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 교육 무료 시대 열렸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보호’ 조항. 운영위원회 삭제 놓고 논란 빚어
전교조, “자율적 통제 장치 마련해야”
세계 최초로 유치원이 세워진 것은 1840년 독일 프뢰벨에 의해서다. 그가 창안한 ‘킨더가르텐’이 그 효시다. 수학과 기하학을 섭렵하며 자연의 이치를 깨닫던 프뢰벨은 어느날 ‘녹색이 짙은 어린이의 정원’이라는 의미의 ‘킨더가르텐’이란 말을 떠올렸다. 모든 식물이 건강하게 자라듯 생애 초기에 많은 가능성을 지닌 어린이가 자연과 조화를 이뤄 정원사의 돌봄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였다.
이러한 가르침은 1900년 우리나라에도 도입됐다. 1897년 일본인 자녀를 위한 사립 부산 유치원이 그 기초였으며, 1910년 어린이들을 위한 이화유치원과 중앙유치원을 바탕으로 전국으로 뻗어나갔다.
유치원의 시초는 역시 ‘자연’이었다. 어린이들에게 자연만큼 소중한 가르침은 없다. 그러나 도시생활을 하는 현대인들의 자녀들이 자연과 접할 기회가 많겠는가. 더구나 맞벌이를 해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가정’은 더욱 아이 교육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자연은커녕, 아이들에게 밥 한 끼 제대로 먹이기도 힘든 시대가 된 것이다.
과거 시부모님이 으레 맡아주시던 ‘아이키우기’는 이제 옛말이 됐다. 노년의 시부모님들은 아이 돌보기를 더 이상 자신들의 의무로 여기지 않고 있다. 1.17명이라는 세계 최저 출산율을 보더라도 아이는 이제 하나의 ‘짐’ 쯤으로 여기는 듯 하다. 자녀 교육비를 감당하지 못해 출산을 기피하는 부모가 늘어난다는 얘기일까.
자녀 1명당 대학 졸업시까지 교육비가 2억원이상 소요된다는 통계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심지어 지금은 단지 아이 때문에 가정불화를 감수하면서까지 살지 않는 ‘냉혹한 시대’다.
만5세아 무상교육 시대 열려 ... ‘빛좋은 개살구’일지도
지난 1월 8일 제144회 임시국회 제6차 본회의에서 ‘유아교육법’이 통과됐다. 찬성 188표, 반대 5표, 기권 19표로 가결된 이 날 안건은 정부와 민간단체가 7년여를 끌어온 법안을 통과한 의미 깊은 것이었다. 이날 통과된 안건의 주요내용은 ▶취학전 1년(만5세) 무상교육과 사립유치원에 대한 설립 및 운영 경비 지원을 포함하여 ▶‘사립유치원 교사인건비 지원 조항이 삽입됐고 ▶종일제를 유지하면서 ’보호‘라는 단어가 삭제됐다. 아울러, ▶저소득층 만3, 4세아에게도 유아교육비를 지원함으로써 유아 교육 기회의 형평성을 제고케 됐다는 평이 있다.
이날 법안 통과에 대해 교육부 유아교육지원과에서는 “지금까지 초중등교육에 비해 소외되어온 유아교육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확대케 됐다”며 “유아 공교육체제를 앞당기고 학부모의 사교육비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케 됐다”고 설명했다.
이에대해 보건복지부도 “현재 저소득층은 만5세아만 지원하고 있는데 이를 만3, 4세아까지 확대해 서민의 생활안정 및 유아교육의 기회를 확대했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고 평했다. 국민기초생활수급권자는 100% 해당되며, 차상위계층은 60%, 도시근로자 월평균소득의 50%에 못미치는 가구는 40%의 학비(입학금 및 수업료)를 지원한다는 것. 예산도 기획예산처와 협의해 2003년보다 88억원이 증액된 319억원으로 책정해 놓았다고 발표했다.
지원대상은 올초 복지부에서 발표 예정에 있으며, 학비를 지원받고 싶은 학부모는 올 3월 이전에 주소지 동사무소에 서류를 제출하면 된다.
