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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folio/일반기사[2003~2007]

[에스원]직업의 발견 - 테마파크 디자이너

“많은 경험이 곧 능력입니다”
‘꿈’보다는 ‘실수요’ 따져야 ... 향후 유망 업종 ‘가능성’

지난해 11월 채용정보업체인 헬로잡은 여대생 718명에게 ‘여성부가 선정한 여성 유망 직종 79개 중 도전하고 싶은 직업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독특한 직종이 다수 눈에 띄었으나, 취업전문가들이 꼽은 21세기 유망 업종이라 말한 ‘테마파크 디자이너’가 당당히 순위에 들어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찮다. 언론에서 보도되는 것만 믿어선 안된다. 테마파크 디자이너들을 위한 채용 범위는 넓지 않고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조차 없는 실정이다. 또한, 여성들의 전유물도 아니다. 실제 디자이너 전공자외 도시공학, 건축학과 출신도 많다. 그저 뜬구름 잡기식 정보 제공은 놓칠 수 있는 알맹이가 빠지기 일쑤다.
테마파크 디자이너의 허와 실, 그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자 실제 에버랜드 디자인실에 근무하고 있는 신주희(28) 주임을 만나 자세히 살펴봤다.

“하루 3-4회 공원 순회할 때도 많아요”

에버랜드를 찾아가는 날, 유년 시절의 항상 푸르렀던 그 하늘처럼 맑디 맑은 연푸른 햇살이 온 세상에 가득했다. 그 햇살을 머금은 디자인실은 에버랜드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다. 상식적으로 공원 구석 어딘가 건물에 있을 것이란 생각은 신주희(28) 주임을 만나고 나서 사라졌다.

“항상 공원내에서 모든 업무가 이뤄지기 때문에 그래요. 하루에 3-4번씩 공원을 순회할 때도 많죠. 그만큼 가깝고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던 것이죠.”

디자인실은 독립 공간이다. 그래서인지 사무실 분위기는 매우 자유로웠다. 20여명의 디자이너들이 줄기차게 아이템 개발에 열을 쏟고 있을 오후 시간, 졸릴 만도 한데 그들의 눈망울은 매우 초롱초롱했다. 남성 디자이너들도 꽤 눈에 띈다.

(주)에버랜드 디자인실 신주희(28) 주임은 현재 5년차다. 에버랜드에 입사하고 나서 줄곧 건축을 담당했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그녀의 주된 업무는 휴지통 하나에서부터 에버랜드내 각종 건축물에 대한 설계 및 배치를 구상하는 것이다.

“아직 부족한 게 많아요. 그런 제가 (취재에) 무슨 도움이 될까 싶네요. 테마파크 디자이너라고 해서 다른 디자이너들과 다르다고 생각지 않아요. 작업 전개 과정만 다를 뿐예요.”

그녀의 말에 의하면, 테마파크 디자인실의 업무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고 한다. 공원내의 모든 건축물을 담당하는 건축 파트와 네온사인이나 엠블렘 등을 관장하는 그래픽 파트, 그리고 각종 의상을 책임지는 의상 파트가 그것이다.

테마파크 디자이너라고 해서 건축 부문을 한정해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의상디자이너들도 있고 시각 디자이너들도 많다. 신주임은 건축파트에서만 잔뼈가 굵은 중고참이다. 최근 완공된 70-80년대 미 락앤롤 시대를 그린 ‘락스빌’ 테마파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환하게 웃는다.
섹션을 나누어 테마파크를 만들다 보면 그 기발한 발상이나 뛰어난 창의력이 절실히 요구될 것이다. 이에 대해 그녀는 “해외 테마파크를 자주 찾는다”며 “미국 디즈니랜드에서 받았던 문화적 충격은 아직까지 가시지 않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입사한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찾아갔던 미국 디즈니랜드. 세계 최대 테마파크답게 인간이 꾸며낼 수 있는 상상력의 무한함을 여실히 드러내놓고 있다고. 그러한 그들의 모습을 본떠 그대로 도용한다면 그것은 ‘모방’에 불과할 것이다. 그들의 창의력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취업 가능한 기업이 아직 ‘한정적’

