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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folio/인터뷰

"하늘에 떠있는 연을 볼 때 제일 행복합니다."- 한국 민속연 보존회 노성규

"하늘에 떠있는 연을 볼 때 제일 행복합니다."
- 한국 민속 연 보존회 노성규씨

 
 
☞ 8살 때 전국대회 참가... 고1때 본격적 시작


  서울특별시 용산구 효창동 10여평의 작은 공간. 이 곳에선 해마다 수천개의 연이 제작되고 있다. 모든 작업이 손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하루에 만들어 내는 개수가 적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1992년 9월 서울시 인간문화재 4호로 지정된 노유상 옹의 셋째 아들 노성규씨(45). 그리고 그의 아들 노순씨(21). 이들 부자는 겨울이면 으레 밀려드는 주문에 잠시도 손을 놓지 못하고 있다. 평균 하루 15개 꼴로 한달에 500여개를 제작하는 '연의 세계'는 겉으로 보기엔 길가의 일반 점포와 다를 바 없다. 방패연이 수북히 쌓여있는 것을 보아도 그렇다. "하루에 몇 개를 만들어 내는지 통계 내어 본 적은 없습니다. 요즘은 더 손이 바빠져서 하루에 100여개는 족히 만들어 낼 겁니다."


밀려드는 주문에 특수 제작되는 연은 요즘 같은 때 엄두도 못낸다는 성규씨의 말이다. 하루에도 몇천개씩의 연을 제작해 달라는 주문이 끊이질 않지만 일손이 달려 모두 제작해 주지 못하고 있다고 귀뜀. 17살 되던 해 성규씨는 아버지 유상씨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그 당시 성규씨는 이 길이 장인으로 가는 고된 길임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 때의 가르침은 30여년이 지난 지금,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 연 제작자로 만들어 놓았다.


"아버지는 항상 묵묵하셨습니다. 하루 종일 꾸준히 연만 만드시던 모습이 제 기억의 전부입니다. 아침에 등교할 때부터 하교할 때까지 아버지는 한자리에서 종일 연을 붙들고 계셨지요." 현재 아버지 노유상씨는 서울 은평구 연희동에 거주한다. 96세의 나이에도 불구, 아직도 때때로 아들을 가르친다고 말한다. 이제 성규씨는 자신의 유일한 아들인 노순씨를 예전에 아버지에게 이끌렸던 그 '연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다.


노순씨는 아직 나이가 어려 많은 가르침을 받지는 못하지만, 언젠가는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말씀하셨던 것들을 다시 듣게 될 것이다. 유상씨와 성규씨는 93년 한국 민속 연 보존회 설립이래 숱한 국내외 행사에 전통연을 선보여왔다. 86년 아시아게임을 비롯, 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 때는 전세계에 한국의 전통 연을 홍보하기도 했다. 유상씨와 성규씨가 만든 연이 곧 '한국의 전통 연'이었던 것이다.


☞ 연만들기 비법 공개


  80여년의 긴 세월을 오로지 연만들기에 바친 인간문화재 4호 노유상씨의 수제자이자 전수자 성규씨는 요즘 국립 민속 박물관과 문화센터에 출강하고 있다. 초·중·고교생들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 연에 얽힌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으면 1시간이 금새 지나간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 온 집안에 연이 가득했지요. 제가 연과 인연을 맺으려고 했던지 그 연날리기가 팽이치기나 썰매타기 보다 좋았어요. 한번은 연을 날리며 집밖으로 나가다가 뒷간에 빠지기도 했지요.(웃음) 연에만 신경을 쓰다 그렇게 됐는데 정말 그 독이 무섭데요.(웃음)"


그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렇게 회상하며 하늘에 자신이 만든 연이 하얗게 떠 있는 것을 볼 때가 제일 행복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요즘 연은 모두 기계로 제작되어 나오는 것 같다며 아쉬워 했다. 예전처럼 아이들이 직접 집에서 연을 만들어 하늘에 날려 그 기분을 공감했으면 하는 것이 그의 작은 바램이다. 그는 연 만드는 비법에 대해 알려달라고 하자 조금 망설이다 간략하게 소개해 주었다.


"일단 한지를 마름질 해야 합니다. 마름질 없이 연을 만들면 금새 찢어집니다. 2:3 규격으로 자른 다음 마름질을 하지요. 그리고 종이에 그림을 그립니다. 대게 제가 그리지만, 동양화 같은 것은 유명 화백에게 부탁을 하지요. 그림을 그린 후엔 대나무를 깔고 붙이면 됩니다. 대나무를 붙일 때 종이밖으로 2-3cm 정도 나오게 하면 되고, 붙이는 순서는 없습니다. 연은 중심잡기가 제일 중요합니다. 네 가닥의 실을 합쳐서 잡은 다음, 양귀의 두 줄은 꽁수구멍까지 똑같아야 하고, 꽁수구멍 줄은 양귀의 똑같은 위치에 닿으면 됩니다. 이때 가운데 줄은 약간 느슨하게(2mm 정도로 약간 길게) 한 다음 매듭을 지어 목줄을 완성시키면 방패연이 완성되는 겁니다."


비교적 쉬워 보이지만 한지나 대나무의 규격이 맞지 않아 중심이 흐트러지면 모든 과정은 수포로 돌아간다고 그는 전한다. 그만큼 정신을 집중해서 만들어야 제대로 된 하나의 연이 탄생한다는 얘기다.


☞ 그의 꿈은 한국 전통 연(鳶)의 세계화


  노성규씨는 '보기만 하는 연'은 원하지 않는다. 직접 만들어 연을 날렸을 때의 기분은 직접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며 "연이 보편화되어 세계로 뻗어나가 푸른 창공을 가르는 연이 세계적인 놀이문화로 자리잡았으면 합니다." 그는 또 2002년 월드컵을 대상으로 연을 관광상품으로 개발하기 위해 요즘 분주하다. 얼마전엔 홈페이지도 만들었다.(http://www.koreakite.co.kr) 각종 연의 제작을 비롯해서 새로운 연의 개발로 '보기만 하는 연'에서 직접 '날리는 연'으로 보급하려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연을 겨울에만 날리는 것으로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무척 잘못된 것이지요. 연은 대대로 예로부터 '부정은 날려보내고 복을 불러들인다'해서 1년 내내 하늘에 날렸지요."


인간문화재 노유상씨에 이은 노성규씨. 또 그의 아들 노순씨. 이렇게 3대는 요즘 북한과 관련된 뉴스를 접할 때마다 다짐을 한다.


"고향이 황해도 장연입니다. 임진각에서 40분 거리지요. 통일이 빨리 이루어져 고향에서 3대가 같이 연을 날리는 것이 아버지에 대한 제 소망입니다."


대신증권 사외보 게재(2000년 1월)
[한우물을 파는 사람들] - 한국 민속 연 보존회 노성규

- 끝 -