이유야 어찌됐든, 유아교육을 나라에서 지원하겠다고 하니 OECD국가중 최저를 자랑(?)했던 유아교육비 지원의 부끄러움은 조금이나마 가실 듯 하다. 겉으로 보기에 참으로 만족스러운 결과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깊이 따지고 들어가면 석연찮은 부분이 있으며, 논란을 빚고 있는 부분도 있어 짚어보고자 한다.
우선 현재 취학전 아동들의 유아교육은 크게 두 개 부처에서 관장한다. 교육부 유아교육지원과에서 주관하는 ‘유아교육’과 보건복지부에서 주관하는 ‘영유아보육’이 그것이다. 영유아교육은 일전에 ‘여성부’로 이관하려다 국회에서 부결되기도 했다. 어쨌거나 현재 유아의 교육은 두 개의 부처가 관장하고 있는 셈이다.
그럼,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상식적으로 의문이 생길 것이다. 왜 두 개의 부처가 따로따로 업무를 추진하느냐는. 어차피 비슷한 업무인데 함께 처리하면 좋지 않겠느냐는 식의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예산 낭비가 아니냐는 얘기는 이 곳에서도 통할 수 있다.
우선 영유아교육법 통과에 대대적 반대를 했던 한국보육시설연합회 회원은 유아교육법 제정을 반대하며 지난 1월 7일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열띤 시위를 벌였다. 우습게도 그 시위대 앞에는 한국유치원총연합회 등 19개 관련 단체들이 ‘법 제정 찬성’을 외치며 피켓을 들었다놨다 했다.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벌어지는 것에 대해 시민들이나 TV로 그 장면을 지켜본 많은 국민들은 의아해 했을 것이다. ‘비슷한 단체 같은데 왜 한쪽은 찬성을 하고 한쪽은 반대를 하는가’에 대해 의문심을 품었을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단순했다. 시위가 있던 다음 날 통과된 유아교육법안에 ‘보호’라는 조항이 삭제됐다. 그러면 왜 하필 한나라당 앞에서 시위를 했는가. 한나라당이 유아교육법 수정안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막판에 ‘유아 교육기관의 유아에 대한 보호조항’을 삭제한 것에서 비롯된다.
즉, 법 제정 찬성측은 “유아교육법 제정으로 향후 유아 교육이 획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됐는데, 보호 조항을 삭제해 법 제정의 근본 취지를 무색케 했다”는 주장이다. 반면, 반대측은 “유아교육법에 보호 조항을 삽입할 경우 유치원 등에서도 보육이 가능하게 돼 전국의 보육시설이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며 법 제정을 반대했던 것이다.
결국 한나라당은 ‘보호’ 조항을 삭제해 한국보육시설연합회의 손을 들어준 꼴이 됐다. 누구의 손을 들어주고 안들어주고가 중요하겠는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유아 교육의 무상화라는 대승적 차원에서 해석해야 할 문제를 ‘기득권’을 놓고 저울질 했다는 데 전국의 학부모들이 개탄스러워 하고 있다는 데 그 문제가 있다.
참교육학부모회 박경양 회장은 본지와 인터뷰에서 “이제 그들은 자신의 밥그릇을 각각 챙기게 됐다”며 “향후 유아교육과 보육의 통합과 정부 부처 일원화는 더더욱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도 지난 1월 8일 성명서를 통해 “유아교육법 제정이 여러 이익단체들간의 밥그릇 싸움으로 번져 당초 안에서 크게 후퇴해 반쪽이 됐다”며 개탄했다.
“사교육비는 더 이상 국민이 짊어져야 할 것이 아니다”
정부는 정부대로, 단체는 단체대로 할 말이 있고 평가 잣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아교육의 주체는 누구인가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바로 학부모들이다.
이에 대해 교육부 유아교육지원과 이계영 과장은 “유아교육법은 어린이집에 피해를 주기 위한 법안이 아니다”며 “오직 유치원에 다니는 유아와 그 가정 및 유치원 교사를 지원하고, 유치원교육을 발전시키기 위한 조항만이 들어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과장은 ‘보호’조항 삭제에 대해 “국회에서 가결된 수정동의안의 수정이유에 ‘유아교육이라는 용어에는 이미 보호의 기능이 당연히 내포되어 있으므로 유아의 보호에 대한 규정을 별도로 둘 필요가 없다’고 기술하고 있으므로 시행령 제정과정에서 종일제 운영과 지원내용을 포함하는 것은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의 자료에 의하면, 지난 2003년 통계를 보면 취학 전 어린이 총 193만명 중 유치원과 보육시설에 맡겨진 전체 60%에 이르는 어린이 가운데 17%만이 국공립 시설에 맡겨져 있을 뿐, 나머지 83%는 사립 시설에 수용되고 있다고 한다. 지난 1977년을 기준으로 초중고교 교육비는 10배 증가했지만 유아교육비는 155배 늘어난 것만 봐도 유아의 사교육비가 얼마나 부담되는 지 알 수 있다.
