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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folio/일반기사[1999~2002]

누런 빛깔의 맛이 일품인 '연엽주'

[ okGGM 일반기사 ] 
 누런 빛깔의 맛이 일품인 '연엽주'

 
오랜 세월동안 전통을 고수하며 지내온 사람들은 그 세월만큼이나 오래된 유물같은 것이 꼭 하나씩 있다. 충남 아산 외암리 민속마을 내에서 200여년을 넘게 '연엽주'를 만들어온 이득선(59)씨와 최황규(58)씨 부부. 그래서 그들의 삶은 더 진지해 보인다.


☞ 연엽주로 무형문화제 제11호 지정


지금으로부터 130여년전 당시 시가로 3억원에 달하는 거금을 고종황제께서 내놓았다. 충남 아산군 송악면 외암리 민속마을내에 위치한 이씨 종가집은 과거 할아버지께서 '판서'로 재직중일 때 하사받은 집이다. 현재는 '참판댁'이라 불리우며 이득선씨와 최황규씨가 살고 있는데 지난해 정부의 지원으로 개·보수 공사를 끝냈다. 130여년간 한번도 공사를 하지 않았던 이유로 집터가 많이 낡아 일전부터 공사를 하려했으나, 요즘 들어 국내에서 유일하게 연엽주를 만든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 온 관광객들로 인해 기왓장과 대문 등을 새로 고치게 된 것이다.


중요 건축 문화재 195호로 지정되어 있는 이 집은 면적이 900여평에 이르며 방만 40칸이 넘어 옛날 양반가옥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또 남방계 가옥 구조인 'ㄴ'자가 아닌 'ㅁ'자형 구조로 되어 있으며 돌담이 집 주변으로 늘어서 고즈넉한 분위기가 물씬 베어난다.


이러한 종가집에 지난 1966년에 시집와 30여년을 넘게 맏며느리로 살아온 최씨는 현재 '연엽주'로 무형문화재 제11호에 지정돼 있다. 연엽주는 약 200여년전 이씨의 5대조 할아버지께서 당시 '비서감승(현재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재직중일 때 왕의 명으로 만들어진 술이다. 이씨 가문의 귀한 술로 전해져 내려와 현재 이씨에게까지 전수된 것. 연엽주의 탄생 비화는 대략 이렇다. 당시 온 나라에 가뭄이 들어 상소문이 궁궐에 쏟아지게 됐는데 임금이 직접 백성들의 생활상을 보고 '몸에 이로운 술을 개발하라'고 지시해 만들어졌다. 이와 더불어 그 제작비법을 세세히 기록한 책자를 제작해 지금까지 보존돼 내려오고 있다.


"정말 힘들었어. 종가 시집살이가 뭐 그리 쉽겠어. 매일 같은 일을 하면서도 표하나 안나는 큰 집이 원망스러웠지. 그런데 연엽주까지 배웠으니 오죽 하겠어" '몸에 이로운 술'이라 자랑하는 최씨의 말처럼 연엽주는 맛이 독특했다. 그러나 현재는 그 제작이 수월치 않아 주문 제작만 받는다고 한다.


☞ 11가지 재료로 일주일 정도 숙성


연엽주는 언뜻 보기엔 보리차같아 보이지만 연근을 비롯해 멥쌀과 누룩 찹쌀 솔잎 감초 등 6가지의 재료에 도꼬마리(개울에 서식하는 대추씨같은 풀)와 이팥 녹두 옥수수 엿질금 등을 첨가해 항아리에서 푹 익혀 만든 만큼 과거엔 술이 아닌 '음식'으로 사용됐다. 봄에는 7∼9일, 여름에는 4∼5일이면 완성되는 연엽주는 수백년간 내려왔지만 그 제작 방법은 오로지 이씨의 할머니들과 어머니, 부인만이 알고 있다.


"아들을 셋 뒀는데 큰아들을 지금까지 놀리다가 작년에 장가를 보냈지. 어디 며느리가 있어야지. 잘 만나다가도 이런 집에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안되겠던 모양이야. 그래서 작년에 부엌을 고쳤지. 보일러도 깔고." 현재 큰아들은 지난해 결혼해 온양시내에 거주하며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내후년께 이 집에 들어오게 되면 본격적으로 맏며느리에게 연엽주를 물려줄 계획이다. 그러나 30여년간 종가집의 술을 빚어 온 최씨가 막상 며느리에게 그 비법을 전수하려고 하니 시원섭섭한 느낌이 든 모양이다.


"그래도 아이가 심성이 고와. 안부 전화도 넣고 그래. 종가집에 들어와 살고 싶다고 하더라구"


방이 40칸이나 되는 큰집이지만 현재 사용되고 있는 방은 군대에간 막내아들이 사용하던 방과 안방 등 두 개 뿐이다. 예전에 사랑채와 할아버지가 거주하시던 방, 문지기 방 등 모든 방을 사용할 때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숫자지만, 거친 손마디에 물마를 날이 있는 건 아니다. 지금도 정기적으로 대청소를 해야 종가집의 빛을 잃지 않는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까지 우물로 물을 길어먹었지. 지금은 나은 편이야. 싱크대가 들어왔잖아. 지금 생각해보면 이렇게 큰집에서 오랫동안 산 것을 보면 내가 기가 센 모양이야. 기가 약하면 이렇게 큰집에서 금새 시름시름 앓다가 죽지." 이런 큰집에 사는 덕택인지는 모르나 연엽주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지난해엔 프랑스에서 유학온 대학원생들이 이 집의 구석구석을 돌며 각종 조사를 몇 달간 하더니 "세상에서 제일 좋은 집에 산다"고 말했다고.


☞ 종가집 전통과 현대적 흐름 동시 수용 '노력'


과거 보수적이고 폐쇄적이었던 종가집 가문의 풍토와는 달리 현재 이씨 부부는 현시대의 흐름을 읽어내려는 듯 막내아들에게 운전면허와 컴퓨터 교육을 시키고 있다. 지금은 비록 군대에 가 있지만 제대 후 컴퓨터 한 대를 장만할 계획이다. "쓸만한 로션하나 없이 겨울을 지냈던 과거 생활과 지금은 많이 달라지고 있다"는 최씨의 말처럼 인터넷으로 인해 변하는 세상을 종가집도 조금씩 깨닫고 있다.


"예전에 큰아들이 사귀던 애가 있었는데 이 집을 보더니 귀신이 나올 것 같다고 하더라구. 그래, 내 한 소리했지. 그런데 지금보면 변해야 할 것도 많은 것 같으이." 전통만을 고수했던 과거 종가집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그러나 전통을 쉽사리 버리지 못하는 것도 종가집만의 특색이다. 이렇듯 연엽주처럼 오랜 세월동안 전해져 오는 종가집만의 전통을 이 시대 흐름에 발맞춰 변화시키면 세상은 무척 삭막해질 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30여년을 종가집의 맏며느리로 살아온 최씨의 말은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요즘애들은 남편이랑 자식, 자기밖에 모르는 것 같애. 그러면 안되거든. 전통을 가꿀 줄 알아야 나라가 살지. 햄버거 피자 먹으면서 꼬부랑 말하면 이게 조선인가? 미국이지."


한라공조 사보 게재(2000년 3월)
[종가집을 찾아서] - 충남 아산 연엽주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