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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sibility/수필

그녀의 집 앞에서 먹은 자장면 한 그릇-문학사상 공모작 단편 부문(1998)

문학사상 공모작 단편 부문 「그녀의 집 앞에서 먹은 자장면 한 그릇」 - 1998

1

뜨겁다. 뜨거운 햇빛이 모든 것을 집어 삼킬 듯이 내리쬐고 사람들은 모두 뱀처럼 혀를 낼름거린다. 사방으로 훤하게 트여있는 길목에서 난 그 빛을 똑바로 쳐다본다. 눈이 부시다. 눈을 크게 뜰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안간힘을 다해 그 빛을 노려본다. 하지만, 이것은 처음부터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을까. 이내 눈을 감고 주위를 둘러본다.
배고프다. 배가 고팠다. 뜨거운 무언가를 먹길 원하는 나의 배를 움켜쥐고 있다. 하지만, 더운 날씨에 과연 무엇을 먹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내 머리의 대부분을 차지 하고 있었다. 발걸음 하나를 옮기는 것도 지칠 지경이었다.
반소매 차림의 양산을 쓰고 가는 다소곳한 아주머니 한분이 열심히 무언가를 고르고 있다. 사과. 빨갛게 익은 것이 뜨거운 태양과 입김을 서로 주고 받는 듯 하다. 꽃무늬의 양산을 가볍게 받쳐든 아주머니는 흥정이 끝난는지, 총총히 내 눈 앞에서 사라진다. 가게 주인은 무언가 손해를 봤다는 표정으로 부채질을 연신 해대며 가게안으로 사라진다. 가게 주인에게 발걸음을 옮긴다. 하지만, 곧 그 걸음을 멈춘다. 나도 모르게 그 빨간 사과에 이끌려서 그 사과에 손을 뻗어보았다. 너무 멀다. 그 손을 다시 추스린 건 더운 날씨 탓도 아니고, 그 가게 주인의 눈을 의식해서도 아니다. 그것은 내 앞을 경적소리와 함께 지나가는 10여년도 더 된 듯한 트럭한대 때문이다.
조금 걸었다. 햇빛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걸었다. 그 때, 햇빛은 내 등을 환하게 비쳐주고 있었기 때문에 난 내 그림자를 생생히 볼 수 있었다. 어느 광고에서 보았던 카피가 생각났다. '그림자가 없으면 보이지 않을 만큼 순수한...' 인간이란 게 그림자가 없다고 안보일까. 기침소리 비슷한 웃음소리를 내며 그림자에 취해 한참을 걸었다. 내 앞에 나타나는 빨간색의 간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뜨거운 햇빛과 눈을 다시 마주쳤을 때였다.
'중화요리'라고 한글로 바로 쓴 글자옆에 '다빈원'이라고 쓰여있다. 난 다시 걸음을 멈췄다. '다빈원'이란 글자의 뜻을 바로 알기 위해서도 난 그 걸음을 계속할 수 없었다. 가게 앞에 섰다. 다 비어있는 곳? 아니면, 가난한 사람이 많은 곳? 무슨 뜻이지? 발걸음은 그 곳으로 향했다. 가게문은 활짝 열려있었고, 어두컴컴한 가게안은 적막하기 그지 없었다. 손님 하나 없어 보였고, 이 더운 여름 날에 에어콘 하나 없이 장사를 하나 싶을 정도로 그 가게는 적어도 내게 어떤 흥미도 일어나게 하지 않았다. 간판도 10여년은 더 된 듯이 먼지로 뽀얗게 싸여 글자가 군데군데 날아가 있었고, 가게 유리창은 간신히 아크릴로 붙여 놓은 듯한 글씨가 손님을 애타게 기다리는 것 같아 보였다.
가게는 시장밖에 있었다.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을 등지고 걸었던 내가 그 간판을 볼 수 있었던 것도 시장을 빠져나왔기 때문이다. 가게는 주택가와 시장의 중간에 위치해 있었다. 아마도 주택가와 시장의 상권을 모두 자신의 손에 넣으려는 것이었나 보다. 하지만, 점심을 먹을 시간인데도 시장과 주택가에선 아무도 그 곳을 찾은 사람이 없어 보였다. 왜냐하면, 그 곳은 적막하기 그지 없는데다, 오토바이 한 대는 주름이 깊게 패인 할아버지의 모습처럼 쇠약해 보였다. 한참을 나들이 없이 방안에만 틀여박혀 계신 반신불수의 할아버지.
난 한참을 서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사람은 없다. 부채질을 해가며 지나가는 행인 한 명 없다. 왠일일까. 여름날의 시장이라면, 적어도 이렇지는 않을텐데. 이 뜨거운 태양이 모든 사람을 집어 삼켰을까. 시멘트 길을 녹일만큼 뜨거운 태양.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지친듯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바람에 이리 저리 흔들리고 있는 나무의 잎사귀들이었다. 태양은 달걀을 길위에 올려 놓으면 금새 익어 10여일은 굶은 사람들이 몰려들 듯한 기세처럼 그렇게 이글거렸다. 난 쓰러지듯 그 태양안으로 빨려들어 갔다. 태양에 취한 듯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머리를 두어번 흔들고 내 모습을 본 건 분명 실수였다.