서울 목동에 거주하며 4세 유아를 둔 주부 황모씨(26)는 “아이들 키우는 데 대략 월 60만원 정도 고스란히 현금으로 들어간다”며 “학교 입학하면 어찌될까 겁날 정도”라고 말했다. 경기 광명시의 주부 김모씨(32)도 “맞벌이는 이제 필수”라며 “얼마전 뉴스에서 25평 아파트 구입하는데 18년 걸린다는 통계가 맞는 얘기일 것”이라고 말했다.
위의 통계를 덧붙여 설명하자면, 100명의 어린이 가운데 유치원에 보내는 아이는 60명이고 나머지 40명은 유치원에 조차도 못가는 아이다. 이 60명 중 11명 정도만 비교적 수업료가 싼 국공립 유치원에 맡겨진다는 얘기다. 100명중 10%에 해당하는 10명 정도만 국가 혜택을 받고 있었는데, 이제 만5세 이상 유아는 모두 국가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유치원에 보내지는 만5세아는 ‘교육’만 받을 뿐 ‘보육’은 받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 두 단어의 차이는 무엇인가. 사실상 차이가 없다. 12시간 이상씩 맡겨지는 유치원 종일반에서 교육만 시키고 보호는 하지 않는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말이 안된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이 ‘보호’ 조항을 삭제해 논란을 빚고 있는 것이다.
유아교육법 제정에 반대했던 한국보육시설연합회 황영자 회장도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유아교육법에 보호 기능 조항을 삭제한 것이 논란이 되고 있는데 유치원에서 종일반을 운영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이렇게 되면 법에만 표시되어 있지 않을 뿐, 사실상 보호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지난 91년 제정된 ‘영유아보육법’의 ‘교육’과 ‘보호’ 조항이 문제시 될 수 있다. 영유아보육법에는 유아교육법과는 달리 ‘교육’이라는 단서가 붙어있다.
이에 대해 황회장은 “유아교육법에 보호 조항을 뺀 만큼 영유아보육법에서도 교육조항을 빼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12시간 이상 아이들을 맡기는 보육시설에서 어떻게 보호만 할 수 있겠는가”라고 주장했다.
전교조, ‘운영위원회’ 설치로 자율적 통제 이뤄내야
얼핏보면 별 문제가 없어보이기도 한다. ‘보호’ 조항이 뭔 대수냐는 반응도 나올 법 하다. 바로 그 점이 문제다. 별 문제 될 것도 아닌 것 갖고 두 개의 파로 나뉜 교육 단체들이나 업무 이원화를 하고 있는 정부나 모두 문제란 소리다. 이미 ‘교육’과 ‘보육’을 동시에 실시하고 있는 일선 유치원과 어린이집이 대다수인데도 말이다.
법안도 하나로 통합하고 부처도 일원화 해 보다 내실있고 추진력있는 교육 현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 나오고 있다. 이번 법 제정으로 사교육비를 학무보가 감당해야 했던 것에 비해 큰 발전을 이룬 것이긴 하지만, 관련 단체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해 ‘유아교육과 영유아보육의 통합’에 절대적 반대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것만 봐도 ‘반쪽짜리 유아교육법 제정’이라는 말이 나올 만 하다. 이와 관련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서 발표한 내용을 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전교조가 이번 법제정을 놓고 비판한 것은, ▶유아교육법에서 영유아 보육및보호규정을 삭제한 것과 보육시설에는 교육과 보육기능을 모두 보장해 주면서, 유치원에 대해서만 보호 보육기능을 삭제한 것은 형평에 어긋난다는 주장이다. ▶또한, 학부모 지원(학부모 바우처)이라는 시스템을 도입해 자금 지원을 한다고 했는데, 이는 시설 좋은 곳에만 학부모가 몰리게 돼 비교적 낙후된 공립 유아교육시설을 더욱 부실화 시킬 수 있다는 데 그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민주적 유치원 운영의 필수요소인 ‘유치원운영위원회’를 삭제한 점도 들었다. 초중고교와 영유아보육에도 적용하고 있는 ‘운영위원회’ 제도를 유치원에서만 인정하지 않는 것은 모순이라는 논리다.
