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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folio/일반기사[1999~2002]

가을 + 사랑 + 이별 = 천일야화(千一夜話)?

[ okGGM 일반기사 ] 
 가을 + 사랑 + 이별 = 천일야화(千一夜話)?

 
    가을이다. 아침 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예사롭지 않다. 계절마다 향기가 있다지만 요사이 불어오는 바람은 가을의 전형을 보여주는 듯 하다. 한창 후덥지근했던 여름날의 추억을 뒤로하고 나무 그늘아래에서 책 한권 꺼내 읽는 재미도 쏠쏠할 것 같다. 특히 남녀 사랑이야기가 아름답게 펼쳐지는 로맨스 소설 한권 정도면 이 가을, 충분히 고독해지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 98년 설립... 현재까지 20여권 출판


 로망(roman)은 중세 프랑스의 운문체 소설을 그 기원으로 하며 현대를 살아가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한번쯤은 접했을 법한 '사랑이야기'를 그 중심으로 한다. '사랑'이라 함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현재까지도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 풋풋한 소녀의 첫사랑을 간직한 이들에게는 '아름다움'으로, 가슴 저린 이들에게는 '아픔'으로 기억'된다. 사랑을 하게 되면 시인이 된다고 했던가. 누구나 한번쯤은 가슴 저린 사랑으로 시 몇 구절은 써봤을 지난 시절을 생각하면 로맨스 소설에 손이 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1998년 7월 31일, 천리안에 이런 이들의 욕구를 채워줄 로맨스 소설 동호회가 생겼다. 현재 5대 시삽까지 이어지면서 그 동안 연재됐던 소설만큼이나 수많은 얘깃거리들이 만들어 졌다. 현재 시삽을 맡고 있는 김태양씨는 "현재 가입자 수가 750여명을 넘어서고 있다"면서 "40세 이상의 회원들도 130여명에 달할 만큼 이 곳은 나이와 성별에 상관없이 많은 회원들로 매일 게시판이 북적거린다"고 말했다.


실제 천일야화의 게시판은 하루에 최고 300여건이 올라올 만큼 문전성시를 이룬다. 불과 설립 2년여만에 천리안내 동호회들 중에서 당당히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것. 추천해주고 싶은 동호회 BEST 3위에 올라있는 천일야화의 회원수는 타 동호회에 비해 많은 편은 아니지만, 그 활동력 만큼은 타 동호회 못지 않다. 현재도 매일 10여명의 신입 회원들의 가입신청서를 받고 있다고.


천일야화란 의미는 아주 먼 옛날 아라비아 나이트의 세라자드가 1000일 동안 왕에게 매일 자신의 목숨을 걸고 이야기를 꾸며나간데서 유래했다. 그러나 이보다는 '무궁무진한 이야기 보따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는 현재 천일야화란 동호회로 다시 태어나, 그 이름에 걸맞게 실제 동호회 게시판에는 수많은 로맨스 소설들이 장식되고 있다.


"누구나 글을 쓰고 싶고 읽고 싶다면 모두가 회원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끼리 얘기로 '문자중독증'이라고 하는 말로 스스로를 '글쟁이'로 만들지요. 많게는 월 30여권의 책을 읽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니까요."


 문자중독증이라고 당당히 말하는 3대 운영진 국경아씨. 그녀는 천일야화에서 그 동안 출간된 책들을 소개해 줬다.


올 3월에 출간된 '해적의 여자'(이진현)를 비롯해 '아라사의 서우여'(이선미), '백번째 남자', '사막의 남자'(박윤후), '에덴의 초상'(이우희), '공녀'(김지혜)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만큼 천일야화의 이름을 빌어 나온 책은 무척 많다. 특히 '노처녀 길들이기'(박윤후)를 비롯해 '내사랑 컴맨'(고영희), '영원보다 긴 사랑'(김정선), '부여별곡'(박옥수) 등은 1회부터 4회까지 공모전에서 가작으로 당선될 만큼 회원들의 필력을 인정받고 있다.


☞ 다양한 콘텐츠 자랑... 연 1회 세미나 주최


이러한 책 출간 말고도 오프라인에서의 활동은 온라인 활동 못지 않게 활발하다. 연 1회 개최되는 세미나는 천일야화만의 자랑. 지난여름 경주에서 열린 '천일야화 로맨스소설 세미나'에는 전국의 70여명에 달하는 회원들이 모여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런 형식의 전국모임은 연 2회 열리는데 겨울에는 친목을 위주로 개최된다고.


