시민은 어림잡아 40여만명. 이는 지난 폴란드와 미국전의 2배에 가까운 수치다. 그 만큼 함성도, 열기도, 대한민국에 대한 사랑도 배가시켰다. ⓟ okGGM 불탄고구마


포르투갈에 매운맛을 보여주려는 지, 얼굴에는 페인팅을, 머리에는 두건을 쓰고 '대한민국'을 외치고 있다. 응원현장에서 만난 한 대학생은 "좋은 자리를 위해 오전 9시에 왔다"며 "열기의 현장에서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었다"고 소감을 피력. 대형 멀티비전이 2개나 설치된 대학로에는 오전 0시부터 차량을 통제한채, 대한민국의 16강을 기원하고 있었다.


# 2 십렬종대 광화문


지난 4일 광화문 응원현장에는 경찰들의 삼엄함은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날은 달랐다. 폴란드전 응원때보다 약 2배 가량 시민이 늘어날 것이라는 추측때문인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구급차량과 소방차, 경찰 100여 중대가 출동했다. 그렇다고 경찰이나 소방대원들은 대한국인들이 아니던가. 경기가 시작되자, 모두 눈빛은 16강을 바라는 마음으로 전광판으로 향했다.


경찰은 이미 시민들이 편안하고 질서있게 관람하는 데 불편이 없도록 길을 통제해 나갔다. 오후 7시경 소방대원들이 설치해 놓았던 응급센터도 밀려드는 시민들의 행렬에 다소 뒤로 물러서는 분위기였다. 태극기와 팡파르, 티셔츠를 판매하는 상인도 폴란드전때의 3배는 돼 보였다. 거리의 시민들도 보다 원색적이고 '튀는 패션'으로 눈길을 끌었다.


또한, 조선일보 전광판에서는 "덤벼라 운명아! 너에게 승리를 맛보여주마", "잘한다 폴란드! 끝까지 그렇게..." 는 등 군중을 선동(?)하는 듯한 문구를 내보냈다.


# 3 "축구가 이렇게 재미있는 줄 몰랐어요"


박지성이 골을 넣자, 세종문화회관 앞에 운집한 많은 시민들은 거리가 떠나갈 듯이 소리를 지르며 서로 부둥껴안고 눈물을 흘렸다. 세종문화회관 앞과 뒤, 옆, 건너편의 정보통신부 건물과 교보생명, 광화문의 동화빌딩, 동아일보 사옥 등에 운집한 시민 40여만명은 '대한민국'을 한 목소리로 연호하며 자랑스러운 태극전사들의 활약에 큰 박수를 보냈다.


이 날 응원에 참여한 김나영(22.대학생)씨는 "축구에 대해 잘 알지 못했는데 정말 재미있는 것 같다"며 "앞으로 축구 경기를 꼭 볼 것이다"고 말했다.


# 4 "이제는 8강이다"


16강 진출이 확정되던 오후 10시 25분경, 광화문은 그야말로 난리통이었다. 3.1운동과 8.15 광복때도 그랬을까. 수 많은 사람들은 빨간티을 통일해 입었듯이 목소리 또한 한 목소리를 냈다. 16강 진출이 확정되고 수 시간이 흐른 새벽녁까지도 시민들은 서대문, 시청, 종로, 동대문, 대학로까지 인파로 이어졌다.


인파 때문에 운행을 포기한 버스 운전기사도 '경적'을 울려대며 한국의 16강 진출을 즐거워 했고, 생면부지의 버스 승객들도 손을 내밀어 기쁨을 두배로 늘렸다.


종각에서는 가판대 등에 올라가 팬티를 내리는 등 '누드쇼'를 보여 여성들에게 큰 갈채(?)를 받았으며, 수 백발의 폭죽이 끊임없이 터져 종로거리는 화약 연기로 자욱한 밤거리를 연출했다. 시민들은 "대~한민국" "세계최강"을 이어가며 목청을 돋웠고, 갖가지 응원 멘트와 응원 레퍼토리를 만들어 소리지르기도 했다.