유아교육법 초안에는 유치원 운영위원회 규정이 들어있었으나 일부 의원들의 반대로 이 조항이 삭제된 것은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율적 통제 없는 공적 제도는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될 뿐이다.
교육부나 복지부 모두 현재 “자녀를 보육 시설에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법적 토대가 마련됐다”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사실을 알고 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보육기관들은 유아교육법에 보호 조항이 빠지게 돼 권리 행사가 수월케 됐으며, 유치원기관들은 나름대로 교사 인건비 지원 및 종일반 운영 등 이득을 챙기게 되어 더 이상 두개의 관련 단체들은 싸우지 않을 듯 하다. 유아교육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의 법안 통합은 물건너 갈 것이 뻔하며, 부처 일원화는 이제 공염불이 될 판이다. 이미 유치원에서도 종일반을 하고 있고 보육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의 법 제정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이 된 셈이다.
국회 수정동의안에 ‘유아교육이라는 단어에는 이미 보호 조항이 포함돼 있다’며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한다. 문제될 것이 없다면 ‘보호’ 조항을 넣어도 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피해는 결국 누가 보는가? 학부모들이다. 자연과 조화를 이뤄 자라나갈 소망했던 프뢰벨의 유치원 창설 이념은 이미 수십년전에 퇴색됐다 하더라도 아이들에게 ‘이권(利權)’이라는 단어는 가르치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
앞으로는 ‘학교’로 명명될 유치원의 위상을 보더라도 공적 테두리안에 들어온 이상, 향후 그들을 향한 정부의 감사 및 감찰은 더욱 강화되야 할 것이다.
고구마 기자
‘보호’ 조항. 운영위원회 삭제 놓고 논란 빚어
전교조, “자율적 통제 장치 마련해야”
세계 최초로 유치원이 세워진 것은 1840년 독일 프뢰벨에 의해서다. 그가 창안한 ‘킨더가르텐’이 그 효시다. 수학과 기하학을 섭렵하며 자연의 이치를 깨닫던 프뢰벨은 어느날 ‘녹색이 짙은 어린이의 정원’이라는 의미의 ‘킨더가르텐’이란 말을 떠올렸다. 모든 식물이 건강하게 자라듯 생애 초기에 많은 가능성을 지닌 어린이가 자연과 조화를 이뤄 정원사의 돌봄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였다.
이러한 가르침은 1900년 우리나라에도 도입됐다. 1897년 일본인 자녀를 위한 사립 부산 유치원이 그 기초였으며, 1910년 어린이들을 위한 이화유치원과 중앙유치원을 바탕으로 전국으로 뻗어나갔다.
유치원의 시초는 역시 ‘자연’이었다. 어린이들에게 자연만큼 소중한 가르침은 없다. 그러나 도시생활을 하는 현대인들의 자녀들이 자연과 접할 기회가 많겠는가. 더구나 맞벌이를 해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가정’은 더욱 아이 교육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자연은커녕, 아이들에게 밥 한 끼 제대로 먹이기도 힘든 시대가 된 것이다.
과거 시부모님이 으레 맡아주시던 ‘아이키우기’는 이제 옛말이 됐다. 노년의 시부모님들은 아이 돌보기를 더 이상 자신들의 의무로 여기지 않고 있다. 1.17명이라는 세계 최저 출산율을 보더라도 아이는 이제 하나의 ‘짐’ 쯤으로 여기는 듯 하다. 자녀 교육비를 감당하지 못해 출산을 기피하는 부모가 늘어난다는 얘기일까.
자녀 1명당 대학 졸업시까지 교육비가 2억원이상 소요된다는 통계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심지어 지금은 단지 아이 때문에 가정불화를 감수하면서까지 살지 않는 ‘냉혹한 시대’다.
