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건향문학상 수필 당선작(1998)
'인사'
원창연.
고등학교때의 일이다.
어느 화창한 날씨만큼이나 기분이 좋은 오후였다. 그러나, 날씨만큼 기분이 좋지 못하셨던 담임선생님의 종래 시간.
선생님은 들어오시자 마자 칠판에 큰 글씨로 이렇게 쓰셨다.
"禮"
우린 쉽게 그 글을 파악했지만, 왜 그 글을 쓰셨을까하는 의문은 선생님이 말씀하시기 전까지 계속됐다.
"엊그제, 내가 시내를 나갔는데, 어떤 한 녀석을 보았다. 물론, 내가 잘 아는 녀석이지. 그런데, 그냥 지나치더군... 씁쓸했다... 왜 그랬는지 아직까지 알지 못하겠지만, 묻고 싶지도 않다. 너희들은 그러지 마라. 수십만명이 오가는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아는 사람을 만나기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니깐 말이다. 좋건 싫건 간에 너희들은 그러지 말길 바란다. 이상!"
선생님은 그 말씀 후에 아무런 말씀도 안하시고 훌쩍 문을 박차고 나가셨다. 원래 성격이 호탕하신 편이라 그렇게 염려가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다소 여느때완 달라보이신 선생님의 말씀에 우리들은 다들 한 목소리였다.
"걔, 누구래? 선생님을 보고도 그냥 지나치냐... 하긴... 나같앴어두... 그랬을지 모르겠다..."
"사복입고 있으면 아마 다 그럴껄?"
그 때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질 않는다. 아마도 아이들의 이구동성에 동참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 때의 그 나이 시절엔 그랬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인사.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東方禮義之國이라 했고, 우리나라의 백성들은 軍師父一體라 하여 스승과 부모, 나라의 최고 권위자에게 인사로서 자신의 경의를 표하고, 답례를 받음으로서 자신의 위신과 만족을 느끼며 살아온 민족이었다.
어린 시절 가장 먼저 배운 인사법은 아마도 '안녕하세요'가 아닐까 한다. 웃 어른을 보면 머리를 숙여 깍듯이 인사하라는 아버님의 말씀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것이 아마도 내가 세상에서 제일 처음 배웠던 인사였으리라.
초등학교 입학 후, 도덕 교과서에 나오는 '인사 예절법'이란 것이 생각난다. 어른을 보면 머리를 90。로 숙여 공경함을 표하고, 친구나 동료를 보면 가벼운 목례로 반가움을 표시한다는 것을 우리는 책으로 부터 처음 배웠다. 책에는 그런 인사말 말고도 다른 인사말 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국어 교과서에 나왔던 '철수야 안녕', '순이야 안녕' 등등...
책에도 그런 말이 있었으니, 우린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고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으레히 나오는 것이 '안녕하세요'라는 말이 되어버렸다. 초등학교를 포함해서 중고등학교 시절, 학교 수업을 알리는 것은 종소리가 아닌 스승께 올리는 인사였다.
'안녕하세요'가 바로 그것이다.
수업이 끝나면 수업의 끝을 알리는 것도 종소리가 아닌, '감사합니다' 내지는 '수고하셨습니다' 였다.
군에 들어가면서 우린 경례-경례중에서도 거수경례를 지칭함-를 배운다. 손바닥이 앞에서 보이지 않도록 곧게 뻗어 팔굼치에서 시작되어 손가락 끝까지 일직선을 이뤄 오른 쪽 눈썹옆에 가지런히 대는 것이 바로 거수경례라 하겠다. 훈련소에 들어가, 거수 경례에 대한 숙지를 위해서 얼만큼의 노력이 필요한가는, 군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군에서의 거수경례는 상관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손이 올라가는 사병시절엔 -나이를 떠나 계급이라는 울타리안에서 이뤄지는- 가장 손쉽게 자신보다 계급이 높은 사람에게 경의를 표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사회에서는 그 의미가 조금은 다르다.
군에서 무엇을 했건 전직이 무엇이건 간에 우리가 사람 對 사람으로서 처음 대면을 할 땐, 나이가 어린 사람이 고개를 숙이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는 없다. 하지만, 손윗사람에게 손아랫사람이 머리를 숙인다는 것은 어찌보면 지극히도 당연한 상식적인 문제라고 하겠다.
