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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sibility/수필

더욱 많아진 유학길에 외칠 ‘원더풀 코리아’(2005)

살아가는 이야기

더욱 많아진 유학길에 외칠 ‘원더풀 코리아’

내가 선운사를 처음 찾게 된 것은 지난 2000년 봄이었다. 운 좋게도 선운사의 흐드러지게 핀 동백꽃을 보게 된 그 날 이 후, 기독교도이면서도 사찰에 대한 알 수 없는 그리움을 만들게 됐다. 선운사까지 걸어 들어가는 길은 참으로 싱그러웠던 것으로 기억된다. 싱그러움이 조각되어 하늘에 뿌려지면, 자연스레 동백꽃 잎이 내 눈을 감싸 안았던 그 날의 기억을 쉽게 잊지 못하고 살았던 듯.
세상에 변하지 않는 곳 중 하나가 바로 사찰이 아닌가 한다. 사찰을 방문했을 때의 그 고즈넉함으로 마음의 평온을 찾는 것이 비단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두 번째 선운사 방문은 매우 가슴 뛰는 흥분이 아닐 수 없었다. 세상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흠모와 마음의 평안을 위한 휴식을 원했기에.
KTX를 이용하면 서울에서 선운사까지 약 1시간 30분 정도에 도달할 수 있다. 전라북도 고창군에 위치한 선운사가 서울에서 비교적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용기를 낸다면 국내 최대 동백꽃 군락지를 경험할 수 있다.
우선 선운사를 방문하기 전, 약간의 지식을 안고 가면 더욱 좋다. 선운사는 백제 위덕왕 24년인 577년 검단선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354년 공민왕 재위 3년에 효정선사가 중건했다. 그 후, 정유재란으로 모두 소실되기도 했으나, 1613년 광해군 때 재차 재건을 한 사찰이다. 주요 문화재로는 보물 제179호인 금동보살좌상과 보물 제280호인 지장보살좌상이 있으며, 보물 제290호인 대웅전도 굳건히 방문객을 맞고 있다.
그러나 선운사에는 이러한 국보급 문화재뿐만 아니라 방문객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동백나무 숲으로 더욱 유명하다. 약 5천여 평에 이르는 선운사 동백 숲은 현재 천연기념물 제184호로 지정돼 있다. 매년 3~4월이면 붉은 꽃망울을 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동백꽃은 너무나 유명해 봄날 선운사를 찾은 관광객들의 주요 촬영 대상이지만, 사실 이 보다 더욱 가슴 아픈 이야기가 선운사 주변에 산재해 있다. 그것이 바로 상사화의 전설이다.
상사화는 꽃무릇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수선화류의 꽃으로 그 붉기가 동백꽃 못지않다. 매년 8~9월이면 선운사 일대에 장관을 이루고 있는데, 그 안에 숨쉬고 있는 전설이 우리의 눈을 붙잡아 두기에 충분하다.
아주 먼 옛날 한 여인이 선운사에 며칠 불공을 드리러 왔다가 스님 한분을 사랑하게 됐다. 그 여인은 스님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상사병에 걸리게 됐고, 시름시름 앓다 결국 죽고 말았다. 그 후 그 죽은 여인이 꽃으로 다시 피어났는데, 그것이 바로 상사화라는 것이다. 복잡다단한 현대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그렇고 그런 사랑이야기’ 쯤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선운사 주변에 펼쳐진 상사화를 보면 오히려 그 여인의 전설이 사실이길 바라는 마음이 생길 정도로 아름답다.