"세미나를 통해 평소에 모르고 지냈던 회원들과 로맨스소설을 보다 깊이 토론하며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라고 시삽 김태양씨는 말한다. 이런 맥락에서 천일야화의 콘텐츠 중 '비평방'은 박사과정에 있는 사람들의 글이 올라 올 정도로 그 수준은 매우 높다. 천일야화의 세미나 개최는 그리 생소한 일만은 아닌 것이다.


로맨스 소설은 소재의 다양성을 이유로 전체 서적 시장의 35∼40%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로맨스 소설 출판사인 할리퀸 엔터프라이즈는 연간 1억 9천만권에 달하는 책을 판매하고 있다. 실로 엄청난 양이 아닐 수 없다.


로맨스 소설 전문 작가인 캐시 린쯔는 "로맨스 소설에는 본질적으로 문화적인 이질감이나 정치적인 대립을 뛰어넘어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점이 깔려있다"고 말하며 로맨스 소설을 역사 로맨스와 현대 로맨스로 나눴다.


 이처럼 로맨스 소설이 오랜 세월 흘러도 변하지 않는 이유가 뭘까. 아울러 로맨스 소설 시장의 팽창은 곧 로맨스 독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반증인가.


이런 독자들의 갈증을 풀어주기라도 하듯 천일야화는 타 동호회보다 비교적 많은 콘텐츠를 포진해 놓고 있다. '낙서담벼락'으로 기분을 가볍게 만들 수 있는가 하면 '천동 번개'를 통해 오프모임을 주선할 수도 있다. 회원이면 누구나 글을 올릴 수 있는 '몽중인'을 비롯해 '비몽사몽', '동상이몽' 등의 콘텐츠는 회원들의 창작열과 독서 욕구를 충분히 채워줄만 하다. 이외에도 각 지역별, 취미별로 만들어진 방과 실제 작품으로 출간된 글들을 모아놓은 '로맨스 리뷰'와 '환상의 섬' 등은 천일야화의 최고 인기 콘텐츠다.


그러나 운영진 측은 작가들의 저작권과 관련해 그들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현재 출판되고 있는 작품에 대해서는 게시판 '삭제' 조치를 내리고 있다고 한다. 현재 판매되고 있는 책을 무단으로 게재할 수 없다는 방침인 것.


☞ 이 가을, "로맨스 소설 한권 어때요?"


"해외에 지불되는 로열티가 어마어마 합니다. 로맨스 소설 한권 출판이 곧 나라사랑일 수도 있는 것이죠. 우리네 정서에 꼭 맞는 그런 로맨스 소설들이 더욱 많이 나와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세계적으로도 책을 읽지 않는 나라로 유명하다. 이웃나라 일본에 비해 월 1권도 채 읽지 않는다는 조사결과는 참으로 부끄럽게 만든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고,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이젠 그런 얘기들을 쉽게 흘려버릴 수 없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수집벽이 있다. 책을 읽건 안읽건 그것이 중요한 잣대일 수도 있겠으나, 때론 천일야화에서는 이런 것도 하나의 이벤트가 되기도 한다. 그 옛날, 검은 교복을 입고 빵집이나 교실에서 선생님들의 눈을 피해가며 읽었던 그 눈물의 로맨스 소설들을 천일야화에서는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다. 청계천의 고서적상을 돌며 구한 낡은 구릿빛의 로맨스 소설들을 어렵게 구해 저렴한 가격에 내놓는다. 경매 이벤트를 펼친다는 얘기.


단가 1,000원짜리 책 한권은 어느새 1∼2만원짜리로 둔갑하기 일쑤다. 이런 것도 그나마 책이 있을 때 얘기다. 중고서점에서는 아예 희귀본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판매하지 않을 때도 많다고.


새천년 첫 가을에 가장 어울릴만한 동호회 천일야화. 문자 중독증에 걸렸다고 말하는 그들은 아마도 이 가을, 어느 곳을 가더라도 손에 책 한권 씩은 들려 있을 듯 하다. 그런 의미에서 오랜만에 싱그런 햇살을 맞으며 서점으로 나가 로맨스 소설 한 장을 넘겨보는 것은 어떨까. 나즈막히 그들의 음성이 들리는 듯 하다.


"우리들의 '사랑이야기' 한번 들어볼래요?"


천리안 웹진 천리안월드 게재(2000년 9월)
[동호회소식] - 천리안 로맨스소설 동호회 (go Ro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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