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으로 여성상 이끌고 싶다”
SK 파워 우먼들의 현실 토론 … “보호는 오히려 발목 잡는 일”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다. 봄은 여자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산과 들엔 꽃이 만발하고 따사로운 햇살은 여인의 미소와 닮은 듯, 온 세상을 환하게 물들인다. SK 한잔합시다 4월은 그런 의미에서 봄을 닮은 여인들의 자리를 마련했다. 의도된 것은 아니지만, 그 동안 남자들만의 자리가 마련됐다. 동기와 동문, 그 자리에 SK우먼들의 파워는 오늘 이 자리를 위해 빠져있었던 것 같다. 만남이 이뤄진 3월 중순 어느 날, 한잔합시다의 취지에 걸맞은 수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인사동 자락의 한정식 집에 자리를 틀고 나니 하나 둘 SK 우먼들이 등장했다. SK증권 강승희(37) 대리를 필두로, SK텔레콤 이은경(35) 과장, (주)SK 최희(29) 대리, 워커힐 호텔 주은숙(37) 과장이 줄줄이 입장했다. 여인만 넷이다. 과학적으로 여성의 성대는 남성의 그것보다 3배 이상 가벼워(?) 소리내기 쉽다고 한다. 여자 셋이면 그릇도 깨뜨린다는 속설도 있는데, 오늘은 어떨까.
모두들 첫 만남이다. 첫 만남인데도 거리감이 없다. 만남의 첫 대면부터 털어놓는 이야기들은 가볍지 않은 주제가 대부분. SK라는 울타리 하나로 이처럼 허심탄회한 대화를 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남성과는 다른 뭔가가 느껴졌다.
SK증권의 강승희 대리는 오늘 모임의 최고참이다. 지난 87년 입사했으니 올해로 17년째다. 고참 중의 왕고참 선배다. SK텔레콤의 이은경 과장은 지난 93년 SK해운으로 입사해 2000년 텔레콤으로 옮긴 케이스. 어찌 보면 2001년 입사한 워커힐 호텔의 주은숙 과장과 (주)SK의 최희 대리는 SK 우먼파워의 막내격(?)에 속하는 새내기다. 그러나 그들도 할 말은 있다. 비교적 많지 않은 SK 우먼들의 표상을 상징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자부심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런 자리를 기다렸다는 주과장과 자신이 막내일지 몰랐다는 최대리, 유일한 기혼자인 이과장의 결혼 조언에 비추어 솔로가 외롭지 않다는 강대리의 말까지 모두 고스란히 담아본다.
이은경 과장(이하 ‘이’) 직장 생활하는 여성에게 있어 육아 문제는 매우 큽니다.
주은숙 과장(이하 ‘주’) 네. 그렇죠. 전 워커힐 호텔이 인수되면서 입사해서 SK에 대한 사내 여직원 복지에 대해 잘 모르는데요. 텔레콤은 어떤가요?
이 텔레콤은 임신 전후로 3개월가량 휴가가 있는데요. 푹 쉬죠. 육아 휴직이란 것인데요. 텔레콤의 서비스 특성상, 그리 오래 쉬면 업무에 뒤쳐지기도 하고, 트렌드를 읽지 못해 오히려 자신에게 손해가 되요. 그래서 공부도 많이 해야 되고요. 쳐진 부분까지 모두 따라 잡아야 하거든요.
최희 대리(이하 ‘최’) (주)SK는 아직 육아 휴직을 낸 여직원이 없어서 잘 모르겠어요. 아직 신청을 할 만한 인물이 없었어요. 어떻게 적용될 진 모르지만, 육아 휴직이 있을 겁니다.
이 예전 에는요. 육아휴직이 없었어요. 그래서 여직원들이 퇴사를 했죠. 임신을 하면 퇴사를 하고, 다시 재입사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주 텔레콤 쪽은 여직원들 근무 환경이 좋지 않아요?
이 나쁘진 않아요. 그런데요. 네트워크 부문에 여직원이 드문 건 사실이에요.
필자 SK내에 여성 임원이 몇 명이나 되십니까?
최 다른 계열사는 모르겠는데 (주)SK에는 한 명 있어요. 이번에 오셨는데요. 법무팀에 계시죠. 그리고 얼마 전 세간에 화제가 됐던 텔레콤에 윤송이 상무가 있지요.
