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참으로 간단한 말이다. 이 말들은 때때로 심금을 울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하고, 너무나 쉽게 마음에 맺힌 한(恨)을 풀어내기도 한다. 말 한마디로 천냥빚 갚는다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한국인에게 있어 이 말은 퍽 사용하기 어려운 말 중 하나다. 특히 “미안합니다”라는 말은 이 셋 중에서도 가장 말하기 어렵고 듣기 힘든 것이 아닐까 한다.
이와 관련된 일례가 있어 소개해 보고자 한다.
어느 더운 여름날 오후, 필자는 외식차 지인들과 함께 서초동의 어느 유명한 설렁탕 전문점에 들렀다. 음식 솜씨가 좋기로 소문난 곳이라 손님은 오전부터 북적대는 모양새로 식당 직원들이 분주히 음식을 나르고 있었다. 메뉴는 설렁탕과 냉면이 주를 이루는 곳이다.
뜨거운 국물을 먹어보고자 하는 인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날씨마저 덥다 보니 식당 직원들이나 손님이나 스트레스가 조금씩 쌓이는 듯 했다. 필자와 함께 간 일행 네 명은 설렁탕과 냉면을 주문했다. 이 집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주문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설렁탕 두 그릇과 냉면 두 그릇이 각각 식탁에 놓였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됐다. 우리 일행 중 냉면을 주문한 한 명의 그릇에서 플라스틱 빗자루로 보이는 가느다란 ‘면발 아닌 면발’ 한 개가 나왔기 때문이다.(면발이 아닌 플라스틱 빗자루로 단정 지을 수 있었던 것은, 필자가 입으로 잘근잘근 씹어보았기 때문이다. 절대 끊어지지 않았다.)
“아주머니, 여기 잠깐만 와보세요.”
식당 아주머니는 땀을 흘리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는 듯, 기꺼이 손으로 잠시 기다리라는 수신호를 보내고 잠시 뒤 우리에게 다가왔다.
“무슨 일이세요?”
“여기 이거요. 빗자루 아녜요?”
“어? 이거? 빗자루가 아니라……. 삶아지지 않은 면발이네요.”
“입으로 씹었는데도 안 잘리던데, 이게 무슨 면발 이예요.”
“아! 그래요? 잠시 만요.”
“…….”
‘잠시 만요’란 말과 함께 사라진 후, 그 직원은 다시 오지 않았다. ‘미안합니다’란 말은 물론 없었다. 손님이 많아 다른 손님들에게 음식을 내주기 위해 오지 못했던 것일까. ‘새 음식으로 바꿔드리겠습니다’란 말도 역시 하지 않았다. 손님이 많아 주문이 많다보니 이물질이 ‘거저’ 들어갈 수 있으므로 손님이 좀 이해해 달라는 식의 눈인사는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땅바닥에 밥풀하나 떨어져도 주워먹던 60~70년대 보릿고개를 넘기던 시대의 서비스를 강요받는 듯 하여 무척 불쾌했다.(사실 필자 어린 시절에도 땅바닥에 흘린 것들을 많이 주워먹었다)
이런 일은 한 번으로 족하지 않는가 보다. 지난해 겨울 수원의 유명한 가든 밀집 지역에 한 곳에서 일어난 일이다. 필자와 함께 다른 한 명이 들어간 곳은 겉으로 보기에도 번지르르한 것이 꽤 ‘값어치’를 할 것 같아 보였다. 외제차도 종종 눈에 띄고 소위 ‘손님 접대’하는 곳으로 유명세를 타는 음식점 같았다.
일행과 필자는 갈비탕을 주문했다. 이번에는 그 출처를 알 수 없는 ‘벌레’가 문제였다. 직원을 불렀다. 어찌된 것이냐고. 그러나 그 직원의 행동은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필자가 그 직원 손에 쥐어진 벌레는 손가락 두어 개로 ‘쓱싹’하는 순간 ‘가루’가 되어 없어져 버렸다. 증거 인멸.
그 직원 역시 “미안합니다. 새 음식으로 바꿔드릴께요. 정말 죄송합니다. 이런 일이 없도록 앞으로는 주방장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겠습니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단, 한 마디도 없이 사라졌다. 이 말까지 원했던 것은 아니고, 머리까지 숙여 절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미안합니다”란 다섯 글자는 내뱉을 줄 알았다.