우린 일생을 인사로 시작해서 인사로 끝마치는 것 같다.
아침에 눈을 뜨면 부모님께 문안인사를 올리고, 잠들기전에도 인사를 올린다.
학교에 가면 스승에 대한 존경의 인사를 시작으로해서 친구에 대한 반가움의 인사. 또, 헤어질 때는 아쉬움의 인사를 끝으로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또 다시 우린 부모님께 인사를 올린다.
관혼상제에 대한 것은 어떤가.
결혼식엔 신랑과 신부가 나란히 서서 맞절을 하는 인사를 시작으로 부모님께 올리는 폐백, 방문객에게 올리는 인사로 머릴 몇번 숙이는 지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인사를 한다.
제례는 또 어떤가.
차례를 지낼라 치면 온 집안 식구들이 모여 앉아 나란히 절을 한다. 물론, 종교적인 문제를 내세우자면 절을 하지 않는 곳도 있겠지만, 전통적인 차례나 제사를 지내는 가정에서의 인사형태를 살펴보면 절을 두 번 내지는 세 번 한다. 그것으로 우린 조상께 인사를 했다고 한다.
명절때도 마찬가지.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날. 설날 아침에 웃어른께 인사를 올리는 방법은 바로 세배.
세배(歲拜)의 사전적 의미는 섣달 그믐이나 정초에 하는 인사로서 세알(歲謁)이라고도 한다.
세배란 의미가 많이도 퇴색되어 가는 요즘이지만, 웃어른께 정월 초 하룻 날 처음으로 인사를 올리는 방법은 바로 세배였다.
어디 절하는 것이 정월 초하루 뿐이겠는가마는 우리 민족은 고유의 명절이라면 절을 하여 웃어른께 공경을 표하고 아랫사람에게 인사를 받아 의를 베푼 민족이었다.
종교적인 예를 살펴보면, 불교에서는 합장(合掌)이라 하여, 부처께 인사를 올릴 때 두 손을 합쳐 올리는 모양을 한다. 기독교를 비롯하여 천주교도들은 기도로 자신의 인사를 올린다.
이런 것들로 미루어 보아, 인사는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될 것임엔 틀림없다.
태어나면서 처음 배웠던 예(禮)가 바로 인사였고, 죽을 때 까지도 가지고 가야할 예(禮)가 바로 인사가 아닌가 한다.
선후배 사이의 인사는 더욱 각별하다. 학교생활에 있어서의 선후배 사이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는 아마도 경험해 본 사람만 알 것이다.
학교 생활 2년을 마감하면서 가장 아쉬운 것이 바로 선후배간의 정이 두텁지 못했다라는 것이다. 난 굳이 그것을 서로에게 대한 인사법의 미숙으로 돌리지는 않겠다. 자신의 과거의 경험을 들먹이며 예를 드는 것도 상황에 맞지 않으리라. 하지만, 세상은 점점 더 개인이기주의로 흐를 것이고, 점점 더 선후배간의 그것을 느끼지 못하리라는 염려에서 말을 하자면, 앞으로도 호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커진다라는 것이다.
중고등학교 시절의 그 무서웠던 선배의 얼굴이 지나 칠 것이다. 억지로 인사를 해야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 시절엔 그렇게 생각이 들었다. 당연한 것이었는데도 우린 싫으며 억지로 해야 하는 것처럼 선배에 대한 인사를 그런식으로 밖엔 여기지 않았다.
많이 변하고 있다.
사회가 변하듯이 의식도 변하는 것일까. 가장 기본적인 것인데도 우린 그것을 지나칠때가 너무나도 많다.
人之常情.
인사는 누가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고, 누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것도 아니다.
자신도 모르게, 생각지도 않게 머리가 숙여져야 그것이 진정한 인사이고 경례라 하겠다.
그것이 경의의 표함이고, 존경의 표시 일테다.
앞으로 삶을 살아가면서 많은 인사들을 할테고, 그 인사가 자신의 인생을 좌우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우린 여기서 자만하며 가만히 고개를 들고 있진 않을 것이다.
