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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folio/일반기사[1999~2002]

신유행 "CI를 바꿔라"

신유행 "CI를 바꿔라"

 
    수십년간 정들었던 이름을 바꾸는 일은 개인이나 기업이나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21세기를 맞아 기업들은 새로운 이미지로 고객들에게 다가가고자 상호명을 바꾸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또 각종 CI 전문 업체들이 생겨나 이런 흐름에 일조하고 있다. 브랜드의 이미지가 곧 기업의 이미지로 이어진다는 진리를 믿는 것이다.


☞ 1950년대 미국서 첫 선


   국내 이동통신업체인 한솔PCS는 지난 1월 회사의 모든 광고에 독특하고 차별화된 자막광고를 선보여 화제가 되고 있다. 한솔PCS와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제휴해 새로 출범한 한솔M.com은 기업 이미지에 대한 색상을 모두 오렌지색으로 바꿨다. 새 회사의 컨셉인 모빌 인터넷 리더(mobile internet leader)를 강조해 젊고 역동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제작사인 코래드 관계자는 "한솔의 이동통신회사라는 이미지를 벗고 모빌 인터넷 회사로 도약하는 것에 차별성을 뒀다"고 말한다.


이처럼 21세기를 맞아 국내외 업체들은 자사 브랜드 및 기업 이미지를 타 경쟁사와 차별화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기업의 이미지는 곧 상품의 이미지로 이어져 판매량과 직결된다는 풀이다. 기업 이미지(CI)는 'Corporate Identity'의 약자로 '기업 인식' 내지는 '기업 이미지'로 해석될 수 있는데 이미 세계적 유망 업종으로 부상하고 있는 정보통신업계에선 회사 창업에 있어 핵심 요소로 여겨지고 있다. 기존의 기업들도 새로운 느낌으로 고객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전문 CI 용역업체에 일을 전담하여 전문성을 높이는 작업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올림픽 같은 세계적인 행사에서 자국 국기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감격해 하는 것처럼 'CI'는 기업의 입장에서 고객지향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이미지를 표시하는 일종의 '색깔'과도 같은 것이다.


세계의 소비자들을 향해서 어떻게 적절히 이미지를 구사하여 강렬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바로 오늘날 기업 디자인의 과제인 셈이다. 국기나 어떤 조직의 휘장처럼 하나로 뭉치는 힘을 갖고 고객들에게 무의식적으로 세뇌 시킬수 있는 무기인 CI는 과거 기업과 제품을 알리는 독특한 표시로 여겨졌었다. 그러나 현재는 변화의 시대에 스스로 체질을 개선하여 '우리 회사는 꾸준히 변모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도 활용되어지고 있다.


1950년대 미국에서 기업전략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CI는 '소비자와의 강한 커뮤니케이션'을 목표로 통일된 이미지를 심는 작업이 핵심이었다. 그 첫 번째 성공 사례로 꼽히고 있는 인터내셔널 비지니스 머신스 코퍼레이션(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s Corporation; 국제사무기기회사). 그저 평범하게 들렸을지 모르는 이 회사 사명은 CI 작업을 거쳐 'IBM'으로 재탄생 했다. 그 후 굴지의 컴퓨터 업체로 일어서게 됐으며 훨씬 쉽고 간편한 약자를 내세워 첨단 이미지가 물씬 풍기는 줄무늬 심벌까지 상표로 통일시켜 바람을 일으키게 됐다.


☞ 21세기 달라지는 기업 풍토... '자사만의 CI 만들기'


  이렇게 사람의 마음까지 움직일 수 있는 '디자인'의 힘은 그 후 여러 가지 형태로 성공을 거둔다. 일본의 전기제품회사인 켄우드는 파산 직전 마지막으로 CI 디자인 전략을 썼다. 영문으로 'KENWOOD'를 쓰면서 가운데 글자인 'W'자에 역삼각형의 도안을 넣어 심벌 마크로 통일시키고 제품과 광고 등 모든 장비에 붙였다. 이미지 통일화 작업이었던 것. 이는 곧 성공으로 이어졌다. 글자모양이 멋있는 관계로 젊은이들 사이에 폭발적인 호응을 얻어 자동차나 소지품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게 됐던 것이다.