만5세아 무상교육 시대 열려 ... ‘빛좋은 개살구’일지도
지난 1월 8일 제144회 임시국회 제6차 본회의에서 ‘유아교육법’이 통과됐다. 찬성 188표, 반대 5표, 기권 19표로 가결된 이 날 안건은 정부와 민간단체가 7년여를 끌어온 법안을 통과한 의미 깊은 것이었다. 이날 통과된 안건의 주요내용은 ▶취학전 1년(만5세) 무상교육과 사립유치원에 대한 설립 및 운영 경비 지원을 포함하여 ▶‘사립유치원 교사인건비 지원 조항이 삽입됐고 ▶종일제를 유지하면서 ’보호‘라는 단어가 삭제됐다. 아울러, ▶저소득층 만3, 4세아에게도 유아교육비를 지원함으로써 유아 교육 기회의 형평성을 제고케 됐다는 평이 있다.
이날 법안 통과에 대해 교육부 유아교육지원과에서는 “지금까지 초중등교육에 비해 소외되어온 유아교육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확대케 됐다”며 “유아 공교육체제를 앞당기고 학부모의 사교육비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케 됐다”고 설명했다.
이에대해 보건복지부도 “현재 저소득층은 만5세아만 지원하고 있는데 이를 만3, 4세아까지 확대해 서민의 생활안정 및 유아교육의 기회를 확대했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고 평했다. 국민기초생활수급권자는 100% 해당되며, 차상위계층은 60%, 도시근로자 월평균소득의 50%에 못미치는 가구는 40%의 학비(입학금 및 수업료)를 지원한다는 것. 예산도 기획예산처와 협의해 2003년보다 88억원이 증액된 319억원으로 책정해 놓았다고 발표했다.
지원대상은 올초 복지부에서 발표 예정에 있으며, 학비를 지원받고 싶은 학부모는 올 3월 이전에 주소지 동사무소에 서류를 제출하면 된다.
이유야 어찌됐든, 유아교육을 나라에서 지원하겠다고 하니 OECD국가중 최저를 자랑(?)했던 유아교육비 지원의 부끄러움은 조금이나마 가실 듯 하다. 겉으로 보기에 참으로 만족스러운 결과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깊이 따지고 들어가면 석연찮은 부분이 있으며, 논란을 빚고 있는 부분도 있어 짚어보고자 한다.
우선 현재 취학전 아동들의 유아교육은 크게 두 개 부처에서 관장한다. 교육부 유아교육지원과에서 주관하는 ‘유아교육’과 보건복지부에서 주관하는 ‘영유아보육’이 그것이다. 영유아교육은 일전에 ‘여성부’로 이관하려다 국회에서 부결되기도 했다. 어쨌거나 현재 유아의 교육은 두 개의 부처가 관장하고 있는 셈이다.
그럼,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상식적으로 의문이 생길 것이다. 왜 두 개의 부처가 따로따로 업무를 추진하느냐는. 어차피 비슷한 업무인데 함께 처리하면 좋지 않겠느냐는 식의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예산 낭비가 아니냐는 얘기는 이 곳에서도 통할 수 있다.
우선 영유아교육법 통과에 대대적 반대를 했던 한국보육시설연합회 회원은 유아교육법 제정을 반대하며 지난 1월 7일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열띤 시위를 벌였다. 우습게도 그 시위대 앞에는 한국유치원총연합회 등 19개 관련 단체들이 ‘법 제정 찬성’을 외치며 피켓을 들었다놨다 했다.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벌어지는 것에 대해 시민들이나 TV로 그 장면을 지켜본 많은 국민들은 의아해 했을 것이다. ‘비슷한 단체 같은데 왜 한쪽은 찬성을 하고 한쪽은 반대를 하는가’에 대해 의문심을 품었을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단순했다. 시위가 있던 다음 날 통과된 유아교육법안에 ‘보호’라는 조항이 삭제됐다. 그러면 왜 하필 한나라당 앞에서 시위를 했는가. 한나라당이 유아교육법 수정안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막판에 ‘유아 교육기관의 유아에 대한 보호조항’을 삭제한 것에서 비롯된다.