한국 방문의 해 ‘Visit Korea’?
지난 90년대 말 IMF를 계기로 ‘Buy Korea’를 외쳤던 대한민국은 최근 관광 한국을 기치로 ‘Visit Korea’를 연일 외쳐대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에게, 혹은 해외를 방문한 한국인들은 평소 습관처럼 행동할까? 꼭 그렇지 않은 듯 하다.
언어란 것은 사회성을 반영하고 있어 말이 바뀌면 인간의 생활 습관 및 행동 등이 바뀌게 된다. 일부분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대체로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지나친 비약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군복만 입으면 목소리가 커지고 행동반경이 대담해 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유학생 혹은 여행객들이 해외에 나가 영어를 유창하게 사용하며 현지인을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되면 그들은 몇 백년간 쌓아온 예절과 생활 패턴을 거리낌 없이 답습하게 된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인간은 환경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는 “Excuse me” 혹은 “Thank you”는 습관적인 멘트로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하게끔 돼 있다. 그러나 고국으로 돌아와 자국어를 사용하게 되면 행동은 달라지곤 한다.
그렇다면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외국에 나가 똑같은 경우를 겪게 된다면 어떨까. 궁금하다. 손님 입장에서는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반대급부를 요구하는 것인데, 별 것 아닌 것 같고 문제삼느냐고 반문하면 할 말 없음이다.
때때로 붉은 악마들의 행동이 찬사를 받을 때가 많다. 그들은 ‘대한민국 대표 응원단’이라는 닉네임을 붙이고 나가는 것이기에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매스컴이 달라붙기 때문에, 행동이 자유로울 리 없다. 그런 면에서는 세계 최고의 질서 정신을 보여준다. 2002 월드컵 4강전 길거리 응원전 인파가 700만 명이었다고 한다. 인구의 약 1/4가 길거리에 쏟아져 나왔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거리는 난장판이 되지 않고 쓰레기봉투를 나눠주는 아저씨에서부터 갖가지 오물을 주워 담는 어린 청소년에 이르기까지 그 날 보여준 ‘질서 정신’은 가히 세계 최고였다고 자부할 만 하다.
그러나 그 뿐이다. 시간은 정신을 되돌린다. 1988년 서울올림픽도 그러했다. 성화 봉송이 지나가는 거리 인근에 돌산 바위가 흉물스럽다는 이유로 ‘파란 페인트’를 수백만원어치 뿌려댔던 어느 자치구의 일화는 아직도 생생하다.
뭔가 보여줄 기회가 온 것이라면, 우리의 친절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라간다. 해외에 나가 갖은 추태를 부린다고 해도 그것은 우리보다 경제 사정이 낙후한 일부분의 국가에 한정된 이야기일 뿐이다. 소위 영어를 자국어로 사용하는 선진국을 답습할 경우에는 스스로 몸을 낮추는 것은 아닌지 씁쓸하다.
해외에 나가서는 ‘선진국 국민’인 양 행동하고, 자국내에서는 ‘후진국 국민’을 면치 못하는 수준에서는 그 무엇도 쌓아올릴 수 없다. 매년 한국을 방문하는 관광객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인의 해외 여행은 늘어나고 있다. 이는 다양한 해외 선진 문화를 배워 올 기회가 많아졌다는 긍정적 측면으로도 해석해 볼 수 있다. 다행스러운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필자는 참으로 난처하다. 그 식당 직원의 “미안합니다” 한 마디 듣지 못해 지금까지 열거한 이야기들을 보자니, 필자 자신이 참으로 피곤해 보인다. 앞으로는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아야겠다. 짬뽕 국물에서 바퀴벌레가 나온 이야기나, 강남 유명 스파게티 집에서 쇠망사 수세미가 나왔던 이야기까지 하면 글이 너무 길어지지 않나.
이젠 갈비탕에서 벌레가 나오면 조용히 씹어 먹고, 냉면 그릇에서 플라스틱 빗자루가 나와도 주인장에게 그저 웃으며 보여줄 뿐이다. 정말 그렇게 그냥 살아야 겠다. 날씨가 너무 덥다.