이러한 CI 작업은 단순히 시각적인 변신의 성공만은 아닐 것이다. 결국 CI 작업은 겉으로 보여지는 것과 동시에 행동의 변화와 마음의 움직임이 함께 동반될 때 완벽한 디자인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국내에도 CI 열풍이 몰아쳐 지난 90년대부터 수 많은 기업들이 CI 작업에 돌입했다. 지난 95년 럭키그룹과 산하 계열사들이 '이미지 통일' 작업의 일환으로 'LG그룹'으로 다시 태어난 것은 좋은 사례로 꼽힌다. 당시만 해도 국내 CI 전문 용역 업체가 없어 해외에 비싼 값을 치르고 태어난 LG의 로고(하회탈을 형상화한 이미지)는 현재 브랜드 가치가 수 억원대에 이른다고.


'하이트 맥주'로 이름을 바꾸며 일약 업계 1위에 올라선 조선맥주는 아예 브랜드명을 기업명으로 바꾼 예로, 현재까지 경쟁사인 OB 맥주와 함께 주류 시장에서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상태. 증권업계에서 5위권내를 지키고 있던 한신증권이 '동원증권'으로 개명한 사실이나 지난 97년 3월 한국이동통신이 모그룹 CI 작업의 일환으로 탄생한 SK 텔레콤은 현재 국내 점유율이 50%를 차지할 정도로 급성장 했다.


'고객이 OK할 때까지'라는 슬로건의 정한 SK그룹은 국내 굴지의 정유회사인 유공을 SK정유로 바꾸면서 CI 작업에 박차를 가했던 그룹으로 손꼽히고 있다. 지난 98년 1월 자사의 CI를 시행시킨 최종현 전 SK 그룹 회장은 당시 "지금은 국가간의 경제장벽이 사라지고 전세계가 하나의 시장이 되는 국제화 시대"라며 "사명을 바꾸는 것은 오늘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반드시 세계 일류 기업이 되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밝혔었다. 뿐만 아니라 신세계 백화점의 신경영이념인 '윤리 경영'에 발맞춘 '빨간색의 활짝 핀 꽃'과 현대백화점이 지난 15년간 사용해 온 '백조'를 탈피해 만든 'HYUNDAI'는 한차원 높은 고객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백화점에 국한된 유통업 뿐만 아니라 외식사업과 E비즈니스, 금융업 등의 진출을 담은 새 기업 이미지인 셈이다.


☞ 왜 기업 CI 작업에 사활을 거는가?


  이렇게 수 많은 기업들이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기업 CI 작업에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왜 그들은 그토록 사활을 걸어가면서 까지 회사명을 바꾸고 있는 것인가. 그 이유는 어찌보면 매우 간단하다. 회사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한 것이다. 자사의 상품 판매량이 줄어 회사 사정이 안 좋을 경우나 회사가 극도로 호황을 맞았을 경우에 주로 기업 CI 작업을 펼친다. 이는 불황기나 호황기나 가리지 않는다는 의미. 이런 상황으로 미루어 보아 국내 전문 CI 용역업체는 불황을 타지 않는 사업으로 알려져 현재 많은 업체가 들어선 상태다.


회사의 이념까지 바꾸며 새로운 이미지를 원해 CI 작업을 펼치고 있는 기업들은 현재 국내 정보통신 업계에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한솔엠닷컴·동아닷컴 등으로 불려지고 있는 '닷컴'은 미국 실리콘 밸리에서 한 때 유행했던 인터넷 업체의 인터넷 URL 이름. 굳이 인터넷 업체로 국한되는 말은 아니지만 '닷컴'이라는 말이 생소함과 동시에 신선해 많은 업체들이 줄줄이 '닷컴'으로 바꾸고 있다. 생활정보지로 유명한 '가로수'가 '가로수닷컴'으로 바꾼 것 외에도 신생 기업들은 아예 '닷컴'이란 이름으로 승부수를 띄우고 있는 실정이다. 해산물 유통 업체인 '전복닷컴'이나 인터넷 부동산 업체인 '(주)월세닷컴', 경마정보업체인 '경마닷컴'이 좋은 예.