강승희 대리(이하 ‘강’) 증권에는 여직원이 많죠. 고졸 여사원들이 대부분인데요. 그래서 암암리에 커플도 많이 생기죠. 하하. 비교적 분위기도 자유롭고, 여직원에게까지 영업의 기회가 주어지니 남녀평등이 비교적 많이 이뤄지는 부서라는 느낌이 많이 들지요. 그러나 진급은 쉽지 않아요. 저 같은 경우는 매우 특별한 케이스죠. 증권에서 여직원의 진급은 주임까지로 알고 있어요. 전 매우 파격적인 경우였죠. 그래서 전 처음부터 영업에 뜻을 두고 여러모로 노력을 했어요. 남자에 뒤지지 않는 사람이 되고자 했던 거죠.
육아 휴직의 대화에서 자연스럽게 사회 왕고참인 강대리가 밟아 온 사회 경험을 자신의 경력에 대입시키려는 듯, 조용히 모두들 귀를 기울인다. 필자도 추임새를 줄이고 그녀들의 이야기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강 증권은 리스크가 커요. 그래서 위험하죠. 경제 공부도 많이 해야 하고 자격증도 있어야 합니다. 영업부문에 있어 어떤 면에서는 남성보다 세밀해서 훨씬 뛰어난 경우도 있는데, 여성 자신이 그것을 스스로 발견하지 못하거나 회사에서 인정하지 않아 속상할 때가 많지요.
주 맞아요. 워커힐 호텔에서 보면 여직원들은 승진이라는 것은 생각지 않는 것 같아요. 처음 여직원이 발령 나서 오면 남성 상사들은 대체로 “승진은 기대하지 마라”라고 말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본부장님을 잘 만나서 이 자리에까지 오게 됐지만, 초기에는 퍽 힘들었어요. 직장 생활 11년 만에 처음으로 울어 본 것도 이 곳이니까요. 후훗. 업무에 있어 ‘남녀의 차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요. 참으로 어리석은 말이라고 생각해요. 남녀의 차이보다는 ‘사람의 차이’라는 말을 해야 하는데, 남성분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더군요. 솔직히 1년 정도 지나고 나니까 서로 인정하는 부분이 생겼지만, 그 전까지는 ‘여자’라는 이유로 무시당한 적도 많아요.
이 그런 것을 인정하는 사람이 있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있죠.
최 이제 저도 3년 반 정도 됐는데요. 선배님들 말씀을 들으니 참으로 동감하는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주 그런데 말예요. 남자들은 업무상으로 자신이 잘못된 부분은 깨끗이 인정하는 것 같더라고요. 페어플레이죠. 그런 면에서 남성들이 여성보다 더 나은 듯싶기도 해요.
이 남성들에 있어 비전은 삶의 목표이기도 하잖아요. 대체로 승진이 남성들의 ‘비전’이라면, 여성들도 이러한 비전을 나름대로 설정해 주어야 합니다.
주 사회적 분위기가 아직까지 남성 중심이잖아요. 불평 보다는 인정하고 서로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어떤 여직원이 당차고 영리해서 키우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붙들고 얘길 했죠. 그랬더니 그녀가 하는 말이, “결혼하면 그만 둘 겁니다”라고 하더군요. 매우 충격이었어요. 여성에게 있어 인생의 목표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승진은 아닌 듯 합니다. 저도 여자지만, 그런 것도 보여요. 여직원들은 자기중심적 사고가 좀 있는 듯해요. 그래서인지, 자기 스케줄에 업무를 맞추곤 하죠. 그러나 여기서 핵심은 ‘남녀의 차이가 아니라 세대간, 사람의 차이일 뿐’이라는 것. 바로 그것이죠.
이 여자가 직장생활을 하면 대체로 주위에서 그러죠? “남편이 돈 못 벌어다 줘?” “시집 잘 가려고?” “공부나 하지 그래” 등등… 공개적으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있었어요. 그런데요, 요사이 그런 말씀하시는 분들이 점차 줄어든다는 거죠. 그나마 다행이에요. 하지만, 이러한 말들보다 여직원에게 있어 가장 큰 손해는 무엇인줄 아세요? 여직원을 ‘케어’하려고 업무를 아예 주지 않는다는 거예요. 일을 주지 않는 게 오히려 여직원들의 비전과 능력을 꺾는다는 것을 알아 줬음 해요. 즉, 업무에 대해 공정한 평가가 이뤄지게끔 업무를 할당해 주는 상사가 좋은 거죠.
