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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folio/일반기사[1999~2002]

저패니메이션의 저력은 일본 문화의 상징-일본 애니매이션 편

저패니메이션의 저력은 일본 문화의 상징

 
    만화 하나로 세계 시장을 석권하는 나라 일본. 우리는 아이들이나 보는 유치한 책쯤으로 여기지만 그들에겐 생활이고 업이다. 어린이나 청소년, 성인 할 것 없이 누구나 즐겨보는 일본의 만화산업을 살펴보았다.


☞ 만화책 한해 21억권 생산, 세계시장 점유율 65%


   일본에선 늦은 저녁 신간센을 타는 30∼40대 회사원이나 커피전문점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여대생, 머리가 벗겨지기 시작한 50대도 만화를 본다. 어딜가나 만화책을 붙들고 있는 손에 부끄러움이 없다. 이처럼 일본의 만화는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보는 책이다.


일본은 한해 21억권의 만화책을 쏟아낸다. 한해 35억 달러(98년말 기준)로 추산되며 세계 만화영화시장의 65%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일본내에서만 한 사람당 약 열일곱 권의 책을 읽는 셈. 종류도 매우 다양해 어린이·소년·소녀·청년·레이디·개그 코믹·SF·공포·샐러리맨·육아·게임기 만화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외에 전문 만화도 하나의 분류권을 형성해 지난 1987년 '만화 일본경제입문'이라는 전문 만화책은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만화가 단순히 아이들이나 청소년 오락물이 아님을 증명하는 것으로 일본내에서 만화가 어느 정도의 위치에 서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와 다른 만화 개념인 것이다.


이런 다양한 만화로 일본은 세계 속에 자국의 이미지를 깊게 심어놓고 있다. 그림 위주의 유럽의 만화나 단편 위주의 미국 만화 시장을 평정한 것도 모두 일본의 장편 스토리 중심의 변화무쌍함에 있는 것이다. 이렇듯 만화제국을 형성하고 있는 일본 만화의 역사는 과연 얼마나 됐을까. 패전의 암울한 상황이었던 50년대 초반 어른들은 미래에 대한 꿈이 없었고 어린이들은 마땅한 오락거리가 없었다. 그런 일본인들을 즐겁게 해준 것이 바로 만화였다. 전후세대는 만화에 흠뻑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 데즈카 오사무 등 걸출한 작가군 형성


  그런 탓에 일본 만화영화의 태동기인 50∼60년대의 데즈카 오사무와 성장기인 70년대 마츠모도 레이지, 그리고 비약적 팽창기인 80년대의 미야자키 하야오까지 일본에는 걸출한 작가들이 많았다. 특히 데즈카 오사무는 만화를 영화 못지 않은 인기장르로 끌어올린 작가로 밝은 캐릭터에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작풍은 일본만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철완 아톰', '정글대제', '리본의 기사'가 대표적 작품으로 '정글대제'는 디즈니사가 '라이언킹'으로 리메이크했던 작품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미래소년 코난', '이웃집 토토로', '빨강머리 앤' 등으로 유명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최신작 '헤이세이 너구리전쟁'은 라이언 킹의 흥행수입 18억엔을 훨씬 뛰어넘는 24억엔(약1백90억원)을 벌어들여 미국 만화영화의 콧대를 납작하게 했다. 1993년 일본 영화 흥행순위표를 보면 8위까지의 영화 중 4편이 만화영화여서 영화 흥행 순위표인지 만화영화 흥행 순위표인지 헛갈릴 정도다. 일본의 만화 수출은 세계 점유율이 보여주듯이 엄청나다. 하지만 수출을 위해 만화를 그리지 않는다. '은하철도999'와 '드래곤볼' 등을 제작했던 도에이 애니메이션의 제작부 요시오카 오사무 부장은 "특별히 수출을 고려하지 않는다. 우리 만화가 재미있으니 유럽 아시아 등지에서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한다.


