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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folio/인터뷰

인류의 난치병 극복에 '희망'인 복제 기술 - 황우석 박사

☞ 세계 다섯 번째 복제소 개발


  지난해 2월 12일. 국내에서 세계 다섯 번째로 복제송아지가 태어났다. 영국의 '돌리'이후 일본·미국·뉴질랜드에 이은 생명공학 분야의 쾌거로 젖소가 태어나기는 이번이 처음. 서울대 수의학과 황우석 박사팀이 일궈낸 이 성과는 미래에 생명공학 분야에서 세계 열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것으로 풀이되며, 우리 기술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으로 평가됐다.


 황박사가 복제 송아지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갖게 된 것은 일본 유학 후 돌아오던 87년 5월. 그 후 그는 복제 송아지의 기초단계인 쌍둥이 송아지 생산(88년)과 시험관 송아지 생산(93년), 수정란을 이용한 생식세포 복제와 한우 복제(95년)에 잇따라 성공했다. 그리고 마침내 복제기술의 마지막 단계인 체세포 복제에 독자적 기술로 성공하는 위업을 이뤘다.


"우리나라 생명공학 분야의 전반적인 기술은 선진국에 아직 미약합니다. 하지만, 복제 기술과 에이즈 백신 기술 등 일부 분야에서는 한발 앞서 나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는 우리나라 생명공학 분야의 전망은 매우 밝다고 말한다. "생명공학이란 게 거대 자본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근면과 성실 그리고 창의적인 발상과 끊임없는 노력만 있으면 더 큰 성과도 올릴 수 있는 것이지요. 우리에겐 이 모든 게 있어 경쟁력이 있습니다."


☞ 동물 복제 획기적 기술 개발


  황박사팀은 복제 젖소 '영롱이'에 이어 지난해 3월 복제 한우 '진이'도 개발해냈다.


'진이'는 몸무게가 한우(550kg)의 1.8배인 980kg짜리 수퍼소로 영롱이가 자궁세포를 이용하여 복제한 것과는 달리 진이는 귀세포를 떼어내 복제했다. 자궁 속에서 떼어낸 세포를 인공적으로 배양한 뒤, 이를 미리 핵을 제거한 다른 소의 난자에 집어넣고 약 10마이크로초 정도 전기 충격을 가해 세포를 융합시켰다. 융합된 난자는 대리모(자궁을 빌려준 또 다른 소)에 다시 옮겨져 275일만에 출산에 성공했다.


특히 세포를 융합시키기 전 소의 6가지 전염성 질병을 검사하고 염색체 조사를 통해 유산과 기형성 세포를 미리 제거하는 등의 기술은 기존 복제 동물 기술을 한차원 높인 것으로 평가됐다. 또 난자의 핵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난자의 파손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스퀴징법(난자를 쥐어짜면서 핵을 빼내는 기법)을 사용한 것도 획기적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단 한번의 세포융합을 위해 수번천씩 같은 실험을 반복한 그는 '진이의 성공적 출산이 무척 기뻤다'며 '순수 토종인 한우의 복제로 이제 우리 농가에서 한우를 무한대로 생산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어 농가소득이 크게 향상될 것'이라고 말했다. 젖소보다 한우의 세포크기가 2/3에 불과해 한우 복제가 더 어려웠다고 밝힌 황박사는 이제 인류의 각종 유전적 난치병을 치료하는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중이다.


"현재 우리의 복제기술은 인간 복제도 가능한 수준입니다. 하지만 천륜을 거스르는 그러한 인간복제가 이루어져선 안됩니다. 현재 실험중인 '심장 이식용 돼지'가 성공하게 되면 10여년 내로 인류의 난치병은 극복될 것입니다."


또 이와함께 그는 현재 백두산 호랑이의 복제 실험에 몰두 중이다. 멸종되어 가는 백두산 호랑이를 살리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이번 실험은 지난해 4월 실험을 시작하여 올 연말이면 그 결과를 볼 수 있다고. 생명 연장의 꿈을 서서히 이뤄가고 있는 과학의 힘이 우리에게도 있다는 것을 세계에 널리 알린 황우석 박사. 동물 복제란 것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느때라도 원하는 숫자만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기에 생명공학의 신기술도 마음 먹기에 따라 선과 악의 두 얼굴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농가의 소득 향상'과 '인류의 난치병 극복'을 위한 꿈으로 신기술 개발에 임하는 그의 모습에서 21세기 한국의 '희망'이 엿보였다.


포스콘 사보 게재(2000년 2월)
[21세기 신기술] - 서울대 황우석 박사

- 끝 -
 

 


 

이 때까지만 해도 황우석 박사의 미래가 핏빛일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당시 황우석 박사와는 전화 인터뷰로 진행했다. 직접 만날 수 없을 만큼 무척이나 바쁜 사람이었다.

지금도 쉽게 만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많은 할 이야기가 있지만, 접으련다.

접지 않는다고 달리질 것 없는 대한민국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