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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folio/인터뷰

"정신장애자 위한 재활 교육기관이 꼭 필요합니다."- 이진순

이 세상을 행복의 잣대로만 본다면 행복한 자와 불행한 자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행복과 불행은 모두 종이 한 장 차이다. 모두 자기 자신의 마음가짐에서 출발하는 것. 이런 면에서 '종수이야기'의 저자 이진순씨는 너무나 행복한 사람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요즘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종수이야기'의 저자 이진순씨를 만나보았다.


☞ 선교사의 꿈 접은 '이종수'와의 운명적 만남


  그녀는 요즘 아침 10시와 오후 4시에 어김없이 드라이브를 나선다. 하루의 중요한 일과로 자리잡은 드라이브는 남편 '이종수'씨가 세상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로 매일 거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는 한마디의 불평도 늘어놓지 않는다. 지난 옛일을 생각해 보면 지금 둘만의 이런 시간이 너무나 행복하기 때문이다.


1951년 인천에서 출생한 이진순씨의 직업은 자원봉사자. 1970년대말 홀트 아동복지회에서 시작한 자원봉사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정상인보다 정신장애인과 더 죽이 잘 맞는다'는 주위 사람들의 말처럼 그녀에게 자원봉사는 천직이나 다름없다.


그녀는 1985년부터 보훈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만난 명희언니에게 한 가지 제안을 받는다. 그리고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그 제안이 그녀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그녀가 만난 사람은 19세때 정신병원에 들어와 46세까지 27년간 사회와 단절된 채 살아온 현재 그녀의 남편인 '이종수'씨.


경기고등학교 55회 졸업생인 이종수씨는 평소 체육을 좋아해 체육학과를 희망했었다. 그러나 세계인권옹호협회 한국연맹 회장이었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극구 반대로 결국 정신질환 증세를 앓기 시작했다.


"초기에 가족들이 사랑과 관심으로 돌봐 주었더라면, 아마 그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거예요. 참으로 비참하죠. 가족으로 생각지 않았던 가족들을 보면서 그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요?"


☞ 경기고 55회 동창 찾아와


  "죽을 때까지 나 좀 돌봐줘요."


이 한마디가 가슴에 사무쳐 결혼했을까. 그러나 그녀의 결혼 결심이 시댁 식구들에겐 대수롭지 않아 보였다. 아들의 증세를 터부시했던 시어머니의 비상식적인 행동과 정신질환을 죽음과 비교했던 시동생, 시누이들의 멸시 등을 참아가며 살아온 시집살이 10여년. 수 많은 기도와 인내로 참아낸 시절이 지금 생각하면 추억이다. 그만큼 여유가 생겼다는 말도 된다.


"그들과 연락 끊긴 지 오래됐어요. 하지만 기분좋은 소식이 하나있다면, 책이 출간된 이후 제 바램처럼 정말 경기고 55회 졸업생 한분이 찾아오셨습니다. 어찌나 반갑고 고맙던지... 지난달 30일에 경기고 총동문회인 '신우회' 총회에서 팜플렛을 송부해 오고 그랬어요."


책이 출간된 이후 크게 변화된 것은 죽었던 그가 살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경기고 동문회에서 '사망'으로 처리된 지 오래됐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 3월 23일 KBS TV <이것이 인생이다>에 출연한 이후 쏟아진 격려전화 중에 경기고 동창이 있어 사망자를 생존자로 고칠 수 있었던 것.


정말 말로 다 하기 힘든 그 생활들을 겪어오며 가장 힘들었던 것이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시동생의 고의 부도로 100억대의 재산가였던 남편이 재산을 모두 몰수당해 삼청동 집을 맨손으로 나왔을 때"였다고 고백했다. 당시 그녀는 다리 하나를 절단한 남편이 누워있는 병실 창가로 보이는 한강에 그대로 들어가고 싶었다고 한다.


"정말 너무 힘든 나머지 그대로 하나님의 품으로 가고 싶었습니다. 저렇게 푸르게 흐르는 강물에 뛰어들 용기가 나진 않았지만, 당시엔 고통을 벗어나 하나님의 품에서 길게 호흡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기도였다. 결혼한 이후 병원에서도 포기한 남편의 질환을 그녀는 기도로 이겨내려 했던 것. 그녀의 사랑이 하늘을 감동시켰던 것일까. 모든 음식을 손으로 집어먹고 옷에 슥슥 닦던 것과 손톱을 자르지 않아 피가 철철 넘쳤던 것, 결혼 후 7년여간 목욕을 하지 않아 악취에 코를 싸매야 했던 것, 경찰을 불러 반협박조로 이발을 시켜야 했던 것들이 이젠 그들 부부에겐 거의 낯설게 됐다. 전부는 아니지만 거의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기쁨보다는 "남편이 병원에 다리를 절단하려고 입원해 내가 같이 기도하자고 했을 때 남편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 때가 가장 기뻤다"고 말한다.


☞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종수씨는 과거 서른 세알을 매일 먹던 약을 이젠 먹지 않아도 된다. 대신 전립선 비대증으로 인해 소변을 마음대로 볼 수 없게 됐고 당뇨병으로 인해 매일 5번에 걸쳐 약을 입에 넣어야 한다.


'소년같은 어른' 이종수와 살아온 지 어언 15년. 그녀는 요즘 "사랑해"라고 말하면 그는 "별소릴 다하네"라고 받아친다. 과거엔 꿈도 꾸지 못할 대화였던 것. "정신장애자들은 정신병자가 아닙니다. 그저 장애자일 뿐입니다. 모두의 관심과 사랑만 있으면 초기에 치료할 수 있는 '암'처럼 여겨야 됩니다. '암'에 걸렸다 하면 여기저기 용하다는 병원을 다 찾아다니면서 왜 '정신장애자'들은 무조건 병원으로 처박아 놓습니까. 교도소 생활을 27년여간 했으면 기술이라도 배워나오지."


정말 한이 맺힐 만한 그녀의 인생. 정상인도 27년여를 정신병원에 갇혀 있었다면 아마 정신질환자가 됐을 법 하다. 그녀는 "가족까지도 장애자가 되어 주위에 알려야 할 용기가 필요하다"며 "정신질환자들은 평생 약을 먹어야 합니다. 최신의 좋은 품질인 약을 싸게 먹을 수 있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100만 정신질환자와 400만에 해당하는 그 가족들은 기뻐 할 겁니다."라고 강조한다.


'이종수의 이름을 세상에 남기고 싶어 책을 썼다'는 책의 머리말처럼 그의 이름이 이제 세상에 남겨지려 하고 있다.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그녀의 모진 다짐처럼 그녀의 '사랑' 세상에 널리 퍼져 '정신장애자들을 위한 세상'이 하루 빨리 오기 바란다.

 

삼성코닝 사외보 게재(2000년 4월)
[인터뷰] - '종수 이야기' 저자 이진순

- 끝 -
  

 


 

한 때 뉴스의 '따뜻한 이야기'들을 모아 스크랩해 놓은 적이 있다.

그것이 중단된 것은 2007년이었던 것 같다.

내 마음이 덥지 않아 그래서였을까. 혹은 매우 더워서 그랬을까.

 

따뜻한 이야기는 오늘도 계속되건만,

세상 속 나의 마음은 차가운 빗줄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