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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folio/일반기사[2003~2007]

[SK]한잔합시다-“쉽고 가벼운 이 시대에 아날로그가 그립습니다”

“쉽고 가벼운 이 시대에 아날로그가 그립습니다”
성대 동문들의 일과 사랑, 그리고 꿈은...


세 번째 ‘한잔합시다’의 주인공은 성균관대학교 동문들이다. SK생명 권오정(33) 대리, SK생명 오은상(31) 사원, SKC&C 박상준(31) 사원이 자리를 함께 했다. 원래 더 많은 동문들이 참석코자 했으나, 평일인데다 월말이 겹쳐서 인지 많은 인원이 참석치 못해 아쉬웠다.

그러나, 나름대로 조용한 가운데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오히려 지난번 모임때보다도 더욱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성대 근처 대학로에서 가벼운 술과 음식을 가운데 놓고 펼친 졸업 10여년만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권오정(이하 ‘권’) 안녕하세요? 오늘 처음 뵙네요. 전 91학번 권오정이라고 합니다. 이 옆의 친구는 오은상씨구요.(권오정 대리, 오은상씨와 박상준씨는 초면이다)
박상준(이하 ‘박’) 반갑습니다. 전 학교를 좀 늦게 들어갔어요. 95학번이구요. 늦게 와서 죄송스럽네요.
오은상(이하 ‘오’) 아닙니다. 하하.

사실 박상준씨의 지각(?)으로 예정된 시간보다 다소 지체돼 이야기는 시작됐다. 대학로를 가본 사람이라면 한번 쯤 느꼈을 만한 것. 바로 젊음이다. 젊음의 상징터가 된 이 곳은 이미 지난 80년대 후반부터 개발을 시작,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성균관대학교는 어찌보면 그러한 혜택을 무한히 느낄 수 있는 좋은 자리에 위치해 있어, 타교보다 좋은 추억거리가 더 많음직도 하다. 문화의 거리 대학로에서의 추억은 성대생 뿐만 아니라 모든 젊은이들이 공유하는 것이다.

박상준씨는 오은상씨와 알고 보니 동갑이었다. 그러나, 학번은 오씨가 3년 늦다. 오늘이 초면이다. 박씨는 “SK에 성대생들이 많은데 오늘 너무 적게 참석한 것 아니냐”며 환하게 웃는다. 본래 SK그룹에서의 동기 모임은 거의 없었던 것이 사실. 이는 파벌 형성을 전혀 하지 않는 사풍에 따른 것이나, 동기동창 모임은 암암리에(?) 행해진다고 한다.

권대리는 “제가 98년부터 3년간 성대에 나가 취업박람회에 참가한 적이 있는데 그 때 모인 멤버들이 많이 불참했다”며 “많은 성대생들을 대표해 이 자리에 나온 만큼 많은 이야기를 풀어가자”고 다짐하기도 했다.
권대리는 입사 7년차. 박씨와 오씨는 입사 3년차다. 모교에 나가 후배들을 자사로 입사시키려는 노력은 비단 성대뿐만이 아니다. 특정 대학에 국한돼 비뚤어진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어 부담되기도 하지만, 요즘처럼 취업하기 힘든 시기의 후배 사랑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권 사실 지금 너무 어려운 것 같더라고요. 워낙 취업 경쟁률이 치열해서 우수학생에 대한 기준도 모호한 게 사실이죠.
박 맞습니다. 예전 같으면 무슨무슨 자격증이 있다하면 턱턱 붙었는데, 지금은 전혀 달라요. 오히려 많이 공부한 사람들을 외면하는 시대죠. 실제 엘리트 코스를 밟은 사람을 뽑아놓으면 1-2년 근무하다 더 좋은 직장을 찾아 떠나더라고요.

오 휴~~ 자격증 인플레가 심해요. 요즘 후배들이 그러더군요. 교수님들이 ‘공인회계사’ 자격증 같은 거 따지 말라고도 한데요.
박 예전에 모주간지에서 저를 인터뷰 한 적 있는데... 아! 이건 우스개 소리입니다. 인터뷰 할 때 취업과 관련된 것이었어요. 취업 안되는 사람들을 위한 대책이 뭐겠냐는 식의 질문이었죠. 전 ‘유학’이란 말을 하긴 했는데... 전혀 다른 방향으로 기사가 나와서 당황했었죠.
권 어떤 내용이었는데요?
박 취업돼서 자리 잡히면 유학간다는 식으로... 하하. 그래서, 이런 취재나 인터뷰에 대한 안좋은 기억이 있지요.

