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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folio/인터뷰

"수화는 나이 들어도 할 수 있습니다." - 샛별체육관 관장 이문찬씨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농아인들과 청각 장애자들. 그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다짐을 하면서도 일반인은 섣불리 나서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20여년간 수화를 통해 '사랑'을 실천한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태권도 8단의 이문찬씨(50)다.

 

☞ 태권도를 가르치고 싶어 수화를 시작한지 20년


  1980년 광명시에 샛별체육관을 세우면서 그는 태권도를 어린 제자들에게 가르치는 보람으로 살자고 다짐했다. 그러나 체육관 건너편에 위치한 '명휘원'에서 지역 봉사차 농아자와 청각 장애자들을 돌본다는 소문을 듣고 그 곳을 찾아가 자원 봉사를 시작했다. 농아자와 청각장애자들을 돌보는 일이 전부였던 당시 봉사 활동에 가장 큰 애로 사항은 의사 소통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청각 장애자들을 위해 뭔가 해주고 싶었어요. 근데, 말이 통해야 말이지요. 애들이 몸은 건강해서 태권도를 가르쳐 주고 싶은데, 말이 통하지 않아 불가능했습니다. 이때부터 수화를 배워야겠다는 다짐을 했지요."


처음엔 농아인들에게 수화를 직접 배웠다. 태권도를 1시간 가르쳐 주고 수화를 1시간 배웠다. 그러기를 몇 년. 개인적으로 배우기에는 한계를 느낀 그는 정식으로 수화를 배우고 싶어 여기저기 수소문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당시에 수화학교는 고사하고 체계적으로 가르쳐 주는 곳이 단 한 군데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지난 81년 운보 김기창 화백이 초대 회장으로 선임됐던 '한국 농아 복지회'가 설립돼 그곳에서 '사랑의 수화 교실'을 열었다. 수화의 체계적 교육에 목말라 했던 그가 물을 만난 것이다.


그 후 수화에 점점 빠져들어 85년 전국 농아인들의 기술 교육을 담당한 '운보원'이란 단체의 원생들에게 태권도를 무료로 가르쳤으며 그 해 9월 '세계 장애자 기능 대회'가 컬럼비아에서 열렸는데 자원 봉사로 출국해 견문을 넓혔다.


☞ 어린 제자들


  "세계 66개국이 출전한 대회였어요. 정말 많은 걸 배웠지요. 선진국 장애자들을 만나면서 수화가 만국 공통어임을 다시금 깨달았지요. 영어, 일어, 불어 등 다 소용없어요. 그저 바디 랭귀지만 있을 뿐이예요. 우리가 행동하는 그 자체가 수화인 겁니다."


잠을 자고 싶으면 손을 모아 귀밑에 대면 되고, 두 사람이 만난다는 표현은 양손의 검지손가락을 펴고 손가락을 가까이 대면 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어려워 보일 듯도 하지만 수화가 오히려 말보다 더 친근하다. 그런 수화를 바탕으로 그는 88년 장애자 올림픽 개폐막식때 수화 통역을 맡았었다. 대통령을 보며 수십만 관중 앞에서 수화를 했던 그때를 기억할 수 있는 사진이 단 한 장만 남아 있어 아예 액자에 못을 박아놨다.


92년 서울에서 개최됐던 '아시아 태평양 농아인대회'도 그렇지만 95년 광명시 공무원들을 상대로 수화 교육을 시작한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한다. 당시 전재희 광명시장에게 건의해 흔쾌히 수락을 받았던 그는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씩 구청과 경찰서로 출근한다. 무궁화가 몇 개씩 그려져 있는 높은 분들이지만 수화를 가르치는 그 앞에선 모두가 꼼짝없는 제자들이다.


"외국인이 민원을 신청하는 일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때문에 상대적으로 국내 농아인이나 청각 장애자들을 등한시하는 정책에 반기를 들 수밖에 없었지요. 다행히 수락해 수화 교실을 열었고, 지금까지 이끌어오는 과정에서 힘든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큰 보람을 느낍니다.(웃음)"


최근 그는 한신대와 고려대에 출강하면서 '태권도 사범'이외에 '교수님'이라는 직함이 하나 더 붙었다. 지난해부터 출강 중인 고려대에선 수강 신청이 너무 많아 강의를 증설했을 정도로 인기다. "가장 기억에 남는 제자가 있는데 고대 수학과를 나와 서울 명문 고교 선생으로 가게 됐던 여학생이 있었어요. 근데, 전남 완도로 가선 수화를 교육하고 싶다는 겁니다.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국 떠났지요. 그 여학생이 전화를 걸어 제게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 고맙습니다'라고 했을 때 눈물이 다 나오더라구요."


어린 제자들이 훗날 변호사, PD 등이 되어 장애자들을 위해 힘을 보태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장래 희망을 보면 절로 흐뭇해 진다는 그는 이제 수화는 하늘이 자신에게 내린 선물로 생각한단다.


☞ 무관심 일색인 사회 풍토 바꿔야


부인과 1남 1녀를 둔 그도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다. 체육관을 처음 개관했을 때 그는 밥줄도 잊고 밤낮으로 수화 교육에 매달렸다. 배우기 위해, 때론 가르치기 위해. 그런 그가 야속할 수밖에 없었는 집안 식구들이었지만 이젠 그를 이해한다. 아들은 장성해 현재 그가 운영중인 체육관 '사범'으로 있다. 물론, 수화도 수준급.


청각 장애는 유전이 3∼5%, 산모의 약물중독이나 흡연으로 인해 10∼15%가 발생되며 나머지 80%정도는 후천적으로 열병을 앓아 고막이 파열됐을 때 발생한다는 통계가 있다. 이런 장애자들을 위해 외국에선 가정에서부터 몸소 사랑을 실천한다고 한다. 언어로 대화하다가도 청각 장애가 있는 자녀가 들어오면 모두가 수화로 대화한다는 것. 당연히 이런 환경에서 자란 자녀는 자신이 장애자라는 인식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말 못하는 자식이 가슴 아파 어디에도 데려가지 못한다는 우리네 사회 풍토가 빨리 바뀌어야 합니다. 그들은 듣기를 못하기 때문에 지식이 너무 부족해요. 그들의 글은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어법에 어긋나 있어요. 들을 수 없으니 배울 수 없었던 것입니다."


현재 그는 전국의 모든 대학의 사회학과나 사회복지학과 등에 수화가 필수 과목으로 채택되길 바란다. 이젠 많은 관심으로 보살펴야 한다는 얘기다. 농아 학교 선생님들이 수화를 못하는 현실을 보면 정말 기가 막히다는 그는 이런 이유로 16년 전부터 '광명 수화교실'을 열어 그나마 '수화 보급'에 보탬을 주고 있다.


이런 모든 활동의 원천은 무엇일까. 그가 생각하는 행복은 과연 무엇이길래 이토록 보통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없는 것에 무게를 두고 행복해 하는 것일까. 그 대답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운동은 나이들면 못하지만, 수화는 언제라도 할 수 있잖아요."


한국담배인삼공사 사외보 게재(2000년 4월)
[인터뷰] - 샛별체육관 관장 이문찬씨
 


경기도 광명이었던 것 같다.

광명사거리.

지금도 샛별체육관이 있는 진 모르겠다.

 

글의 매력이 이런 것이 아닐까.

 

오랜 세월 지나 기억이 가물었을 때도 샘솟는 샘물 같은 객관적 진실들. 그리고, 주관적 감정들.

 

기분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