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아랫배에 통증이 온다. 벌써 이틀째다.
"다녀오겠습니다."
"오늘도 늦게 오니...?"
"아뇨... 모르겠어요."
어머니와 대화를 나눠본지도 얼마인가. 가물하다. 아파트를 나서며 다시 눈을 감는다. 잠시 동안이지만, 세상은 달라져 보인다. 까만색에서 하얀색으로 변해있다. 가물한 기억때문일까. 아랫배의 통증때문일까. 재혁의 한손은 아랫배에 가 있고, 다른 한손으론 담배갑을 툭툭 친다. 집을 나서며 담배무는 습관은 10여년이 넘었다.
오전 10시 25분.
친구와의 약속은 저녁 7시.
첫 월급을 받아서 한턱 낸다는 친구의 말에 미동도 없이 재혁은 담담히 그래, 어디서 볼까? 그 말만 되풀이 했다.
7월이 오려면 아직 멀었는데, 벌써 날씨는 여름으로 향하고 있었다. 날씨 때문이었을까. 사람들의 움직임이 너무 힘들어 보인다. 재혁이 그 사람들을 지나칠 때 그 사람들은 재혁을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르지만, 재혁은 많은 생각을 한다. 짙은 까만색 선그래스를 낀 재혁의 눈을 다른 사람들은 볼 수가 없다. 하지만, 재혁은 누구라도 눈치보지 않고 걸으며 본다. 흐린 날도 항상 가지고 다니는 재혁의 소품. 물감보다 진한 파란 하늘아래 까만 선그래스. 재혁은 그 색이 좋다. 선그래스를 벗고 눈을 감으면 다시 빨강. 재혁은 그 색이 좋다. 까망. 파랑. 빨강. 세가지 색은 항상 빨강으로 이어진다.
사람들을 보며 걷던 길에 다다라, 지하철역안으로 기어드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을 때쯤 재혁은 선그래스를 벗었다. 가방안을 연다. 두 계단쯤 내려갔을 때 가방을 열었고, 다섯계단쯤 내려갔을 때 안경집을 꺼냈다. 계단의 끝에서 다시 계단의 시작으로 이어졌을 땐 이미 가방을 들쳐매고, 안경집에서 꺼낸 안경 -썬그래스가 아닌- 을 쓰고 빠른 걸음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선그래스는 다시 안경집에 넣고. 급한 일도 없는데, 계단은 빠르게 내려가야 한다는게 재혁의 생각이다. 개찰구에 다다랐을 땐 지갑에서 지하철 정액권을 꺼낸다.
지하철안에 오르니 숨이 턱 막힌다. 사람은 없다. 재혁의 눈에 보이는 사람은 없다. 마네킹들. 쇼윈도우에 무표정으로 서 있는 그 인형. 사람들은 인형이다. 아무런 표정이 없다. 눈을 약간 돌려 자리에 앉은 사람들을 힐끗 본다. 무언가의 주제로 목에 핏줄을 세우며 떠드는 중년의 남성 둘이 눈에 들어온다. 곁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곤욕이다. 인상을 찡그린다. 재혁은 웃는다.
"씨발놈의 세상... 이런 세상에 살아야 하나? 이? 어디가서 이제 손 벌릴때도 없다...참."
"요즘 다 그래. 너만 그런게 아냐. 힘들어도 참아라. 자식새끼 생각해서라도 살아야지."
지하철에선 좀처럼 듣기 힘든 그런 대화가 지하철 한량을 꽉 채우고도 남는다. 저런 얘길 왜 이런대서 하느냐는 심정으로 다들 쳐다보는 듯 하다.
"살 수가 없어. 숫제 서울역전에서 잠이나 자지."
"이럴바엔? 이럴바가 뭔데. 자슥아..."
자식아...란 말을 끝으로 두 사내는 아무런 대화가 없다. 아침이라 출근한다며 집을 나선 것 같은데, 둘은 서로에세 의지한 채 아무런 목적지도 없이 가는 사람 둘이었다.
그래. 서울역.
재혁은 그 말에 눈이 번뜩였다.
지하철에 오르는 사람보다 내리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는 시내 통과지점 즈음에서 재혁은 서울역으로 향하기로 했다.