즉, 법 제정 찬성측은 “유아교육법 제정으로 향후 유아 교육이 획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됐는데, 보호 조항을 삭제해 법 제정의 근본 취지를 무색케 했다”는 주장이다. 반면, 반대측은 “유아교육법에 보호 조항을 삽입할 경우 유치원 등에서도 보육이 가능하게 돼 전국의 보육시설이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며 법 제정을 반대했던 것이다.
결국 한나라당은 ‘보호’ 조항을 삭제해 한국보육시설연합회의 손을 들어준 꼴이 됐다. 누구의 손을 들어주고 안들어주고가 중요하겠는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유아 교육의 무상화라는 대승적 차원에서 해석해야 할 문제를 ‘기득권’을 놓고 저울질 했다는 데 전국의 학부모들이 개탄스러워 하고 있다는 데 그 문제가 있다.
참교육학부모회 박경양 회장은 본지와 인터뷰에서 “이제 그들은 자신의 밥그릇을 각각 챙기게 됐다”며 “향후 유아교육과 보육의 통합과 정부 부처 일원화는 더더욱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도 지난 1월 8일 성명서를 통해 “유아교육법 제정이 여러 이익단체들간의 밥그릇 싸움으로 번져 당초 안에서 크게 후퇴해 반쪽이 됐다”며 개탄했다.
“사교육비는 더 이상 국민이 짊어져야 할 것이 아니다”
정부는 정부대로, 단체는 단체대로 할 말이 있고 평가 잣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아교육의 주체는 누구인가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바로 학부모들이다.
이에 대해 교육부 유아교육지원과 이계영 과장은 “유아교육법은 어린이집에 피해를 주기 위한 법안이 아니다”며 “오직 유치원에 다니는 유아와 그 가정 및 유치원 교사를 지원하고, 유치원교육을 발전시키기 위한 조항만이 들어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과장은 ‘보호’조항 삭제에 대해 “국회에서 가결된 수정동의안의 수정이유에 ‘유아교육이라는 용어에는 이미 보호의 기능이 당연히 내포되어 있으므로 유아의 보호에 대한 규정을 별도로 둘 필요가 없다’고 기술하고 있으므로 시행령 제정과정에서 종일제 운영과 지원내용을 포함하는 것은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의 자료에 의하면, 지난 2003년 통계를 보면 취학 전 어린이 총 193만명 중 유치원과 보육시설에 맡겨진 전체 60%에 이르는 어린이 가운데 17%만이 국공립 시설에 맡겨져 있을 뿐, 나머지 83%는 사립 시설에 수용되고 있다고 한다. 지난 1977년을 기준으로 초중고교 교육비는 10배 증가했지만 유아교육비는 155배 늘어난 것만 봐도 유아의 사교육비가 얼마나 부담되는 지 알 수 있다.
서울 목동에 거주하며 4세 유아를 둔 주부 황모씨(26)는 “아이들 키우는 데 대략 월 60만원 정도 고스란히 현금으로 들어간다”며 “학교 입학하면 어찌될까 겁날 정도”라고 말했다. 경기 광명시의 주부 김모씨(32)도 “맞벌이는 이제 필수”라며 “얼마전 뉴스에서 25평 아파트 구입하는데 18년 걸린다는 통계가 맞는 얘기일 것”이라고 말했다.
위의 통계를 덧붙여 설명하자면, 100명의 어린이 가운데 유치원에 보내는 아이는 60명이고 나머지 40명은 유치원에 조차도 못가는 아이다. 이 60명 중 11명 정도만 비교적 수업료가 싼 국공립 유치원에 맡겨진다는 얘기다. 100명중 10%에 해당하는 10명 정도만 국가 혜택을 받고 있었는데, 이제 만5세 이상 유아는 모두 국가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유치원에 보내지는 만5세아는 ‘교육’만 받을 뿐 ‘보육’은 받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 두 단어의 차이는 무엇인가. 사실상 차이가 없다. 12시간 이상씩 맡겨지는 유치원 종일반에서 교육만 시키고 보호는 하지 않는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말이 안된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이 ‘보호’ 조항을 삭제해 논란을 빚고 있는 것이다.
