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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folio/일반기사[1999~2002]

한 나라의 문화 잣대... '화장실 문화'

[ okGGM 일반기사 ] 
 한 나라의 문화 잣대... '화장실 문화'

 
     화장실은 그 나라 문화의 척도로 여겨지고 있다. '화장실 문화'라는 말이 있듯이 '뒤'가 구리지 않아야 나라가 번성한다는 얘기다. 일부 선진국의 화장실은 만남의 장소로 이용될 정도로 청결하고 안락하다. 이런 선진국에 비하면 현저히 뒤떨어진 우리의 공중 화장실의 실태. 그 현장으로 달려가 살펴보았다.


☞ 수십만 유동인구를 수용할 3평 남짓한 크기


지난 4월 3일 월요일 오전 8시 30분. 서울 이화동 대학로의 공중화장실. 마로니에 나무가 탐스럽게 봄향기를 뽐내며 만발한 이 곳에는 유일하게 화장실이 한 곳 있다. 월요일 오전 시간이어서 그럴까. 의외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하지만 지난 일요일 저녁에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난 후의 처참한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남자 화장실의 경우 소변기가 6개, 대변기가 3개 달려 있는데 제대로 작동되는 것이 거의 없었다. 문짝은 누가 발로 찼는지 너덜너덜했고, 거울은 언제 깨졌는지 흉CLR스럽게 금이 가 있다. 대학로 화장실을 수년간 청소해 왔다는 한 아주머니는 "거울을 달아놔도 1주일이 못간다. 그래서 구청에선 손을 놓은 지 오래다"고 말한다.


대화 도중, 세면대에선 물이 줄줄 흐르고 있다. 그런 이유로 바닥은 물이 흥건하게 고여있다. 드나드는 사람들의 신발이 젖을 수밖에 없다. 여자 화장실은 어떨까. 화장실에서 막 나온 앳된 소녀로 보이는 한 여성을 붙잡아 청결 상태에 대해 물어봤다.


"대학로에 나올 때마다 여기 공중화장실을 이용해요. 마땅히 주변에 갈 공중화장실이 없기 때문에 이용하는데 여간 불편한게 아녜요." 국내 공중화장실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서울에서 가장 유동인구가 많은 곳 중의 하나인 지하철 1호선 종각역 화장실. 화장실 입구의 크기가 왠만한 남자 한 명이 통과하기도 힘들만큼 좁다. 다리를 옆으로 해 '게'처럼 걸어야 간신히 들어갈 수 있을 정도다. 안을 들여다보면 괜히 들어왔지 싶다. 매쾌한 신냄새가 실내에 진동하고 수백만이 움직이는 거대한 덩치의 지하철 역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화장실 크기는 고작 3평 남짓하다.


이런 구조에 갑자기 사람들이 몰리기라도 하면 화장실 밖에서 꼼짝없이 줄서서 기다려야만 한다. 대변기는 두 개. 대변기도 양변기가 아니다. 오히려 양변기가 아닌 것이 다행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벽을 쳐다보니 온갖 낙서들이 즐비하다. '동성애구함 011-***-****'부터 시작해서 '신장삽니다' 등 각양각색이다.


☞ 공중 화장실은 '낙서 마당'


그렇다면 공중화장실의 '낙서'는 어떤가. 요즘의 낙서는 예전의 낙서들이 주로 '애인구함'이었던 것과는 달리 요즘 세태(?)를 반영하듯, '동성애구함'으로 바뀌어 그들의 보다 과감해진 욕구(?)를 엿볼 수 있다. 인생의 가르침을 배울 수 있는 철학적인 글귀부터 저질 단어나 性과 관련된 단어들이 난무하는 화장실의 낙서가 바로 이 시대의 흐름을 대변하고 있다.


낙서를 유형별로 살펴보면,


▶'화장실 낙서는 혼자있을 때 한다. 확실한 독자가 있다. 늘 새롭다. 욕해도 뭐라 그러는 사람이 없다. 절박한 상황에서 쓴 글들이라 가슴에 팍팍 묻힌다', '내가 항문에 힘쓰고 있는 동안 다들 학문에 힘쓰고 있겠군' 식의 자기독백형


▶'내 똥이 굵다하되 사람속의 변이로다/ 힘주고 못빼낼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힘주고 똥만 굵다 하더라', '똥이 내 몸안에/ 있을때까지/ 그는 단지 똥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배에 힘을 주는 순간/ 그는 몸 밖으로 나와/ 하나의 예술이 되었다', '사람똥 길다하되 몸안의 똥이로다/ 힘주고 또 힘주면 못눌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아니힘주고 똥만길다 하여라.(시조의 율격에 맞춰 고통을 이기는 인내가 부족함을 한탄한 시)' 라는 식의 시조시인형


▶'신은 죽었다. 청소아줌마 : 넌 잡히면 죽는다!', '오른쪽을 보시오. 왼쪽을 보시오' 식의 황당형


▶'그는 똑똑했다. 나도 똑똑했다. 그는 나의 똑똑함에 몸둘바 몰라 했다.', '왜 뉴턴은 사과가 아래로 떨어지는 것만 발견하고 똥이 아래로 떨어지는 건 발견하지 못했을까' 하는 식의 생각요구형


▶'세상에서 가장 영리한 사람은 자기의 영리함을 감출 줄 아는 사람이다' 라는 식의 철학도형


▶'애인구함 011-***-****', '멋진남자 있음' 라는 식의 애인구걸형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며 낙서를 간간히 즐긴다는 H대 류모씨(27·남)는 "낙서는 대학문화의 산물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예전에 비하면 그리 많진 않지만, 그래도 그것들을 읽는 낙에 볼일 보는 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며 낙서 예찬론을 폈다.


