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kGGM 일반기사 ]
"6·25때도 피난가지 않았드래요" - 강원도 양양 '큰 바다 마을'
태백산맥이 길게 자리잡은 강원도 지역은 아직 사람의 손길을 거부하며 살아가는 촌락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바닷가에 위치한 오지는 낯설은 게 사실. 강원도 양양군에 위치한 '큰바다 마을'은 우리나라에서 몇 안되는 바닷가 오지 마을이다.
☞ 미륵바위 너래바위 스님바위...
강원도 양양군은 오지가 많기로 전국적으로 소문난 동네다. 오대산과 설악산 등 태백산맥 줄기에 자리잡고 있어 그 만큼 '두메산골'이 많다는 얘기. 그래서인지 바닷가 오지마을인 '큰 바다 마을'이 더욱 특색 있는 듯 하다.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광진리 2반에 위치한 '큰 바다 마을'은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강릉에서 빠져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해변도로인 7번 국도를 속초방면으로 달리다 보면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주문진 해수욕장을 지나 약 20여분 정도 더 가면 오른편에 작은 푯말을 볼 수 있는데 이 곳이 바로 큰 바다 마을이다.
'언덕위의 바다'라는 작은 카페 푯말이 바로 '큰 바다 마을'의 입구를 알려주고 있는 셈인데, 7번 국도는 차량이 별로 없어 속도를 내다보면 지나치기 쉽다. 푯말을 오른쪽으로 끼고 돌면 차 하나가 간신히 지나칠 만한 도로가 나오고 그 언덕을 넘으면 군부대가 보인다. 군부대 밑에 자리잡은 큰 바다 마을은 이름처럼 큰 바다를 가진 마을은 아니다. 자연 방파제 역할을 해주는 바위 덕택에 앞바다는 '개인 풀장'처럼 작다. 또 '큰 바위 마을'이라 해도 좋을 만큼 희귀한 바위들이 많은데 이름도 가지각색이다. 미륵바위 너래바위 거북바위 등...
50여미터도 채 안되는 백사장을 등지고 보면, 오른편엔 미륵바위, 왼편엔 거북바위가 있다. 미륵바위 너머엔 너래바위, 거북바위를 감싸안은 언덕위엔 스님바위 등 수 많은 바위들이 태초의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바위에 둘러싸인 백사장위엔 집 두채가 가지런히 놓여 있는데 지난 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 이후로 철책이 마을을 가로지르는 바람에 더 을씨년스러워 졌다. 총 10가구가 살고 있는 큰 바다 마을의 주민은 서울에 적을 두고 휴가때만 들르는 2가구를 빼면 현재 20여명도 채 안된다. 이런 주민들은 과거 어업과 관련된 생업에만 종사해야 했다. 그러나 7번 국도의 개통으로 인해 인근 지역인 강릉, 양양 등으로 직장을 얻어 나가기도 한다.
☞ 광진(廣津)에서 유래한 '큰 바다 마을'
이 마을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40여년을 넘게 살아온 광진리 2반장 박광수(47)씨는 점점 오지라는 이름이 퇴색되어 가는 현실이 안타깝다. "지난해 횟집을 냈지요. 요즘 어디 동해 바닷가 중에 한적한데 있나요? 여긴 아직 괜찮습니다만 강릉만 해도 바다가 오염되기 시작한 것 같아요. 유흥가로 자꾸만 변해가는 세상이 아쉬울 뿐이지요" 이 마을은 6·25 전쟁시에도 인민군들이 그냥 지나칠 정도로 바다에서조차도 눈에 쉽게 띄지 않는다고 한다. 1리만 바다로 나가도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실제 지난 51년 인민군 전함이 그냥 지나쳤다. 도로도 지금은 7번 국도 덕분에 강릉이나 속초가 30여분 거리로 단축됐지만 50여년전엔 우마차 한 대만 거의 지나다닐 정도의 폭이었다.
인근 인구초등학교나 현남중학교로 통학하게 된 아이들 교육 문제도 모두 이 도로 덕분이다. 또 지난 97년엔 '휴휴암'이라는 암자가 들어서 더욱 사람들의 발길이 늘어나고 있는 실정에 있다. 그러나 주민들은 이렇게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별로 내키지 않아 한다. 그렇게 될수록 마을이 오염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바다를 향해 왼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멀리 광진리 1반이 어렴풋이 보인다. 1반과 2반은 서로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는데 특이한 것은 마을을 수호한다는 성황당이 두 개나 있다는 것. 광진리 1반의 성황당인 '남성황'과 2반의 성황당인 '여성황'은 오랜 세월을 그 자리에서 바다의 거친 호흡을 그대로 마신 듯, 많이 낡아 있었다.
미륵바위 왼편에 자리잡은 여성황 터에선 매년 정월 초하루날과 보름에 바다를 향해 제사를 올린다. 그러나 요즘은 자연어만 찾는 도회지 사람들로 인해 동해바다의 고기가 거의 씨가 말라 정월이 아니더라도 가끔 시제를 올리기도 한다. 바다에 업을 두고 배 두 척으로 근근히 살아온 주민들도 이젠 바다에 올리는 제사만으로 살수는 없었나 보다. 생활자체가 차츰 바뀌고 있는 것이다. 관광객들의 방문으로 인해 민박업과 횟집을 개업하게 됐다.
이 곳에서만 40여년을 넘게 살아왔다는 박복희 할머니(63)는 민박을 시작하면서 가족단위로 쉬러 온 관광객들에게 날이 어둑해지면 들려주는 얘기가 있다.
"우리 마을의 이름은 원래 큰 바다 마을이 아니었지. 근데 일제시대때 일본군들이 이 곳에서 정어리를 잡고 공장을 세웠던 모양이야. 그 후부터 큰 나루라는 이름이 붙었어. 그래, 광진(廣津). 지금 그 말을 한글로 풀이해 쓰이는 게지."
마을 유래의 얘기를 들은 아이들의 눈동자를 보면서 옛 추억에 빠진다는 주민들의 생활은 그다지 유복하지 못하다. 언덕밑 텃밭을 일구며 모든 야채는 자급자족하며 예전에 비해 좋아진 교통편으로 주말이면 한번씩 주문진에 물품을 사러나갈 따름이다. 이런 생활 때문인지 요즘 이 마을의 몇 안남은 청년들도 이 곳을 떠나려고 하고 있다. 이 곳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이 도회지 생활의 편리함을 쫓아 떠나고 있는 것이다.
휴가철마다 단골손님처럼 찾아오는 무분별한 환경 오염 또한 마을 주민들의 시름을 더해주고 있다.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수록 큰 바다 마을 주민들은 이래저래 걱정만 쌓여간다. 그래서인지 마을 반장인 박씨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성황당 주변에 해당화가 정말 탐스럽게 폈지요. 근데 이 곳을 찾은 사람들이 신경통에 좋다는 말만 듣고 모두 뽑아갔어요. 그래서 지금은 하나도 없지요."
☞ <가는길>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강릉으로 가 속초방면 7번국도를 탄다. 주문진에서 약 10여분 가면 남애리와 광진리 사잇길을 볼 수 있는데 왼편에는 '휴휴암'이라는 암자 입간판이 보이고 오른편엔 카페 '바다위의 언덕' 푯말이 보인다. 오른 편 언덕위로 조금만 가면 큰 바다 마을이 나온다.
농협중앙회 사보 게재(2000년 1월)
[오지마을] - 강원도 양양 '큰바다 마을'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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