그러나, 이러한 디자이너들의 ‘꿈’과 ‘창의력’을 펼칠 만한 장치는 그리 많지 않다. 정부나 기업들이 테마파크에 투자하는 비용도 그리 많지 않고, 공원 자체가 많아야 테마파크 디자이너들의 수용이 손쉬울 것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언론에는 테마파크 디자이너가 국내 100여명이라고 하지만 제 생각에 제대로된 테마파크 디자이너는 극소수라고 생각해요. 저 또한 아직 테마파크 디자이너라 불릴 수 없구요.”

그녀의 말은 겸손일 수 있으나 극소수만이 인정되는 직종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지적일 수 있다. 언론에서 호도하여 취업하기 힘든 바늘구멍을 수천명이 몰려든다는 건 무의미한 행위일지도 모른다는 설명이다. 물론, 해외로 진출한다면 말리지 않겠지만.

그녀는 그래도 이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고 달려들 후배들에게 친히 메시지를 던졌다.

“많은 곳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많은 것을 느껴야 하구요. 많은 경험이 중요합니다. 박학다식하다는 말이 어울릴 듯 합니다. 특별히 전문과정이 만들어져 있는 것이 아니어서 테마파트 디자이너로 진출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노력하면 안될 일은 없을 겁니다.”

얼굴을 붉히면서도 신주임은 자신이 구상한 ‘락스빌’ 앞에서 “자동차는 엔진만 떼고 수입했다” “기타가 키포인트” 등 연신 자세히 설명해 나갔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것에 대한 자부심 때문이었으리라.

“실제 거리를 지나다가 고객들이 ‘와! 이 건물은 정말 멋지다’ 라는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뜁니다. 가장 큰 보람을 느낄 때가 바로 그 때죠.”

입이 함지박만 해져서 웃는 그녀는 “테마파크는 ‘작은 도시 계획’이라 불릴 만 하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동료들 전공이 건축 뿐 아니라 도시공학 등 다양하다고 한다. 건물 부쉈다가 다시 새우는 것도 여러 차례. 정기적이진 않지만 기획부터 건물 완공까지 걸리는 시간은 상당하다고.

오는 3월에도 새로운 존(Zone)이 오픈하는데, 그녀는 공개하기를 꺼려했다. 가끔 손님의 입장이 되어 휴일에 출근 아닌 ‘출근’을 하는 테마파크 디자이너들. 산천초목을 바라보며 빌딩 숲에 가려져 회색빛 미소만 짓는 도심의 현대인들과는 사뭇 다른 표정이다.

“아이들에게 어린시절부터 미국 디즈니랜드 같은 곳을 보여주며 거대한 상상력의 날개를 펼칠 수 있게 해줘야 해요. 그러나, 대한민국의 현실은 매우 열악하잖아요. 상상력은 모든 산업의 원동력이라 생각합니다. 큰 그릇을 만들어 줄 수 있는 동기가 되니까요.”

지난해 912만명을 유치해 세계 6위의 테마파크로 기록된 (주)에버랜드는 매년 대리급 이상 1,400여명을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플로리다, 일본 동경 등 세계 각지의 디즈니랜드로 출장을 보내고 있다. 또한, 지난 99년 대만 창이그룹의 ‘디스커버리 월드 리조트’ 개발 및 운영 서비스 교육 컨설팅 입찰을 따내, 향후 (주)에버랜드 이름으로 설립될 해외 테마파크 설립 가능성도 다분하다. 그러므로 테마파크 디자이너들의 수요도 지금보다 훨씬 나아질 수 있다. (주)에버랜드는 현재 테마파크 디자이너들을 ‘인력풀’ 형태로 수시 채용하고 있다.

글/ 원창연(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