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화외교관이다”
The Koreatimes, NewYorktimes 시사만화가
힐러리 등 유명 인사들에 캐리커쳐 전달
The Koreatimes 시사만화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원수(74) 화백은 시사만화계의 ‘산증인’이자 ‘최고 원로’에 속하는 인물이다. 6.25전쟁이 끝난 지난 55년 부산대를 졸업한 이화백은 국회의원 보좌관을 거쳐 시사만화가의 길을 걷게 됐다. 그러나, 故박정희 前대통령의 집권 이후 만화가의 길은 포기하게 된다.
KOTRA의 창설 멤버로 산업디자인과장을 역임했다. 약 10여년간 무역협회의 일을 했으며 지난해부터는 ‘뉴욕타임즈’에 만화를 제공하고 있다. 광고평론과 만화평론을 겸임하며 현재에 이르고 있는 이화백은 얼마 전 페리 前대북조정관, 코헨 前국방장관, 힐러리 상원의원 등 외국의 유명 인사의 캐리커쳐를 그려 기증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최근 이를 바탕으로 유니세프와 협력, 자선 행사를 열 계획을 펴며 ‘대한민국 홍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그를 만나보았다.
“110세까지 살 것이다. 아직 할 일이 많다”
세월의 흔적만큼이나 빛바랜 서고의 책자들이 즐비한 더코리아타임즈 사무실 한켠에 자리잡은 이원수 화백의 책상 위는 먹물로 가득했다. 항상 휴대하고 다닌다는 연필과 만년필을 보여주며 기자를 맞이한 이화백은 나이에 비해 훨씬 정력적인 인상이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숫자에 불과한거지. 난 110세까지 살거야. 아직 할 것이 많고 또 해야할 일들이 널렸거든.”
그의 첫인상만큼이나 강렬한 그의 약력은 대략 짐작할 수 있겠지만, 시사만화가로 활동하고 있는 현재와는 달리 사회 첫발은 국회의원 보좌관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국회의원 보좌관 생활도 故박정희 前대통령이 집권하면서 그만두게 됐다. 이때부터 시사만화가로 활동을 시작하던 중, 친분이 있던 당시 고려대 총장 유진호 박사가 그를 불렀다. 새로운 나라 건립에 도움이 될까 했던 바램으로 시작한 일이었으나, 보다 많은 경험을 위해 KOTRA의 창립 멤버로 산업디자인과를 맡았다.
“원래 그림을 좋아했던 건 사실이지. 법대 나와서 그림을 그린다는 게 맞지 않지만 말야. 하지만 노력하는 사람에게 기회가 주어지 듯 기회는 찾아오게 된거지.”
80년대 제6공화국 말기 무렵, 출판의 자유화로 인해 그는 다시금 만화계로 돌아오게 됐다. 보좌관을 그만 두고 만화를 그렸던 것을 기본으로 ‘만화평론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 그러나, 주위의 “만화를 그리며 평론을 해야지 않겠느냐”는 충고로 다시금 연필을 쥐게 됐다고 한다.
지난 93년 서울신문사에 입사한 후 약 5년간 시사만화가로 또는, 만화평론가로 활동한 것이 바로 이 때다. 그러나 그는 서울신문사에 재직하면서 “영문으로 된 만화를 그려 해외로 진출하고 싶다”는 바램 하나로 지금의 더코리아타임즈와 손을 잡았다.
지난 97년 그의 이러한 바램이 현실로 다가오게 된다. 미국 하와이 대학에서 열린 제1회 해외시사만화 개인전에 50점을 출품했다. 해외 유명 인사들이 모두 모였다. 이 때부터 그는 친분을 쌓기 시작했다. 그 후 98년과 2000년 뉴욕과 워싱턴DC를 번갈아 가며 개인전을 열어 큰 호응을 얻었다.
“전시회를 하고 나서 일본국제교류기금의 요청에 의해 제5회 아시아만화전에 10점을 출품하기도 했지. 도쿄에서 개최된 것이었는데, 이때가 2001년이었을 거야.”