2

"정신차려!"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혼돈의 세계. 나 그 곳을 간신히 빠져나올 만큼 힘이 있지 않았다. 그러나, 초등학교 시절 100미터를 14초에 주파했던 기억을 되살려 허공에 대고 발을 힘껏 굴렸다. 가속이 붙는 기분. 그리고는 깨어났다.
"미친놈아! 너 죽을라구 환장했어? 너 이제 영창이담마. 미친놈..."
혀를 끌끌차는 소리, 손이 두어번 내 앞에서 휭휭하는 소리, 연신 '미친놈'이란 소리가 내 귀를 때렸다. 정신이 든 건 '영창'이란 단어가 내 머리를 꿰뚫고 지나가는 그 순간이었다. 지금 여기는? 군대. 그래 군대구나. 내가 무슨 짓을 한거지?
정신이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눈에 익은 사람들이 군복을 입고 내 앞에서 손을 내 젓고 있었다.
"이정훈 이병! 정신이 드나?"
"이병... 이정후...ㄴ"
팔하나 움직이기 힘들었다. 팔을 보니, 붕대가 감겨져 있다. 빨간 빛이 내 팔목을 감싸고 있다.
"너 무슨 짓 한 줄 알지? 다행히 일찍 발견이 되어서 목숨을 건질 줄 알게. 니 동기가 발견했어! 안 그랬으면 넌 이 세상 사람이 아니지. 바보같은 자식. 힘들면 힘들다고 말을 하지..."
중대장이었다. 나에게 큰형같은 존재. 형이 내 앞에서 잔소리하는 것 처럼 들린 것도 아마 그 이유때문이리라. 하마터면 큰 소리로 '형!'이라고 부를 뻔 했다. 다시 혼란에 빠진다. 긴 한숨소리가 내 귀에 크게 들린다.
"나 살았지? 근데, 어떻게 알았니? 그냥 놔두지. 지금 몇시니?"
한번에 많은 질문을 던진다며 머리를 한 대 치며 같은 날 자대에 배치 받은 내 동기 김동문 이병이 대답했다.
"넌 살았구. 세면하려다가 발견한거구. 지금 밤 12시다. 미친놈아. 그래, 살아서 기쁘냐?"
이를 내보이며 웃을 수 있었다. 죽는 것이 사는 것 보다 힘들다고 했던가. 난 웃고 있었다. 살았기 때문에 웃을 수 있는 것인가. 울지 못해 웃는 것인가.