성대에는 ‘3품제(국제품, 인성품, 정보품)’라는 것이 있는데, 이 3가지를 모두 통과해야 졸업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성대 고유의 학위인증제인 셈. 96학번부터 시행됐다고 하니 권대리는 이를 알 리 없다. 이미 오래전부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취업’과 관련해 이야기가 시작됐다.

그들도 취업은 했으나, 현실의 불안함을 몸소 체험하고 있는 탓인지, 여러 가지 견해가 나왔다. 필자는 포커스를 약간 틀어 ‘타사에 있는 동기들 만남’에 대한 것으로 이끌었다.

박 다른 회사 들어간 친구들 많죠. 삼성이나 LG, 포스코 등등... 근데, 사석에서 만나면 일절 회사 얘길 하지 않죠. 분위기도 회사 얘기하는 분위기도 아니고, 설사 회사 얘길 한다해도 왕따 당하기 십상이니까요. 하하.
권 혹자는 ‘공장 얘기’라고도 하죠. 크크
박 아마 SK내에서 동기들이 잘 모이지 않는 것은 어찌보면 이러한 ‘공장 얘기’ 하지 말자는 취지에서 비롯되지 않나 싶어요. 하하.
기자 지난번 모임때 2년차 후배들은 가끔 예비군 훈련처럼 동기들 끼리 모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하던데요.
박 맞아요. 좋죠. 전 지금도 학교에 주1회 이상 가요. 도서관에 가는데...(이때 권대리와 오씨는 ‘정말요?’라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오 도서관 아래 당구장에 가는 거 아닙니까? 하하.
권 도서관 아래 당구장이 있어?
오 네. 아! 선배님은 모르겠군요. 졸업하고 나서 생겼을 거예요.
권 크크... 학교가 완전 놀이터군. 하긴 졸업 후에 와서 보니까 근처 술집들이 다 바뀌었더군요. 그 시절엔 데모도 많이 하고 그랬는데.
박 그 시절 선배님들은 데모를 많이 했죠. 헌책방이나 사회과학 서적, 대자보 등은 아련한 추억으로 사라져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죠.
권 그거 기억해요? ‘풀무질’이라는 헌책방요.
박 알죠.
권 전 헌책 냄새가 좋아 항상 꿈이 경남 진주에서 헌책방을 운영하는 것이랍니다.

둘이 얘기가 재미있다. 성대 앞에 작은 헌책방이었던 ‘풀무질’은 현재 주인이 바뀌었다고 한다. 예전에 권대리의 아지트였던 이 곳은 성대생들의 커뮤니케이션의 통로로 활용되곤 했다. 학생들은 강의가 끝나고 항상 이 곳에 들러 ‘오늘은 어떤 모임이 있나’는 식의 궁금증을 해소하던 곳이라는 것. 지금의 ‘인터넷 카페 공지게시판’쯤으로 여기면 된다. 인근 ‘논장’이라는 헌책방은 아예 사라져 성대의 옛 것을 그리워하는 이들을 더욱 아쉽게 만들고 있다.

문득 필자는 사회가 점점 디지틀화 될 수록 한켠에서는 아날로그 매니아들이 출현하고 있다는 기사가 생각났다. 비인간화가 디지틀과 동일시 될 수 없을 듯 한데, 여전히 이러한 명제는 어지럽고 스피디한 세계에 인간을 ‘실용화’ 시키는 듯 하다. 386 세대만 그러한 것은 아니다. 사회적으로 복고 바람이 크게 일어나는 것도 이러한 디지틀화의 정당성에 ‘말 없는 저항’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권대리 꿈이라는 ‘헌책방 운영’은 재밌는 이야깃거리가 돼 주었다.

박 정말 헌책방 운영이 꿈입니까?
권 네. 그래요. 진주는 정말 변하지 않는 도시예요. 10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하나도 없더군요.
박 결혼하셨잖아요? 아내가 싫어할 텐데요... 크크.
권 네. 맞아요. 하하. 그런데, 전 헌책 냄새가 좋아요. 최회장님께서 얼마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죠? ‘변하지 않으러면 나가라’.
박 변하려면 결혼을 못할텐데요. 크크.
오 사실 결혼하고 나면 마이너스되는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예요. 결혼은 신중히 결정해야 할 문제지만, 대체로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하잖아요. 아~ 장금이 할 시간이네. 크크.
권 (오씨를 바라보며)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꾸면 돼. 시간이 없다는 건 핑계야. 나도 지금 집에 가면 TV를 전혀 안봐. 아이들 목욕은 항상 내가 시켜주지. 스타일을 바꾸면 뭐든 된다니까.
오 하긴, 회사 빌딩이 금연으로 지정된 후 2갑 피던 분들도 반갑으로 줄이더군요.
권 흡연 장소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장소’로 활용되고 있지. 모든 업무협조가 다 이뤄져.
박 맞아요. 담배 안피는 사람도 대화에 끼려고 일부러 흡연 장소로 나가기도 하구요. 새로운 대인관계의 장이죠. 임원분들은 흡연 장소에 나가기 싫어 점심시간이나 출근시간에 차안에서 주로 담배를 피우신다고 하던데요.
오 우리 상무님도 이번 기회에 담배를 끊으셨죠.