자신 또한 언젠가는 인사를 하는 날보다 받는 날이 더 많아 질테니까 말이다.
어느 화창한 날씨만큼이나 기분이 좋은 오후였다. 그러나, 날씨만큼 기분이 좋지 못하셨던 담임선생님의 종래 시간.
선생님은 들어오시자 마자 칠판에 큰 글씨로 이렇게 쓰셨다.
"禮"
우린 쉽게 그 글을 파악했지만, 왜 그 글을 쓰셨을까하는 의문은 선생님이 말씀하시기 전까지 계속됐다.
"엊그제, 내가 시내를 나갔는데, 어떤 한 녀석을 보았다. 물론, 내가 잘 아는 녀석이지. 그런데, 그냥 지나치더군... 씁쓸했다... 왜 그랬는지 아직까지 알지 못하겠지만, 묻고 싶지도 않다. 너희들은 그러지 마라. 수십만명이 오가는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아는 사람을 만나기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니깐 말이다. 좋건 싫건 간에 너희들은 그러지 말길 바란다. 이상!"
선생님은 그 말씀 후에 아무런 말씀도 안하시고 훌쩍 문을 박차고 나가셨다. 원래 성격이 호탕하신 편이라 그렇게 염려가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다소 여느때완 달라보이신 선생님의 말씀에 우리들은 다들 한 목소리였다.
"걔, 누구래? 선생님을 보고도 그냥 지나치냐... 하긴... 나같앴어두... 그랬을지 모르겠다..."
"사복입고 있으면 아마 다 그럴껄?"
그 때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질 않는다. 아마도 아이들의 이구동성에 동참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 때의 그 나이 시절엔 그랬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인사.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東方禮義之國이라 했고, 우리나라의 백성들은 軍師父一體라 하여 스승과 부모, 나라의 최고 권위자에게 인사로서 자신의 경의를 표하고, 답례를 받음으로서 자신의 위신과 만족을 느끼며 살아온 민족이었다.
어린 시절 가장 먼저 배운 인사법은 아마도 '안녕하세요'가 아닐까 한다. 웃 어른을 보면 머리를 숙여 깍듯이 인사하라는 아버님의 말씀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것이 아마도 내가 세상에서 제일 처음 배웠던 인사였으리라.
초등학교 입학 후, 도덕 교과서에 나오는 '인사 예절법'이란 것이 생각난다. 어른을 보면 머리를 90。로 숙여 공경함을 표하고, 친구나 동료를 보면 가벼운 목례로 반가움을 표시한다는 것을 우리는 책으로 부터 처음 배웠다. 책에는 그런 인사말 말고도 다른 인사말 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국어 교과서에 나왔던 '철수야 안녕', '순이야 안녕' 등등...
책에도 그런 말이 있었으니, 우린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고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으레히 나오는 것이 '안녕하세요'라는 말이 되어버렸다. 초등학교를 포함해서 중고등학교 시절, 학교 수업을 알리는 것은 종소리가 아닌 스승께 올리는 인사였다.
'안녕하세요'가 바로 그것이다.
수업이 끝나면 수업의 끝을 알리는 것도 종소리가 아닌, '감사합니다' 내지는 '수고하셨습니다' 였다.
군에 들어가면서 우린 경례-경례중에서도 거수경례를 지칭함-를 배운다. 손바닥이 앞에서 보이지 않도록 곧게 뻗어 팔굼치에서 시작되어 손가락 끝까지 일직선을 이뤄 오른 쪽 눈썹옆에 가지런히 대는 것이 바로 거수경례라 하겠다. 훈련소에 들어가, 거수 경례에 대한 숙지를 위해서 얼만큼의 노력이 필요한가는, 군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군에서의 거수경례는 상관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손이 올라가는 사병시절엔 -나이를 떠나 계급이라는 울타리안에서 이뤄지는- 가장 손쉽게 자신보다 계급이 높은 사람에게 경의를 표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사회에서는 그 의미가 조금은 다르다.
군에서 무엇을 했건 전직이 무엇이건 간에 우리가 사람 對 사람으로서 처음 대면을 할 땐, 나이가 어린 사람이 고개를 숙이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는 없다. 하지만, 손윗사람에게 손아랫사람이 머리를 숙인다는 것은 어찌보면 지극히도 당연한 상식적인 문제라고 하겠다.