최 전 사내에서 ok캐시백 프로그램에 대해 전반적인 업무를 담당하고 있거든요. 조직이 신규로 만들어져서인지 비교적 자유로운 면이 많아요. 예컨대, 아무리 상사라도 담당자의 의견을 무시하지 않거든요. 그러나 아까도 언급했지만 아쉬운 부분은 바로 업무 결정 단계에 여성 임직원이 없다는 겁니다. 한 명도 없어요. 그런 단계에 여성이 없다는 건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지요.
동기 30명 중 여성은 저 혼자였는데요. 그것도 그렇거니와, 여성은 비교적 정보 흡수면 에서 남성에게 매우 뒤떨어지는 게 사실입니다. 술자리가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르겠는데요. 속칭 단란주점이란 곳을 여자 혼자 스스로 갈 순 없잖아요. 그런데 비교적 남성들의 정보 교환과 중요한 사안은 그런 곳에서 많이 이뤄지더라고요. 여성에게 있어 바로 정보의 차단이 일어나는 대목이죠.
식당에 들어온 이 후 밥숟가락도 제대로 움직이지 않은 채, 시간이 얼마큼 흘러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이야기에 흠뻑 빠졌다. SK 우먼들은 이런 자리를 기다렸다는 듯 봇물 터지듯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최 입사한 후 얼마 되지 않아 과장 승격 시험이 있었거든요. 어떤 과장님께서 제게 그러시더군요. 과장 시험 볼 때까지 남아있을 생각이냐고. 여자는 과연 무엇으로 사는 건지요. 의문이 일더군요. 가치관의 혼란도 있었어요. 사내에서 과연 여자는 무엇인가에 대해 골몰했죠. 비교적 여직원의 능력이 인정받는 홍보팀에서도 이런데 다른 곳은 어떨까하는 회의감이 일었어요.
강 그래서 난 영업을 지원했어요. 남성과 비교적 동등한 자격과 능력을 인정받는 파트잖아요. 그런 결과로 SK 수펙스상도 받고 그랬어요. 처음 영업에 뛰어들 땐 진짜 ‘맨땅에 헤딩’하는 식이었죠. 고위층들의 소비경향을 분석하고 1-2천만원의 재산가보다 억대 재산가를 타깃삼아 영업을 시작했어요. 지금도 하고 있는 업무지만.
주 일을 즐겨야 한다고 봐요. 열심히 하다보면 승진은 자연스레 이뤄지는 것 같아요.
강 남녀간의 차별이란 말이 참 문제 많은 말인데요. 제 생각은 그래요. 일단 먼저 능력과 자질을 갖춘 후에 남녀간의 평등을 외쳐야 한다고 봅니다. 대체로 ‘불만’이 많은 여직원들을 보면 능력과 자질을 갖추지 않은 채 하소연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예전에 여직원들을 뽑는 이유 중의 하나가 ‘커피 심부름’과 ‘청소’가 있었지요. 그러나 요사이는 매우 달라졌어요. 그런데 말예요. 회사 입장에서 보면 그런 것을 시킬 수 없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차에, 굳이 여직원을 선발하려고 할까요? 여성 스스로 자질 향상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최 사실 이러한 만남의 자리도 어찌 보면 여직원에 대한 차별이라고 할 수도 있죠.
사실 그렇다. 조선왕조 500년을 들춰보지 않아도 여성의 지위는 매우 낮았다. 여성이라는 이름이 사회에 각인되면서 남성들이 ‘액션’을 취하고 있는 것도 불과 십수 년 사이 일어난 일들이다. 여성부가 태동한 것 자체가 여성 격하의 의미로 보는 관점도 있지만, 어쨌든 현재 대한민국은 여성 파워가 날로 늘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현실을 들여다보면 아직도 멀고 먼 길이다. 페미니스트들의 칼럼이 다소 온순해 졌다 해서 그것이 대한민국 여성상을 대표해 주지는 않는다. 아직도 많은 여직원들이 커피 심부름에 청소를 도맡아 하고 있으며, 사장 비서는 여성으로 채워지는 사실도 인지해야 한다. 조직 생활에 있어서의 ‘여성’은 과연 무엇인가. 여성 자신 스스로가 매겨봄직한 의문임에 틀림없다.