해외 유명 인사들 캐리커쳐로 자선 전시회 계획 중
그가 이러한 개인전을 열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뒀다면 소위 ‘기삿거리’로 재미를 못볼지도 모를 일이다. 즉, 화제가 될 만한 인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는 분명 화제가 될 만한 인물이다.
지난 97년부터 개인전을 열며 친분을 쌓은 유명 인사들만 줄잡아 수백여명에 이른다. 대통령을 비롯해 각국의 장관은 물론, 복지활동가 등 이름만 들으면 고개가 끄덕여질만한 인물들이 수두룩하다. 그러한 인물들 중 몇 명을 선별해 캐리커쳐를 그려 무상으로 기증했더니 그들 중 한명이 이화백에게 이러한 말을 건넸다.
“이러한 그림을 내게 주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아 매우 기쁩니다. 사진은 숱하게 받아봤지만 그림을 그려 건네는 사람은 당신이 유일하군요. 제게 좋은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이러한 일을 무상으로 기증할 것이 아니라, 기증받는 사람들에게 다만 얼마라도 받아 유니세프에 후원기금으로 제공하는 건 어떨까요? 전시회를 겸해서 말이죠.”
이화백의 무릎을 탁 치게 만든 것은 바로 데니스 해스터 美하원의장이었다. 지난 2000년 워싱턴에서 개최중이었던 제3회 해외시사만화 개인전 중 열다섯번째 작품으로 만든 그의 캐리커쳐를 들고 의사당에 들어서면서 들은 조언이었다.
“이러해서 토론이라는 것이 있는 건가. 혼자보다는 두 사람, 두 사람 보다는 세 사람의 아이디어가 모아져야 더욱 좋은 결실을 맺는다는 걸 그 때 절실히 깨닫게 됐지. 그래서 유니세프를 통해 제대로 된 봉사활동을 시작하고자 지금 추진 중에 있는 거야.”
그가 말하는 봉사활동은 이러하다. 한국의 일개 만화가가 해외 유명 인사들의 캐리커쳐를 그렸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대한민국은 조용히 홍보되고 있다. ‘제대로 된 봉사’는 곧 ‘제대로 된 대한민국의 홍보 활동’을 의미하는 것이다. 국악이 세계로 뻗어나가고, 김치가 외국인의 입맛을 끌어당기며 국가 홍보를 위해 CF 촬영을 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는 이 때, 그의 활동은 ‘민간외교관’으로써 손색이 없어 보인다.
또한, 그는 1995년부터 이미 C&WS(Cartoonist & Writers Syndicate, Manahattan, New York)소속으로 선임되어 세계 각국 언론지에 작품 게재 중이었던 한국 최초의 국제 시사만화가였기 때문에 국가 홍보를 자연스럽게 하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다시 그의 말을 빌리자면, 이러한 유명 인사들의 캐리커쳐를 그려 세계 유명 관광지인 뉴욕 맨허튼 광장이나 워싱턴DC, UN빌딩 앞에서 전시회를 연다면, 자연스럽게 ‘대한민국’이 홍보될 수 있으며 그 위상도 매우 높아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낮지 않아 보인다. 개인의 자비로 이러한 자선 행사를 진행한다는 건 애초에 무리인 지도 모른다. 그래서 문화관광부에 SOS를 보냈다. 현재 지원 자금을 마련해 달라는 내용의 공문서를 띄워놓은 상태다. 국가 홍보를 위해 수억달러씩 해마다 지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보면 비교적 타당한 논리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최고로 보람된 일을 꼽으라면 ‘뉴욕타임즈’에 만화를 제공하게 된 일을 꼽겠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 보람이 매우 커. 이미 ‘더코리아타임즈’와 ‘이원수’라는 이름은 전세계 뉴욕타임즈 독자들에게 대한민국을 알리고 있단 말이지. 유니세프 자선기금 마련 시사만화 전시회 같은 일을 누가 하겠어. 나도 많이 부족하지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번 해보고 싶은 거지. 유니세프도 돕고, 국가 홍보도 되고, 작품 기증자나 받는 사람이나 모두 기분이 좋은 일이니, 어찌 이를 마다할 것인가.”
