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kGGM 일반기사 ]
"우리는 하나였다"
광화문 10만명! 대학로 5만명!
하나가 된 날이었다. 길거리의 양아치를, 폭주족을 경찰이 보고 웃는다. 태극기 물결 휘날리며 온 나라가 하나가 됐다. 정쟁과 이념 갈등, 모든 범죄는 사라진 하루였다. 이 땅에 태어나 다시 없을 애국심 깊이 새겼을 시간. 지난 4일 10만명의 시민이 운집한 광화문 사거리를 현장 보고 한다.
☞ 오 필승 코리아! 영원하라!
# 1 "왜 차량 통제를 안하는데!"
오후 7시 30분. 광화문 사거리는 이미 인파의 물결로 동맥경화를 앓는 듯, 편도 8차선 중 1차선을 그들에게 내주고 있었다. 종종 "이런 날 왜 차량 통제를 하지 않느냐"는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기도 했지만, 그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이뤄졌다.
2002년 6월 4일 오후 7시 30분 광화문 네거리.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사옥의 모니터를 통해 한국과 폴란드전을 관전하러 온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자리를 잡고 있다. 이날 광화문에는 약 10만명의 시민이 운집해 '대한민국의 힘'을 보여줬다. ⓟ okGGM 불탄고구마
경찰 시위진압대 차량의 격앙된 목소리도 경기가 시작되자 4차선을 점령한 시민들에게 아무 말도 못하고 돌아갔으며, 시민들은 비교적 질서정연한 모습으로 한국 경기를 시청했다.
지난 98년 프랑스월드컵 당시, 한국과 멕시코 전때만 해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이지 않았다. 기껏해야 1000명 정도. 그러나, 어제는 종로 방향에서 서대문 방향을 완전히 통제한 것만 봐도 대략 10만명이 넘어 보였다.
어떤 이는 광화문 사거리의 이순신 동상에 태극기를 꽂으려 올라서려는 이도 있었고, 간이 화장실탑에 올라가 경기를 관전하기도 했으며, 팡파르와 바디 페인팅으로 치장한 '대한국인'들로 넘실댔다. 누가 붉은 악마이고, 누가 일반 시민이란 말인가. 모두가 한국인이었고, 모두가 대한민국을 외쳤다.
오후 10시 30분. 경기가 끝나자 사람들은 모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연신 '대한민국'을 외쳐댔다. '오! 필승 코리아!'도 함께 부르며 거리를 행진, 종로까지 그 물결이 이어졌다.
# 2 차량과 시민, 경적과 박수로 '의사소통'
크리스마스나 연말 종묘에서나 있음직한 휴대폰 통화 불능 사태가 빚어졌다. 하늘에 휴대폰을 치켜들고 '터지게 만들려는 노력'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인산인해를 이뤄 광화문에서 친구나 동료를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 중 줄잡아 수백명이 '나홀로 관람'을 했으리라.
또한, 경기가 끝나자 차량 경적이 일제히 '빵빵빵빵빵'을 울려 댔으니... 그것은 바로 '붉은 악마'의 응원 박수가 아니더냐. 짝짝짝짝짝! 대한민국! 정말 신기했다. 남미에서나 유럽에서 있음직한 일이 어제 한국에서도 벌어진 것이다. 기쁨의 경적! 경찰도 흐뭇하게 웃었다. 누가 직무유기라고 따질테냐!
# 3 전광판 운영 다소 미숙 동아일보 사옥 옥상과 코리아나호텔 빌딩에 붙은 전광판 두 개를 이용해 시민 10만명이 시청했으니 가공할 만한 광고 효과를 톡톡히 봤을 것이다. 그러나, 전반전 20분 경 동아일보 사옥 옥상의 모니터는 두어번 꺼졌다 켜짐을 반복, 시민들의 높은(?) 원성을 샀다. 자연스레 눈길은 조선일보 전광판으로 이동. 하나 아쉬웠던 것은 프레스센터에 설치된 전광판은 축구 경기 내내 '광고'만 내보내 멀리서 시청이 불가능했던 다수의 시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는 점이다. '왜 경기를 내보내지 않았을까' 라는 의문은 아직도 남는다. 세종문화회관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가로수와 이정표 등을 피해 머리를 연신 가로세로로 움직여야 했다.
단독취재(2002년 6월 4일) - 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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