☞ 시민들의 올바른 의식 정립 필요


화장실은 한 나라의 얼굴이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의 불만족 중에 수위를 차지하는 세 가지가 '의사소통 미비, 교통 체증, 화장실 불결'이다. 최근 '공중 화장실을 더럽히면 범칙금을 물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55% 이상이 '공중화장실을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화장실을 불결하게 쓰는 사람에 대해 법적인 규제나 범칙금 제도가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국민 의식이 변하고 있다는 증거다.


다행스럽게도 이런 흐름에 발맞춰 최근 서울시는 공원이나 주요 관광지 2,900여개 음식점의 화장실을 올해 안으로 일제 정비한다는 방침을 내렸다. 평균 사용 시간이 45초인 남성보다 약 3배에 가까운 3분이 소요되는 여성 화장실도 대폭 늘릴 계획이다. 또한 국립공원내 공중화장실도 2002년까지 전면 개·보수하고, '에티켓 벨' 등이 설치된 여성·유아용 위생 편의 시설도 대폭 확충하기로 했다. 비발디의 '사계'나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이 울려퍼지며 시골 풍경이 담긴 그림이 걸려있고 커피향 가득한 공간으로 재탄생 할 선진국형 화장실의 탄생이 그리 멀지않아 보인다.


하지만 구석구석 들춰보면 '선진국형 화장실'은 생각과 달리 상당히 먼 곳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공중화장실이 전무한 거리에서 많은 사람들은 자물쇠가 걸려있는 빌딩을 전전하면서 곤혹스런 상황에 처하곤 한다.


 요즘 카페나 호프집의 남녀공용인 화장실도 많은 여성 시민들이 불편해 하는 대목으로 술취한 남성이 구토한 오물을 그대로 보며 볼일을 봐야하는 경우나 남성이 여성의 옷 벗는 소리까지 적나라하게 들어야 하는 것이 문제시되고 있다. 1류 호텔급은 아니더라도 향기가 나고 휴지가 있는 화장실의 최소한의 문화를 시민들은 원할 뿐인데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행히 일부 의식있는 곳에서 화장실 문화를 제조명하려는 움직임은 시의적절하고 바람직스러워 보인다. 서울 개봉관인 J극장인 경우는 지난해 '아름다운 화장실 대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는데 안을 들여다보면 호텔 라운지처럼 여성 휴게실도 마련되어 있다. 화장실인지 호텔 라운지인지 착각이 들 정도.


또 화장실 사각지대라는 터미널이나 기차역사내의 화장실도 조금씩 변화되고 있다. 강남 고속터미널의 경우, 최근 몇 년간 공사를 통해 거의 '호텔급'으로 새단장했다. 시민들에게 이제 더 이상 화장실이 '더러운 장소'로 기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역력해 보인다.


그러나 외형만 구색을 갖춘다고 곧바로 선진국형 화장실 문화가 창출되는 것은 아니다. 외형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용자들의 올바른 의식 수준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는 화장실을 만남의 장소로도 정할 수 있고 피곤한 사람들에겐 수면을 취할 수 있는 공간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싶다. '선진국형 화장실'은 이런 의식의 변화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 하이힐과 코트의 유래


여성의 섹시한 매력을 더해 주는 하이힐은 17세기 초 거리에 내다버린 오물 때문에 탄생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당시는 길을 가다가 오물을 밟는 일이 예사였기 때문에 아무리 아름답게 차려입어도 드레스가 오물에 묻어 더럽혀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 문제의 해결책으로 탄생한 하이힐은 지금의 감각적인 디자인과는 무척 다른 모습이었다. 현재 유행하는 '통굽'을 연상하면 다소 쉬울 지 모르겠다. 높이 60cm까지 올라간 힐이 등장하기에 이르러 여성들은 모두 '어기적'거리며 걸을 수 밖에 없었다. 이 모습이 섹스어필한다고 하여 점차 디자인이 개선된 것.


이와 함께 영국 신사들이 숙녀와 함께 걸을 때 여성을 도로 안쪽으로 걷게 하는 '매너'도 역시 화장실과 관련돼 생겨난 것이다. 18세기 말까지 영국은 실내에 비치한 변기에 볼일을 보고 오물을 2층 창문 밖으로 그냥 쏟아버렸는데 2층이 도로 쪽으로 돌출되어 있었기 때문에 인도 안쪽으로 걷는 여성은 '안전'했던 것이다. 그리고 온갖 오물을 뒤집어 쓸 두려움(?)때문에 바깥쪽으로만 걸어야 했던 신사들이 고안해 낸 것이 바로 현재의 '버버리 코트'라 불리고 있는 '코트'였다. 오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한 한 방편이었던 것이다.


서울우유 게재(2000년)
[문화읽기] - 공중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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