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한 심장은 사르르 녹는 군고구마처럼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하세요."
"어떻게 그래, 우리 나이 때 '당신'은 '여보, 당신'할 때 '당신'이야. 죽은 마누라에게만 쓰는 거지. 그게 저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야."
김만석(이순재)은 손녀 김연아(송지효)의 사랑 고백에 관한 조언에 이렇게 답한다. 결국 송이뿐(윤소정)의 생일에 케익을 사이에 두고 수줍은 고백으로 "그대를 사랑합니다."라고 말한다. 한 순간도 행복했던 적 없다던 송이뿐은 결국 눈물을 쏟는다. 독거노인 생활지원금 15만원에 '고맙습니다'를 열댓범은 연거푸 쏟아내던 그녀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영화라고 애초에 알고 봤는데도 또 먹먹하다. "어디 얼마나 슬픈가 보자"라는 식의 거만한 태도를 가졌다면 단숨에 잠들게 하는 강풀의 힘이 그대로 느껴진다. 국내 최고 배우라 할 만한 인물들이 주요 등장인물이라서 그런지, 그 힘은 더욱 시너지를 품고 배가 된다.
나이 먹은 이들, 즉 노인들의 사랑이야기가 이토록 흥행을 할 줄 몰랐을 것이다. 얼마 전 영화 <죽어도 좋아>도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흥행 성적은 미미했다. 그 동안 강풀 원작의 영화들이 줄줄이 고배를 마신 것을 봐도 더욱 그런 예상은 적중하리라 생각됐다. 그러나 결과는 다르다. 현재 개봉 한 달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디지털이 빠르게 세상을 훔쳐가고 있어도 결국 '사랑'은 아날로그 방식이 가장 가슴에 와닿는 명제란 걸 알려주는 셈이다.
많이 웃고 많이 울게 만든 영화다. 먹먹해 짐이 극장 나서고도 지속된다.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 도중에 참지 못하고 "참 마음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영화"라고 혼자 독백하게 만드는 영화다. 영화의 끝자락은 더욱 그렇다. 삶과 죽음의 차이가 종이 한 장으로 느껴지는 순간이 좀차 다가 올 수록 의연해지고, 그들의 삶 속에 투영된 과거의 추억들은 현실이 되기도 하는 것인지 결국 만석은 웃으며 세상과 이별을 고한다. 웃으며 죽을 수 있다는 의미는 뭘까. 개인적으로 스트레스가 심할 수록 폭력적인 영화가 도움이 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많은 생각을 안겨주는 영화가 좋은 것 같다.
제작비 얼마 들이지 않은 영화가 흥행할 때는 무엇보다 구성이 탄탄해서였다. 주로 국내 작품들이 헐리우드의 그것과 비교해 흥행했을 때 얻는 수익물은 주로 '스릴러'나 '휴머니즘 드라마'였던 것만 봐도 그렇다.
지금을 사랑하자. 흐뭇한 미소를 보는 내내 머금게 만드는 말랑말랑한 영화다. 딱딱해진 심장을 모닥불이 냉동 고구마를 녹이듯 사르르 녹아내리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지금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
드라마 | 한국 | 118 분 | 개봉 2011.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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