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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sibility/소설

사랑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완결)

세상의 모든 연인들은 기억할 것이다. 무슨 무슨 날이라 일컫는 날들. 기억에 남을 만한 날들은 중요한 날들은 다이어리에 적어가며, 기억에 남을 추억을 그 첫 번째 연인과 다들 해왔으리라 생각된다. 나또한 예외는 아니었고, 처음으로 맞아보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하지만, 다시 입대하는 날짜는 다가오고 있었다.
99일. 이것이 우리가 지내왔던 날들이다. 100일째 입대를 했다. 또 비가 왔었다. 더 많이. 그녀는 나오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입대하고 훈련소에서 나의 입심에 간부 한 명이 전화를 허락했다. 그 전화를 허락한 날은 훈련소의 생활이 약 4주가 지난 어느 날이었다. 전화통화 시간은 3분이었다. 그녀의 안부가 궁금한 난, 어머니 다음으로 그녀의 집으로 버튼을 눌렀다. 목소리가 차가웠다. 무슨 일이 있을까?
"나야. 잘 지내지?"
"응. 그래. 너두 잘 있지? 더운데 훈련은 어때?"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목소리가 안 좋아 보여."
"아냐. 무슨 일은... 걱정하지 마."
"나 편지 많이 썼는데, 너두 썼니?"
"응... 그래. 쓰려고 해. 더운데 힘들지? 그래도 내 생각하면서 견뎌. 알았지?"
그 때까지도 난 아무것도 몰랐다. 비록, 형식적인 인사라고 느끼긴 했어도 그녀에게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내 자신을 위로했다. 차리리 그래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만 힘이 드는 날들을 보낼 테니 말이다.
훈련소의 생활은 그렇게 지나갔고, 순간 일어나는 그녀의 모습에 그녀의 목소리에 감정이 교차되며 손에 일이 잡히지 않을 때도 많았다. 그녀의 목소리가 자꾸 맘에 걸렸다. 그렇게 시간은 6주라는 시간을 흘러가 주었다. 비교적 사격을 잘했던 난 신병 휴가를 나오게 되었고 휴가를 나온 그 날 저녁, 배불리 먹여주신 부모님을 뒤로하곤 공중 전화 박스로 달려갔다. 그 때 시간이 아마 5시쯤 됐으리라. 받지 않았다. '분명히 있을 텐데. 나 오늘 나간다고 했는데. 잊었을까. 휴가 나간다구 했는데. 휴가...' 자꾸만 반복되는 생각. 오랜 시도 끝에 전화기 속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흘렀다.
"나야! 창연이! 휴가 나왔어! 알지?"
"응..."
"왜 그래?! 어디 아파? 목소리가 왜 그래!"
조금 이상함을 느꼈을까. 난 '왜 그래' 하면서 목소리 톤을 높이지 않고, 힘을 주고 있었다.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
"너 무슨 일 있지!"
"..."
"그렇지! 있지! 제발, 없다고 해줘. 제발!!"
"무슨 일 있어. 아니, 무슨 일 있었어."
염려하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 짧은 순간에 내 머리를 온통 휘젓고 지나가는 것들은 정작 말로 하지 못했다. 내가 무슨 말을 했겠는가. 무슨 말을 해야 그 상황을 이해하고 '그래 알았어.' 하며 전화를 끊을 수 있었겠는가. 전화를 끊고 공중 전화 박스에서 1시간 동안 멍했다. 허탈한 웃음. 왜 웃음이 나왔는지. 4일간의 휴가 기분은 날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만들어 주고 말았다. 그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그녀의 친구, 그 친구의 남자친구 등등... 연락 가능한 사람은 모두 그 때에 나의 애절한 목소리를 들었다.
기다리기. 무작정 기다리기. 난 하루를 꼬박 기다리다 지쳐 전화를 했다. 그 정성을 하늘에서 알았을까. 귀대 전날, 우린 만날 수 있었다. 그녀가 말한 무슨 일이란 무엇이었을까. 내용은 이렇다.