참으로 간단한 말이다. 이 말들은 때때로 심금을 울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하고, 너무나 쉽게 마음에 맺힌 한(恨)을 풀어내기도 한다. 말 한마디로 천냥빚 갚는다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한국인에게 있어 이 말은 퍽 사용하기 어려운 말 중 하나다. 특히 “미안합니다”라는 말은 이 셋 중에서도 가장 말하기 어렵고 듣기 힘든 것이 아닐까 한다.
이와 관련된 일례가 있어 소개해 보고자 한다.
어느 더운 여름날 오후, 필자는 외식차 지인들과 함께 서초동의 어느 유명한 설렁탕 전문점에 들렀다. 음식 솜씨가 좋기로 소문난 곳이라 손님은 오전부터 북적대는 모양새로 식당 직원들이 분주히 음식을 나르고 있었다. 메뉴는 설렁탕과 냉면이 주를 이루는 곳이다.
뜨거운 국물을 먹어보고자 하는 인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날씨마저 덥다 보니 식당 직원들이나 손님이나 스트레스가 조금씩 쌓이는 듯 했다. 필자와 함께 간 일행 네 명은 설렁탕과 냉면을 주문했다. 이 집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주문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설렁탕 두 그릇과 냉면 두 그릇이 각각 식탁에 놓였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됐다. 우리 일행 중 냉면을 주문한 한 명의 그릇에서 플라스틱 빗자루로 보이는 가느다란 ‘면발 아닌 면발’ 한 개가 나왔기 때문이다.(면발이 아닌 플라스틱 빗자루로 단정 지을 수 있었던 것은, 필자가 입으로 잘근잘근 씹어보았기 때문이다. 절대 끊어지지 않았다.)
“아주머니, 여기 잠깐만 와보세요.”
식당 아주머니는 땀을 흘리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는 듯, 기꺼이 손으로 잠시 기다리라는 수신호를 보내고 잠시 뒤 우리에게 다가왔다.
“무슨 일이세요?”
“여기 이거요. 빗자루 아녜요?”
“어? 이거? 빗자루가 아니라……. 삶아지지 않은 면발이네요.”
“입으로 씹었는데도 안 잘리던데, 이게 무슨 면발 이예요.”
“아! 그래요? 잠시 만요.”
“…….”
‘잠시 만요’란 말과 함께 사라진 후, 그 직원은 다시 오지 않았다. ‘미안합니다’란 말은 물론 없었다. 손님이 많아 다른 손님들에게 음식을 내주기 위해 오지 못했던 것일까. ‘새 음식으로 바꿔드리겠습니다’란 말도 역시 하지 않았다. 손님이 많아 주문이 많다보니 이물질이 ‘거저’ 들어갈 수 있으므로 손님이 좀 이해해 달라는 식의 눈인사는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땅바닥에 밥풀하나 떨어져도 주워먹던 60~70년대 보릿고개를 넘기던 시대의 서비스를 강요받는 듯 하여 무척 불쾌했다.(사실 필자 어린 시절에도 땅바닥에 흘린 것들을 많이 주워먹었다)
이런 일은 한 번으로 족하지 않는가 보다. 지난해 겨울 수원의 유명한 가든 밀집 지역에 한 곳에서 일어난 일이다. 필자와 함께 다른 한 명이 들어간 곳은 겉으로 보기에도 번지르르한 것이 꽤 ‘값어치’를 할 것 같아 보였다. 외제차도 종종 눈에 띄고 소위 ‘손님 접대’하는 곳으로 유명세를 타는 음식점 같았다.
일행과 필자는 갈비탕을 주문했다. 이번에는 그 출처를 알 수 없는 ‘벌레’가 문제였다. 직원을 불렀다. 어찌된 것이냐고. 그러나 그 직원의 행동은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필자가 그 직원 손에 쥐어진 벌레는 손가락 두어 개로 ‘쓱싹’하는 순간 ‘가루’가 되어 없어져 버렸다. 증거 인멸.
그 직원 역시 “미안합니다. 새 음식으로 바꿔드릴께요. 정말 죄송합니다. 이런 일이 없도록 앞으로는 주방장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겠습니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단, 한 마디도 없이 사라졌다. 이 말까지 원했던 것은 아니고, 머리까지 숙여 절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미안합니다”란 다섯 글자는 내뱉을 줄 알았다.