소수의 사원으로 구성된 벤처 기업이 대기업의 기업문화를 바꾸고 있듯이 절대 바뀌지 않을 것 같았던 기업들이 기존의 회사명을 바꾸는 '파격'을 실시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트랜드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닷컴'이란 말은 인터넷 URL 주소의 '∼.com'을 의미하는 언어로 미국 실리콘 밸리에서 태동했다. 첨단 인터넷 기업이라는 좋은 이미지를 주며 '닷컴'이란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국내 사정과는 달리 현재 미국에선 기피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이름이 흔해지면서 신선도가 떨어진다는 평가와 함께 미국에선 이런 이름을 '90년대에나 유행했던 이름'이라고 해석하고 있는 것. 최근 워싱턴주 레드몬드에 위치한 인터넷 서비스업체인 '인포스페이스'의 회사명에 '닷컴'을 떼어내기로 했다는 소식은 좋은 예라고 할 것이다. 누구보다도 한발 앞서야 하고 먼저 생각해야만 살아남는 정보통신업계에선 이런 문제로 골머리를 앓을 수밖에 없다. 고객에게 좀더 신선하고 강하게 어필할 수 있는 '문자화 작업'이 바로 현재 기업들의 숙제인 것이다.


☞ 새 이미지 못지 않은 고유 브랜드 창출해야


   이런 분위기는 비단 기업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 96년 뉴욕 등 세계의 주요도시들도 CI 작업으로 자신만의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예컨대, 미국 뉴욕은 검은색 글씨로 철자를 쓰고 'O'자 대신 탐스런 붉은 사과를 그려넣음으로써 폭력으로 얼룩졌던 과거를 불식시키려 하고 있다.


이에 고무된 우리 나라도 90년대 중반부터 CI 작업을 시작, 철도청 등 전 산업에 걸쳐 CI 작업이 실행되고 있다. 철도청은 지난 96년 2월 1일부터 고객 중심의 경영혁신과 철도 이미지 쇄신을 위해 심벌마크를 '한국철도'로 바꾸고 로고 및 전용 색상 등도 완전히 탈바꿈했으며, 문화체육부도 지난 97년 11월 CI 작업을 통해 한복과 태권도, 탈춤 등을 혼합해 만든 이미지를 선보였다. 특히 지난해 정부의 CI 작업이 많았는데 기상청은 1월 백색 바탕에 하늘색 도안으로 백의민족인 한민족과 하늘을 상징하는 심벌마크를 발표했고 교육부도 7월 원형의 심벌마크에 훈민정음 목판본 서체로 '교육'이라는 글씨를 넣고 아랫 부분의 'ㄱ'은 튼튼한 뿌리를, 윗부분의 'ㄱ, ㅇ'은 열매를, 또 펜은 교육과 연구를 상징한다는 CI를 만들었다.


해외 기업들처럼 고객이 방문하는 사무실에까지 그 회사의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색상의 통일이나 차별화된 디자인을 하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현재 정부와 기업을 막론하고 계획·제작되고 있는 CI 작업은 더 많은 기업들이 자사만의 이미지 구축을 위해 최근 가장 많이 신경쓰고 있는 부분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최근 제일모직이 CI 작업을 전면 백지화한 것처럼 새로운 모습을 끊임없이 추구해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 십년간 쌓아온 브랜드 이미지와 가치도 새로운 이미지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기업들은 간과해선 안될 것이다.


현대조선 사외보 게재(2000년 봄)
[테마기획] - 기업 CI의 세대교체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