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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folio/일반기사[1999~2002]

[현장리포트] - 한국:폴란드 경기 응원 현장(서울 광화문)

[ okGGM 일반기사 ] 
"우리는 하나였다"
광화문 10만명! 대학로 5만명!

 

하나가 된 날이었다. 길거리의 양아치를, 폭주족을 경찰이 보고 웃는다. 태극기 물결 휘날리며 온 나라가 하나가 됐다. 정쟁과 이념 갈등, 모든 범죄는 사라진 하루였다. 이 땅에 태어나 다시 없을 애국심 깊이 새겼을 시간. 지난 4일 10만명의 시민이 운집한 광화문 사거리를 현장 보고 한다.


☞ 오 필승 코리아! 영원하라!


# 1 "왜 차량 통제를 안하는데!"


오후 7시 30분. 광화문 사거리는 이미 인파의 물결로 동맥경화를 앓는 듯, 편도 8차선 중 1차선을 그들에게 내주고 있었다. 종종 "이런 날 왜 차량 통제를 하지 않느냐"는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기도 했지만, 그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이뤄졌다.


2002년 6월 4일 오후 7시 30분 광화문 네거리.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사옥의 모니터를 통해 한국과 폴란드전을 관전하러 온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자리를 잡고 있다. 이날 광화문에는 약 10만명의 시민이 운집해 '대한민국의 힘'을 보여줬다. ⓟ okGGM 불탄고구마
경찰 시위진압대 차량의 격앙된 목소리도 경기가 시작되자 4차선을 점령한 시민들에게 아무 말도 못하고 돌아갔으며, 시민들은 비교적 질서정연한 모습으로 한국 경기를 시청했다.


지난 98년 프랑스월드컵 당시, 한국과 멕시코 전때만 해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이지 않았다. 기껏해야 1000명 정도. 그러나, 어제는 종로 방향에서 서대문 방향을 완전히 통제한 것만 봐도 대략 10만명이 넘어 보였다.


어떤 이는 광화문 사거리의 이순신 동상에 태극기를 꽂으려 올라서려는 이도 있었고, 간이 화장실탑에 올라가 경기를 관전하기도 했으며, 팡파르와 바디 페인팅으로 치장한 '대한국인'들로 넘실댔다. 누가 붉은 악마이고, 누가 일반 시민이란 말인가. 모두가 한국인이었고, 모두가 대한민국을 외쳤다.


오후 10시 30분. 경기가 끝나자 사람들은 모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연신 '대한민국'을 외쳐댔다. '오! 필승 코리아!'도 함께 부르며 거리를 행진, 종로까지 그 물결이 이어졌다.


# 2 차량과 시민, 경적과 박수로 '의사소통'


크리스마스나 연말 종묘에서나 있음직한 휴대폰 통화 불능 사태가 빚어졌다. 하늘에 휴대폰을 치켜들고 '터지게 만들려는 노력'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인산인해를 이뤄 광화문에서 친구나 동료를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 중 줄잡아 수백명이 '나홀로 관람'을 했으리라.


또한, 경기가 끝나자 차량 경적이 일제히 '빵빵빵빵빵'을 울려 댔으니... 그것은 바로 '붉은 악마'의 응원 박수가 아니더냐. 짝짝짝짝짝! 대한민국! 정말 신기했다. 남미에서나 유럽에서 있음직한 일이 어제 한국에서도 벌어진 것이다. 기쁨의 경적! 경찰도 흐뭇하게 웃었다. 누가 직무유기라고 따질테냐!

 

# 3 전광판 운영 다소 미숙

동아일보 사옥 옥상과 코리아나호텔 빌딩에 붙은 전광판 두 개를 이용해 시민 10만명이 시청했으니 가공할 만한 광고 효과를 톡톡히 봤을 것이다. 그러나, 전반전 20분 경 동아일보 사옥 옥상의 모니터는 두어번 꺼졌다 켜짐을 반복, 시민들의 높은(?) 원성을 샀다. 자연스레 눈길은 조선일보 전광판으로 이동.

하나 아쉬웠던 것은 프레스센터에 설치된 전광판은 축구 경기 내내 '광고'만 내보내 멀리서 시청이 불가능했던 다수의 시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는 점이다. '왜 경기를 내보내지 않았을까' 라는 의문은 아직도 남는다. 세종문화회관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가로수와 이정표 등을 피해 머리를 연신 가로세로로 움직여야 했다.