한국 방문의 해 ‘Visit Korea’?
지난 90년대 말 IMF를 계기로 ‘Buy Korea’를 외쳤던 대한민국은 최근 관광 한국을 기치로 ‘Visit Korea’를 연일 외쳐대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에게, 혹은 해외를 방문한 한국인들은 평소 습관처럼 행동할까? 꼭 그렇지 않은 듯 하다.
언어란 것은 사회성을 반영하고 있어 말이 바뀌면 인간의 생활 습관 및 행동 등이 바뀌게 된다. 일부분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대체로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지나친 비약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군복만 입으면 목소리가 커지고 행동반경이 대담해 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유학생 혹은 여행객들이 해외에 나가 영어를 유창하게 사용하며 현지인을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되면 그들은 몇 백년간 쌓아온 예절과 생활 패턴을 거리낌 없이 답습하게 된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인간은 환경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는 “Excuse me” 혹은 “Thank you”는 습관적인 멘트로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하게끔 돼 있다. 그러나 고국으로 돌아와 자국어를 사용하게 되면 행동은 달라지곤 한다.
그렇다면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외국에 나가 똑같은 경우를 겪게 된다면 어떨까. 궁금하다. 손님 입장에서는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반대급부를 요구하는 것인데, 별 것 아닌 것 같고 문제삼느냐고 반문하면 할 말 없음이다.
때때로 붉은 악마들의 행동이 찬사를 받을 때가 많다. 그들은 ‘대한민국 대표 응원단’이라는 닉네임을 붙이고 나가는 것이기에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매스컴이 달라붙기 때문에, 행동이 자유로울 리 없다. 그런 면에서는 세계 최고의 질서 정신을 보여준다. 2002 월드컵 4강전 길거리 응원전 인파가 700만 명이었다고 한다. 인구의 약 1/4가 길거리에 쏟아져 나왔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거리는 난장판이 되지 않고 쓰레기봉투를 나눠주는 아저씨에서부터 갖가지 오물을 주워 담는 어린 청소년에 이르기까지 그 날 보여준 ‘질서 정신’은 가히 세계 최고였다고 자부할 만 하다.
그러나 그 뿐이다. 시간은 정신을 되돌린다. 1988년 서울올림픽도 그러했다. 성화 봉송이 지나가는 거리 인근에 돌산 바위가 흉물스럽다는 이유로 ‘파란 페인트’를 수백만원어치 뿌려댔던 어느 자치구의 일화는 아직도 생생하다.
뭔가 보여줄 기회가 온 것이라면, 우리의 친절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라간다. 해외에 나가 갖은 추태를 부린다고 해도 그것은 우리보다 경제 사정이 낙후한 일부분의 국가에 한정된 이야기일 뿐이다. 소위 영어를 자국어로 사용하는 선진국을 답습할 경우에는 스스로 몸을 낮추는 것은 아닌지 씁쓸하다.
해외에 나가서는 ‘선진국 국민’인 양 행동하고, 자국내에서는 ‘후진국 국민’을 면치 못하는 수준에서는 그 무엇도 쌓아올릴 수 없다. 매년 한국을 방문하는 관광객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인의 해외 여행은 늘어나고 있다. 이는 다양한 해외 선진 문화를 배워 올 기회가 많아졌다는 긍정적 측면으로도 해석해 볼 수 있다. 다행스러운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필자는 참으로 난처하다. 그 식당 직원의 “미안합니다” 한 마디 듣지 못해 지금까지 열거한 이야기들을 보자니, 필자 자신이 참으로 피곤해 보인다. 앞으로는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아야겠다. 짬뽕 국물에서 바퀴벌레가 나온 이야기나, 강남 유명 스파게티 집에서 쇠망사 수세미가 나왔던 이야기까지 하면 글이 너무 길어지지 않나.
이젠 갈비탕에서 벌레가 나오면 조용히 씹어 먹고, 냉면 그릇에서 플라스틱 빗자루가 나와도 주인장에게 그저 웃으며 보여줄 뿐이다. 정말 그렇게 그냥 살아야 겠다. 날씨가 너무 덥다.
2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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