대한민국 홍보에 더 없이 좋은 기회로
한 인간이 오랜 세월을 지내오면서 쌓은 연륜과 경험이라는 것은 인생에 있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법 아닌 법’으로 통할 때가 많다. 그에게 있어서 ‘만화’란 것은 무엇이며 시사만화를 매일 그려내야 하는 창의성에 대해 어려움은 없는 지 그 ‘연륜과 경험’에 비춰 물었다. 그러나, 그는 인터뷰 내내 “노력만이 성공이며 연구만이 살 길이다”라는 논리로 대답을 대신했다. 쉬지 않고 노력하고 끊임없는 연구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조해 낸다는 것이다.
만약 이번 전시회가 성사된다면 올 10월 ‘UN데이’를 맞아 미국 뉴욕 UN본부 앞에서 개최될 것이다. 뉴욕과 워싱턴, 서울을 대상으로 고민하고 있다. 일본과 중국을 제외한 것에 대해 그는 “독도 문제 등 외교적 마찰을 빚을 수 있는 그림이 몇 개 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알고 있는 외국인은 그나마 다행이다. 아직도 대한민국이 일본의 식민지이며, ‘미개인’이 사는 나라로 평가되는 인터넷 사이트가 수백개에 달한다. 그래서 국내에는 이미 인터넷 외교사절단이 민간 주도로 속속 생겨나고 있기도 하다. ‘대한민국을 제대로 알려야 나라가 산다’는 신념인 것이다.
그렇다면, 해외 유명 관광지 및 관광객을 대상으로 대한민국의 외교 상황과 국내 상황을 단 한 컷의 만화로 그려넣은 그림을 전시한다면 그 효과는 어떨까? 결과는 독자의 판단에 달려있다.
# 이원수 화백은 누구인가?
▶31년 9월 25일 생. 부산대학교 법과대학 졸업(55). 김용환 선생에 의하여 만화작품 ‘주간 희망’지에 데뷔(56-), 달마사상에 심취하여 달마그림을 그리기 시작(58-), 한국만화공방 창립(KOCALA-Korea Cartoon Laboratory)(90-), 만화평론 선언(90-), Kagoshima 국제만화심포지엄 한국본부장(90-), 일본만화가협회 회원(Japan Cartoonist Ass'n.)(91-), 김용환 선생으로부터 주인공 ‘코주부’ 승계받음(91-), FECO(세계만화가연맹기구)한국지부 창립 회장(93-), 미국만화가협회 회원(National Cartoonist Society, US)(94-), 미국시사만화가협회 회원(Ass'n of American Editorial Cartoonists, US)(94-), C&WS(Cartoonist & Writers Syndicate, Manahattan, New York)소속으로 선임되어 동Syndicate를 통해 세계 각국 언론지에 작품 게재중임(한국최초 국제 시사만화가)(95-), The New York Times Syndicate 〃 (03-), Witty World(Int'l Cartoon Center) 한국편집인(97-)
▶제1회 해외시사만화 개인전 개최(97.5) University of Hawaii, 50점)
제2회 해외시사만화 개인전 개최(98.6) Chuch of St. Francis of Assisi, Manhattan, New York, 50점)
제3회 해외시사만화 개인전 개최(00.11 Korean Cultural Srcive, Washington DC, 50점)
일본국제교류기금 요청에 의해 제5회 아시아만화전에 10점 출품하고 도쿄에서 개최된 동기 금주관의 Forum에 참가(01.8.9-14)
▶세계 평화에 기여한 해외인사들에게 만화작품 기증 중(Henrry Kissinger, William Perry, Kofi Annan, Katherine Graham, Vicente Fox, Dennis Hastert, Willaiam Cohen, Madeline Albright, Hillaty Clinton, Queen Elizabeth Ⅱ, Herald Ko, Jimmy Carter, Tomiichi Murayama
The Koreatimes, NewYorktimes 시사만화가
힐러리 등 유명 인사들에 캐리커쳐 전달
The Koreatimes 시사만화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원수(74) 화백은 시사만화계의 ‘산증인’이자 ‘최고 원로’에 속하는 인물이다. 6.25전쟁이 끝난 지난 55년 부산대를 졸업한 이화백은 국회의원 보좌관을 거쳐 시사만화가의 길을 걷게 됐다. 그러나, 故박정희 前대통령의 집권 이후 만화가의 길은 포기하게 된다.