교통경찰들도 차량 통제를 하고 있는 사이, 몰려간 붉은 악마들에게 둘러싸여 호루라기로 '대한민국'의 박자를 맞추는 등 모두가 하나 되는 순간이었다. 폭주족의 경적 응원도 폴란드전때보다 2배는 늘어난 것으로 보였으며, 컨셉트카와 1톤 화물차 등에 올라간 '자동차 응원족'들도 거리의 시민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한국의 16강 진출을 자축했다.


한편, 거리의 시민들이 뿌려놓고 돌아간 자리에 남은 신문과 종이 등 갖가지 쓰레기들을 너나 할 것 없이 정리해 놓는 '선진시민의식'을 보여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6월 14일 오후 2시 대학로. 14일 0시부터 15일 새벽 2시까지 차량을 통제한 이 곳은 10만명의 시민들이 운집해 응원했다. 새벽녁까지 이어진 응원의 메아리는 저 멀리 광화문에까지 미쳤는지, 광화문 응원 인파들이 대학로로 이동하는 모습도 보였다.
페이스페인팅 1000원부터. 즉석사진은 3000원. 응원 열기에 힘입어 이 날 판매고도 매우 크게 올랐을 것으로 짐작된다. 1000원씩 1000명만 해줘도 1백만원이군. 응원인구가 10여만명이라고 했으니 1천명은 하지 않았을까?
오후 3시경 대학로. 벌써부터 약 1천여명이 모여 좋은 자리를 위해 돗자리를 깔았다. 삼삼오오 모여 오늘 있을 결전에 대해 뜨거운 논쟁을 하는 모습이었다.
방석 2000원. 신기해 셔터를 눌러봤다. 길거리에 호외로 넘실대는 '조선' 등의 신문지를 쓰면 되련만. 그래도 판매는 그럭저럭.
약속의 장소로 유명한 대학로 '배스킨라빈스' 앞. 경기 2시간 전인 6시 현재 붉은 물결로 넘실대고 있다. 나름대로 '애국심'의 모습을 보이려 했는지 알 순 없지만, 추측컨데 버거킹과 KFC, 배스킨라빈스 등의 매출은 인근 떡볶이집과 분식집의 그것과 비교해 상당히 낮았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눈으로 확인해 본 결과, 문을 열고 들어서는 손님들이 현저히 줄고 있었기 때문.
오후 7시 광화문에 도착한 기자의 눈에 띈 것 중 가장 이채로웠던 것이 바로 이 것. 만일의 사태에 대비, 종로경찰서와 소방서 대원들이 긴급출동해 센터까지 설치했다. 그러나, 이 날 불의의 사고는 없었다고 본다. 선진 시민 의식을 보여준 응원 문화는 그런 우려를 말끔히 씻기에 충분했다.
경기가 시작되자 길게 십렬종대로 늘어선 세종문화회관 앞 응원현장의 시민들은 모두가 한 마음이 됐다. '대한민국'을 연호하며 함성을 지르는 군중들의 목소리는 실제 경기장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맥주를 마시며 응원하는 이들, 아이들의 손을 잡고 돗자리깔고 응원하는 가족응원단, 연인, 친구들과 함께 과자 봉지를 들고 허기를 달래는 열성파 등등 수 많은 '대한국인'들의 살아있는 눈빛을 볼 수 있었다.
한국의 16강 진출이 확정되자, 수 많은 사람들은 서로 얼싸안고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오후 10시 25분경 경기가 끝났지만, 새벽녁까지 귀가를 하지 않는 응원족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특히, 대학로에서는 넓은 마로니에 공원을 무대 삼아 '젊은 그대', '아리랑' 등을 부르며 모르는 사람들과도 쉽게 어깨동무를 했다. '애국가'를 부르는 순간에는 이미 눈물을 고이는 이도 있었으며,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에 대해 크게 자랑스러워 하는 모습들이었다.
대한민국. 태극기. 애국가. 한민족. 우리는 하나였다. 모두가 한 목소리로 대한민국을 연호했다. 광복때도 이러했을까. 태극기는 이제 더 이상 고고한 권위의 상징이 아니었다. 젊은 세대들에게 하나의 패션 액세서리로 자리매김해 가는 느낌이다. 이제 18일(화) 이탈리아와 8강을 위해 싸운다. 다시 한번 모이자.

단독취재(2002년 6월 14일)
[현장리포트] - 한국:포르투갈 경기 응원 현장(서울 대학로&광화문)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