우린 일생을 인사로 시작해서 인사로 끝마치는 것 같다.
아침에 눈을 뜨면 부모님께 문안인사를 올리고, 잠들기전에도 인사를 올린다.
학교에 가면 스승에 대한 존경의 인사를 시작으로해서 친구에 대한 반가움의 인사. 또, 헤어질 때는 아쉬움의 인사를 끝으로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또 다시 우린 부모님께 인사를 올린다.
관혼상제에 대한 것은 어떤가.
결혼식엔 신랑과 신부가 나란히 서서 맞절을 하는 인사를 시작으로 부모님께 올리는 폐백, 방문객에게 올리는 인사로 머릴 몇번 숙이는 지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인사를 한다.
제례는 또 어떤가.
차례를 지낼라 치면 온 집안 식구들이 모여 앉아 나란히 절을 한다. 물론, 종교적인 문제를 내세우자면 절을 하지 않는 곳도 있겠지만, 전통적인 차례나 제사를 지내는 가정에서의 인사형태를 살펴보면 절을 두 번 내지는 세 번 한다. 그것으로 우린 조상께 인사를 했다고 한다.
명절때도 마찬가지.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날. 설날 아침에 웃어른께 인사를 올리는 방법은 바로 세배.
세배(歲拜)의 사전적 의미는 섣달 그믐이나 정초에 하는 인사로서 세알(歲謁)이라고도 한다.
세배란 의미가 많이도 퇴색되어 가는 요즘이지만, 웃어른께 정월 초 하룻 날 처음으로 인사를 올리는 방법은 바로 세배였다.
어디 절하는 것이 정월 초하루 뿐이겠는가마는 우리 민족은 고유의 명절이라면 절을 하여 웃어른께 공경을 표하고 아랫사람에게 인사를 받아 의를 베푼 민족이었다.
종교적인 예를 살펴보면, 불교에서는 합장(合掌)이라 하여, 부처께 인사를 올릴 때 두 손을 합쳐 올리는 모양을 한다. 기독교를 비롯하여 천주교도들은 기도로 자신의 인사를 올린다.
이런 것들로 미루어 보아, 인사는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될 것임엔 틀림없다.
태어나면서 처음 배웠던 예(禮)가 바로 인사였고, 죽을 때 까지도 가지고 가야할 예(禮)가 바로 인사가 아닌가 한다.
선후배 사이의 인사는 더욱 각별하다. 학교생활에 있어서의 선후배 사이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는 아마도 경험해 본 사람만 알 것이다.
학교 생활 2년을 마감하면서 가장 아쉬운 것이 바로 선후배간의 정이 두텁지 못했다라는 것이다. 난 굳이 그것을 서로에게 대한 인사법의 미숙으로 돌리지는 않겠다. 자신의 과거의 경험을 들먹이며 예를 드는 것도 상황에 맞지 않으리라. 하지만, 세상은 점점 더 개인이기주의로 흐를 것이고, 점점 더 선후배간의 그것을 느끼지 못하리라는 염려에서 말을 하자면, 앞으로도 호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커진다라는 것이다.
중고등학교 시절의 그 무서웠던 선배의 얼굴이 지나 칠 것이다. 억지로 인사를 해야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 시절엔 그렇게 생각이 들었다. 당연한 것이었는데도 우린 싫으며 억지로 해야 하는 것처럼 선배에 대한 인사를 그런식으로 밖엔 여기지 않았다.
많이 변하고 있다.
사회가 변하듯이 의식도 변하는 것일까. 가장 기본적인 것인데도 우린 그것을 지나칠때가 너무나도 많다.
人之常情.
인사는 누가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고, 누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것도 아니다.
자신도 모르게, 생각지도 않게 머리가 숙여져야 그것이 진정한 인사이고 경례라 하겠다.
그것이 경의의 표함이고, 존경의 표시 일테다.
앞으로 삶을 살아가면서 많은 인사들을 할테고, 그 인사가 자신의 인생을 좌우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우린 여기서 자만하며 가만히 고개를 들고 있진 않을 것이다.
자신 또한 언젠가는 인사를 하는 날보다 받는 날이 더 많아 질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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