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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sibility/소설

권태4

4

빨간 장미꽃을 들이대며 재혁은 난 널 사랑해. 아니, 사랑하나 부다. 아니지. 사랑할거야. 잠시 머리를 뒤흔든다. 재혁의 방안엔 거울이 없다. 자신을 보고 싶지 않은 것이겠지. 흐트러진 모습. 항상 단정한 모습만 볼 수는 없는 것이니까.
고등학교때까지 남들이 다 한다는 담배, 술, 섹스 등등을 재혁은 하나도 못했다. 흥건히 젖어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빈번해 지면서 재혁에게도 여자란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감히 여자에게 말을 한다는 것은 어느 특정부류의 아이들이라고 생각했다. 여자의 옷만 스쳐도 심장이 두근거려 꼼짝을 못하던 재혁. 그런 재혁이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 1학년 시절. 같은 과 여자아이들에게 조차도 말을 못했다. 그러나, 두어달. 재혁은 여자를 알아가고 있었다. 야! 너 오늘 이쁘다? 머리했니? 내지는 넌 엉덩이가 작아서 애낳을 때 힘들거야 라는 식의 말들. 그것이 여자를 알아간다고 말하면 다소 무리가 있긴 하겠지만, 재혁은 그랬다. 편해지는 순간을 그렇게 맞이했던 것이다. 그러다 사랑을 했다. 사랑? 스물한살때까지 그 말의 정의가 무언지 사전 한 번 찾아보지 않았고, 어디서든지 그 말을 들으면 재혁은 무심히 지나쳤던 그 단어. 사랑. 그것의 정의를 알아가게 되었다.
그녀. 그녀는 키가 작다. 그녀는 통통하다. 그녀는 눈웃음을 친다. 재혁이 생각하는 여자에 대한 환상을 송두리채 뽑아버릴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그녀였다. 그녀와의 첫 번째 섹스를 하던 날, 재혁은 옷을 벗으며 팬티를 적셨다. 그녀와의 두 번째 섹스를 하던 날, 재혁은 두어번의 움직임에 임신을 걱정했다. 그녀와의 세 번째 섹스를 하던 날, 재혁은 비디오테이프를 보고 생각해 두었던 자세까지 실천할 수 있었다. 그녀와의 네 번째 섹스에선 6시간 동안 10번이라는 신기록을 세웠다. 물론, 재혁의 기록이지만.
그런 것이 중요하겠는가. 인생에 있어서, 사랑에 있어서 섹스가 얼만큼 중요한가를 느끼는 순간이었다는 생각, 이젠 더 이상 자위행위를 안해도 된다는 생각. 교차했다. 그 생각 말고도 여러 생각이 재혁의 머리를 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더 이상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와의 만남은 99일이상을 허락하지 않았다.
군입대. 그것이 죄라면 죄. 사랑의 죄.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 울타리안에 갇혀 지냈던 그 시간들이 재혁에겐 고문이었다. 사랑이 떠나간다. 이별의식은 정확히 재혁의 입대 6주후에 이루어졌다.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니?라는 말에 그녀는 무심히 재혁의 시선을 피하며 아무말도 못했다. 아니, 안했다. 그렇게 슬프던 스물두살의 해.
슬픔으로 고통으로 지샜던 그 스물두해에 얻은 것이 있다면 재혁에게 큰 정신적 성숙을 가져다 주었다는 것이다. 홀로 밤하늘의 별을 헤아리며 자신의 숨소리만이 지치도록 떠들어대던 그 별이 빛나던 밤. 재혁이 그녀와 헤어지고 복귀한 바로 그 날밤, 재혁은 의무대로 후송된다. 자살기도. 빨간빛의 핏방울이 송송 손목을 흐르는 것을 보며 재혁은 미소를 짓는다. 그리곤 이내 눈을 감아버린다. 쇠창살안의 어둠이 무엇인지 알게 된 계기가 바로 그것이었다. 뭔가를 생각하는 모양으로 앉아만 있어야 하는 교도소. 선임하사가 지나가며 무어라 말을 꺼내면 반성의 빛이 역력한 모양으로 대답을 해야 했다. 그 모든 것이 재혁에겐 부담이었다. 삶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 계기.

...5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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