글로벌 영상오락이 되고 있는 일본 만화영화를 보며 무의식중에 일본적 분위기에 젖어 자란 세계 각국의 어린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일본과 일본 상품을 보는 시각이 어떨까. 그래서 일본이 거두고 있는 이익은 로열티나 흥행 수입의 차원을 넘는 것이란 평이 지배적이다.


☞ 만화 하나로 전세계 '정복'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시장을 개척하지 않는 그들의 내면에는 너무나 치밀한 계획성이 배어있다. 만화 하나로 세계를 평정할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들의 성장 배경을 대략 설명하면 이렇다.


 첫째는 일본은 일찍이 만화영화를 실사영화처럼 스토리 중심의 드라마 형식을 빌어 다양하게 만들어 왔다는 점이다. 이것은 가장 큰 성공요인으로 꼽히고 있는데, 만화영화의 종주국인 미국의 만화영화가 해프닝 위주의 단편에 치중하고 있는 동안 일본은 한편의 영화를 그림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둘째, 장르를 다양하게 개발해 냈다. 애정과 액션을 비롯해서 SF(공상과학)은 물론 난해한 아트필름, 성인용 포르노그라피까지 셀수가 없을 만큼 많다.
 셋째, 만화영화의 그림 숫자를 초당 24프레임보다 훨씬 적은 8프레임 이하로 줄이는 등 비용절감의 아이디어를 개발해 제작비를 낮춤으로써 가격 경쟁력을 높였다.
 넷째, 만화영화의 혁명을 가능케 했던 우수한 만화영화 인력이 많았다는 점이다. 일본 국민 전체가 어느 나라 민족보다도 만화와 만화영화를 보고 즐기니 인재가 넘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현재 일본은 만화나 만화영화 이외에 캐릭터 산업과 게임산업에까지 발을 넓히고 있다. 이른바 '만화 파생 산업'의 세계 시장 규모는 연간 1천5백조원이다. 미국의 만화 캐릭터인 '배트맨'이 탄생한 이래 1995년까지 캐릭터 사용 로열티만으로 벌어들인 돈은 무려 1조 6천억원에 이른다. 일본의 '아톰'은 그 종류만도 1,000여종이 넘는다. '슬램덩크'의 작가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일본 만화영화의 경우 문구류를 비롯한 캐릭터 사업에서 버는 돈이 만화 흥행 수익의 3배 내지 5배는 된다."고 캐릭터 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 만화영화에 버금가는 캐릭터 산업


   다케히코는 지난 94년 만화의 히트에 따른 캐릭터사업 수익 등으로 일본 세금 납부 순위에서 3위를 기록할 정도로 돈 방석에 앉아 캐릭터 사업이 뭔가를 보여줬었다. 10대∼20대 젊은 여성이 헬로우 키티 시장 가방을 골라 사고, 초등생은 포켓몬스터 피카츄 손가방만 고집한다. 이런 캐릭터 산업은 일본에서 그 수요와 공급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현재 세계적으로 최고의 캐릭터로 손꼽히고 있는 '포켓몬스터'는 지난 95년 일본에서 게임으로 출시된 뒤 만화·만화영화·캐릭터 상품으로 최고의 인기를 모은 문화상품이다. 지난해 홍콩·대만·미국 등지로 소개되면서 인기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일본에서 포켓몬스터의 시장 규모는 98년 기준 연간 약 4000억엔 정도(한화 약4조원). 심지어 전 일본 항공의 경우 여객기 동체에 포켓몬스터의 그림을 그려 넣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만화영화 방영시간인 일요일 오전에는 어린이들이 외출을 꺼릴 지경이고, 세트 당 28개 짜리 비디오게임이 250만 세트가 넘게 판매됐다는 소식이다. 또 인형 티셔츠 완구 등 캐릭터 상품만 2억 달러 이상의 계약이 체결됐다고 한다.