해외 유적지 한글 낙서 ‘꼴불견’

선운사로 접어드는 길은 관광객들끼리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게 만들어 놨다. 초입에서부터 약 3km 정도 들어가야 하는데, 이 길이 매우 평탄하고 좌우로 펼쳐진 계곡과 평원으로 관광객들의 눈과 마음을 돌리기에 충분하다. ‘산소’를 불어넣는 듯, 매우 풋풋하다.
예전에야 길거리에 마구 쓰레기를 버리고, 담배꽁초를 아무 곳에나 던져 넣기도 했지만 의식 수준이 상당히 높아져서인지 지금은 그러한 광경을 목격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여행 중 눈살 찌푸리는 장면을 보게 되는 것은 예상 치 못한 곳에서 일어나기도 한다.
얼마 전 TV에서 해외여행에 나선 한국인 관광객들의 추태에 대해 집중 토론을 벌인 적 있다. 세계 유산으로 기록돼 있는 곳을 찾아 ‘김개똥 왔다감’ ‘너만을 사랑해’ ‘변강쇠♡옹녀’ 등 웃지 못 할 낙서를 새기고 돌아간 자랑스러운(?) 한국인의 ‘한글’을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는 정보가 주된 주제를 이뤘다.
북한의 금강산 계곡 곳곳에 ‘수령동지만세’를 새긴 것을 보고 우리는 어떤 생각이 드는 지 반문해 보면, 결과는 간단하다.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 수천 년에 걸친 자연의 조각품을 인간이 몇 시간 안에 훼손하는 건 생각보다 매우 간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각종 유적지가 훼손되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런데, 지난 90년대 초반 해외여행이 자유화로 풀리면서 급격히 해외 관광객들이 늘어났지만, 그 숫자에 비례해 대한민국인의 의식수준은 반비례하는 것 같아 매우 씁쓸하기 그지없다.
심지어 관광객들 사이에서는 해외에서 좋지 않은 상황에 맞닥뜨려졌을 때, “I'm japanese”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는 우스개 소리도 들린다.
선운사는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방문객들의 낙서가 유적지 사이사이에 보이지 않았다. 낙서에 대한 한풀이를 인근 식당에 해놓아서인지, 선운사 대웅보전 등 수 백년이 지나 갈라진 나무 기둥에는 적어도 볼펜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어 다행스러웠다.
봄이면 동백꽃이, 여름이면 상사화가 손님을 맞이하는 전북 고창 선운사는 주변에 수려한 도솔산이 마주하고 있어 더욱 웅장한 비장미를 지니고 있다. 관광객들도 이러한 기운을 받아서일까. 적어도 이 곳에서는 ‘꼴불견’이 연출되진 않았다.
해외여행을 떠나는 이들은 국내 유명 관광지를 모두 섭렵해서 찾아나서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견문을 넓히고 책에서만 보았던 곳을 큰마음 먹고 떠나 직접 눈으로 체험하며,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삶의 동기 부여’를 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넓은 세상 속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인생에 대한 포용력이 더욱 커지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터.
세계 속에 대한민국의 자긍심을 키우는 일은 바로 거기에서 출발할 것이라고 본다. 선운사의 동백꽃과 상사화가 기억날 때, 비로소 나는 대한민국인 이라는 사실을 절감할 것이다. 또한 짧은 유학 생활이나 해외여행이겠지만 ‘한국어’를 사용하는 한국인을 만났을 때의 반가움은 절로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게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외국인이 한국을 찾아 우리말을 배우고 우리의 관습을 배우며 ‘원더풀 코리아’를 외칠 때, 우리도 해외에 나가 그들의 말과 관습을 배우며 ‘베스트 월드’를 찾아내고 있다. 동양인과 서양인의 의식 수준이 달라 관습 차이를 좁힐 수 없겠지만, 적어도 대한민국의 인식을 좋지 않게 심어주는 일은 삼가야 한다.
국민 4명 중 1명은 해외여행을 떠날 만큼 자유로워진 노자길. 이미 18만7천여 명(2004년 기준)이 해외 유학생으로 나가 있는 상황에 비추어 보면, 세계 속에 대한민국은 그리 작은 나라가 아닌 듯 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스스로 ‘원더풀 코리아’를 외쳐보는 것은 어떨까. 2002년 월드컵 축구 경기에서 세계를 하나로 묶었던 그 때의 구호처럼 말이다. ‘대~한민국!’

선운사 동구 - 서정주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습디다

글/사진 고구마

-종로유학원 웹진 7월호 게재-

 

200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