그래서인지 오늘의 자리는 매우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모두 담아낼 수 없을 정도로 폭넓은 주제를 갖고 의견들을 피력했다. 이야기 막바지에 필자는 그들에게 ‘꿈이 있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현재 조직 생활 내에서 그녀들의 ‘꿈’은 어느 정도 현실화 되고 있을까. 아니, 꿈을 위해 현재 조직 생활이 많은 보탬이 되고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주 저 같은 경우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솔직히 꿈이라는 것이 점점 커져요.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꿈이라는 것은, 스스로 포기하지 않으면 이뤄진다고 믿어요. 힘든 일이 많을수록 좋은 일이 많아진다는 사실처럼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갖추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모든 일은 그런 듯해요. 제가 지금 당장 다른 분야에 몸담는다 하더라도 ‘기본’만 갖춘다면 어려울 것이 없다고 생각해요.
이 사실 저 같은 저너럴리스트들은 조직 내에서 성장키 어려워요. 다른 님들처럼 스페셜리스트가 되지 못해 아쉬운 건 있어요.
최 전 업무 특성상 팀간 작업이 많이 이뤄지거든요. 다른 팀의 과장님과도 1:1로 파트너십을 공유해야 할 때가 많지요. 한번은 회의 중에 다른 팀 과장님께서 제게 “삐졌구나?”라고 하시더군요. “화났습니까?”도 아니고 삐졌다는 말에 화가 났어요. 그런 것 하나를 보더라도, 여성의 힘은 아직도 많이 미약합니다. 전 ‘여성 리더십’을 필히 만들고 싶어요.
주 이과장님은 결혼 후 어떠세요? 여성에 있어 결혼과 직장 생활은 매우 큰 의미가 있을 듯 한데요.
이 제 생각은요. 출산 전후의 차이는 있을 지언 정, 결혼 전후의 차이는 별로 없는 듯해요. 결혼을 하면 대체로 여유가 있어요. 월급의 반을 아기 돌보는 보모에게 지불하는데도 여성은 직장 생활을 계속합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조직에서 남성들에게 결혼을 빨리하라고 하곤 하죠. 다 이유가 있어요.
강 사람이 결혼을 하면 편안한 것보다 부드러워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이 제 바람이 있다면요. 직장 생활을 하는 유부녀들에게 이러한 결혼과 육아 등이 더 이상 이슈화되지 않고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졌으면 해요. 뭔 특별한 일도 아닌데, 육아는 항상 여성의 몫이고 결혼하면 퇴사해야 하는 것도 이해되지 않지요.
이야기의 마무리가 되지 않았다. 시작의 특별한 주제가 없었던 것처럼 마무리도 없었다. 3시간이 부족해 보였다. 차 시간에 막혀 이야기를 끊지 않았다면, 밤새 이야기꽃을 피울 태세였다. 그 토록 할 말이 많았던 것일까. 봄꽃의 향기처럼 그녀들의 향기로운 말들이 부디 온 세상에 퍼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에필로그 -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국내 방송사에서 전파되는 거의 모든 드라마들의 집필 작가는 대체로 여성이다. 여성상은 그러한 드라마에 여실히 드러난다. 그래서인지 드라마는 대체로 여성 시청자들 몫이 되는 경우가 많다. 사회 속에서의 ‘억압’은 드라마를 통해 대리 만족되는 경우가 많아서 일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에서의 여성은 과연 무엇인가. ‘여자’로 불리기보다 ‘여성’이라고 불리길 바라는 여인들. 여직원, 여대생, 여류작가 등 ‘女’라는 단어 하나에도 민감해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것이 쉽게 지워졌을 것 같지만, 아직 그렇지 않다. 여성 스스로 뭔가 다른 것을 원하는 자세가 남성들에게 비뚤어진 자의식과 우월감을 키워놓았을 뿐이다.
여성들의 ‘꿈’을 위해 앞에서 끌어줄 수 있는 여성 리더십을 갖춘 직장인이 되고 싶다는 말은 오늘 대화의 핵심일 지도 모른다. 소주 1병을 4명이서 비우지 못할 정도로 할 얘기가 많았던 저녁. 그러나 그 많은 대화에도 불구하고 평등화 될 수 없는 부분이 분명 존재하는 것 같아 보인다.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명절만 되면 흘러나오는 유행가처럼 ‘제사 음식 함께 만들기’라는 타이틀이 사라지난 날, 직장 내에서도 여성 차별 철폐, 여직원 성희롱 등 ‘女’로 시작되는 단어들이 사라지진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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