미국·홍콩 등 해외에서는 금세기 최고의 인기 캐릭터였던 텔레토비가 '포켓몬스터 바람'에 쓰러지고 있을 정도로 폭발적 인기다. 도서출판 대원의 오태엽 팀장은 포켓몬스터의 인기를 '캐릭터의 승리'라고 분석한다. 전기·물·불 등 다양한 특성을 가진 150여 개의 캐릭터들이 포켓몬스터 속에 등장하는데 개성있고 애정이 가는 캐릭터들이 어린이들의 기호에 딱 맞아 떨어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 애완동물에 쏟는 애정과 마찬가지로 '키우기 시스템'이 가진 매력도 한 몫 했다. 포켓몬스터 게임의 경우, 자신의 포켓 몬스터에 관심과 애정을 쏟을수록 힘이 세지고 변신이 가능해 진다. 그것은 얼마전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다마고치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물론 관련상품의 동시 발매도 '포켓몬스터 바람'의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게임이 출시된 이후 애니메이션·출판만화·캐릭터들이 동시에 쏟아져 나왔다. 이처럼 일본의 만화 산업은 출판만화와 만화영화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며 만화와 만화영화, 캐릭터 산업이 동시에 이뤄진다는 사실이다.


☞ 한국의 만화 산업 현주소


일본 만화업계는 현재 자국내 만화를 각국에서 불법 복제하는 것도 일종의 시장을 넓히는 방식으로 여기고 있다. 일단 일본만화에 중독되면 언젠가는 정상적인 작품을 대량으로 찾을 것이라고 예상이다. 이미 한국에서 방영되는 TV만화는 70%이상이 일본 만화다.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12월 유력 시사주간지 '타임'은 일본 인기 만화영화 '포케몬'의 주인공 피카추를 '99 인물'로 선정했다. 일본에서 약 60억엔의 흥행수입을 올린 바 있는 '포케몬'은 지난해 11월 미 전역에서 개봉돼 첫날 1천만달러(약 120억원)의 매출을 기록, 일본 영화의 미국 진출 사상 최대 흥행기록을 세웠었다. 이 기록은 '라이온 킹'의 640만달러를 크게 넘어선 것으로 개봉일 최대 흥행 수익으로 기록됐다.


이런 일본 만화산업의 침략은 지난 98년 일본 문화를 부분적으로 개방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PC통신 나우누리가 지난 98년 10월 12일∼15일간 네티즌을 대상으로 '일본 만화에 대한 의식'을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매우 선호한다'(36%)거나 '선호하는 편'(43%)로 대답해 약 80%가 일본 문화에 호의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들은 '탄탄한 스토리와 세심한 캐릭터 설정'(73%)을 일본 만화의 최대 강점으로 꼽았고, '정교한 애니메이션'(14%), '과장된 그림 자극적인 묘사'(10%)가 특징이라고 했다. 일본의 만화에 대한 사고방식은 자연스럽게 우리 뇌리에 이식될 것이라는 우려와 만화도 하나의 문화상품으로 간주하여 배울건 배워야 한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 와중에 하나 반가운 것은 지난 98년 세간의 화제가 됐던 양영순의 '누들누드'라는 코믹 포르노 애니메이션의 등장이다. 52분안에 3∼5분짜리 에피소드를 11개 묶은 만화영화로 한때 '누들누드 신드롬'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국내 업계에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었다.


총 제작비 4억원으로 미국과 유럽·동남아시아 시장을 공략할 태세에 있는 이 만화영화처럼 이제 우리는 저질의 일본 만화를 무조건 불법 복제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만이 21세기 문화전쟁의 시대에 살아남을 길이다. 독특하고 창의적인 캐릭터 개발과 신선한 기획력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의 공략에 나서지 않으면 안되는 시점에 서 있는 것이다.


현대조선 사외보 게재(2000년 2월)
[세계의 트렌드] - 일본 애니메이션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