1994년 11월 어느날. 전방의 철책선은 무첫 추웠다. 아침 기온은 영하 25도를 육박했고, 낮기온도 영하 5도에 불과했다. 영하 25도까지 그려져 있던 온도계의 끝을 내달아 더 이상 내려가지 못하는 온도가 우리를 미워하기라도 하 듯이 그렇게 매섭게 날씨는 하루하루가 추위의 연속이었다. 낮기온이 겨우 영하 5도인 날씨에도 따뜻하다며 우리는 태양에게 눈을 마주친다. 거친 호흡과 담배연기로 찌들은 삶인데도 무슨 기쁨이 있었는지 연신 웃음은 입가를 떠나지 않았다. 그래도, 즐거운 군생활. '피하지 못할 것이라면 즐기자' 라는 구호가 내무반 정면에 걸려있다. 의미심장한 단어들로만 조합해 놓은 문자들은 군대에 모두 몰아넣었다. '단결'로 시작해서, '충성', '필승', '멸공', '사수' 등등... 그런 단어들로 2년여의 긴 시간을 보내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변하게 된다는 선임병의 말은 분명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1994년 7월에 입대하여 군생활을 시작하면서 내 생활은 180도 달라졌다. 규칙적인 생활, 규칙적인 식사. 정렬과 원칙. 모든 것이 자로 잰 듯한 일과에 몸을 맡긴 채 내 주관적인 가치와 상념은 모두 사치스러운 것으로 변해버렸다. 사회에서 부호였건 가난했건 그것은 군대라는 이름의 이 곳에선 통하지 않았다. 적어도 훈련병 시절에는. 모두 같았다. 같은 옷과 같은 식사, 같은 잠자리, 같은 얼굴 색까지 모두 같았다. 10여미터 앞에서도 자식을 알아보지 못하시는 부모님을 볼 때면 더더욱 그런 생각은 맞는다. 하지만, 자대의 생활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휴가를 나갔다가 사회에서 사 온 비싼 유명브랜드의 속옷, 면도기 등을 볼 때면 그런 생각은 또 맞는다. 군대라는 '평등의 사회'에서도 그 평등은 지켜지지 않는 것이다. 부(富)와 빈(貧). 그것은 이 세상 어디에나 존재한다. 보급품을 제때 보급받아도 선임병들의 대부분은 후임병들에게 나눠준다. 그리고, 선임병들은 무늬가 현란한 속옷으로 그들만의 무언가에 기뻐하곤 한다. 그 때 후임병들은 '언젠가는' 이라고 다짐을 하며 같이 웃음을 지어 보여준다. 하나의 사회. 그렇게 알고 입대를 했고, 그렇게 새로운 사회에 적응을 하려 노력할 무렵 그 사회는 그렇게 나의 온 힘을 빠지게 했다.
이병계급이란 걸 달았을 때의 기쁨. 무언가 또다른 성취감에 젖어 한껏 기분이 하늘을 날아올랐다. 수료식과 함께 날아온 휴가. 사격을 한번도 해본 적은 없지만, 그것은 내게 딱들어맞는 취미같은 것이었다. 유년 시절에 플라모델 장난감을 짜맞춰 가며 밤을 지새우던 그 집중력이 다시금 살아난 기분이었다. 172명중에 10명 선발. 그 중에 끼어 표창장을 받는 모습만으로도 부모님은 대견해하셨다. 부모님의 주름 패인 웃음을 보면서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 했다.
휴가를 나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하나의 절망과도 같은 운명이었다. 유치하고 사치스런 사랑 놀음이 끝나버린 것이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군대에서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집착이고, 아집이다. 머리 한켠에선 연신 그 외침이 있었지만, 그래도 나만의 이기적인 욕심은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그 외침은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와 공허하게 내 가슴을 내리 쳤다. 1년여의 만남. 진정한 사랑이 무엇이고, 그 사랑을 알게 되었던 나로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그녀의 말이었다.
"나... 무슨 일 있었어. 널 만날 수가 없어. 정말... 미안해. 미안하단 말 밖에는 할 수가 없다. 정말 미안하다..."
미안하다. 왜 미안할까.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도록 행동하면 되지 않을까. 그리 급박한 상황에서도 내 머리는 훌륭했다. 그런 여유로운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그녀와 헤어지고 난 후 편안한 심정으로 귀대를 했던 건 아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침 햇살이 환하게 비치고 있었다. 비밀로 창을 씌운 창 밖으로 태양은 그래도 실내를 비집고 들어와 내 옆에 앉아 있었다. 고개를 돌려 시계를 보니 아침 10시. 보통 기상시간이 6시인 것을 보면 내가 군대에 있지 않는 착각이 일 정도로 고요한 아침이었다. 모두들 훈련을 나갔다. 의무대를 지키고 누워있는 병사들은 나를 포함 3명. 모두 잠에 취해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다. 팔을 뻗어 내 눈앞으로 가져왔다. 빨간 빛. 그 빛이 태양빛과 맞물려 더 선홍색으로 빛나고 있다. 그렇다. 손목을 그었었다. 이유를 굳이 말하자면, 마땅히 이것이요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하지만, 그 복잡하고 미묘했던 그 감정은 아직 내 마음에 살아있었다. 오로지 죽음만이 편안함을 가져다 줄 것 같은 미련한 믿음. 그것이 나를 지금 침상에 누워 빨간 빛을 보게 했으리라고 생각하니, 가슴한켠이 또 무거워졌다.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입고 있었던 군복의 주머니를 살폈다. 오른손은 링겔주사를 꽂고 있었기 때문에 왼손으로 모든 나의 의지를 펼칠 수밖에 없었다. 왼쪽 윗가슴에서 꺼낸 편지 하나. 다시 펼쳐 보았다.
'사랑했던 나의 사람. 정훈... 이 달 마지막 주에 결혼해. 정말 미안해... 혜진이가'
대충 살펴보아도 내 죽음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예정된 결혼아니었던가. 왜 그렇게 놀랐을까.

... 미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