그녀는 날 만나기 전에 남자친구가 군에 가 있었다. 난 그것도 모르고 만났고, 사랑을 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나보다 1년 먼저 입대를 했던 그는 내가 입대를 했을 당시 상병이었고, 내가 휴가 나오기 1주일 전에 휴가를 나와, '모든걸 용서할 테니 돌아 오라.' 그런 60년대의 한국영화같은 대사로 그녈 다시 그에게로 돌이키게 한 것이었다. 우스웠다. 내 자신이 우스웠고, 그녀가 우스웠다. 그럴 수가 있을까. 그러나, 현실에서도 영화 같은 이야기는 있었다. 그것도 남이 아닌 나에게. 나오는 웃음은 떨리는 가슴으로 쥐어 잡았다.
귀대하는 날 아침, 그녀에게 전화가 왔고 '보고 싶다' 는 말에 택시로 날다시피 해서 그녀의 집 앞으로 갔다. 그녀가 사는 동네까지 군복을 입고 갔다. 촌스런 그 신병의 군복이란 참으로 웃지 못할 일이다. 대낮에 그 옷을 입고 뛰어 다녔던 나. 그녀와 그 때, 처음 데려다 주었던 그 상가의 계단에서 사람들을 의식할 수 없었다. 그녀와 그 날 나누었던 대화는 어떤 중요한 것이 없었다. 중요할 것도 없었다. 그녀는 이미 마음을 정리한 듯이 보였다. 난 그녈 안았다. 한참 동안이었다. 눈물을 보았다. 첫 입대할 때 내 모자를 벗겨주며 내게 보이던 그 눈물이었다. 그 빛이었다. 그 아픔이었다. 그런 그녀의 눈물이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을 줄이야. 그녀의 눈물이 뭔가 희망적일 것이라고 생각한 나는 기대를 하고 복귀를 했지만,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녀의 품도, 그녀의 모습도, 그녀의 목소리도 이젠 없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 아마 복귀를 하고, 바쁘게 이등병의 생활을 하고 있던 10월쯤으로 기억된다. 그 전에도 물론, 수많은 편지를 보냈지만 아무런 연락이 없었던 그녀. 단 한 통의 편지도 보내지 않았던 그녀. 잊는다는 건 아마 누구의 말처럼 평생이라고 생각된다. 사랑하는 연인이 이별하는 시간은 평생이란 말이 떠오른다. 내가 입대한지 1년이 되던 날, 난 그녀의 조그마한 사진을 태울 수 있었다. 타는 연기사이로 그녀의 그리움도 떠나갈 줄로 믿고, 난 그렇게 했다. 제대를 하고 전화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1번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피천득님의 '인연' 이란 수필의 세 번째 만남은 가지지 말았어야 했던 것처럼 그 전화는 하지 말았어야 했다. 전화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기러기 떼를 보았다. 멀리 줄을 지어 떠나가는 듯 했다. 어디로 갈까. 그 기러기들이 내 모든 기억도 같이 가져갔으면 하는 바램으로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그렇게 갔다. 나의 첫 번째 사랑은 그렇게 멀리 기러기를 따라 훨훨 날아갔다. 한 동안은 잊지 못하는 세월을 보냈다. 어쩌면 아직도 난 그 기억 속에서 헤매이고 있는지 모르겠다. 누구든지 사랑을 하게 되면 빨갛게 데인 자국을 보게 된다고 한다. 너무 깊게 가슴에 골이 패여 누구도 그것을 대신 메워줄 수도 없다고 한다. 슬픔이란 슬픔은 모조리 내게 온 듯 했던 날들. 그런 날들을 웃으며 몇 줄 쓸 수 있다는 것도 어쩌면 그녀를 향한 나의 독백 적인 행복일 수도 있다. 그녀의 행복을 기원했다. 멋진 이별을 원하진 않았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그런 일 뿐이었다. 그녀와 같이 지새웠던 그 밤에 보았던 별들이 오늘도 변함없이 빛나고 있다. 그 별들을 보며 오늘도 난 중얼거린다.
'행복해야돼... 사랑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사랑은 영원한 것이니까... '
 
 
 

 


 

 

지금 다시 보니 참으로 유치 짬뽕이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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