6월 4일 오후 7시 20분경 지하철 5호선. 교보문고 방향은 아예 시민들의 발이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운집해 반대 방향인 세종문화회관쪽으로 나왔다. 역시 만원. 오후 8시를 넘어서면서 지하철 5호선은 광화문역을 무정차 통과했다고 한다.
광화문역 8번출구 앞에 마련된 '서울드럼페스티벌' 공연 현장이다. 대형 멀티비전이 있어 축구 경기 관람이 가능하리라 예상한 시민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홍보 효과를 꽤 컸을 듯. 그러나, 멀티비전으로 축구 경기를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세종문화회관 곁길을 따라 광화문 네거리로 나오니 사람들이 벌써 5만명은 모인 듯. 이때 시각이 오후 7시 30분. 로즈버드 테이크아웃샵과 배스킨 라빈스, KFC 등은 한국 경기 덕에 100%이상 신장된 매출을 보였을 것으로 예상. 순수 국산 브랜드인 계란빵파는 아줌마와 구멍가게 아저씨도 연신 희희낙낙. 이 날 광화문과 종로 주변의 편의점은 음료수, 물 등이 모자라는 진풍경을 연출. 심지어 문을 닫는 편의점이 생길 정도였다. 편의점이 문을 닫다니. -_-;
경찰은 적은 수로 시민들의 발을 묶을 수 있다고 판단했던 걸까. 플레쉬를 터뜨리는 사진 기자들도 그들과 같이 취급했다. 그러나, 오후 8시가 넘어서자 밀려드는 시민들을 경찰 몇개 중대가 막기에는 역부족, 국내 최고의 넓이를 자랑하는 편도 8차선의 광화문 네거리는 시청방면으로는 4차선, 종로와 서대문 방면은 전면통제를 이뤄냈다. 군중의 힘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세종문화회관 앞. 솜사탕 파는 아저씨와 연신 삑~ 소리를 내는 붉은 악마 용품 판매상인들이 즐비했다. 특히, 계란빵 파는 아저씨와 핫도그 파는 아줌마의 어제 매상은 평일에 비해 10배는 넘었을 것. 그래도, 시민들은 기쁜 마음으로 그것으로 요기하면서 이 곳에서부터 동아일보 사옥 전광판을 주시했다.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기뻤으리라.
어디가 땅이고, 어디가 하늘이더냐. 어디가 도로이고, 어디가 인도이더냐.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상황이다. 돌아서 갈 수도 없고, 그저 서 있는 그 자리가 바로 시청 가능한 자리. 그나마 지금까지는 양호한 편에 속한다. 오후 8시를 넘어서면서 이 곳은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그러나, 곧 질서를 지켜 시민들은 조용히 앉아 경기를 관전했다.
세종문화회관 계단. 모CF에 나올만큼 유명한 계단이다. 그러나, 이 곳의 사람들은 무얼 보는지 경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앉아 있었다. 그렇다고 대형 멀티비전이 있는 것도 아닌데. 태권도 시범이 있긴 했지만, 그다지 눈길을 끌진 못했다.
경기시작 30분전. 벨기에와 일본의 경기 결과를 알려주자, 사람들은 일제 환호를 보낸다. 일본이 후반 23분까지 2:1로 이기고 있었으나, 후반 29분 2:2로 동점으로 표시되자 많은 사람들은 야유와 환호를 반복했다.
경기를 마칠 즈음, 시민들은 이미 한국의 첫승을 예감했고 오후 10시 25분, 경기가 끝나자 일제히 일어나 '대한민국'을 외쳤다. 이 기쁨, 이 감동! 이 순간만큼은 정쟁도, 이념갈등도, 범죄도 없었다. 모두가 하나가 된 순간이었다.
경기가 끝나고도 자리를 뜰 줄 몰랐던 광화문의 응원현장. 오후 11시가 다 되서야 이들은 카메라 플레쉬 터뜨리는 것을 멈추고 삼삼오오 모여 술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들이 남기고 간 대한민국의 영혼과 순수한 열정으로 광화문 大戰의 하루가 마감되고 있었다.

단독취재(2002년 6월 4일)
[현장리포트] - 한국:폴란드 경기 응원 현장(서울 광화문)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