KOTRA의 창설 멤버로 산업디자인과장을 역임했다. 약 10여년간 무역협회의 일을 했으며 지난해부터는 ‘뉴욕타임즈’에 만화를 제공하고 있다. 광고평론과 만화평론을 겸임하며 현재에 이르고 있는 이화백은 얼마 전 페리 前대북조정관, 코헨 前국방장관, 힐러리 상원의원 등 외국의 유명 인사의 캐리커쳐를 그려 기증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최근 이를 바탕으로 유니세프와 협력, 자선 행사를 열 계획을 펴며 ‘대한민국 홍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그를 만나보았다.
“110세까지 살 것이다. 아직 할 일이 많다”
세월의 흔적만큼이나 빛바랜 서고의 책자들이 즐비한 더코리아타임즈 사무실 한켠에 자리잡은 이원수 화백의 책상 위는 먹물로 가득했다. 항상 휴대하고 다닌다는 연필과 만년필을 보여주며 기자를 맞이한 이화백은 나이에 비해 훨씬 정력적인 인상이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숫자에 불과한거지. 난 110세까지 살거야. 아직 할 것이 많고 또 해야할 일들이 널렸거든.”
그의 첫인상만큼이나 강렬한 그의 약력은 대략 짐작할 수 있겠지만, 시사만화가로 활동하고 있는 현재와는 달리 사회 첫발은 국회의원 보좌관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국회의원 보좌관 생활도 故박정희 前대통령이 집권하면서 그만두게 됐다. 이때부터 시사만화가로 활동을 시작하던 중, 친분이 있던 당시 고려대 총장 유진호 박사가 그를 불렀다. 새로운 나라 건립에 도움이 될까 했던 바램으로 시작한 일이었으나, 보다 많은 경험을 위해 KOTRA의 창립 멤버로 산업디자인과를 맡았다.
“원래 그림을 좋아했던 건 사실이지. 법대 나와서 그림을 그린다는 게 맞지 않지만 말야. 하지만 노력하는 사람에게 기회가 주어지 듯 기회는 찾아오게 된거지.”
80년대 제6공화국 말기 무렵, 출판의 자유화로 인해 그는 다시금 만화계로 돌아오게 됐다. 보좌관을 그만 두고 만화를 그렸던 것을 기본으로 ‘만화평론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 그러나, 주위의 “만화를 그리며 평론을 해야지 않겠느냐”는 충고로 다시금 연필을 쥐게 됐다고 한다.
지난 93년 서울신문사에 입사한 후 약 5년간 시사만화가로 또는, 만화평론가로 활동한 것이 바로 이 때다. 그러나 그는 서울신문사에 재직하면서 “영문으로 된 만화를 그려 해외로 진출하고 싶다”는 바램 하나로 지금의 더코리아타임즈와 손을 잡았다.
지난 97년 그의 이러한 바램이 현실로 다가오게 된다. 미국 하와이 대학에서 열린 제1회 해외시사만화 개인전에 50점을 출품했다. 해외 유명 인사들이 모두 모였다. 이 때부터 그는 친분을 쌓기 시작했다. 그 후 98년과 2000년 뉴욕과 워싱턴DC를 번갈아 가며 개인전을 열어 큰 호응을 얻었다.
“전시회를 하고 나서 일본국제교류기금의 요청에 의해 제5회 아시아만화전에 10점을 출품하기도 했지. 도쿄에서 개최된 것이었는데, 이때가 2001년이었을 거야.”