유아교육법 제정에 반대했던 한국보육시설연합회 황영자 회장도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유아교육법에 보호 기능 조항을 삭제한 것이 논란이 되고 있는데 유치원에서 종일반을 운영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이렇게 되면 법에만 표시되어 있지 않을 뿐, 사실상 보호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지난 91년 제정된 ‘영유아보육법’의 ‘교육’과 ‘보호’ 조항이 문제시 될 수 있다. 영유아보육법에는 유아교육법과는 달리 ‘교육’이라는 단서가 붙어있다.
이에 대해 황회장은 “유아교육법에 보호 조항을 뺀 만큼 영유아보육법에서도 교육조항을 빼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12시간 이상 아이들을 맡기는 보육시설에서 어떻게 보호만 할 수 있겠는가”라고 주장했다.
전교조, ‘운영위원회’ 설치로 자율적 통제 이뤄내야
얼핏보면 별 문제가 없어보이기도 한다. ‘보호’ 조항이 뭔 대수냐는 반응도 나올 법 하다. 바로 그 점이 문제다. 별 문제 될 것도 아닌 것 갖고 두 개의 파로 나뉜 교육 단체들이나 업무 이원화를 하고 있는 정부나 모두 문제란 소리다. 이미 ‘교육’과 ‘보육’을 동시에 실시하고 있는 일선 유치원과 어린이집이 대다수인데도 말이다.
법안도 하나로 통합하고 부처도 일원화 해 보다 내실있고 추진력있는 교육 현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 나오고 있다. 이번 법 제정으로 사교육비를 학무보가 감당해야 했던 것에 비해 큰 발전을 이룬 것이긴 하지만, 관련 단체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해 ‘유아교육과 영유아보육의 통합’에 절대적 반대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것만 봐도 ‘반쪽짜리 유아교육법 제정’이라는 말이 나올 만 하다. 이와 관련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서 발표한 내용을 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전교조가 이번 법제정을 놓고 비판한 것은, ▶유아교육법에서 영유아 보육및보호규정을 삭제한 것과 보육시설에는 교육과 보육기능을 모두 보장해 주면서, 유치원에 대해서만 보호 보육기능을 삭제한 것은 형평에 어긋난다는 주장이다. ▶또한, 학부모 지원(학부모 바우처)이라는 시스템을 도입해 자금 지원을 한다고 했는데, 이는 시설 좋은 곳에만 학부모가 몰리게 돼 비교적 낙후된 공립 유아교육시설을 더욱 부실화 시킬 수 있다는 데 그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민주적 유치원 운영의 필수요소인 ‘유치원운영위원회’를 삭제한 점도 들었다. 초중고교와 영유아보육에도 적용하고 있는 ‘운영위원회’ 제도를 유치원에서만 인정하지 않는 것은 모순이라는 논리다.
유아교육법 초안에는 유치원 운영위원회 규정이 들어있었으나 일부 의원들의 반대로 이 조항이 삭제된 것은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율적 통제 없는 공적 제도는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될 뿐이다.
교육부나 복지부 모두 현재 “자녀를 보육 시설에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법적 토대가 마련됐다”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사실을 알고 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보육기관들은 유아교육법에 보호 조항이 빠지게 돼 권리 행사가 수월케 됐으며, 유치원기관들은 나름대로 교사 인건비 지원 및 종일반 운영 등 이득을 챙기게 되어 더 이상 두개의 관련 단체들은 싸우지 않을 듯 하다. 유아교육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의 법안 통합은 물건너 갈 것이 뻔하며, 부처 일원화는 이제 공염불이 될 판이다. 이미 유치원에서도 종일반을 하고 있고 보육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의 법 제정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이 된 셈이다.
국회 수정동의안에 ‘유아교육이라는 단어에는 이미 보호 조항이 포함돼 있다’며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한다. 문제될 것이 없다면 ‘보호’ 조항을 넣어도 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피해는 결국 누가 보는가? 학부모들이다. 자연과 조화를 이뤄 자라나갈 소망했던 프뢰벨의 유치원 창설 이념은 이미 수십년전에 퇴색됐다 하더라도 아이들에게 ‘이권(利權)’이라는 단어는 가르치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
앞으로는 ‘학교’로 명명될 유치원의 위상을 보더라도 공적 테두리안에 들어온 이상, 향후 그들을 향한 정부의 감사 및 감찰은 더욱 강화되야 할 것이다.
고구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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