... 3편에 계속
아랫배에 통증이 온다. 벌써 이틀째다.
"다녀오겠습니다."
"오늘도 늦게 오니...?"
"아뇨... 모르겠어요."
어머니와 대화를 나눠본지도 얼마인가. 가물하다. 아파트를 나서며 다시 눈을 감는다. 잠시 동안이지만, 세상은 달라져 보인다. 까만색에서 하얀색으로 변해있다. 가물한 기억때문일까. 아랫배의 통증때문일까. 재혁의 한손은 아랫배에 가 있고, 다른 한손으론 담배갑을 툭툭 친다. 집을 나서며 담배무는 습관은 10여년이 넘었다.
오전 10시 25분.
친구와의 약속은 저녁 7시.
첫 월급을 받아서 한턱 낸다는 친구의 말에 미동도 없이 재혁은 담담히 그래, 어디서 볼까? 그 말만 되풀이 했다.
7월이 오려면 아직 멀었는데, 벌써 날씨는 여름으로 향하고 있었다. 날씨 때문이었을까. 사람들의 움직임이 너무 힘들어 보인다. 재혁이 그 사람들을 지나칠 때 그 사람들은 재혁을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르지만, 재혁은 많은 생각을 한다. 짙은 까만색 선그래스를 낀 재혁의 눈을 다른 사람들은 볼 수가 없다. 하지만, 재혁은 누구라도 눈치보지 않고 걸으며 본다. 흐린 날도 항상 가지고 다니는 재혁의 소품. 물감보다 진한 파란 하늘아래 까만 선그래스. 재혁은 그 색이 좋다. 선그래스를 벗고 눈을 감으면 다시 빨강. 재혁은 그 색이 좋다. 까망. 파랑. 빨강. 세가지 색은 항상 빨강으로 이어진다.
사람들을 보며 걷던 길에 다다라, 지하철역안으로 기어드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을 때쯤 재혁은 선그래스를 벗었다. 가방안을 연다. 두 계단쯤 내려갔을 때 가방을 열었고, 다섯계단쯤 내려갔을 때 안경집을 꺼냈다. 계단의 끝에서 다시 계단의 시작으로 이어졌을 땐 이미 가방을 들쳐매고, 안경집에서 꺼낸 안경 -썬그래스가 아닌- 을 쓰고 빠른 걸음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선그래스는 다시 안경집에 넣고. 급한 일도 없는데, 계단은 빠르게 내려가야 한다는게 재혁의 생각이다. 개찰구에 다다랐을 땐 지갑에서 지하철 정액권을 꺼낸다.
지하철안에 오르니 숨이 턱 막힌다. 사람은 없다. 재혁의 눈에 보이는 사람은 없다. 마네킹들. 쇼윈도우에 무표정으로 서 있는 그 인형. 사람들은 인형이다. 아무런 표정이 없다. 눈을 약간 돌려 자리에 앉은 사람들을 힐끗 본다. 무언가의 주제로 목에 핏줄을 세우며 떠드는 중년의 남성 둘이 눈에 들어온다. 곁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곤욕이다. 인상을 찡그린다. 재혁은 웃는다.
"씨발놈의 세상... 이런 세상에 살아야 하나? 이? 어디가서 이제 손 벌릴때도 없다...참."
"요즘 다 그래. 너만 그런게 아냐. 힘들어도 참아라. 자식새끼 생각해서라도 살아야지."
지하철에선 좀처럼 듣기 힘든 그런 대화가 지하철 한량을 꽉 채우고도 남는다. 저런 얘길 왜 이런대서 하느냐는 심정으로 다들 쳐다보는 듯 하다.
"살 수가 없어. 숫제 서울역전에서 잠이나 자지."
"이럴바엔? 이럴바가 뭔데. 자슥아..."
자식아...란 말을 끝으로 두 사내는 아무런 대화가 없다. 아침이라 출근한다며 집을 나선 것 같은데, 둘은 서로에세 의지한 채 아무런 목적지도 없이 가는 사람 둘이었다.
그래. 서울역.
재혁은 그 말에 눈이 번뜩였다.
지하철에 오르는 사람보다 내리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는 시내 통과지점 즈음에서 재혁은 서울역으로 향하기로 했다.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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