해외 유명 인사들 캐리커쳐로 자선 전시회 계획 중
그가 이러한 개인전을 열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뒀다면 소위 ‘기삿거리’로 재미를 못볼지도 모를 일이다. 즉, 화제가 될 만한 인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는 분명 화제가 될 만한 인물이다.
지난 97년부터 개인전을 열며 친분을 쌓은 유명 인사들만 줄잡아 수백여명에 이른다. 대통령을 비롯해 각국의 장관은 물론, 복지활동가 등 이름만 들으면 고개가 끄덕여질만한 인물들이 수두룩하다. 그러한 인물들 중 몇 명을 선별해 캐리커쳐를 그려 무상으로 기증했더니 그들 중 한명이 이화백에게 이러한 말을 건넸다.
“이러한 그림을 내게 주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아 매우 기쁩니다. 사진은 숱하게 받아봤지만 그림을 그려 건네는 사람은 당신이 유일하군요. 제게 좋은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이러한 일을 무상으로 기증할 것이 아니라, 기증받는 사람들에게 다만 얼마라도 받아 유니세프에 후원기금으로 제공하는 건 어떨까요? 전시회를 겸해서 말이죠.”
이화백의 무릎을 탁 치게 만든 것은 바로 데니스 해스터 美하원의장이었다. 지난 2000년 워싱턴에서 개최중이었던 제3회 해외시사만화 개인전 중 열다섯번째 작품으로 만든 그의 캐리커쳐를 들고 의사당에 들어서면서 들은 조언이었다.
“이러해서 토론이라는 것이 있는 건가. 혼자보다는 두 사람, 두 사람 보다는 세 사람의 아이디어가 모아져야 더욱 좋은 결실을 맺는다는 걸 그 때 절실히 깨닫게 됐지. 그래서 유니세프를 통해 제대로 된 봉사활동을 시작하고자 지금 추진 중에 있는 거야.”
그가 말하는 봉사활동은 이러하다. 한국의 일개 만화가가 해외 유명 인사들의 캐리커쳐를 그렸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대한민국은 조용히 홍보되고 있다. ‘제대로 된 봉사’는 곧 ‘제대로 된 대한민국의 홍보 활동’을 의미하는 것이다. 국악이 세계로 뻗어나가고, 김치가 외국인의 입맛을 끌어당기며 국가 홍보를 위해 CF 촬영을 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는 이 때, 그의 활동은 ‘민간외교관’으로써 손색이 없어 보인다.
또한, 그는 1995년부터 이미 C&WS(Cartoonist & Writers Syndicate, Manahattan, New York)소속으로 선임되어 세계 각국 언론지에 작품 게재 중이었던 한국 최초의 국제 시사만화가였기 때문에 국가 홍보를 자연스럽게 하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다시 그의 말을 빌리자면, 이러한 유명 인사들의 캐리커쳐를 그려 세계 유명 관광지인 뉴욕 맨허튼 광장이나 워싱턴DC, UN빌딩 앞에서 전시회를 연다면, 자연스럽게 ‘대한민국’이 홍보될 수 있으며 그 위상도 매우 높아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낮지 않아 보인다. 개인의 자비로 이러한 자선 행사를 진행한다는 건 애초에 무리인 지도 모른다. 그래서 문화관광부에 SOS를 보냈다. 현재 지원 자금을 마련해 달라는 내용의 공문서를 띄워놓은 상태다. 국가 홍보를 위해 수억달러씩 해마다 지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보면 비교적 타당한 논리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최고로 보람된 일을 꼽으라면 ‘뉴욕타임즈’에 만화를 제공하게 된 일을 꼽겠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 보람이 매우 커. 이미 ‘더코리아타임즈’와 ‘이원수’라는 이름은 전세계 뉴욕타임즈 독자들에게 대한민국을 알리고 있단 말이지. 유니세프 자선기금 마련 시사만화 전시회 같은 일을 누가 하겠어. 나도 많이 부족하지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번 해보고 싶은 거지. 유니세프도 돕고, 국가 홍보도 되고, 작품 기증자나 받는 사람이나 모두 기분이 좋은 일이니, 어찌 이를 마다할 것인가.”