술잔이 오고가고 식사를 마치고 나니 시간이 벌써 밤 10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식당 구내에서는 ‘대장금’의 메인테마송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조용한 한식당은 이들 목소리외에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아 다소 적막했다.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박씨는 잘 어울리며 많은 이야기를 풀었다. 헌책방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아쉬워하며 “쉽게쉽게 인간을 단순화 시키는 인터넷 문화도 문제”라며 아날로그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했다. 그러나, 박씨의 주 업무는 이와 상반된다. 손 하나로 뭐든 이뤄낼 수 있는 ‘첨단 디지틀 시대’를 열고자 연구하는 것이 그의 업무다. 그래도 그들은 한 목소리를 냈다.

“인터넷은 인간을 바보로 만드는 것 같아요”(박)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으면 아무런 말도 생각나지 않죠”(오) “자신이 결국 조절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권)
이야기 말미에 그들은 ‘여자’와 ‘결혼’ 이야기에 대해 구체적으로 대화했다. 특히 아직 미혼인 박씨는 SK생명에 사내 커플이나 여직원들이 많은 걸 안다며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

권 예전 ‘사랑의 스튜디오’에 나간 적 있어요. 그 때 나간 사우가 꽤 좋은 평가를 받아서 MBC PD가 얼마 후 ‘SK 특집’을 한번 하자고 했어요. 얼씨구나 했죠. 14명을 선발해 나갔는데, 1명 빼고 모두 탈락했어요. 크크. 안좋은 기억이죠.

권대리는 “조만간 SK생명 여사우들을 대상으로 미팅 한번 주선해야 겠다”며 박씨를 건들였다. 입이 함지박만 해진 박씨는 “좋다”고 연신 화답,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하려 했던 동료들과 의기투합하겠다며 다짐했다.
보다 많은 사우가 모였으면 좋았을 지도 모를 모임이었다. 그러나, 단 3명으로도 성대의 냄새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또한 SK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도 매우 다양하게 쏟아져 나왔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생각해볼 만한 야근 수당에 대한 아쉬움, ‘그걸 왜 내가 하냐’는 후배 앞에서 당황하는 선배들, 결혼에 대한 생각 등등...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식당을 나서며 찬바람에 얼굴을 웅크린 이들은 “앞으로 자주 봅시다”라며 모교앞 거리에서 환하게 웃었다.

Tip 1. 에필로그 - 교가를 기억하세요?
권대리는 입사 후 20kg이나 몸무게가 불었다고 한다. 입사시 만든 ‘사원증’의 사진으로 그는 자신의 ‘진실’을 증명해 보였다. 남자는 인생에 있어 3번 살 찐다고 한다. 태어나면서, 군대에서, 그리고 결혼해서. 뭐 확인된 이야기가 아니어서 명쾌하게 답변할 순 없지만 대략 맞는 말 같다.

남자가 살이 찐다는 것은 "내 마음은 지금 편안합니다"라는 것과 일맥상통할 지도 모른다. 물론, 운동 부족으로 인해 생기기도 하지만 말이다. 사회에 나와 초년병 시절,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일 때의 스트레스도 사회생활이 늘어갈 수록 점차 줄어들기도 한다. 결혼을 하면 그것은 보다 나은 ‘안정’을 의미할 지도 모른다. 많은 책임감이 따르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편안함과 안정감이 사회의 온갖 스트레스를 녹여버리는 곳이란 생각이 든다.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나의 집.

모교도 그러한 존재다. 항상 마음속에서 그리워 할 수 있고, 내 등 뒤에서 큰 빛으로 나를 환하게 비춰주는 듯한 존재. 운동 부족으로 인해 몸무게가 불어나는 것도,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것도 어찌보면 이러한 든든한 '빛'이 있기 때문 아닐까.

요즘 한창 인기인 브레인서바이벌에서 퀴즈를 전원 맞추면 모교를 부른다. 모교를 기억하는가? 오늘은 한번쯤 교가를 불러보자. “북악산 정기 받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