대한민국 홍보에 더 없이 좋은 기회로
한 인간이 오랜 세월을 지내오면서 쌓은 연륜과 경험이라는 것은 인생에 있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법 아닌 법’으로 통할 때가 많다. 그에게 있어서 ‘만화’란 것은 무엇이며 시사만화를 매일 그려내야 하는 창의성에 대해 어려움은 없는 지 그 ‘연륜과 경험’에 비춰 물었다. 그러나, 그는 인터뷰 내내 “노력만이 성공이며 연구만이 살 길이다”라는 논리로 대답을 대신했다. 쉬지 않고 노력하고 끊임없는 연구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조해 낸다는 것이다.
만약 이번 전시회가 성사된다면 올 10월 ‘UN데이’를 맞아 미국 뉴욕 UN본부 앞에서 개최될 것이다. 뉴욕과 워싱턴, 서울을 대상으로 고민하고 있다. 일본과 중국을 제외한 것에 대해 그는 “독도 문제 등 외교적 마찰을 빚을 수 있는 그림이 몇 개 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알고 있는 외국인은 그나마 다행이다. 아직도 대한민국이 일본의 식민지이며, ‘미개인’이 사는 나라로 평가되는 인터넷 사이트가 수백개에 달한다. 그래서 국내에는 이미 인터넷 외교사절단이 민간 주도로 속속 생겨나고 있기도 하다. ‘대한민국을 제대로 알려야 나라가 산다’는 신념인 것이다.
그렇다면, 해외 유명 관광지 및 관광객을 대상으로 대한민국의 외교 상황과 국내 상황을 단 한 컷의 만화로 그려넣은 그림을 전시한다면 그 효과는 어떨까? 결과는 독자의 판단에 달려있다.
# 이원수 화백은 누구인가?
▶31년 9월 25일 생. 부산대학교 법과대학 졸업(55). 김용환 선생에 의하여 만화작품 ‘주간 희망’지에 데뷔(56-), 달마사상에 심취하여 달마그림을 그리기 시작(58-), 한국만화공방 창립(KOCALA-Korea Cartoon Laboratory)(90-), 만화평론 선언(90-), Kagoshima 국제만화심포지엄 한국본부장(90-), 일본만화가협회 회원(Japan Cartoonist Ass'n.)(91-), 김용환 선생으로부터 주인공 ‘코주부’ 승계받음(91-), FECO(세계만화가연맹기구)한국지부 창립 회장(93-), 미국만화가협회 회원(National Cartoonist Society, US)(94-), 미국시사만화가협회 회원(Ass'n of American Editorial Cartoonists, US)(94-), C&WS(Cartoonist & Writers Syndicate, Manahattan, New York)소속으로 선임되어 동Syndicate를 통해 세계 각국 언론지에 작품 게재중임(한국최초 국제 시사만화가)(95-), The New York Times Syndicate 〃 (03-), Witty World(Int'l Cartoon Center) 한국편집인(97-)
▶제1회 해외시사만화 개인전 개최(97.5) University of Hawaii, 50점)
제2회 해외시사만화 개인전 개최(98.6) Chuch of St. Francis of Assisi, Manhattan, New York, 50점)
제3회 해외시사만화 개인전 개최(00.11 Korean Cultural Srcive, Washington DC, 50점)
일본국제교류기금 요청에 의해 제5회 아시아만화전에 10점 출품하고 도쿄에서 개최된 동기 금주관의 Forum에 참가(01.8.9-14)
▶세계 평화에 기여한 해외인사들에게 만화작품 기증 중(Henrry Kissinger, William Perry, Kofi Annan, Katherine Graham, Vicente Fox, Dennis Hastert, Willaiam Cohen, Madeline Albright, Hillaty Clinton, Queen Elizabeth Ⅱ, Herald Ko, Jimmy Carter, Tomiichi Muray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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